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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대선 40여 일을 남기고 현재 선거운동이 한창이다. 언론에서 수시로 주관하는 후보 토론회에서 각 후보들은 다양한 수치와 관련 자료들을 들먹이며 현 정부를 비판하고 자신이 대통령이 된다면 국민을 위해 이러저러한 일을 하겠다며 다시 어마어마한 수치를 들고 나오면서 여러 공약을 선포하고 있다.

이들은 자신을 부각하기 위해 타후보들을 비방하는 것도 서슴치 않고 있는데 이런 후보들의 실망스런 태도와 이들이 남발하는 헛공약에 둘러싸여 국민들은 누구에게 표를 던질지 난감해 하고 있다.

지난 7일부터 시판된 철학책 <바이루, 올랑드, 졸리, 르 펜, 멜랑숑, 사르코지... 그들의 철학관>. 제르미나출판사 2012
 지난 7일부터 시판된 철학책 <바이루, 올랑드, 졸리, 르 펜, 멜랑숑, 사르코지... 그들의 철학관>. 제르미나출판사 2012
ⓒ 한경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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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이기에 나올 수 있었던 책

이러한 상황에서 한 기자가 이례적인 일을 시도했다. 시사주간지 <르 포엥(Le Point)>에서 일하는 프랑소와 고벵(Francois Gauvin) 기자는 언론에서 발언하는 대선 후보들의 말은 오직 표를 모으기 위한 겉치레 발언이며 진실성이 없다고 판단했다.

이들의 진면목을 알아보기 위해서는 다른 방식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생각한 그가 찾아낸 방식은 철학적 접근 방식이었다. 철학 박사 학위를 가진 고벵은 대선 후보자들에게 철학적인 질문을 던져봄으로써 이들의 근본적인 생각을 타진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국민은 무엇인지, 권력과 국민의 관계는 무엇인지, 선과 악은 무엇이며 인간의 행복은 무엇인지 등 우리 인간사회를 규정하는 근본적인 문제들을 제기함으로써 그들의 정치관이 적나라하게 들어나지 않을까.

그는 단지 무명기자의 직함을 내걸고 작년 말에 대선 후보들에게 철학적인 질문에 응해달라는 인터뷰를 요청했다. 다들 대선운동에 바쁜 후보들이 과연 이 인터뷰에 응해줄까 반신반의로 시작한 일이었는데 놀랍게도 다들 긍정적인 대답을 해왔다.

그 결과, 작년 11월부터 올 1월까지 대선 후보로 등록한 15명을 차례로 만나 일련의 철학적인 질문을 던질 수 있는 드문 기회를 가졌다. 이 질문의 결과가 책으로 묶여 지난 3월 7일 프랑스 각 서점에 분포되었다. 제목은 <바이루, 올랑드, 졸리, 르 펜, 멜랑숑, 사르코지… 그들의 철학관>.

캐나다 출신인 저자는 그 전날인 3월 6일 오전 파리 샹젤리제 거리에 있는 미술관 그랑 팔레(Grand Palais)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이런 책이 나올 수 있었던 이유는 우리가 프랑스라는 나라에 살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중등과정에서 유일하게 철학수업이 유지되고 대입고시에 철학 시험이 있는 유일한 나라 프랑스인지라 프랑스인들은 누구나 철학적인 사고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캐나다나 미국, 영국 등 철학교육의 바탕이 없는 다른 나라에서는 아무리 선진국이라 해도 대선 후보들에게 철학적인 질문을 던진다는 것이 불가능할 것이라는 것이 저자의 의견이다.

좌파전선당 후보 장-뤽 멜랑숑의 선거 포스터.
 좌파전선당 후보 장-뤽 멜랑숑의 선거 포스터.
ⓒ 한경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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혀를 내두른 기자 "부르디외가 따로 없네~"

극좌파인 NPA당(반자본주의 신당)의 후보인 필립 푸투(Philippe Poutou)는 현재 보르도에 있는 포드 자동차 공장에서 일하고 있는 노동자로, 바칼로레아(대입자격시험)를 치르지 않은 고졸출신이다. 그러나 그의 철학적, 역사적 인식은 대단해서 저자를 놀라게 했는데 저자의 표현에 의하면 마치 프랑스의 유명 철학자 부르디외를 방불케 할 정도였다고 한다.

