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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나간 며느리도 돌아온다는 전어의 계절에 떠났던 아들이 돌아왔다. 작년 가을 입대했던 아들이 지난 3월 2일, 4박 5일 일정으로 신병 위로 휴가를 나왔다. 2일 오전 우리 집 거실에 들어선 아들의 첫마디는 "우리 집이 왜 이렇게 좁아 보이지"였다. 신혼 초 오랜만에 친정에 간 나는 "집이 왜 이렇게 넓어 보이지"라는 말을 한 기억이 난다. 아들은 그동안 군 생활관에서 지내면서 넓은 곳에 익숙해진 터이겠고, 나는 좁은 신혼집에 적응되어 친정집이 커 보였던 것이다.

4개월 열흘 만에 부모 품으로 돌아온 아들과 어떻게 시간을 보내야 할까 남편과 머리를 맞댔다. 같이 휴가를 나온 선임이 김밥을 사 줘서 아침은 먹고 왔다는 아들. 군에선 선임의 역할이 크다며 자신도 곧 선임된다며 으쓱해 한다.
 
한 쪽을 잃어버렸다는 장갑인데  아까워 버릴 수가  없었단다. 그런 절약 정신으로 군 물건을 아꼈으면.
 한 쪽을 잃어버렸다는 장갑인데 아까워 버릴 수가 없었단다. 그런 절약 정신으로 군 물건을 아꼈으면.
ⓒ 최정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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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이 가져온 장갑 한쪽에 얽힌 사연 하나. 왜 한 쪽이냐고 물었더니 한쪽은 잃어버렸는데 짝을 잃어 소용없어진 장갑이 아까워 도저히 버릴 수가 없어서 가져왔단다. 나는 아들의 말을 듣고 군 물건을 내 물건처럼 소중히 다루어야 한다고 말했다. 남편도 아들의 행동에 감동한 듯" 한쪽이라도 내가 끼고 다닐 거다"고 거들었다.

보통 신병 휴가는 일병이 되는 시점 전에 많이 간다고 한다. 아들은 4월에 일병이 된다. 남보다 다소 이른 3월 초에 온 이유는 "일병이 되었는데도 업무 파악이 안 되면 마음이 편치 않기 때문"이라고 한다. 의외로 피부는 깨끗했다. 그러나 입대 전 워낙 여드름으로 시름한지라 첫 일정은 피부과로 정했다. 입대 전 피부과에 상담을 갔을 때, 군에 가면 거의 피부가 나빠진다는 의사의 말에 아들은 심각해 진 적이 있다. 의사 선생님 말씀은 일반론이고 예외는 분명 있을 것이다고 예민해져 있던 아들을 다독인 적이 있다. 내 말을 입증하듯 아들의 피부는 입대 전보다 좋아졌다. 매일 아침 배달되는 우유를 마시고, 온수가 잘 나와 세수를 잘해서 그런 것 같다고 했다.

아들이 다녔던 고교 옆에 있는 도서관.  한창 수능준비를 했을 때 공사를 했기 때문에 완공된  모습을 보고 싶어 했다. 놀러나온 그림책, 휴가 나온 이등병
 아들이 다녔던 고교 옆에 있는 도서관. 한창 수능준비를 했을 때 공사를 했기 때문에 완공된 모습을 보고 싶어 했다. 놀러나온 그림책, 휴가 나온 이등병
ⓒ 최정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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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충제를 챙겨 먹고, 피부과·치과·안과를 차례대로 다녀온 다음 날은 우리 고장에서 가장 큰 규모로 신축된 상동도서관에 갔다. 특별히 이 도서관을 휴가시 꼭 다녀갈 장소로 택한 이유가 있다. 이 도서관은 아들이 나온 고등학교 옆에 있다. 아들이 고 3때 착공해 작년 9월에 완공되었다. 한창 수능 준비를 할 때 공사가 진행되었기 때문에 완공된 현장을 보고 싶다고 했다.

이 도서관 가는 길에는 도심 속의 인공 강인 부천 시민의 강이 흐르고 있다. 물고기가 노닐고, 새싹이 움틀 준비를 한 강을 따라 걸으며 "귀대 날짜가 다가오는데, 심정이 어떠냐"고 물었다. " 휴가 첫날부터 귀대를 생각했다. 휴가 후 그간 익힌 업무가 더뎌질까 봐 우려된다"고 했다. 행정병으로 있는 아들은 자신이 처리해야 할 업무 내용을 빽빽이 적은 수첩을 가져왔다. 휴가 기간 틈틈이 들여볼 생각이란다.

