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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병원으로 가는 길에 본 차창 밖 풍경
 병원으로 가는 길에 본 차창 밖 풍경
ⓒ 조상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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엊그저께까지 희망이 있다던 장인어른께서 위독하시다는 연락이 왔다. 일산 병원으로 가는 전철 안에서 바라본 차창 밖 풍경. 사람은 누구를 막론하고 죽음 앞에서 초연할 수 없다. 내가 언제 죽을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삶이란, 달리는 열차의 뿌연 차창을 통해 보이는, 명확하지 않은 바깥 풍경과 같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빗발로 흐려진 창을 통해 보이는, 우리네 인생은 부평초처럼 목적지도 모른 채 흘러만 가는 것만 같다. 나 죽어 도착할 종착역이 어디인지를 안다면 죽음을 두려워할 이유가 없다. 자신이 탄 인생이라는 열차의 출발역과 종착역을 이미 알고 있으니, 도대체 두려울 일이 뭐가 있을까. 공포라는 게 무엇인가? 다음에 벌어질 상황이 예측이 안 되니, 소름이 끼치도록 무서운 것이다.

생에 대해 젊은 사람들은 장담하지 마라

예전에 직장생활 할 때의 일이다. 직장 건강 검진을 받았는데, 공교롭게도 두 사람이 똑같이 '암' 진단이 나왔다. 그것도 두 분다 '암 말기'라서 치료가 불가했다. 한 분은 60대 초반, 한 분은 40대 후반이었다. 반년 동안 곁에서 지켜본 두 분의 투병기가 인상적이었다.

40대 후반의 그분은 치료해 봐야 반년을 못 넘긴다고 했으니 진통제나 맞으며 보험금으로 뒤에 남은 식구들 먹고살아 갈 호구지책을 마련하느라 분주했다. 결국은 그 반년 동안 제법 깔끔한 음식점 하나를 마련해 놓고서 생을 마감했다. 지금도 그 자그마한 식당은 성업 중이다.

60대 초반의 또 한 분은 삶에 대한 애착으로 여러 병원에 다니며 모든 검사를 하여 옮겨 다녔다. 병원에서도 손을 놓자, 포천의 어느 기도원에서 치료가 아닌 기도에 의지하다가 결국은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객사하고 말았다.

결국, 40대 그분보다 한 달 더 살다가 돌아가셨는데 참으로 비참한 것은 온 집안이 이 분의 병원비로 풍비박산이 난 것이다. 장례를 치를 돈조차 없어 함께 일하던 직원들이 십시일반으로 모아 장례를 치렀다.

나중에 돌아가신 분의 장례식장에서 이러한 사정을 아는 조문객들의 의견이 분분했다. 젊은 친구들은 어차피 죽을 거라면 이렇게 해서는 안 된다. 연세 좀 지긋하신 분들은 나이 들면 생에 대한 집착이 오히려 강해지니 젊은 사람들은 장담하지 마라.

'글쎄? 나라면 어찌했을까?' 내가 비슷한 경우를 한 번은 겪어 봤다고는 하나, 죽음이란 결코 경험하고 싶지 않은 것임은 틀림이 없다.

산소호흡기로 연명하는 삶,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제발 빨간 불이 들어오지 말아야할 텐데...
 제발 빨간 불이 들어오지 말아야할 텐데...
ⓒ 조상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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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삶과 죽음의 경계에 서서 고통의 단발마를 외치시는 장인어른을 향해 그 경계를 명확하게 그어 드리고 왔다. 아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차후 어떠한 상황에서도 모든 수술을 거부하고 산소호흡기 사용을 안 하겠다는 서명을 다섯 형제가 하고 만 것이다.

서명장 위에 떨어지는 다섯 형제의 눈물이 나를 참으로 슬프게 했다. 서명하는 큰 오빠의 멱살을 잡고는 울고불고 욕을 해대며 서명을 안 하겠다는 아내를 데리고 밖으로 나왔다. 세상 어떤 자식이 살릴 수 있는 부모를 외면하겠는가. 산소호흡기로 연명하는 삶의 연장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간신이 설득해서 결국은 서명을 했지만, 사람으로서 차마 못 할 짓이다.

서명이 모두 끝나고 나서 의사 선생이 반은 정신 나간 아내를 따로 불렀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의사인 자기들도 이럴 때가 제일 괴롭단다. 그러나 자기들도 이렇게 해야만 할 의무라는 게 있으니 어쩔 수 없단다.

의식 없이 누워서 가족도 못 알아보며 숨만을 쉬는 삶, 자기들도 수없이 보는 삶의 연장이지만 고통받는 이에게 차마 못 할 짓이라는 생각에 마음이 편치 않다며 아내를 위로해 준다. 의사의 위로로 "오빠에게 미안하다"며 품에 안겨서 우는 아내가 이번에는 오빠를 위로한다.

새벽에 집으로 돌아와 잠을 청하는데, 큰 처남에게서 전화가 왔다. 술에 취해서는 "지금이라도 수술을 안 하겠다는 서명을 없던 일로 하고 싶다"며 대성통곡을 한다. 다독여서 전화를 끊고는 가만 누워 생각을 해보았다.

단순 생명연장만을 위한 선택권, 환자 가족에게 짐을 주다니...

글쎄? 내 생각으로는 이럴 때 의사의 판단으로 수술 여부를 정했으면 좋겠다. 삶의 연장만을 위한 그런 조치가 아니라 살 수 있는 사람을 살려낼 방법으로 의사의 전문 판단에 따르자는 것이다.

전문 의학지식이 없는 환자의 가족에게 단순 생명연장만을 위한 수술과 산소호흡기 사용 선택권은 참으로 가슴 아픈 일이 아닐 수 없다. 아무튼, 장인어른의 삶의 여명이 얼마나 남았는지는 모르겠으나 이번 일로 살 수 있는 아버지를 자신들의 서명 때문에 돌아가시게 했다는 죄책감과 마음의 상처를 자식들이 안 받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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