좌파전선(Front Gauche)당의 후보 멜랑숑(Melenchon)은 언론의 도움 없이도 각 연설에서 우파 현 정권을 가차없이 비판하고 적절한 발언으로 많은 인파를 동원하면서 현재 새로운 별로 뜨고 있는데 저자에 의하면 그가 지닌 역사, 철학 등 광범한 지식에 혀가 내둘릴 지경이라며 철학 박사인 자신이 그 앞에서 열심히 노트하는 학생의 입장으로 떨어졌다고 밝혔다. 

대학시절부터 그람시(Gramsci)의 규정대로 '유기적인 지식인(전통적인 지식인이 기존 권력 유지에 동조한다면 유기적인 지식인은 민중 편에서 민중의 인식을 향상시켜 민중을 해방시키려는 개념)이 되려고 했던 멜랑숑(Melenchon)은 민중이 주체가 되어야 하는 사회에서 현재 돈이 주체가 된 사회로 전락했다고 말했다.

민중은 자신의 역사의 주체이며 대상이 되어야 하고, 집단 생활을 규정하는 근본적이며 중요한 결정들이 민중의 의결 없이 이루어졌다면 각 민중은 '그 결정을 위반할 수 있는 공적인 의무'가 있다고 거침없이 밝혔다.

현 시점에서 혁명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보느냐는 질문에 그는 "지금까지 역사 속에서 이루어진 모든 혁명은 사회 속에 내재된 모순이 더 이상 어떤 방법으로도 풀리지 않을 때 이루어졌다"며 "현재 프랑스 사회에서 혁명은 회피할 수 없는 상태"라고 밝혔다.

그는 또한 "행복이란 자신과 합치를 이룬 상태, 자신을 둘러싼 세계와 편안한 관계를 맺는 상태"라고 말을 맺었다.

현대민주당 후보 프랑소와 바이루의 선거 포스터.
 현대민주당 후보 프랑소와 바이루의 선거 포스터.
ⓒ 한경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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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우파 '르 펜', 기자를 한 시간이나 기다리게 하다

우파에 근접하는 중도파를 자칭하는 바이루(Bayrou, 현대민주당 후보) 역시 역사적, 문화적 지식이 풍부한 인물로 알려져 있는데 "알맹이 없고 진부한 선거 운동 중에 철학적인 질문에 대답할 기회를 가져 다행"이라며 "프랑스는 세계에서 유일하게 철학적인 개념(자유, 평등 박애)을 국가 이념으로 삼는 나라"라고 상기했다.

극우파인 국민전선(Front National)당의 후보인 마린 르 펜(Marine Le Pen)과의 만남은 유럽의회가 있는 스트라스부르그에서 이루어졌는데 1시간이나 기다려야 했다. 이민 정책을 적극 반대하는 그가 캐나다 국적의 저자를 오랫동안 기다리게 한 것은 당연한 일일까?

그러나 그녀 역시 철학적인 대화에 맛이 들어 원래 45분간 예정되었던 인터뷰가 1시간으로 연장되었다. 극우 민족주의를 표방하는 그녀답게 그녀는 국가의 개념을 가족과 같이 자연스러운 것으로 보고 있다.

프랑스의 역사는 모든 걸 사고 팔 수 있는 울트라 리버럴리즘이 만연된 앵글로-색슨 문화와는 근본적으로 다르다고 밝힌 그녀는 다행히 아직까지는 프랑스에서 모든 게 다 팔리는 게 아니라고 말했다.

그녀는 또한 언론마다 각 가정의 구매력에 집중 관심을 보이고 있는데 인간에게 중요한 것은 구매력이 아니라 삶의 질이라고 간파했다. 삶의 질이란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안정감, 교육, 신뢰감 등으로 아이들에게 이런 감정을 전파함으로써 아이들이 나중에 자신들의 굳건한 세계를 건설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보고 있다.

