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토끼 혹은 오리? 다양성에 달린 문제

1898년 이전에 제트로가 논문에서 발표했던 오리지널 토끼-오리 그림
 1898년 이전에 제트로가 논문에서 발표했던 오리지널 토끼-오리 그림
ⓒ 제트로

관련사진보기


당신은 위의 그림이 토끼로 보입니까, 아니면 오리로 보입니까? 어떻게 보이든지 상관없습니다. 둘 다라면 정답에 근접하겠군요. 이 그림은 잘 알려졌다시피 오리-토끼 그림입니다. 비트겐슈타인이나 곰브리치 도형이라고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지만, 사실은 1898년 이전에 제트로가 논문에서 발표했던 오리지널 그림입니다.

문학에 대해 서술하기 전에 이 유명한 그림을 먼저 꺼낸 이유는, '다양성'에 관한 아주 유명한 예이기 때문입니다. 같은 그림을 보아도 각자 의견이 달라지는데, 하물며 문학 작품은 바라보는 관점에 따라, 혹은 작가의 내면에 따라 얼마나 많이 달라지겠습니까. M
.H.Abrams의 저서 <The Mirror and the Lamp>는 문학의 다양성에 대해 이야기 하는 책입니다. 

M.H.Abrams의 The Mirror and the Lamp의 비평 방법론
 M.H.Abrams의 The Mirror and the Lamp의 비평 방법론
ⓒ 권수아

관련사진보기


이제는 너무나도 유명해진 문학 이론서 <The Mirror and the Lamp>에 나오는 표입니다. 기본적인 설명을 하자면, 작품(WORK)은 바라보는 시점(UNIVERSE, ARTIST, AUDIENCE, WORK)에 따라 비평의 방법이 달라진다는 내용입니다.

여러 가지 비평의 방법들

'UNIVERSE'는 말 그대로 세계입니다. 작품 밖의 세계를 작품에 얼마만큼 정확하게 투영시키느냐에 따라 좋은 작품이 될 수도 있었고, 나쁜 작품이 될 수도 있었습니다. 18세기까지는 이 방법 하나만 가지고 비평을 하였으니, 지금처럼 복잡하지도 않았습니다. 단지 작품과 세계와의 관계만 생각하면 되었으니까요. 이를 모방론적, 혹은 반영론적 관점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18세기 말에 나타난 낭만주의 작품과 19세기 말의 자연주의 작품은 새로운 비평을 요구했습니다. 낭만주의는 현실성과 거리가 먼 이상적인 이야기들을 흥미롭게 할수록 좋은 작품이었고, 자연주의 작품은 인간을 과학적으로 추정해 논리적으로 그릴수록 좋은 작품이었기 때문입니다.

낭만주의와 자연주의의 예를 들자면, 낭만주의에는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자연주의에는 김동인의 <감자>를 들 수 있겠습니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은 감정이 절절하게 묻어나는 서한체로 써진 작품으로, 주인공의 비극적인 사랑이 잘 그려져 있습니다. 그리고 주인공을 모방해 자살하는 젊은이들이 많을 정도로 선풍적인 인기를 이끌었습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은, 작품이 다른 사람마저 감성에 젖게 할 정도로 감성에서 시작해 감성으로 끝난다는 것입니다.

반면, <감자>는 복녀의 인생이 어떻게 무너지는지 잔인하리만큼 정확하게 묘사되어 있습니다. 가난하지만 도덕은 갖추고 있던 복녀는 칠성문 밖 빈민촌에서 살면서 자신의 본래 성질을 잃어갑니다. 매춘까지 하던 그녀는 결국 이웃집 왕서방을 죽이고야 맙니다. 복녀는 처음부터 나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환경은 사람을 변화시키기에 충분하였고, 이는 그 당시 지식인들 사이에서 호응을 얻던 환경결정론에 기초합니다. 환경결정론은 인간이 결국 환경의 지배를 받는다는 이론입니다.

이렇듯 한 작품은 세계와 동떨어진 감성에서, 한 작품은 세계를 치밀하게 분석하는 과학에서 영향을 받고 창작되었지만 모두 명작이라는 데에는 의의가 없습니다. 세계를 얼마나 반영했느냐에 따라 작품의 가치를 평가하는 것은 이미 불가능하다는 뜻이겠지요.

시간이 흘러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로 가면, 문예사조에 또 한 번 큰 변화가 일어나게 됩니다. 제정 러시아에서는 모스크바 언어학회를 만들어 언어를 전문적으로 연구하기 시작합니다. 모스크바 언어학회의 안에는 오포야스(Opojaz)라는 시어를 연구하는 소그룹이 있었습니다. 오포야스의 언어학자들이 시어를 연구한 결과 신기한 점을 발견했는데, 바로 우리가 알고 있는 익숙한 표현을 시어로 사용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접하기 쉽지 않은 언어만이 독자들의 관심을 끌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는 곧 '낯설게 하기' 기법이 되었습니다. 낯선 시어들을 사용하는 문학의 기법인데, 국내에서는 김춘수의 <나의 하나님>에 잘 드러나 있습니다.

