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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성북구 길음뉴타운 부근 부동산 중개업소. 사진은 기사 내용과 직접 관련 없습니다.
 서울 성북구 길음뉴타운 부근 부동산 중개업소. 사진은 기사 내용과 직접 관련 없습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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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번은 방을 찾다 강서구 등촌동까지 갔어요. 선유도에 있는 부동산에서 소개를 받고 등촌동에 방을 보러 갔는데 눈물이 왈칵 나더라고요. 1월에 대학생임대주택에 선정되고 나서 여기까지 방을 구하러 올지는 몰랐거든요. 그래도 사람 마음이 참 간사한 게 이 방이라도 됐으면 싶더라고요."

강지영(25·가명)씨는 자신이 다니는 경희대에서 지하철로 1시간이나 떨어진 곳에서 방을 보러 다니게 된 처지를 한탄했다. 강씨는 "그래도 그동안 쏟아 부은 시간이 아까워 그만둘 수 없다"며 "꼭 희망고문 같다"고 씁쓸하게 웃었다.

대학생 전세임대 당첨 기쁨도 잠시... 집 못 구해 발동동 

대학 졸업을 한 학기 남겨둔 강씨는 성북구에 있는 6000만 원짜리 전세방에서 1년째 살고 있다. 과외 아르바이트로 월 40만 원을 벌지만 대출 받은 전세금 이자와 생활비 그리고 교통비를 감당하기도 벅차다. 때문에 강씨는 지난달 20일 LH공사의 대학생 전세임대주택에 선정되고 뛸 듯이 기뻤다.

"당첨 결과를 알고 딱 설 연휴까지만 기뻤어요. 서울에 와서 찾아보니 집이 너무 없더라고요. 진짜 집 못 구하면 휴학해야 할지도 모르겠네요 마지막 학기인데…."

대학생 전세임대주택제도는 입주대상자로 선정된 학생이 인근에 거주할 주택을 물색하면 LH에서 주택 소유자와 전세 계약을 대신 체결한 후 학생에게 재임대하는 제도다. 지난 1월 신청 당시 대학생들의 주거난을 반영하듯 9000명 모집에 2만여 명이 몰리는 등 큰 인기를 얻었다. 그러나 최근 LH가 야심차게 추진한 대학생 전세임대주택 제도가 여기저기 구멍을 드러내고 있다.

1월 20일 LH의 선정자 발표 이후 본격적인 방 구하기가 시작되면서 선정자들 사이에선 "전세 물량이 부족하다"는 불만이 터져 나왔다. 전셋집이 필요한 선정자들과 월세를 선호하는 대학가 집주인들 사이에서 수요 공급이 맞지 않는 상황 때문이다. 홍익대 근처의 부동산 관계자는 "원룸 매물이 100개가 나오면 전세는 5개도 안 된다"며 "차라리 월세를 지원해 주는 게 낫다"고 말했다.

1월 9일 LH서울지역본부에서 대학생전세임대주택 신청을 받고 있다
▲ 대학생전세임대주택 신청 1월 9일 LH서울지역본부에서 대학생전세임대주택 신청을 받고 있다
ⓒ 강혜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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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생 전세임대주택 구한다면 '화성인' 취급"

"대학생전세임대주택을 구하러 왔다고 말씀드리면 공인중개사 분들이 저를 화성인 취급해요. 방을 잘 보여주지도 않을뿐더러 신경을 별로 안 써주세요. 지난번에는 영등포에서 가까스로 방을 구하고 LH로부터 승인까지 받았어요. 계약만 기다리고 있는데 글쎄 그사이에 일반계약자와 계약을 해버렸다는 거예요."

지난 17일 신도림역에서 만난 강지영씨의 얼굴은 수척해 보였다. 강씨는 "설이 끝나고 20여 일 동안 방을 구하러 다니다가 몸살이 났다"고 말했다. 문래역 근처 부동산에 다녀오는 길이라는 강씨는 방 1곳의 '권리분석'(입주자가 구한 방에 대해 LH가 전세지원 조건을 충족하는지 심사하는 절차)을 LH에 신청하고 오는 길이라고 말했다.

강씨는 "마음이 급해서 방은 보지도 않고 조건만 물어 보고 서류부터 넣었다"고 한숨을 쉬었다. 강씨가 다니는 경희대 근처 회기동에선 전세방을 구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나마 가까스로 5군데 정도의 방을 둘러보고 총 5곳의 권리분석을 넣었지만 번번이 미끄러졌다. 지금 살고 있는 성북구 전셋집은 2월 20일까지 비워줘야 할 상황이라 강씨는 "하루하루 피가 마른다"고 답답해했다

"제가 지금까지 봤던 방들 중에 마음에 들었던 건 대부분 권리분석에서 승인이 안 났거든요. 그런데 포털 사이트 대학생전세임대주택 카페에서 LH가 조건을 완화해서 그 방을 계약했다는 글이 올라오더라고요. 정말 황당했죠. 진작 기준을 완화해 주던지…."

국토해양부는 지난 2월 9일 뒤늦게 전세임대 보증보험 가입 시 부채비율(전세지원금 포함 총부채/주택가격)을 80%에서 90%로 인상했다. 주택공시가격 반영비율(실거래가 대비 공시가격) 또한 150%에서 180%로 올렸다. LH의 지원 대상 주택의 부채비율과 공시가격 반영비율 기준이 너무 까다롭다는 지적에 따라 완화한 것이다.

또한 LH 각 지역본부에 대학생전세임대주택 지원센터를 마련하여 LH 직원들이 직접 학생들의 방계약을 돕겠다는 대책도 발표했다. 그러나 강씨는 지난 15일 발표된 LH의 지원계획에 대해서도 불신을 드러냈다.

