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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합진보당 청년비례대표 예비후보 김지윤이 지난 7일 자신의 트위터 계정에 '제주 해적기지 건설 반대! 강정을 지킵시다'라고 올린 사진의 문구가 논란이 되고 있다.

 

국방부 대변인이 "이렇게 말씀하신 분이 저는 대한민국 국민인지 의심스럽다"고 비난의 포문을 열었고 강용석, 변희재, 전여옥 등 보수논객(?)들은 힘을 보태고 있다. 9일 아침엔 <조선일보> 1면에, 저녁엔 <문화일보> 1면에 김지윤 후보를 맹비난하는 기사가 배치되기도 했다.

 

그런데 국회의원 예비후보, 그것도 지지율이 미미한 통합진보당 예비후보 한 명의 발언에 대한 반응치고는 너무 격하다. 군 당국과 여당(혹은 출신의) 국회의원을 비롯해 보수 언론들이 그 내용을 앞다퉈 비난하고 있으니 말이다. 작금의 호들갑은 오히려 궁금증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비난의 대열에 끼어 있는 몇몇 인사와 단체들의 면면이 국민의 신뢰를 받기엔 많이 부족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해군(海軍)'을 '해적(海賊)'이라 부른 것이 문제라는 저들은 군은 정의롭다고 생각하는 것일 테다. 그래서 '어쩌면 군은 정의롭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의심마저 움트고 있다. 그리고 그 의심은 사실 진실에 더 가깝다.


군대는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


해군은 김지윤 예비후보를 명예훼손으로 고소했다. 고소장은 "1945년 조국의 바다를 우리 손으로 지키자는 신념으로 창설한 이래 지금까지 충무공의 후예라는 명예와 긍지를 안고 해양주권을 수호해왔다"고 시작한다.

 

해군은 충무공까지 들먹이며 군이 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존재한다고 강변한다. 하지만 이는 현실을 제대로 설명하는 말이 아니다. 근대 국가에서 군대의 존립목적은 그렇지 않다. 우선 방어만 하기 위한 군대는 존재하지 않는다. 군대는 엄연히 '적'이라 규정된 이들을 향한 공격용이다.

 

그러면 누가 '적'일까. '자국의 존립을 위협하는 적국'이라는 교과서적 대답은 안타깝게도 반만 맞다. 반은 틀렸다는 얘기다. 근대 국가에서 군대의 총부리는 타국만을 향한 것이 아니다.

 

근대국가의 출현과 상비군 체제는 매우 중요한 관계를 갖는다. 징집과 이를 통한 국가통제가 가능해진 것이 근대국가의 기반이라는 것은 정치학에서 거의 부정되지 않는 학설이다. 즉, 군대의 총과 무기는 자국 국민을 통제하기 위해서도 쓰인다는 것이 슬픈 진실인 것이다.

 

 

1980년 5월, 빛의 도시에서 그렇게 '적'들이 죽었다. 시간을 더 멀리 되돌리면 얼마 전 바위 하나가 깨어진 그 섬에서 1948년 4월에도 '적'들이 죽었다. 단지 한 국가 내에서만 그런 일이 벌어지는 것은 아니다. 한국의 제1동맹이자 세계 제1제국에 의해 수행된 수많은 '정의로운 전쟁'에 의해 얼마나 많은 학살이 벌어졌는지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군대는 자국 국민을 통제하고 타국을 침략하기 위한 억압적 기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해군이 해적이라 불린 이유


그런 근대국가의 군대가 정의로울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때는 국민을 보호하는 임무를 수행하고 있을 때다. 그렇기 때문에 억압적 기구임에도 불구하고 그 정당성(?)이 허용되는 것이다. 그런데 제주 강정마을에서 해군이 보여준 모습은 어느 모로 봐도 국민을 보호하는 것이 아니었다.

 

해군이 충무공을 들먹였는데, 충무공이 청해진을 설치하기 위해 국민을 핍박했다는 말을 들어봤는가. 오히려 충무공은 현지 뱃길에 능숙한 현지인들을 신분에 상관없이 중용했다고 알려져 있다. 지금의 해군은 그 정반대로 행하며 충무공을 핑계삼는다. 해군은 충무공의 명예를 훼손하고 있다.

 

지난 몇 달 간 강정마을에 해군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들은 거기에 있는 국민을 보호하지 않았고 오히려 공격했기 때문이다. 한자로부터 많은 단어를 빌려 쓰고 있는 우리는 정의롭지 못한 포악한 무리를 '-적(敵)'이라 부른다. 그러니 그들은 적이다. 바다에 있는 적이니 해적이다.

