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립과 드리스의 안어울리는만남

필립과 드리스의 안어울리는만남 ⓒ 배급사 NEW


영화 <언터처블 : 1%의 우정>은 상위 1%의 부자와 하위 1%의 빈자의 만남을 담고 있습니다. 전혀 어울릴것 같지 않은 두 부류의 만남이 어떤 조화를 이룰지 흥미롭습니다. 또 그것이 영화로 어떻게 표현될 지도 궁금증을 자아내기에 충분합니다.

특히 우리나라와 같이 자본주의의 기준이 단순히 돈의 많고 적음의 차이가 아닌 신분과 계급, 심지어 태생적인 귀천으로 결정지어버리는 분위기의 국가에서는 더욱 그렇습니다. 단지 돈은 부의 기준이 아닌 존경, 사랑, 우정, 결혼 조건 등 인간의 삶 전부를 뒤집을 수 있는 수단이자 도구가 됩니다

돈 앞에서는 그 사람의 인격이나 사상, 그리고 삶의 발자취 따위는 아무런 가치도 가지지못하고 맙니다. 모든 가치의 척도는 돈이며, 그 돈의 지배권을 지닌사람, 즉 재벌이나 부자들에게는 그들이 쌓은 업적 이외에도 지나칠정도의 많은 특권이 주어지게 됩니다. 예를들어 한 사람이 빈둥빈둥 놀다가 어느날 복권에 당첨돼 수십억 원의 재산을 얻게됐다고 가정해 봅시다. 그렇게 된다면 그는 돈으로 할 수 있는 것들 외에도 돈이 아닌 자신이 평생 가져온 삶의 방식과 태도를 '돈으로' 상쇄할 것입니다. 나아가 사회 지도층으로써 자리잡을 수 있는 기회까지 잡게 되지요.

돈이란 이런 묘한 매력이 있습니다. 그래서 상위 1%의 재벌이나 부자는 그가 지닌 돈의 가치를 넘어 자신의 인생 자체가 상위 1%가 됩니다. 물론 이런 현상은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자본주의를 표방하는 선진국들에서도 팽배한 현상입니다.

1%의 부자는 자신을 '단지 돈이 많은 부자'로 생각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돈과 함께 권력을 차지했다는 착각에 빠지게 되는 듯합니다. 그들에게 가난한 사람은 단지 돈이 적은 사람이 아닙니다. '저 사람은 돈이 없으니까 인생의 실패자고 헛된 삶을 살았다'는 식으로 가난한 사람들의 인생을 규정짓습니다.

그러니 아무리 고매한 인격의 사람도, 학식이 뛰어난 사람도 결국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돈'이란느 기준이 제일 강하기 때문에 돈의 많고 적음을 뛰어 넘어 가까워 질 수 없는 간극을 마주하게 됩니다. 이런 자본주의 사회에서 영화 <언터처블 : 1%의 우정>은 그리 공감대를 주지 못합니다. 단지 영화니까, 마치 신데렐라 신드롬과 같은 분위기일 것이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자본주의가 모르는 뭔가가 있다

이 영화는 그래서 상상하기 어렵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영화는 실화입니다. 실존인물들도 아직 살아있고, 이 영화가 완성됐을 때 최초 개봉작은 두 주인공들에게만 상영했습니다. 그래서 흥미를 더해줍니다. 영화의 내용은 사실 그리 새롭거나 파격적인 것도 없습니다. 엄청난 부자인 필립(프랑수아 클루제)이 불의의 사고로 경추를 다치면서 사지마비 상태가 되고, 그런 그를 돌봐줄 사람을 구하는데, 마침 드뤼스(오마 사이)라는 사람을 만납니다.

드뤼스는 가난하지만 자기의 가족과 형제들의 생계를 책임져야하는 처지에 놓여있습니다. 그러나 시도하는 일마다 그의 직설적인 성격 때문에 번번이 사람들과 마찰을 일으킵니다. 실업수당으로 생계를 연명해야 하는 처지였습니다. 그러다가 사람을 구한다는 필립의 저택에 들어가 취업지원서에 도장을 찍어달라고 막무가내로 우깁니다. 그것을 본 필립은 한 가지 제의를 합니다.

 둘이 서서히 가까워지는건 '돈'의 관계를 뛰어넘었기 때문이었다

둘이 서서히 가까워지는건 '돈'의 관계를 뛰어넘었기 때문이었다 ⓒ 배급사 NEW


"당신이 2주 동안 내곁에서 견뎌낸다면 취업을 시켜주겠다."

직설적이고 막무가내인 드리스의 입장에서는 도저히 불가능한 제안입니다. 단 한시도 떨어져서는 안되고, 식사와 목욕, 산책과 마사지까지 거의 24시간을 붙어서 간호를 해야 하는 중증장애인을 돌본다는 건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최상위 1%의 부자와 최하위 1%의 가난한 사람은 첫 만남을 갖게됩니다.

'인간'을 만나다

부자나 가난한 사람이나 그 둘 사이에 단지 '돈'이 개입되지만 않는다면, 얼마든지 가까워 질 수 있다는 걸 이 영화는 보여줍니다. 드리스는 필립을 간호하면서 그의 재산이 아닌 '인간'을 보게 됩니다. 필립은 수시로 발작을 하고 근육경련을 일으키며 밤낮으로 고통 속에 몸부림 칩니다. 그런 필립에게 연민을 느끼는 드리스는 필립을 인간적으로 이해하게 되고, 필립이 마음으로만 좋아하고 편지로만 소통을 하던 여인과의 인연을 만들어 줍니다.

