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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스크를 착용한 의료진들의 모습. (자료 사진)
 마스크를 착용한 의료진들의 모습. (자료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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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일 전, 목욕탕에서 미끄러져 턱 밑을 열 바늘이나 꿰맸다. 자기 전 창문을 닫는다고 욕조 위에 올라갔다가 넘어져서 변기에 부딪친 것이다. 다급한 마음에 남편을 부르면서 거울을 보니 얼굴에 피가 철철 흐른다. 한 손으로 얼굴의 피를 닦으며 자세히 살펴보니 목 근처 턱이 찢어져 속의 지방층이 삐져나와 있다. 머리를 다친 것 같지는 않고 턱뼈도 괜찮고 이빨도 만져보니 개수대로 다 붙어있다. 다행이다. 얼굴 정면에 흉터가 생기는 것도 면한 것 같다.

응급실에 가기 위해 차를 탔다. 대충 밴드를 붙여놓은 찢어진 턱에선 계속 피가 난다. 휴지로 압박을 하곤 응급실에 도착해 병원 침대에 누웠다. 여기저기 술 마시고 넘어져 다쳐서 온 남자들 투성이다. 먼저 머리며 턱이며 CT를 찍은 다음 마취를 하고 열 바늘을 꿰맨 후에야 집에 돌아왔다. 돌아오는 차 안. 핸드폰을 눌러보니 새벽 세시다. 내일 오기로 한 손님에게 일단 취소 문자를 보냈다.

'나 목욕탕에서 넘어져 지금 응급실 가서 열 바늘 꿰매고 오는 길이야. 일단 낼 약속은 담으로 미룰게. 미안해요.'

문자는 밤중에 보내도 될 듯했고, 내일 아침에 준비해서 오기 전에 알려야 할 것 같아서 급히 보냈다. 큰일이다. 이번주 엄청 바쁜데. 두 팀이나 집으로 초대했는데…. 한 팀은 동생뻘 친구와 그 일행들 4명이고 다른 팀은 동네 어르신들 열 두 분이다. 일단 동생들은 취소했지만 어르신들은 내일 일어나면 사정을 말씀드리고 미뤄야겠다. 집에 도착하니 마취가 풀렸는지 꿰맨 자리도 따끔거리고 턱주가리도 얼얼하니 아프다. 하지만 큰 걱정거리가 사라져서인지 마음만은 편안하다.

'집은 왜 짓고, 손님 초대는 왜 해서'... 이럴 줄 알았다

다치기 전 일주일 동안 심신이 무척이나 분주했다. 한 달 내내 집들이 손님 초대 때문에 허리도 아프고 해야 할 일도 많았지만 이미 해놓은 손님 초대를 미룰 수는 없어 마지못해 음식 준비를 했다. 며칠 전엔 마늘을 까다 손가락까지 베이고 말았다. 아직도 밴드를 붙인 상처부위가 쓰리고 아리다. 신경질이 와락 뻗쳤다. 내 친구들 불렀다고 손 하나 까닥 않고 도와주지 않는 남편. 너무나 얄미워서 왜 내가 저런 인간하고 결혼을 했나하는 생각까지 들 정도였다.

애초부터 집 지은 것도 그렇고, 맘이 약해 여기저기 계속 손님을 초대한 것도 그렇고, 모조리 후회스럽기만 했다. 밥을 먹어도 소화가 안 되고 허리는 끊어질 듯 아프고. 나만 이렇게 일을 하는 것 같아 불공평한 것도 같고. 아무나 붙잡고 싸우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그 무언가 나를 감싸고 있는 나쁜 기운. 맞다. 어느 책에서 읽었다. '부정적인 생각과 걱정을 할 때마다 그것과 똑같은 파장의 부정적이고 나쁜 기운들을 우주로부터 끌어당긴다고.' 생각대로 이루어진다는 말이다. 말 그대로 그 순간, 어디 저 멀리 어느 공간에서 나쁜 에너지가 내게 다가오는 느낌이다. 머리는 터질 듯이 아프고. 뭔 나쁜 일이 벌어질 것 같은 느낌이 드니 괜히 불안해진다.

다친 그 날도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하던 일을 멈추고 잠잘 준비를 하는데 목욕탕 창문이 열려 있다. 또 남편 짓이다. 단독 주택이라 문을 다 닫아야 한다고 그토록 말을 했건만… 화가 머리끝까지 솟구쳐서 이를 악 물고 욕조 위로 올라가 창문을 닫는데 그만 욕조에서 발이 미끄러지면서 얼굴을 변기에 처박은 것이다. 이번 사고는 이렇게 예견된 것이었다. 사전에 충분히 막을 수도 있었다. 피가 철철 흐르는 얼굴을 물로 닦으면서 입에서 나온 말은 엉뚱하게도 '감사합니다'였다. 마치 사고를 기다리기라도 했던 것 마냥, 욱신대던 곪은 상처가 터진 듯이 몸은 그저 시원하다.

생각해보면 우리 몸, 참 똑똑하다. 다치기 전에 꼭 말을 해준다. 이번에도 몸이 말을 해주고 눈치도 주었건만 내가 무시해서 그 꼴이 됐다. 이것만 하고, 저 일 끝나면, 하나만 더 하고. 눈치줄 때 미리 좀 쉴 것을. 손님들도 천천히 부를 것을.

엊그제 친구가 참 신기하다며 해준 얘기가 있다. 누구누구가 시아버지 제사도 안 지내고 유럽 여행가서 다리를 삐어 돌아 왔다고. 새집을 짓자마자 흉한 일을 당했다는 이들도 많다고. 해야 할 일 무시하고 간 여행이니 맘이 편할 리 없을 거고, 새집 짓느라 맘고생 몸고생 엄청 하고 나면 한동안 쉬게 해야 하는데 짓자마자 새집 즐기기에 바빴으니 고단해졌을 것이다. 마음이 힘들면 몸도 힘들어지는데 힘든 몸을 무시하고 쉬지 않으니 탈은 나게 마련이다. 자기 자신이 찜찜해하며 만들어 낸 나쁜 기운들이 행여 나쁜 에너지들을 몰고 온 것은 아닐까.

턱 좀 다치고 나서 몇 바늘 꿰매고 나니 마치 철학자라도 된 기분이다. 지금은 얼얼하고 쓰린 상처 때문에 내 자신도 돌아보고 깊은 반성을 곁들인 뉘우침도 해보지만 글쎄 언제까지 갈까나, 이 마음이. 곧 상처는 아물 것이고 아픔이 사라지게 되면 곧 다 잊게 될 터인데. 이제라도 '몸이 하는 말'에 귀 기울이는 습관부터 키워야겠다. 몸의 말을 듣지 않고 남보다 먼저 일 해결하려다가 남보다 먼저 황천길 갈 뻔했다.


태그:#집들이, #응급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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