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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사임당 '사친시' 걸려있는 시판

 기관 이병화 유혜불망비
 기관 이병화 유혜불망비
ⓒ 이상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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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정으로부터 내려가는 길 역시 온통 눈길이다. 그렇지만 경사가 조금은 완만해지는 것 같다. 길 주변에는 참나무가 군락을 이루고 있다. 그 사이로 소나무도 보인다. 또 길에서 돌무더기 서낭당을 만날 수 있다. 돌이 축대식으로 쌓여있는 걸로 봐서 최근에 만든 것 같다. 이곳 길가에도 시비와 시판이 있다. 시비가 좀 특이한데 살펴보니 향리 이병화 유혜불망비(鄕吏 李秉華 遺惠不忘碑)다.

이병화는 강릉 관아의 하급관리로 기관(記官) 이었다고 한다. 그는 기관을 그만두고 나서 반정에 주막을 짓고 대관령을 넘나드는 나그네에게 침식을 제공했다. 그 덕분에 대관령을 넘는 일이 훨씬 수월해졌고, 겨울에도 얼어 죽거나 길을 잃는 사람이 없어지게 되었다. 이를 고맙게 여긴 어흘리 주민과 장사꾼들은 1824년(道光 四年) 이병화의 선행을 기려 비석을 세우게 되었다. 대관령 옛길 등산로에서 2㎞ 올라간 곳에 비석이 위치한다고 한다.

 신사임당 시판 앞을 지나는 대관령 옛길 탐사단
 신사임당 시판 앞을 지나는 대관령 옛길 탐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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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판에는 대관령 그림과 함께 신사임당(申師任堂: 1504-1551)의 사친시가 적혀 있다. 신사임당은 율곡 이이(李珥: 1536-1584)의 어머니로 조선을 대표하는 현모양처다. 사임당이라는 이름에는 역사 속에 성군으로 여겨지는 주 문왕의 어머니 태임(太任)을 스승으로 삼겠다는 뜻이 담겨있다. 그런 사임당 신씨는 친정인 강릉에서 율곡을 낳아 길렀다. 그리고 율곡이 6살 때인 1541년 자식과 함께 한양으로 향한다. 이때 지은 시가 사친시(思親詩)다.

늙으신 어머님을 강릉에 두고         慈親鶴髮在臨瀛
외로이 서울 길로 가는 이 마음.      身向長安獨去情
돌아보니 북촌은 아득도 한데         回首北村時一望
흰 구름만 저문 산을 날아 내리네.   白雲飛下暮山靑

이 시에서 임영은 강릉을 말하고, 장안은 한양을 말한다. 그리고 북촌은 신사임당의 친정이자 율곡의 외가가 있던 마을이다. 율곡이 쓴 어머니 행장(先妣行狀)에 따르면, 어머니는 하늘이 낸 효녀로 부모를 애틋하게 생각했던 것 같다. 또 다른 사친시에서 사임당은 밤마다 달을 향해 기도하면서 생전이 다시 뵙기를 기원하기때문이다.

김홍도의 그림 '대관령'

 김홍도의 대관령
 김홍도의 대관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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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관령 옛길에서 또 하나 눈에 띄는 것은 김홍도의 대관령 그림이다. 그림을 확대해 그림판에 새겨 넣었는데, 반정에서 바라보는 동해 쪽 풍경이다. 길은 굽이굽이 산 사이를 돌고 돌아 동해로 이어진다. 그리고 왼쪽으로 경포호가 분명하게 표현되어 있다. 더욱이 풍경화가 지니는 밋밋함을 방지하기 위해, 가운데에 낮은 산을 진하게 그려 넣었다. 또 빈 하늘을 보완하기 위한 듯 대관령이라는 글자를 길 상단부에 배치했다.

김홍도가 대관령이라는 그림을 언제 어떤 연유에서 그리게 되었는지는 알 수가 없다. 그에 대한 기록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단원은 전국의 명승을 찾아다니며 그림을 그린 대표적인 화가다. 기록에 따르면 단원은 1788년 왕명으로 금강산 등 영동 일대를 여행했다. 그리고 그 지역의 명승을 수십 장(丈)이나 되는 긴 두루마리에 그려 바쳤다고 한다. 대관령 그림도 그때 그리지 않았을까 추측해 볼 뿐이다.

그림을 지나 내려오면서 보니 골짜기와 길에 눈이 조금씩 줄어든다. 해발이 낮아지면서 쌓인 눈이 녹은 것이다. 또 등산객들이 눈길을 하도 밟고 다녀, 길에도 서서히 눈이 보이지 않는다. 골짜기 얼음 아래로는 흘러가는 물소리가 들리고 이제 얼음 사이로 흘러가는 물을 볼 수 있다. '얼음장 밑으로 봄이 와요'라는 동시가 생각난다. 우리는 이쯤에서 아이젠을 푼다. 길은 옛길 주막으로 이어진다.