프랑스 정치인들은 왜 모두 50대 백인이지?

저자는 녹색당 후보인 에바 졸리(Eva Joly)와 사회당 후보인 올랑드(Hollande)를 섭외하는데 엄청난 시간과 어려움을 겪었다고 밝혔다. 결국 이들을 만나는데 실패하고 대신 이들에게 메일로 질문을 던져서 다음과 같은 답을 받았다.

노르웨이 출신의 판사 출신인 졸리는 법무부에 있으면서 타파하려고 했던 경제적 부패문제 해결에 실패한 이후 좀 더 광범위한 차원에서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치판에 뛰어들었다. 그녀는 프랑스가 아직도 군주제 습관이 남아있어 정치인들이 호화로운 생활을 유지하면서 국민들과 격리되고 있다고 밝혔다.

프랑스 정치인들이 대부분 50대 이상인 부르주아 출신 백색인종인 점도 언젠가는 타파되어야 할 사항이라고 간파했다.

현재 국민들의 가장 많은 지지를 얻고 있는 사회당의 대선 후보 올랑드(Hollande) 역시 저자의 인터뷰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정권에 도달하려는 야심을 품은 자가 철학적인 문제에 거짓없이 답하는게 가능한 일일지 저자는 자문하고 있다.

어쨌든 오랜 기간을 기다리게 한 후 그의 대답을 받을 수 있었는데 희망을 갖는 게 항상 좋은 일이냐는 질문에 그는 "희망 없는 삶은 존재하지 않는다. 사회는 하나의 공동의 꿈을 갖고 있어야 진보할 수 있는데 그게 바로 국가의 기본이 된다. 모두가 향상하기 위해 우리는 같이 공존하는 것이다"라고 답했다. 그러나 그는 선과 악에 절대적인 차이가 존재하느냐는 질문에는 답하지 않았다.

기대를 저버리지 않은 사르코지, 기자를 깨게 하다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
ⓒ ITAR-TASS=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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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르코지 대통령과의 만남은 좀 색다르게 이루어졌다. 그를 만났던 1월 말에 사르코지는 아직 공식적으로 대선 후보를 밝히지 않은 상태로 오히려 현 대통령과의 만남이라는게 더 적절할 것이다. 저자가 사르코지에게 메일을 보낸 지 한 시간도 되지 않은 어느 늦은 시각에 사르코지가 당장 만날 수 있냐고 연락해 왔다.

사르코지가 타고 온 르노 차에 올라탄 기자는 파리 시내를 일주하며 간단하게 인터뷰를 했다. 인터뷰라기보다는 사르코지의 모놀로그라고 하는 것이 더 적절한 표현일 것이다. 국민이 누구냐는 질문에 즉각적으로 아무도 아니라는 대답을 했던 사르코지는 잠시 후 "국민이란 내가 프랑스에서 좋아하는 모든 것이다"라고 번복했다.

국민이란 누군가 (지도자)를 만났을 때 국민이 된다며 결국 자신이 국민이라고 간접적으로 표현하기도 했다. "국민은 이리저리 떠밀리는 걸 좋아하는데 어느 방향으로 밀리느냐는 중요한 게 아니"라는 그는 또한 "희망이란 자신을 믿지 않는 자가 일종의 무능력의 표현으로 희망을 지니고 있는 거"라며 "자신은 희망보다는 일에, 노력에 더 많은 가치를 둔다"고 밝혔다.

행복이 무엇이냐는 저자의 마지막 질문에 사르코지는 난데 없이 "아름다운 여자"라고 대답해서 저자를 놀라게 했다. 사르코지와의 짧은 인터뷰는 자정에 끝났는데 그의 마지막 대답에 저자는 잠이 확 깨었다고 밝혔다.

국민의 행복을 보장해 주어야 할 대통령의 행복에 대한 정의가 아름다운 여자라면 그 나라 국민의 행복은 어떻게 될까? 칸트에 의하면 행복은 모든 욕망이 성취되어지는 상태를 말한다.


태그:#프랑스 대선, #철학, #사르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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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가, 자유기고가, 시네아스트 활동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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