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명의 시민기자가 개의 기사를 작성하였습니다. 시민기자 전환하기
 <연안행> 표지
 <연안행> 표지
ⓒ 삶이 보이는 창

관련사진보기

두 남녀가 있다. 여자는 29세, 남자는 23세. 상관인 여자는 팀을 이끌고, 부하인 남자는 지도를 받으며 그녀를 보필한다. 둘 다 미혼에 공통의 비전이 있고, 서로에 대한 호감과 믿음이 있다. 여자는 아리땁고 남자는 듬직하다. 이들이 사랑에 빠질 확률은?

요즘 TV드라마의 단골 소재인 연상녀 연하남 커플의 이야기이라면, 남자 측 부모의 반대가 이들이 행복을 이루는 데 가장 큰 걸림돌이 되겠다. 그러나 이들이 1940년대 전쟁이 한창인 중국 땅에 있다면, 그것도 하루하루 생과 사의 갈림길에서 전투를 치르는 전사라면 이야기는 전혀 달라진다.

이 소설 <연안행>(2011, 삶이보이는 창)은 이재유의 삶을 다룬 <경성트로이카>를 시작으로 <이현상 평전> <이관술1902-1950> <박헌영 평전> 등을 차례로 쓴 안재성 작가의 작품이다. 작가에게 한국 근현대사는 지난 10년간 일관된 소재였다. 이 작품 역시 그 연장선 위에 있는데, 이전 작품들과 다른 점이 있다면 국내에서 국외로 배경이 옮겨졌다는 것.

소설 <연안행>은 1940년대 중국 팔로군과 함께 항일 전선에서 싸우던 조선의용군의 이야기로, 정치위원 정명선을 향한 사병 임상혁의 사랑이 험준하고 광활한 태항산맥을 배경으로 지고지순하게 펼쳐진다. 그는 사랑과 동지애 사이에서 때로는 기뻐하고 때로는 낙담한다.

조선의용군 두 남녀의 사랑이야기

1937년 일본은 상해에서 노구교 사건을 일으키며 본격적인 아시아 대륙 침략에 나섰다. 드넓은 중국 땅에 흩어져있던 조선의 독립운동세력은 조선뿐 아니라 아시아 공공의 적이 된 일본 제국주의와 싸우기 위해 국제적 연대를 하게 된다. 의열단 단장으로 유명한 김원봉과 윤세주 등이 1938년 10월 중국 한구에서 조선의용대를 창설하였고, 조선의용대는 중국군의 지원 아래 항일전의 선전부대로 활동하게 된다. 수많은 조선의 청년들은 오직 식민지 조국 해방의 열망을 안고 중국으로 건너와 조선의용대에 자원입대한다. 주인공 임상혁도 그 같은 젊은이들 중의 하나였다.

중국 항일전선에서 조선인 청년들은 매우 용맹할 뿐만 아니라 일본어가 자유로운 까닭에 선전전과 포로 심문 등에서 유용한 역할을 할 수 있었고 조선의용대는 선전부대에 편입되어 함화, 삐라 살포 등의 활동을 펼쳤다. 일본군을 코앞에 둔 거리라야 함화같은 선전이 가능한 상황이었기에 언제나 목숨이 촌각에 달려있었다.

국민당과 공산당은 중국대륙을 침략한 일본군 때문에 서로 내키지 않는 손을 잡고 제2차 국공합작에 들어갔지만 점차 대립의 각을 세운다. 특히 일본군과의 전투보다는 정적인 공산주의자들을 암살하는 데 더 열심인 장개석의 국민당군은 항일전을 치르고자 했던 조선인들에게 커다란 실망감을 안겨준다. 그리하여 조선의용대는 항일전선을 찾아 팔로군이 있는 화북지역으로의 이동을 단행한다. 더구나 화북과 동북지역은 지역은 조선인 동포들이 300만 명 가까이 살고 있어 이동의 명분이 있었고, 실제적 무장독립투쟁을 하기엔 더없이 좋았다.

이 소설은 조선의용대가 국민당군의 눈을 피해 목숨을 걸고 황하를 건너는 과정과 화북지대에 다다른 후 천신만고 끝에 태항산으로 들어가는 과정, 도처에 깔린 일본군의 포위망을 뚫고 중국혁명의 성지 연안으로 입성하는 과정 등이 생생히 서술되어 있다. 또한 팔로군과의 긴밀한 유대 속에 일본군과 치열하게 전투를 치르는 장면이 긴장감 있게 묘사되어 있다.

1942년 5월, 일본군이 3만의 병력을 투입하여 태항산 일대를 철벽처럼 에워싸고 집중 포화를 퍼붓기 시작한다. 전투에 단련된 전사들이었지만, 화력에서 우세한 일본군을 당해낼 수 없었다. 이 5월 대공세 때 조선의용대는 너무나 소중한 동지들을 잃는다. 조선의용대의 지도자였던 윤세주와 진광화가 전사하고 만 것.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은 슬픔이었으나, 이들은 동지를 잃은 아픔을 딛고 일어서 조직을 더욱 굳건히 세운다. 다소 민병대 느낌이 나는 조선의용대를 조선의용군로 재편성하여 조선의 독립을 위해 싸우는 정규군이 된다.