봄 햇살, 주막 툇마루에 가득

 옛길 주막
 옛길 주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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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막에 이르니 툇마루가 있고, 통나무와 흙으로 벽을 만든 초가집이 나타난다. 흙담에 이엉을 얹은 전통 초가집과는 뭔가 다르다. 안내판을 보니 귀틀 초가집이라고 한다. 2008년 10월에 복원한 것으로 전통의 모습을 갖추려고 노력한 흔적이 보인다. 현재 이 초가집은 주막의 기능은 하지 않는다. 단지 이곳을 지나는 등산객들의 쉼터로 이용되고 있다.
초가집 안을 들여다보니 농촌과 산촌에서 사용하던 생활용품이 전시되어 있다. 왕골로 만든 돗자리, 볏짚으로 만든 맷돌 방석, 나무로 만든 됫박과 함지박, 대나무로 만든 광주리, 다듬이돌, 풀솔 등이 보인다. 그리고 장기도 보이고 눈 신발인 설피도 보인다. 이들 모두 옛날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물건이다. 초가집 바깥 벽에는 또한 쟁기와 써레 같은 농기구가 걸려 있다.

초가집 옆에는 물레방아가 있는데 겨울이라 그런지 물도 없고 돌아가질 않는다. 물레방아 위에는 개구리를 만들어 앉혔는데 아이디어가 신선하다. 나는 농담 삼아 개구리 왕눈이라고 이름을 붙여 준다. 우리는 이곳 초가집에서 잠시 휴식을 취한다. 따뜻한 공기와 햇살이 툇마루에 가득 밀려온다. 그 햇살이 봄을 재촉하는 듯하다. 갑자기 '봄은 고양이로소이다'라는 이장희의 시가 생각난다.

 주막의 옛 모습을 그린 그림
 주막의 옛 모습을 그린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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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를 통해 봄의 향기, 봄의 불길, 봄의 졸음, 봄의 생기를 노래하고 있는데, 여기서는 봄의 졸음이 느껴진다. 그것은 그동안 걸어서 피곤하고, 점심을 먹은 다음 밀려오는 식곤증 때문일 것이다. 봄의 생기는 곧 기지개를 켤 테지만, 봄의 향기와 불길은 아직 더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하다는 생각이 든다. 봄의 향기와 불길은 매화, 진달래 같은 꽃과 함께 오기 때문이다.

이곳 주막 앞에는 주막의 옛 모습이 그림으로 그려져 있다. 그림이 중국 화풍이다. 과장이 심하고 지나치게 환상적이다. 그럼에도 그림을 통해 우리는 과거의 주막으로 돌아갈 수 있다. 두 명의 선비가 마당 가운데 설치된 마루에 앉아 술잔을 기울인다. 안주가 다 떨어졌는지 주모가 음식을 들고 평상으로 가고, 삽살개가 뒤를 따른다. 주막 툇마루에 홀로 앉은 선비가 부러운 듯 이 광경을 바라본다. 삿갓을 쓴 과객이 주막으로 들어온다. 주막의 굴뚝에서는 연기가 솟아오르고, 울타리 밖에서는 느티나무가 용트림한다. 분위기가 낭만적이다.

 신봉승의 대관령 시비
 신봉승의 대관령 시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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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는 또 신봉승의 시 '대관령'이 돌에 새겨져 있다. 이 시는 작곡을 위해 쓰였기 때문에 2절로 되어 있다. 그 중 1절은 가을 단풍을 노래했고, 2절은 봄을 기다리는 겨울 산을 노래했다. 그런 의미에서 2절이 현재의 모습을 더 잘 반영하고 있다. 그럼에도 후렴구 '내 인생 보슬비'라는 시어 선택은 조금 아쉽다.

저기 찬바람 하얀 눈 소복한 산을
누구를 기다리다 봄은 머언데
저기 진달래 철쭉으로 불타는 산을
구름도 수줍어서 쉬어 넘는데
대관령 아흔아홉 대관령 구비구비는
내 인생 보슬비 맞으면서 나그네가 되라네.

어흘리 마을 이야기

 우주선 화장실
 우주선 화장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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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우리는 산에서 내려와 우주선 카페가 있는 곳에 이른다. 이곳부터는 장사하는 사람들도 있고 민가도 있다. 대관령 옛길주막이라는 상호를 가진 통나무집 형태의 가게도 보인다. 이제 길은 넓어져 승용차도 들어올 수 있다. 여기서부터는 큰길을 따라 걷기만 하면 된다. 그런데 옛길을 걷다 보면 콘크리트 포장 길이 더 부담된다. 재미도 없고 의미도 없기 때문이다.