이곳은 타 도서관과는 달리 열람실 안에 책 볼 공간이 많았다. 잠깐이지만 아들과 나란히 책을 보는 시간은 어느 활동보다 뿌듯했다. 신체 단련도 중요하지만, 정신을 풍요롭게 할 수 있는 시간도 많이 배분하는 군이었으면 좋겠다. 문화관광부는 책 읽는 사회풍토 조성을 위해 올해를 독서의 해로 지정했다. 특히 2012년을 병영독서운동 원년으로 삼고, 50개 시범부대를 선정할 예정이라고 한다. 아들이 소속된 부대도 시범부대로 선정된다면 독서지도사인 나는 더 관심 있게 지켜볼 텐데….

상동도서관 옆에 졸졸 흐르는 도심 속의 인공강인 시민의 강에서. 아들은 고교 3년 동안 이 곳을 지나쳐  학교에 갔다.
 상동도서관 옆에 졸졸 흐르는 도심 속의 인공강인 시민의 강에서. 아들은 고교 3년 동안 이 곳을 지나쳐 학교에 갔다.
ⓒ 최정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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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에 와 닿는 기사를 읽었다. '마음 지닌 대로 행하고 행한 대로 거둔다'는 부제를 단 '마음수업'을 쓴 원불교 좌산 이광정 상사는 지난 1월 8일 자 <조선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마음을 잃고 뺏기는 건 모든 것을 잃는 거여. 다른 건 잃고 뺏겼다 해도 내 일부에 지나지 않지. 그런데도 마음과 정신세계에다 관심을 안 갖고 맨 돈과 숫자에만 매달리는 게 큰 병 이당게"라고 일침을 놓았다. 병영독서운동을 통해 몸과 마음이 균형 있게 튼튼해질 군인의 모습을 기대한다.

삼겹살을 좋아하는 아들을 위해 새로 마련한 구이판은 휴가 기간 한 번도 사용하지 않았다. 먹을 것은 신경 쓰지 말란다. 군에서 잘 먹어 먹는 데는 미련이 없단다. 군대 음식이 입맛에 맞는단다. 입대 전보다 통통해져 왔다. 내심 미안하기도 했다. 내 일에 바빠 제대로 해 먹이지 못한 일이. 숙식도, 보직도 긍정적으로 바라보며 군 생활 속으로 깊숙이 들어가고 있는 아들의 모습이 대견했다.

어떤 어머님은 "아들을 군에 보내고 나니 온통 기도뿐이다. 마음을 모으고 귀를 기울이고 눈을 맞추고 푸른 청춘이 부디 꺾이지 않기를 기도한다"고 했다. 나 역시 아들을 군에 보내고 선해지려고 노력한다. 남편에게도 배려와 용서, 나눔을 주문했다. 펄떡이는 청춘을 나라를 위해 애쓰는 그들에게 예전에는 채 느끼지 못했던 감사가 요즘은 밀려온다.
 
4박 5일간의 휴가를 마치고 귀대 길에 올랐다. 건강한 모습으로 다시 만나기를.
 4박 5일간의 휴가를 마치고 귀대 길에 올랐다. 건강한 모습으로 다시 만나기를.
ⓒ 최정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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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천여행을 끝으로 아들은 첫 휴가를 마무리하며 "엄마, 휴가 나와서 멀리 여행을 하지 않았지만, 피부과·치과·안과에서 상태를 체크하고 점검을 받으니 개운하고 안심이 돼. 아빠, 엄마와 보낸 시간을 추억으로 안고 갈게"라고 다음을 기약했다.

'그래 아들아! 4박 5일 동안 부모의 품에서 충전한 에너지로 군 생활 충실히 하기 바란다.'

다음 '이등병 엄마가 전하는 병영일기'는 이름이 바뀔 것 같다. 4월이면 아들의 계급이 일병으로 진급되므로 '일병 엄마가 전하는 병영일기'로 개명 신청을 해두겠다.


태그:#이등병 엄마가 전하는 병영일기 , #첫 휴가 , #신병 위로 휴가 , #국방의 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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