필립은 반대로 드리스에게 돈 외에는 해 줄 게 없다는 사실에 괴로워합니다. 아마도 필립은 건강할 때는 돈으로 못하는 게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는 억만금을 주고도 얻을 수 없는 건강을 잃어버리면서 '돈'의 위력의 나약함을 체험했을 것입니다. 그런 상황에서 드리스에게 단지 '돈'으로만 대가를 지불해야만 하는 자신이 미웠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 마음에서인지 필립은 드리스가 자기 방에서 아무렇게나 휘갈겨서 그린 그림을 경매에 팔아줍니다. 아마 눈치가 빠른 분은 보셨겠지만, 영화가 진행되는 내내 필립이 가장 기뻐하는 순간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는 자신을 지탱해온 '돈' 외에 드리스에게 줄 것이 있다는 사실에 몸서리치도록 기뻐합니다. 이렇게 부자와 극빈자, 두 사람은 그들 사이를 가로막던 '돈'의 벽을 넘어서고 '인간'으로 만나게 됩니다.

돈으로 살 수 없었던 '친구'와 '사랑'

 필립은 친구와 연인, 그리고 인생을 얻었다.

필립은 친구와 연인, 그리고 인생을 얻었다. ⓒ 배급사 NEW


필립은 돈이 많습니다. 그래서 그는 몇 명의 집사들을 두고 대 저택에서 살고 있습니다. 비록 몸은 성치 않으나 그는 불편한 몸이 불편을 느끼지 못할 정도의 가치있는 돈이 있습니다. 그러나 단지 없는 것들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친구'가 없었습니다. 그가 드리스를 처음 면접할 때도 단지 돈을 주고 고용하는 간병인으로 뽑았을 뿐입니다. 그런데 드리스는 간병인 이상의 친구가 돼 주었습니다.

드리스가 필립의 친구가 되는 순간, 드리스는 필립에게 또 한 가지 없는것을 발견합니다. 바로 '사랑'이었습니다.  필립에게는 편지로 왕래하는 여자가 있었지만, 정작 자신의 상태를 드러내지도 못한 채 만남으로 이어갈 용기도 없었습니다. 그런 사랑에 징검다리가 돼 주겠다고 생각한 사람이 바로 '친구 드리스'였습니다.

드리스가 필립을 간병인으로 만났을 때는 그의 대소변을 받는것은 죽어도 못하겠다고, 그것만은 다른사람이 하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친구' 필립을 위해서는 대소변 뿐 아니라 그가 휠체어를 탔다는 사실을 잊어버릴 정도로 일반인과 똑같이 대했습니다. 드리스에게는 필립은 그저 친구였을 뿐입니다.

영화는 그렇게 진행되고 마무리됩니다. 딱히 클라이막스나 대반전이나 충격적 사건이 등장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영화가 끝나는 순간에는 소름이 끼칠정도의 충격을 받게되는 건 어쩔 수 없습니다. "저런 친구가 있다면 좋겠다" 라는 생각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습니다.

누구도 건드리지 못하는 우정 '언터처블'

영화의 제목 언터처블이라는 말은 인도 카스트제도의 브라만, 크샤트리아, 바이샤, 수드라 라는 4계급에도 속하지 못한 제5의 계급인 최하천민을 일컫는다고 합니다. 영화 중 드리스가 처해있는 환경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세상의 누구도 건드리지 못하는 1%의 우정을 나타내기도 하는 단어입니다.

이 영화는 지난해 11월 2일부터 올해 1월 8일까지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에서 10주 동안 박스오피스 1위를 기록했고, 무려 2100만 명의 관객을 끌어들이면서 큰 흥행을 거뒀습니다. 관객 뿐 아니라 평단의 호평도 한꺼 번에 얻었습니다. 각종 언론과 영화 관계자들 사이에서 아마도 최고의 흥행을 기록하지 않을까 라는 기대감도 감추지 않았다고 합니다. 또한 프랑스의 아카데미로 불리는 '세자르 영화제'에서 남우주연상 등 9개 부문에 노미네이트 됐고, 드리스 역을 맡은 오마 사이는 제24회 도쿄국제영화제에서 남우주연상을 차지했습니다.

사실 이런 결과는 두 배우의 피나는 노력의 당연한 결과였습니다. 드리스 역을 맡은 '오마 사이'는 빈곤한 역할을 위해서 몸무게를 무려 10kg나 감량했고, 필립을 연기했던 '프랑수아 클루제'는 실존인물을 직접 만나 며칠을 함께 살기도 했습니다. 그러면서 그의 말투와 장애인으로서의 특징 등을 완벽하게 재연했다고 합니다.

이 영화는 이미 2003년도에 실제 두 주인공이 등장했던 다큐멘터리를 소재로 했습니다. 샴페인 회사 경영자였던 '필립'은 패러글라이딩 사고로 전신마비가 되고 아내의 죽음으로 암흑의 삶을 살았고, 그 뒤에 만난 에브델과의 아름다운 우정 이야기는 시청자들에게 큰 감동을 줬다고 합니다. 그것을 본 올리비에르 니카체와 토레다노 감독은 이를 영화화하도록 허락을 받았습니다.

앞서도 밝혔지만 이 영화는 완성되자마자 실제 주인공인 '필립'과 '에브델'에게 가장 먼저 보여줬다고 합니다. 이 영화를 본 주인공 '필립'은 상영내내 의자를 들썩이며 웃었고 끝날 때에는 눈물을 흘리며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나 같은 사람은 거울을 안 보게 되지, 그런데 오랜만에 내 눈을 본 것 같다." 

그는 또 정식 프리미어를 통해 관객들과 함께 영화를 봤을 때는 "나는 두 손으로 박수를 치고 있다"며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고 합니다. 아무런 특수효과 없이 잔잔히 풀어가는 이 영화의 매력, 그것은 바로 '진실'입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다음 블로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언터처블 1%우정 필립 드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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