김원봉, 무정, 윤세주, 김명시 등 친근하게 만나는 실존인물

태항산 조선의용군이 항일 빨치산 투쟁을 하던 중국의 태항산. 수백미터 협곡이 있는 매우 험준한 산이다.
▲ 태항산 조선의용군이 항일 빨치산 투쟁을 하던 중국의 태항산. 수백미터 협곡이 있는 매우 험준한 산이다.
ⓒ 안재성

관련사진보기


임상혁과 정명선 두 남녀 주인공은 가공 인물이지만, 그들 주변의 사람들은 모두 실존 인물이다. 김원봉, 윤세주를 비롯하여, 무정, 김명시, 박효삼 등 조선의용군을 이끌었던 전설적 인물들을 친근하게 만날 수 있는 점이 이 소설을 읽는 묘미다.

전사들의 마음을 쥐었다 폈다 웃겼다 울렸다 하는 무정의 명연설, 백마 탄 여장군으로만 알려진 김명시에 대한 인물 묘사, 연안송을 작곡한 음악가 정율성의 재치있는 이벤트 등 당시 태항산과 연안에서 활동하던 독립 운동가들의 색다른 면모를 볼 수 있다.

그와 함께 조선의용군의 소소한 일상을 보는 것도 쏠쏠한 재미다. 조선의용군이 아껴 피우던 '칼표 담배', 조선의용군 최고인기곡 '미나리타령', 개고기를 좋아하는 조선인들을 배려한 마을촌장 때문에 빚어지는 웃지 못할 촌극, 혁명의 도시 연안에 입성한 후 세웠던 삼일 상점과 이발소 운영 등 조선의용군의 평범한 생활 이야기가 피비린내 나는 전투 사이사이에 깨알같은 재미를 준다.

정명선과 임상혁, 그리고 조선의용군은 점점 더 패색이 짙어지는 일본군을 보며 곧 다가올 해방을 직감한다. 젊은 그들은 혁명 도시 연안의 민주적이고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새 나라를 건설할 생각으로 가슴 설레한다. 그러나 그들은 해방이 되어도 돌아가지 못했다.

해방의 감격을 안고 연안을 출발하여 압록강까지 이르렀으나 소련군의 입국 거부로 고향에 돌아갈 수 없었다. 이후 몇몇 인사가 개인 자격으로 남쪽 또는 북쪽을 선택하여 들어갔다. 임상혁과 정명선은 서울에서 결혼식을 올리지만 곧 3·8선이 이들을 갈라놓는다. 이들 앞에 놓은 운명은 과연 어떤 것일까?

조선의용군 생활 엿보는 깨알 재미

연구논문을 제외하고 현재 국내에서 조선의용군의 이름을 만날 수 있는 작품은 몇 안 된다. 조선의용군 출신 소설가 김학철의 자서전 <최후의 분대장>(1995년), 월북 시인 김사량의 여행기 <노마만리>(1947년) 독립운동가이자 국문학자인 김태준이 해방 직후 잡지에 기고한 수필 <연안행>(1946년) 정도에서 조선의용군의 자취를 찾을 수 있다.

그러나 <최후의 분대장>은 1941년 이후의 상황은 알 수 없고(김학철이 1941년 태항산지역 호가장 전투에서 일본군에 체포됨), <노마만리>와 수필 <연안행>은 전사가 아닌 어디까지나 방문객의 시각이었고, 더구나 1945년 해방 직전의 모습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이 소설 <연안행>은 현재 우리나라에서 발간된 문학작품 중 조선의용군의 창설부터 해방 후 상황까지 그린 최초의 작품이며, 조선의용군을 소재로 한 최초의 픽션이기도 하다. 탈북을 준비하는 어느 시베리아 벌목공이 아버지에게 들은 내용을 그대로 쓴 것이라는 프롤로그의 설정도 흥미를 끈다.


"중요한 독립운동사 잊어지는 것 안타까워 소설로나마 쓰고 싶었다"
[인터뷰] <연안행> 저자 안재성
지난 2월초, <연안행>을 쓴 저자 안재성씨와 서면으로 인터뷰했다. 아래는 인터뷰 내용.

안재성 작가 태항산 취재 당시
▲ 안재성 작가 태항산 취재 당시
ⓒ 안재성

관련사진보기

- 조선의용군이라는 흔치 않은 소재로 소설을 쓰셨는데, 집필 동기가 무엇인지요?
"현재 우리나라에서 교육하는 일제하 독립운동사를 보면 무장투쟁 부분은 초창기 의병투쟁 외에는 거의 없다시피 합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중국 땅에서 일본군과 맞서 직접 무장투쟁을 한 세력들이 존재하는데 바로 조선의용군입니다.