 

해군이 국민의 수호자란 명예를 회복하기 위해 고소해야 할 이들은 강정마을에서 국민에게 폭행을 가한 해적들이다. 군이 정말로 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존재한다면 해군은 당장 해적이 되어버린 반군들을 소탕해야 마땅하다. 강정 마을의 평화를 지켜야 한다.

 

그런데 이 나라의 군대는 그렇게 하지 않는다. 군대의 총과 무기는 자국 국민을 통제하기 위해서도 쓰인다는 슬픈 진실을 다시 반복한다. 대한민국 건국 이래 군대는 그 목적에서 이탈해 본 적이 거의 없다. 군대는 그 역사적 사실을 다시 증명하고 있다. 그렇게 함으로써 대한민국의 군대는 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란 의심을 재차 불러일으키고 있다. 해군이 해적이라 불린 이유는 해군 자신에게 있는 것이다.


독재국가의 문턱에서

 

앞서 말하지 않은 가장 중요한 비밀이 있다. 그것은 적인지 아닌지는 대체 누가 결정하느냐는 물음이다. 이 물음의 정답은 국민이어야 한다. 하지만 대한민국이란 나라에선 그 정답이 국민이 아니란 것이 이번 '해적기지' 발언을 둘러싼 논란을 통해 증명되고 있다.

 

해군 퇴역 장교들과 강용석 국회의원은 김지윤 예비후보를 명예훼손으로 고소했다. 불행 중 다행으로 아직은 고소에 그쳤다. '적절하고 합리적인' 사법기구라면 고소를 기각하겠지만, 이 나라의 사법기관에게 그런 합리성은 결여 된지 오래니 불안하다.

 

더 불안한 것은 대한민국이 독재국가의 문턱에서 그리 멀리 벗어나지도 못한 것 같다는 점이다. 국민이 군을 비판하고 통제하지 못하는 나라를 군부독재국가라고 부르는데, 아직 이 나라는 거기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것이 분명하다. 군이 하는 일에 국민이 반대하는 것을 인정하지 못하는 국가니 말이다.

 

극소수의 국민이라도, 국민을 억압하고 고통을 주는 무리를 '적'이든 무어든 비판한 것이 누군가에 의해 통제되고 처벌받는다면, 그것은 독재다. 강정 주민을 해치고 그곳을 파괴한 해군을 해적이라 부른 것이 죄라면, 언젠가 또다시 국민의 면전에 군부의 총검이 닥치지 않으리라 말하기 힘들 것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김지윤이 옳다. 그날 강정마을에 해군은 없었다. 해적만 있었다.

 

꽃 피는 4월엔, 강정 마을에도 꽃이 필까?

 

발파를 기점으로 한 논란 통에 해군기지 반대 여론이 급물살을 타자 현 정부와 여당은 "제주 해군기지도 전 정권이 추진하던 것"이란 핑계를 댄다. 안타깝게도 이는 사실이다. 한명숙 전 국무총리를 비롯해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 등 전 정권의 핵심 관계자들은 아직 이에 대해 사과한 적이 없다. 그들은 현재는 각각 민주통합당과 통합진보당의 당 대표다.

 

 

민주통합당은 "해군기지 사안을 핵심 당론으로 정하고 전력을 다하겠다"지만 그 진정성을 의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총선 직전인 지금이야 민주통합당조차 제주해군기지 건설에 문제를 제기하지만 이후에도 일관되고 진지한 자세로 임할지는 미지수다. 제주 해군기지건설의 원죄는 민주통합당에게 있으니 말이다.

 

통합진보당의 유시민 공동 대표는 김지윤 후보의 '해적기지' 발언에 대해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합리적이고 적절하지 못한 발언'이라는 우회적 사과까지 했다. 한국에서 가장 진보적인 축에 드는 정당의 당대표조차 이러니 호들갑을 떠는 보수 논객들을 비판하는 것조차 무망할 노릇이다. 유시민 대표의 사과성 발언에 힘을 얻는 것은 바로 그들이 비호하는 세력이다.

 

 

"해적기지 반대한다. 나도 고소하라!"란 외침에 동참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과거의 원죄와 자신의 책무를 망각하고 아직도 침묵하고 있거나 그녀를 비난하는 쓸모없는 299명 말고, 김지윤이 국회의원이 돼야 한다. 독재국가의 문턱 언저리에서 더 많은 김지윤이 절실하다.

 

그래야 의원들의 가슴에 금배지 꽃 피는 4월, 제주 강정마을에도 꽃이 핀다.

덧붙이는 글 | 제 블로그(http://ppoppogle.tistory.com)에도 중복 게재할 예정입니다. 


태그:#제주 해군기지 건설 반대, #통합진보당 청년비례 김지윤 후보, #강정 구럼비 바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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