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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조대 오목한 절벽 아래 바다풍경
 하조대 오목한 절벽 아래 바다풍경
ⓒ 이승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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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바다에서 밀려오는 파도가 정말 멋지네. 이번엔 내가 더욱 멋진 곳으로 안내해볼까?"

한반도의 등뼈 백두대간을 넘어 동해에 도착한 일행들은 차가운 바닷바람도 아랑곳없이 낭만적인 겨울바다 풍경에 젖어 있었다. 바다는 여전히 하얀 물거품을 일으키며 거센 파도가 몰려온다. 운전대를 잡은 친구가 북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파도를 바라보며 겨울바닷가 길을 달리는 건 참으로 오랜만이다. 모두 창밖의 장엄하고 멋진 바다풍경에 취해 눈길을 돌리지 못한다. 길은 바닷가로만 계속 이어지진 않았다. 바다는 보였다 안보였다 숨바꼭질을 한다. 그렇게 한참을 달려 도착한 곳은 양양 하조대였다.

그리 넓지 않은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밖으로 나섰다. 양쪽으로 그리 높지 않은 소나무 언덕이 솟아 있어 아늑한 느낌이다. 앞은 바위절벽 낭떠러지 아래 바다가 안쪽으로 깊숙이 파고 들어와 있다. 그 양쪽으로 바다를 향해 툭 튀어나간 바위봉우리들, 오른편은 정자가 있는 곳이고, 왼편은 등대가 있는 곳이다. 우선 앞쪽의 바닷가로 나가보았다.

하조대 절벽 위에 있는 육각정
 하조대 절벽 위에 있는 육각정
ⓒ 이승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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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랄까? 옹기항아리 속처럼 움푹 내려앉은 바다가 울렁울렁 일렁인다. 바다를 향해 열린 입구를 통해 거센 파도가 몰려올 때마다 항아리 속이 온통 요동을 친다. 마치 용틀임하듯 바윗돌을 뛰어넘어 절벽에 부딪쳐 부서지는 하얀 물거품. 거센 동해의 파도가 금방이라도 바위절벽을 무너뜨리거나 삼켜버릴 것 같은 기세다.

오른편 오르막길을 잠깐 오르자 저 앞에 날아갈 듯 서있는 정자가 나타난다. 주변엔 아름드리 소나무들이 정자보다 더 높이 우뚝우뚝 서있다. 정자 앞에 이르자 제법 커다란 바위에 하조대(河趙臺)라 새긴 글씨가 선명하다. 이곳이 바로 경승 68호로 지정된 하조대다. 육각정 정자에 걸린 현판도 같은 이름이었다.

애달픈 전설과 조상의 숨결이 깃든 명승지에서 넙죽 절한 일행

하조대는 조선의 개국공신 하륜과 조준의 성을 따서 붙인 이름이다. 이들은 태조 이성계를 도와 조선을 건국하는데 많은 공헌을 한 사람들인데 말년에 두 사람이 이곳에서 보냈다는 전설이 전해온다고 한다.

"잠깐 여긴 우리 조상 할아버지가 말년을 보낸 곳이네, 그럼 내가 그냥 갈 수 없잖아? 할아버지께 문안인사를 드려야지."

안내판을 읽어본 일행 한 사람이 갑자기 하조대라 새겨진 바위 앞에 넙죽 엎드려 절을 한다. 전설의 주인공 하륜과 조준 중에서 조준이 바로 자기네 조상이라는 것이었다.

바위에 새겨진 하조대
 바위에 새겨진 하조대
ⓒ 이승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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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지 저 왔슈, 저 누군지 알아보시겠는감유?"
"조상님께 처음 인사를 하는데 절을 한 번만 하면 되나 두 번은 해야지."

큰절을 하며 능청스럽게 인사를 하고 일어서자 다른 일행들이 농담을 하며 거든다. 이 일행의 성씨가 조씨이니 조상이 맞긴 맞는 것 같다. 다른 일행들이 절을 한 번 더하라고 했지만 일행은 그냥 툭툭 털고 일어났다.

바위에 새긴 하조대란 글씨는 조선 숙종 때 참판벼슬을 지낸 이세근이란 사람이 쓴 글씨라고 한다. 주변의 소나무들과 잘 어울리는 육각형의 정자는 본래 조선 2대 임금인 정종 때 세웠다고 한다. 그러나 많은 세월이 흐르는 동안 퇴락하여 몇 번인가 다시 지었는데 현재의 정자는 지난 1998년에 건축했다 한다.

바위절벽 꼭대기에 서있는 소나무
 바위절벽 꼭대기에 서있는 소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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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 하조대에는 하륜과 조준에 대한 이야기와 함께 애달픈 전설도 전해오고 있었다. 옛날 이 지역에는 하씨 성을 가진 청년이 살았다고 한다. 그런데 청년은 이웃마을에 사는 조씨 성을 가진 처녀와 서로 사랑하는 사이가 되었다. 그러나 이들은 서로 깊이 사랑했지만 결코 결혼할 수 없는 사이였다.

양가의 조상들이 당파싸움에 엉켜 서로 죽이고 죽는 철천지원수가 되었던 집안이었기 때문이다. 고민과 슬픔에 빠진 처녀총각은 결국 하조대 절벽 위에서 함께 뛰어내려 죽고 말았다는 이야기다. 한국판 로미오와 줄리엣 같은 전설이다. 슬픈 전설 때문일까, 깊은 낭떠러지 절벽에 출렁이며 부딪치는 파도소리가 왠지 조금은 서글픈 느낌으로 들려오기도 한다.