나의 하나님
사랑하는 나의 하나님, 당신은
늙은 비애(悲哀)다.
푸줏간에 걸린 커다란 살점이다.
시인(詩人) 릴케가 만난
슬라브 여자(女子)의 마음속에 갈앉은
놋쇠 항아리다.
손바닥에 못을 박아 죽일 수도 없고 죽지도 않는
사랑하는 나의 하나님, 당신은 또
대낮에도 옷을 벗는 여리디 여린
순결(純潔)이다.
삼월(三月)에
젊은 느릅나무 잎새에서 이는
연두빛 바람이다.
-김춘수 <나의 하나님> 전문

시에서는 감히 하나님을 늙은 비애이며, 커다란 살점이라고 비유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김춘수 시인은 독실한 신자였습니다. 그렇기에 낯설다는 것입니다. 아마 처음부터 숭고한 이미지의 시어들만 사용했다면, 신앙심을 나타내는 데에는 좋았을지언정 시로서는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하였을 겁니다. 또, 마지막에 가서는 '연둣빛 바람'이라고 하였으니, 전하고자 하는 바를 기어이 전하였습니다.

이런 식으로 작품의 기법과 장치를 눈여겨보는 비평 방법을 존재론적 관점이라고 합니다. 철저하게 작품만 바라보고 평가하는 것, 이것이 위의 표에서는 WORK에 해당합니다.

물론, 문학이 발전하면서 문학을 읽는 독자들도 함께 지성이 높아졌습니다. 독자는 이제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작가의 언급 없이도 유추할 수 있게 되었고, 심지어 전혀 다른 방법으로 해석할 수도 있습니다. 독자도 작품 비평에 역할을 충분히 해내고 있음을 뜻합니다. 예를 들어 헨릭 입센의 <인형의 집>은 현재 페미니즘의 시초로 알려져 있습니다.

하지만 이는 독자의 해석에 의한 것입니다. 애초부터 헨릭 입센은 그런 의도로 작품을 창작하지 않았고, 노라라는 부도덕한 여자를 통해 망가져 가는 풍토를 사실적으로 서술했습니다. 허나, 어느 순간 작가의 의도보다 AUDIENCE의 목소리가 더 커졌기에 그 해석이 정석처럼 여겨지게 되었습니다. 독자가 어떻게 수용하고 효용하는 지에 따라 작품의 평가도 달라졌습니다.

거울보다는 등불을 바라보아야 할 현대 문학

많은 비평들이 등장했지만, 결과적으로 M.H.Abrams는 현대 문학 비평은 외부를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거울보다는 자신을 태워 어둠을 밝혀주는 등불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여기서 거울은 앞서 말한 세계를 반영하기 위해 존재하는 문학을 뜻합니다. 문학이 세계를 반영하기 위해서만 존재하기에는 너무 세계는 조용해 졌습니다. 더 이상 서로 뜯고 할퀴는 전쟁도 예전 같지 않고, 독재도 대부분의 국가에서 자취를 감췄습니다.

사람은 외부가 조용해지면, 내부에 관심을 갖는 법입니다. 내부에 관심을 가지니 외부보다 훨씬 더 복잡하고 다양했습니다. 작가마다 살아온 삶이 다른 만큼 작품도 다양해졌습니다. M.H.Abrams는 작가를 등불에 비유했습니다. 자신을 태워 어두운 곳을 밝히는 등불과 자신의 삶을 이야기하면서 미지의 세계를 이야기하는 작가는 참 많이 닮았습니다. 한 그림을 보고 토끼인지 오리인지 혹은 전혀 생각하지 못한 다른 동물인지 갈리는 것처럼, 작가들이 보여주는 미지의 세계도 같은 세상에 살고 있는 사람이라고는 생각하기 어려울 정도로 다양합니다.

작가가 작품에 자기를 반영하고, 다양성을 드러내야 독자는 작가가 어떤 생애를 살았는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심지어 ARTIST를 알면 UNIVERSE와 WORK, AUDIENCE도 아울러 자연스럽게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M.H.Abrams는 등불을 강조했는지도 모릅니다.

시간이 더 흐르고, 세계가 변하면 문학도 변할 것입니다. 그러면 지금 인정받고 있는 이 비평도 18세기까지 주류를 이루던 모방론적, 반영론적 관점의 비평처럼 맞지 않을 겁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지금은 작가의 내면을 들여다보아야 할 시기입니다. 현대문학, 제대로 이해하고 싶다면 작가를 먼저 이해하세요. 작가를 이해하면 작품이 보입니다.


태그:#M.H.ABRAMS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