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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초등학교 입학식 모습.
 한 초등학교 입학식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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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패배자들은 먼저 자신을 탓하게 된다. "내가 모자라서…." , "내가 못 나서…." 내면으로 움츠러들고, 자기를 파괴한다. 그러나 사회 구조적으로 많은 패배자를 양산할 수밖에 없거나 억울한 패배라는 생각이 들 때는 달라진다. 자신에게 돌렸던 파괴의 칼날을 언젠가 외부로 돌리게 된다. 익명의 다수에게, 또는 억울하게 만든 특정인에게. 현재 우리 사회는 구조적으로 수많은 패배자를 양산하고 있다.

절반의 사람들이 생존을 걱정해야 하는 비정규직으로 하루하루 살아간다. 다수 아이는 실패자라는 차가운 시선을 받으며 산다. 게다가 억울하기까지 하다. 권력자들이 부당하게 많은 것들을 취함으로써, 정당한 대가를 받지 못하고 있다는 억울함. 부잣집 아이들에게 대학입시가 유리하다는 억울함. 높은 자살률은 취직 못해서, 먹고 살 길이 없어서, 공부 못해서 그저 알아서 죽어주는 것으로 끝나지 않을 것이다. 반드시 자살은 외부적인 파괴, 폭력을 불러오게 될 것이다.

이 글은 두 초등학교가 처한 불평등함을 고발하는 것이다. 두 학교 학생 모두 살인적인 교육경쟁에 내몰리고 있지만, 학생들은 각기 다른 출발선에 서 있다. 두 학교 학생들은 앞으로 각자 행복하게 잘 살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초등학교 때부터 이미 너무 다른 출발선에 서 있는 아이들에게 '교육경쟁은 공정하다'는 거짓을 더이상 용납하지 않는 것이다.  

교육 수준 다른 두 학교, 아이들도 다른 꿈을 꾼다

지난해 10월 대구의 두 초등학교 6학년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했다. 사건만 터졌다 하면 '또 대구인가' 하는 자괴감이 드는 도시, 대구. 가스폭발 사건, 지하철 참사, 연이은 학생자살사건, 학생폭력사건…. 이 문제의 도시에 나는 산다. 내가 사는 대구에 있는 두 초등학교를 대상으로 설문조사 했다.

두 학교는 대구의 빈부격차를 고스란히 보여주는 학교이다. A학교는 대구의 부자동네, 수성구에 있다. B학교는 대구 중에서도 변두리에 있다. 대구의 7개 자치구 중에서 1개 구인 수성구는 대구 고위직 공무원 50% 이상, 대학원 졸업자의 50% 이상이 몰려 사는 지역이다. 서울 강남구 대치동처럼 이름난 학원가도 조성되어 있다. 좀 먹고 산다는 사람에게 물어보면, 열에 아홉은 수성구에 산다고 대답한다. B학교는 주변에 임대아파트가 있는 가난한 동네에 있다. 복지대상자 아이들이 많아서 복지 우선 투자 대상학교이다.

A초등학교(2011. 10월 현재 전교생 484명)는 대구에서도 전입이 많기로 유명한 학교다. 2010학년도에 전출학생이 48명인데, 전입학생은 406명이었다. 전입학생이 전출학생의 무려 8배가 넘는다. 반면 B초등학교(2011.10월 현재 전교생 110명)의 전출학생은 64명, 전입학생은 40명이다. 아이들이 떠나는 학교이다.

A학교 학생의 아버지들은 대학졸업자가 58.3%, 대학원졸업자가 27.7%, 그래서 대학졸업 이상자가 86%이다. B학교 학생 아버지들은 고등학교 졸업자가 52.7%, 대학졸업자가 28.2%, 대학원졸업자가 4.5%이다. 대학졸업 이상자가 약 33%이다. 그리고 A학교 학생 아버지 직업 중 고위직 공무원이 12.4%, 의사 등 전문직이 22.5%, 기술직 10.1%, 사무직이 32.0%이다. B학교 아버지 직업 중 고위직 공무원과 전문직은 각각 1.8%이고, 기술직이 18.2%, 사무직이 25.5%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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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학교 아이들은 1학년부터 3학년까지는 평균 3개의 사교육을, 4학년부터 6학년까지는 4개의 사교육을 받고 있었다. B학교 아이들은 1학년부터 6학년까지 평균 1개의 사교육을 받고 있었다. 초등학교 이전에 영어 공부를 한 적 있는 아이들이 A학교는 43.4%인데, B학교는 8.2%에 불과하다. 영어공부를 위해 해외 나간 적 있는 아이들이 A학교는 21%, B학교는 2%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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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은 어른들이 보여주는 세계만큼 꿈꾼다

학생들은 내일의 꿈을 꾼다. 브라질의 교육학자이자 세계적인 교육자로 알려진 파울로 프레이리가 한 가난한 동네에 간 적 있다. 가서 한 아이에게 물었다. "네 꿈이 무엇이냐?", 날마다 노동에 시달리는 아이는 대답한다.