"저는 대부분 방 계약 정보를 포털 사이트의 대학생전세임대주택 카페에서 확인해요. LH의 정보는 형식적인 것 같아요. 뉴스에서 보니까 직원 1000명을 동원해서 대학생들 방계약을 지원한다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피부로 잘 안 느껴져요. 승인 여부를 물어보러 콜센터에 전화를 걸었는데 너무 통화가 안 되서 직접 서울지역본부를 찾아간 적도 있어요. 적절한 응대가 안 되어 직원과의 연결에도 한참이나 시간이 걸렸죠."

"집 구하느라 과외도 그만뒀어요"

LH는 자사 홈페이지에 전월세 지원센터를 통해 대학생 전세임대주택 매물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그러나 수요가 몰린 서울 지역은 등록일 기준으로 최근에 올라오는 매물의 대다수가 부분월세다. 강씨는 이곳 사이트의 매물 정보에 대해서 "몇 번 연락해서 권리승인을 요청했지만 조건이 안 맞는 경우가 많아 잘 찾지 않는다"고 말했다.

최근 LH공사 홈페이지에 올라온 대학생전세임대주택 등록매물 중  부분월세가 증가했다.
▲ LH공사 홈페이지에 올라온 부분월세 매물 최근 LH공사 홈페이지에 올라온 대학생전세임대주택 등록매물 중 부분월세가 증가했다.
ⓒ LH공사 홈페이지 화면캡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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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H 홈페이지에 매물을 등록한 서울시 송파구의 한 부동산 관계자는 부분월세 물량에 대한 학생들의 수요를 묻는 질문에 "(공인중개사)협회에서 공문이 와서 매물을 올리기는 했지만 부분월세에 대한 문의는 거의 없다"고 말했다.

전세 매물이 부족한 이유에 대해서도 "기준이 완화됐다고 하는데 심사에만 3~4일이 걸리고 승인이 나도 그 기간에 일반계약이 이루어지는 경우도 많다"며 "신축 준공 1달 전에 계약하는 경우도 많은데 LH는 이 같은 물량을 미등기 취급하니까 공급이 많이 부족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박세표 LH공사 전세임대부 차장은 "대학 주변에 수요가 몰리다 보니 전세물량이 부족한 것이라고 본다"며 "대학생 전세임대주택 계약 건수가 증가한 탓도 있다"고 분석했다.

LH공사 관계자는 20일 <오마이뉴스>와 한 통화에서 18일 기준으로 전체 선정 대상 9000호 중 계약 완료가 4098건, 계약 대기가 692건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 중 계약 대기는 권리분석을 마치고 LH의 승인 통보가 났지만 계약 이전의 상황으로서 그 기간 중 일반계약이 이루어지는 경우도 있다.

LH 서울지역본부 관계자는 대학생임대주택 선정자가 몰린 서울 지역은 2월 16일 기준으로 계약완료 실적이 1212건이라고 밝혔다. 전체 선정 대상 3101건에 대해 계약률이 40% 미만이다. 1880여 명의 학생들이 여전히 방을 구해야 하는 실정인 것이다.

미계약자들 중 3월 이후에 방을 구하고자 하는 학생을 고려하더라도 적지 않은 학생들이 제때 방을 구하지 못한 실정이다. 성북구 돈암동의 한 공인중개사는 "전세로 빠질 물건이 다 빠진 상황에서 그 정도 계약률이면 앞으로는 정말 방 구하기가 힘들 것이다"라고 전망했다.

"아침에 잠에서 깰 때마다 뭐가 가장 문제인지 생각해요. 카페에 가끔씩 방계약을 마쳤다는 사람들의 글을 보면 답답해져요. 하루에 5~6시간을 방을 구하는데 시간을 보내는 나는 뭔가라는 생각도 들어요. LH가 대학생전세임대주택 광고에서 '집 걱정 말고 대학생 여러분 공부만 하세요'라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저는 과외 중간에도 전화를 안 받을 수 없어요. 부동산에서 온 전화일까 해서요. 과외 중간에 자꾸 눈치도 보이고 결국 낮에 하는 과외는 그만 뒀어요."

강씨는 방을 구하는데 너무 많은 에너지를 소진하느라 공부며 아르바이트며 제대로 신경 쓸 수 없는 상황도 답답해했다. 포털 사이트의 대학생전세임대주택 카페에서도 간혹 계약 성사에 대한 후기가 올라오는데, 강씨처럼 대부분이 몇 차례씩 권리분석에서 불승인을 받고 가까스로 승인을 얻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수요 분산을 위해 대상자 선정과 입주 시기 재고해야"

강지영씨는 대학생전세임대 주택 선정 시기와 입주 시기 재고 등 제도 개선을 당부했다.

"입학과 입사 시기가 몰리는 3월을 앞두고 그것도 월세가 대부분인데 쉽게 방을 구할 수 없다는 걸 LH가 제대로 파악했는지 모르겠어요. 학기 중에 신청해서 학기 마치고 방을 구할 수 있게 한다든지 수요를 분산시킬 필요가 있다고 봐요."

강씨는 자신이 힘든 와중에도 "대학생전세임대주택 신청 당시 높은 경쟁률을 함께 뚫었던 그 대학생들은 방을 구했는지 걱정이다"라고 남을 염려했다. 오후 10시를 훌쩍  넘어서 강씨의 전쟁같던 방 구하기 일정이 끝났다. 신도림역에서 기자와 헤어진 강씨는 지친 몸을 이끌고 1시간이나 떨어진 자신의 성북구 자취방으로 바삐 걸음을 옮겼다.

덧붙이는 글 | 이동철 기자는 오마이뉴스 15기 대학생 인턴기자입니다.



태그:#대학생 전세임대주택, #LH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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