길은 다시 대관령 자연휴양림 방향과 대관령 박물관 방향으로 나뉜다. 우리가 가는 옛길이 자연휴양림 방향으로 나 있어 유감스럽게도 박물관에는 들를 수가 없다. 나는 박물관 타입이지만 다른 사람들을 생각해서 그쪽으로 멀리까지 쳐다본 다음 마음을 접는다. 조금 더 길을 가니 펜션으로 보이는 집이 단지로 구성되어있다. 이곳은 외지의 여유 있는 사람들이 만든 것처럼 보인다.

 새로 생긴 펜션 단지
 새로 생긴 펜션 단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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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까운 곳에 삼포암(三浦巖)이 있다는 설명 판이 세워져 있다. 세 개의 폭포가 있는 바위로 주변의 자연경관과 어울려 아름다운 모습을 연출한다고 적혀 있다. 그 폭포의 이름이 백옥포(白玉浦), 의풍포(義豊浦), 유포(柳浦)다. 지금은 겨울인지라 그 모습을 볼 수 없을 것 같다. 이곳에서 눈을 돌려 산 쪽을 바라보니 영동고속도로가 산 중턱으로 지나간다. 우리가 다음으로 찾아갈 곳은 어흘리의 전통마을인 가마골이다.

가마골에는 어흘리 마을회관과 경로당이 있다. 그런데 그 건물들이 소위 슬래브집으로 돼 있어 운치는 없다. 저 건물도 시간이 지나면 현대식으로 다시 지어질 것 같다. 요즘 시골마다 마을회관과 보건지소가 새로 들어서기 때문이다. 마을 입구에는 어흘리라는 이름의 유래와 대굴령 도농교류센터에 대한 설명이 적혀 있다. 어흘리, 대굴령, 이름이 상당히 낯설다. 대굴령은 대관령에서 나온 게 틀림없는데, 어흘리는 어디서 나온 걸까?

 어흘리
 어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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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흘리는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으로 생겨난 이름이다. 당시 이 지역의 골짜기에는 가마골, 문안, 반쟁이, 굴면이, 망월이, 제민원의 여섯 마을이 있었다. 이 골짜기 마을이 잘 어울려서 어울리라는 마을 이름이 생겨났고, 어울리를 한자로 표현하는 과정에서 어흘리(於屹里)가 되었다는 것이다. 한자의 뜻은 산 우뚝한 동네가 된다. 가마골에서 456번 지방도를 건너면 산채잡곡마을이 나오고, 산길은 보광리로 이어진다. 

고로쇠 수액 취재할 시기

보광리로 가는 길 주변에는 소나무가 많다. 자연산 소나무라기보다는 조림을 한 것이다. 길을 가다가 우리는 석화공원(石花公園)을 만난다. 물개 모양의 자연석에 석화공원이라 쓰고 그 아래 요한복음 15장 7절을 새겨 넣었다. 이곳을 지나면 집이 몇 채 있는 작은 마을을 만난다. 마을 이름은 정확히 알 수가 없다. 이곳에서 우리는 경운기를 타고 가는 노인을 만난다.

 대관령 옛길의 종점 보광리 게스트하우스
 대관령 옛길의 종점 보광리 게스트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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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이라 경운기를 자가용으로 운행 하나 했더니, 뒤에 조금은 언 듯한 배추가 몇 포기 실려 있다. 궁금해 그 용도를 물어보니 닭 먹이로 주려고 한다고 대답한다. 조금 더 가다 경운기가 멈춰 선다. 그리고는 길 아래 개울 쪽으로 내려간다. 나는 물고기라도 잡으려는 줄 알고, 아래를 내려다본다. 그랬더니 개울이 아닌 나무를 살펴본다. 다시 내려간 연유를 물어보니 고로쇠 수액 채취할 수 있나 살펴보는 것이란다. 그렇다면 물이 나무의 물관을 타고 오를 날이 머지않았다는 말이 된다.

도시 사람들은 알 수 없지만, 농촌 사람들은 나무에 물이 오르는 시점까지 예측할 수 있는 모양이다. 하긴 지금이 입춘과 우수 사이 절기이니, 물오를 날도 멀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는 길가에서 오동나무도 보고 물소리도 들으며 보광리를 향한다. 강릉바우길 제2구간 대관령 옛길의 끝은 보광리 게스트 하우스다. 그렇지만 이곳 버스정류장에는 보광평이라고 쓰여 있다. 보광들이라는 뜻이다. 강릉에서 이곳까지는 502번 시내버스가 운행하고 있다.

덧붙이는 글 | 2월 11일(土) 대관령 옛길을 탐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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