"꿈요, 저는 악몽밖에 안 꾸는데요."

악몽밖에 꾸지 못하는 아이처럼, 두 학교 아이들은 꿈 이전에 현실을 너무 잘 알고 있었다. A학교 아이들은 저녁 먹을 시간도 없이 학원 뺑뺑이를 돌면서 힘들지 않느냐는 물음에 이렇게 대답했다.

"힘들지만, 그렇게 해야 성적 잘 받고, 앞으로 좋은 대학도 가잖아요."

부모와 경제력, 지역에 따라 우리나라 어린이들은 다른 꿈을 꾼다. 사진은 나홀로 입학하는 한 초등학생의 모습.
 부모와 경제력, 지역에 따라 우리나라 어린이들은 다른 꿈을 꾼다. 사진은 나홀로 입학하는 한 초등학생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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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학교 아이들도 "여기서 1등 해도, 그쪽 동네 가면, 중간도 못할 걸요"라고 말한다. 그 아이들은 꿈도 달랐다. 어른이 되면 어떤 직업을 갖고 싶으냐고 물었다. A학생들의 47%가 의사, 교수, 외교관, 판사, 검사, 변호사와 같은 전문직, 고위공무원을 적었다. 이 직업을 희망하는 B학교 학생들은 15%였다. B학교 학생들은 교사, 사회복지사 또는 연예인과 스포츠 선수를 희망하는 학생들이 훨씬 많았다.

단일 직업으로 가장 인기 있는 직업은 A학교에서는 의사(101명), B학교에서는 교사(22명)였다. A학교 학생들에게는 있되 B학교 학생들에게는 없는 희망직업! UN사무총장, 로봇 공학자, 외교관, 변호사, 경영컨설턴트, 자동차디자이너, 대기업 CEO 등이었다. B학교에는 있되 A학교 학생들에게는 없는 희망직업! 제빵사, 요리사, 네일아티스트, 킥복싱선수, 동물조련사, 사육사, 태권도 사범 등이다.

아이들은 어른들이 보여주는 세계만큼 꿈꾸고 있었다. 이 아이들이 장차 무엇이 될지는 누구도 모르지만, 오늘의 현실에서 볼 때 아이들은 두 개의 세상에서 살고 있고, 두 개의 세상을 각기 희망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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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학교 아이들에게 혹시 희망하는 대학이 있다면 이름을 적어달라고 했다. 결과는 놀라웠다. A학교에는 미국 예일대학, 하버드대학, UCLA, MIT, 스탠퍼드 대학, 영국 옥스퍼드 대학이라고 적은 아이들이 있었다. B학교에는 외국대학을 적은 아이들이 한 명도 없었다.

A학교 아이 중 희망대학이 있는 아이들이 53.5%인데, B학교 아이들은 24.5%였다. A학교 아이들 대부분은 해외대학과 서울지역 대학을 희망학교라고 적었다. 그러나 B학교 아이들은 대구지역 대학을 적은 아이들이 많았다. 서울 대학을 희망한다는 아이들도 A학교는 3명 중 1명꼴인데, B학교는 전체 학생 중 3명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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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이 제빵사가 되건 의사가 되건, 자신이 행복하면 된다. 그리고 하버드대학을 나왔건 다른 대학을 나왔건 행복하면 된다. 그러나 현재의 사회구조에서 동네 작은 빵가게 제빵사가 되어서는, 어느 '명문'대학을 나오지 않고서는, 기본적인 생존이 힘들다.

늘 벼랑 끝에 서서 하루하루를 살아야 한다. 기성세대는 그 차이를 직시하고 있다. 그래서 한쪽에서는 현재 자리를 어떻게든 대물림하려고 안간힘을 쓰고, 다른 한쪽에서는 대물림하지 않으려 안간힘을 쓴다.

인간이 80여 년을 산다는데, 고작 십 년을 조금 더 산 아이들이 자신의 장래를 다 안다는 듯이 말하는 세상. 어른이 설계해 준 길을 따라 걸어가면 편안한 삶이 기다리고 있다고 말하는 아이들. 그리고 우리는 그쪽 아이들과 비교해서 안 된다고 말하는 아이들. 이 아이들에게 어른들이 오직 더 많은 경쟁, 더 격한 학습노동, 더 세분화 된 시험점수만 강요해서는 안 된다.

성장하도록 도와주기는커녕 수많은 패배자만 양산하는 체제를 교육이라고 말해서는 안 된다. 이 아이들에게 제빵사건 의사건 넉넉히 살 수 있는 사회구조, 경쟁이라는 이름에 뺏겨버린 아이들의 자존감을 키우는 교육을 돌려줘야 한다.

덧붙이는 말) 이 설문조사는 대구 MBC 특별기획 3부작, <교육을 말한다> 팀과 공동으로 조사한 것입니다. 지난 1월 25일~27일에 방송되었습니다.


태그:#초등학교, #교육불평등, #희망직업, #희망대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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