조선의용군은 1938년 조선의용대라는 이름으로 조직되는데 처음에는 300명으로 시작되지만 나중에는 2000명으로 늘어나 많은 전공을 세웁니다. 중요한 투쟁사임에도 불구하고 남한에는 그 내용이 거의 알려지지 않았고, 일부 연구가 있다하더라도 공식적인 학교교육이나 역사학계에서 소외되어 있는 것을 안타까워하던 차에 소설로나마 이를 다뤄보기로 했습니다."

- 우리나라 독립운동사에서 조선의용군이 그다지 알려져 있지 않는 이유가 뭐라 생각하십니까.  
"우리나라뿐 아니라 북한에도 조선의용군의 투쟁사가 제대로 알려지지는 않았으리라 봅니다. 남한에서 잘 알려지지 않은 이유는 이들 조선의용군이 중국공산당 팔로군과 함께 싸웠을 뿐 아니라, 한국전쟁이 터졌을 때 북한 인민군의 주력부대로 내려왔기 때문에 반공의 검열에 걸린 게 아닌가 합니다.

북한에서 탈북한 지식인들 역시 조선의용군이나 그 지도자들에 대해 배운 게 없다고 들었습니다. 이는 1950년 말까지 진행된 북한의 권력 구축기에 조선의용대 출신들이 대부분 숙청된 때문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 임상혁과 정명선, 두 주인공 남녀는 실존 인물을 모델로 한 것인가요?
"두 사람은 실제 인물은 아니고 의용군 투쟁사를 일관된 시각으로 보여주기 위해 등장시킨 가공인물입니다. 그러나 이 책에 등장하는 다른 인물들의 이름은 모두 실명 그대로이며 실제 상황 그대로 묘사했습니다. 특히 의용대의 투쟁과정은 실제로 있었던 사실만을 기초로 썼으며, 꾸며내거나 과장하지 않았습니다."

- 그동안 이재유의 삶을 다룬 <경성트로이카>와 <이관술 1902-1950> <이현상 평전> <박헌영 평전>등을 저술하며 남과 북 모두에게 외면받은 현대사의 인물들을 재조명하는 데 힘써오셨습니다. 이번 작품도 그 연속으로 볼수 있나요?
"물론입니다. 그동안은 국내에서 항일투쟁하던 사회주의 독립운동가들의 삶을 추적했다면 이번에는 중국에서 항일무장투쟁을 했으나 남북 역사에서 모두 잊혀져 버린 분들을 주인공으로 삼았습니다. 특히 국외에서 목숨을 걸고 일본군과 전투를 벌이던 조선의용군에 대한 기록이 거의 없다는 것은 안타까운 일입니다. 제가 <경성트로이카>를 펴낸 것이 도움이 되어 현재 서대문형무소 역사박물관에는 경성트로이카 부스가 설치되어 있는 것으로 압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뒤늦게나마 조선의용군의 행적이 확인되어 남한의 항일운동사 교육이 바뀌기를 기원합니다."

- 다음 작품 계획은 무엇인지, 어떤 작품을 쓰고 싶은지요?
"역사적 사건이나 인물에 대해서는 조선의용대 사령관이던 김무정이나 동해남부군 빨치산 사령관 하준수 같은 이들에게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만 보다 충분한 자료 수집과 취재를 거친 후에 쓸 수 있을지 없을지를 결정해야 할 것입니다.

현실의 문제에 대해서는 오래 전부터 늘 관심을 갖고 분노와 안타까움을 품고 있던 비정규직 문제를 어떤 형식으로든 쓰려고 합니다. 소설형식이 아니라 인터뷰 엮음의 형태로라도 반드시 비정규직 문제를 다루고 싶습니다. 이 작업을 현재 최우선에 놓고 있습니다."

- 마지막으로 독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을 해주신다면...
"역사와 관련해서 많은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게 되는데, 놀라울 정도로 우리 역사에 무지하다는 데 놀랍니다. 특히 진보를 자처하는 이들이 얼마나 역사와 사회과학에 무지한지 놀라지 않을 수 없습니다. 현재의 이해관계 투쟁이나 기초적인 민주주의문제에 대한 관심만으로는 결코 이 사회를 이해할 수 없으며 변혁시킬 수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근대 백년의 역사는 옛날이야기가 아니라 바로 지금의 이야기입니다. 80년 광주항쟁이 벌써 30년 전 이야기지만 아직도 사람들의 기억 속에 생생한 현실로 남아있듯이, 백 년의 시간은 결코 오랜 시간이 아닙니다. 그 백 년 전의 상황을 이해하는 것이 지금 이 시간의 문제를 이해하고 해결하는 길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번번이 느끼곤 합니다. 보다 많은 사람들이, 특히 진보를 자처하는 분들이 역사공부와 사회과학 공부를 제대로 하기를 권합니다."


연안행

안재성 지음, 삶창(삶이보이는창)(2011)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주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후원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