"히야! 정말 경치 좋다. 여긴 옛날에 신선들이 살았던 곳 같아."
"맞아, 맞아, 우리 조준 할아버지가 바로 신선이었잖아 허허허."

주변을 둘러보던 일행이 아름답고 멋진 경치에 감탄을 하자 다른 일행이 엉뚱한 맞장구를 친다. 일행들의 말처럼 주변 풍광은 참으로 아름다웠다. 바다에 떠있는 작은 바위섬이며 절벽에 부딪치는 파도까지 그야말로 절경이다. 더구나 기묘한 모습으로 솟아 있는 바위절벽 꼭대기에 오랜 풍상을 견디고 서있는 노송은 정말 신선처럼 고고한 모습이었다.

주변 풍경과 어울리지 않는 조형물
 주변 풍경과 어울리지 않는 조형물
ⓒ 이승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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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건 돌고래 모형 아냐? 저런 건 왜 만들어 놓았을까? 이 멋진 자연풍광에 너무 어울리지 않잖아? 많은 돈을 들여 저런 걸 만들어 놓고 정말 어울린다고 생각하는 걸까?"

일행이 가리키는 곳에는 정말 매끄럽게 돌을 깎아 만들어 세워놓은 좌대 위에 돌고래 모형이 얹혀 있다. 그의 지적처럼 자연풍광과는 너무 어울리지 않는 모습이다. 저 앞바다에 돌고래가 살고 있다는 표시인지 모르지만 하조대 절벽 꼭대기 풍경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모습이 분명했다.

바위절벽 위에서 추락할 뻔한 사람을 구하다

처음 주차장에 들어설 때 오목하게 들어앉은 바다 왼편으로 불쑥 튀어나간 바위절벽지대가 마주 바라보이는 풍경도 멋지고 아름답기는 마찬가지다. 새하얀 등대도 멋지다. 등대가 있는 왼쪽 절벽지대로 가기 위해 왔던 길을 되돌아 내려갔다. 그쪽은 바닷바람이 더 거셌지만 길은 잘 정비되어 있어서 오르기는 어렵지 않았다.

이쪽은 소나무들과 정자가 있던 반대쪽과는 전혀 다른 풍경이다. 날카롭게 뾰족뾰족 솟아 있는 낮은 바위지대를 지나자 우뚝 솟아 있는 바위 꼭대기가 나타났다. 바람소리와 파도소리가 가득한 꼭대기 중앙에는 등대가 서있다. 등대 주변은 사람들 몇이 서있으면 꽉 찰 정도로 비좁았다. 그래도 사람들은 멋진 경치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다.

하조대 등대가 보이는 풍경
 하조대 등대가 보이는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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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일행들도 사진 찍기를 원했지만 장소가 좁아 좋은 사진을 찍기가 쉽지 않았다. 그런데 잠시 후 50~60대로 보이는 몇 사람이 꼭대기로 올라와 대뜸 사진을 찍으려 한다, 그런데 장소가 비좁아 사진 찍기가 어려워지자 카메라를 가진 사람이 울타리 밖으로 나간다.

바로 발밑은 낭떠러지 절벽이다. 그리고 그 옆에는 위험을 알리는 안내판이 세워져 있었다. 그러나 울타리 밖으로 나간 사람은 안내판을 무시하고 카메라에만 신경 쓰는 눈치다. 우리 일행 한 사람이 재빨리 그 사람 곁으로 다가갔다.

다음 순간 카메라를 든 사람의 몸이 기우뚱했다. 발을 헛디딘 것이다. 절체절명의 위험한 순간이었다. 곁으로 다가간 우리 일행이 재빨리 한 손으로 그 사람의 옷깃을 붙잡았다. 다른 한 손은 울타리를 붙잡고, 사진을 찍겠다고 서 있던 사람들의 비명이 터져 나온 것도 같은 순간이었다. 카메라에만 신경 쓰다가 발을 헛디딘 사람은 우리 일행이 붙잡아 주는 바람에 다행히 추락을 면해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하조대 바다풍경
 하조대 바다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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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심하셔야죠, 위험해보여서 좇아왔는데 큰일 날뻔 했네요."
"고맙습니다."

우리 일행의 위로에 고맙다는 한 마디 인사를 한 그 사람은 얼굴이 새하얗게 질려 있었다. 이곳에선 우리가 방문하기 얼마 전에도 역시 한 사람이 사진을 찍으려고 뒤로 물러서다가 실족하여 목숨을 잃은 곳이었다. 위험한 순간 그 사람을 붙잡아 준 일행은 방송에서 그 뉴스를 보았다고 했다.

"그래서 갑자기 그 사람 곁으로 다가갔구나, 정말 잘했어! 하마터면 눈앞에서 끔찍한 사고를 목격할 뻔했는데."

다른 일행들이 친구를 칭찬하며 하조대를 떠났다. 모처럼 동해를 찾아 하조대를 둘러 본 것은 정말 잘한 일인 것 같았다. 아름답고 멋진 경치를 구경한 것도 그렇고, 귀중한 한 사람의 생명을 구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덧붙이는 글 | 지난 12월 20일에 친구들과 함께 다녀온 겨울여행 이야기 입니다



태그:#하조대, #하륜, #조준, #조상, #전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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