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와이에서 태어나고 자란 작가 카우이 하트 헤밍스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 <디센던트>(2월 16일 개봉)는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두 가지 이야기를 축으로 전개된다. 하나는 하와이의 엄청난 땅을 소유한 가문의 후계자로서 이 땅을 처분할 것이냐 말 것이냐, 또 하나는 갑작스러운 보트 사고로 뇌사 상태에 빠진 아내가 알고 보니 불륜을 저질렀다는 것. 동떨어진 두 개의 이야기는 그러나 한 남자에게 동시에 일어난 일이다. 세상 일이 대개 그렇듯 개연성 없어 보이는 두 이야기는 어느 지점에서 만난다.

 영화 <디센던트>의 조지 클루니(오른쪽)와 감독 알렉산더 페인(왼쪽).

영화 <디센던트>의 조지 클루니(오른쪽)와 감독 알렉산더 페인(왼쪽). ⓒ 20세기폭스


두 이야기를 풀어가는 두 명의 남자

이 두 가지 이야기를 풀어가는 두 명의 남자가 있다. 감독 알렉산더 페인과 주연 배우 조지 클루니다. 페인은 <일렉션>으로 촉망받는 감독 데뷔를 한 이후 <어바웃 슈미트> <사이드웨이> 등 만든 작품마다 뛰어난 완성도로 평단의 찬사를 받아온 감독이다. 많은 작품을 만드는 스타일은 아니지만 평범한 인간의 일탈을 소재로 미국 사회를 풍자하며 특히 캐릭터를 구체화하는데 탁월한 솜씨를 보여준다.

이 솜씨는 <디센던트>에서도 그대로 발휘되는데 주인공 맷(조지 클루니)의 장인, 아내가 바람핀 남자, 그 남자의 부인, 딸의 남자 친구 등 화면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작은 배역이라고 해도 그냥 지나치는 법이 없다. 모두들 한 가지씩 아픔을 가지고 있으며 그런 사연들을 작게나마 보듬고 있다. 극작가 출신으로서 인물 하나하나에 감정을 불어넣고 러닝타임을 꼼꼼하게 계획하는 감독의 배려다.

가령, 딸의 남자 친구 시드를 보라. 처음에 얼간이처럼 보이는 그는 딸의 남자친구를 대하는 모든 아빠들이 그렇듯 질투의 시선에 고스란히 노출돼 있지만 극의 후반부에는 아빠에게 충고까지 해 주면서 친구가 되는 매력적 캐릭터다.

또 불륜남의 아내는 어떤가. 모든 것을 알고 병실로 찾아온 그녀는 죽음을 앞둔 불륜녀를 향해 한바탕 욕설을 퍼붓는데 이 우스꽝스런 모습을 통해 그녀의 고통이 드러나고 또 불륜남의 이야기가 한꺼번에 정리된다. 그밖에도 엄마와 사이가 좋지 않던 큰 딸, 자꾸만 엇나갈 것 같은 막내 딸은 영화가 진행되는 내내 소재를 알 수 있을 정도로 꼼꼼하게 관리되고 있다.

가령 아빠가 불륜남의 아내에게 말을 걸려고 할 때도 아빠는 큰 딸에게 동생을 챙기라고 말한다. 작은 디테일이지만 그로 인해 관객은 아빠가 딸들에게 점점 다가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영화 <디센던트>의 한 장면

영화 <디센던트>의 한 장면 ⓒ 20세기폭스


조지 클루니, 수트 대신 하와이안 셔츠를 입다

이렇게 엇나간 가족을 소재로 일탈 속의 유머와 페이소스를 버무려 작은 이야기를 먹음직한 식단으로 만드는 알렉산더 페인 감독. 어쩌면 페인과 조지 클루니는 잘 맞지 않는 조합처럼 보이기도 한다. 조지 클루니는 대개의 영화에서 멋진 수트를 입고 여자들을 유혹해 왔다. 물론 <오! 형제여 어디에 있는가?>에서처럼 망가진 연기를 보여준 적도 있기에 <디센던트>의 그를 두고 새로운 모습이니 할 것은 아니지만 어쨌든 페인은 조지 클루니를 택했고 그 이미지의 반전을 통해 그가 가족에 동화되는 과정을 보여준다.

우선 감독은 조지 클루니에게 수트를 입히지 않았다. 그 대신 하와이안 셔츠에 슬리퍼를 신겼다. 그리고 그런 복장으로 심각한 부동산 계약 이야기를 하게 한 뒤 특유의 중후한 나레이션으로 "여기선 다 그래"라고 말한다.

어쩌면 평생 휴가지에 온 기분으로 살 것 같은 하와이안이나 언제나 멋진 수트만 입을 것 같은 슈퍼스타나 이 영화에 어울리지 않기는 마찬가지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런 계산된 반전으로 페인은 조지 클루니를 자신의 세계에 끌어들인다.

그런데 그가 아내가 사고를 당한 뒤 가정적으로 살아보려고 결심하는 순간 아내의 불륜 사실을 알게 되는 불쌍한 중년이 되면 이야기는 조금 달라진다. 마치 한국영화 <외출>에서 '완벽한 매너남'인 배용준의 아내가 불륜을 저질렀다는 것을 믿기 힘들었던 것처럼 이 영화에서도 조지 클루니가 불륜의 상대가 아니라 배신당한 남자라는 것 역시 선뜻 받아들이기 힘들다.

그런데 두 영화 사이에 큰 차이가 있다. <외출>은 시침 뚝 떼고 완벽한 선남선녀가 다른 연애 이야기를 하지만 <디센던트>는 관객들에게 "이봐, 예전의 조지 클루니는 잊어" 라고 말하며 능청스럽게 조지 클루니에게 중년의 가장이라는 새로운 이미지를 만들어준다. 범접하기 힘든 이미지에서 친근한 중년 아빠로의 변신. 제법 잘 어울린다.

최근 몇 년새 조지 클루니는 영화를 직접 감독하기도 했고, 선댄스표 영화에 출연하는 등 인디 영화에도 많은 관심을 갖고 있는데 그래서 페인의 전작인 <사이드웨이>도 출연을 희망했었다고 한다. 당시에는 덜 유명한 배우를 원했던 감독이 거절했지만 <디센던트>를 준비하면서는 감독이 먼저 조지 클루니를 찾았다.

페인은 이미 <어바웃 슈미트>에서 잭 니콜슨을 변신시킨 적이 있다. 그 인상이 너무 강렬해서 <어바웃 슈미트>는 잭 니콜슨 없이는 상상할 수 없는 영화가 되었다. <디센던트>의 조지 클루니는 그 정도는 아니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 하와이안 셔츠를 입고 슬리퍼를 떨걱거리면서 아내의 불륜에 격분하는 조지 클루니는 당분간 잊기 힘들 것 같다.

 영화 <디센던트>의 한 장면트

영화 <디센던트>의 한 장면트 ⓒ 20세기폭스


마지막으로 <디센던트>에서 빼놓을 수 없는 하와이라는 섬. 땅을 파는 문제와 불륜이라는 전혀 다른 두 개의 이야기가 겹쳐지는 부분도 바로 이 영화의 배경인 하와이다. 하와이는 그 단어를 떠올리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휴가와 낭만의 공간이지만 정작 그곳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원주민들의 역사 깊은 땅이자 지금을 살아가고 있는 일상의 공간일 뿐이다.

가문 대대로 내려온 땅을 개발할 것인지 아니면 이대로 계속 후손에게 물려줄 것인지, 처음에 개발에 찬성했던 맷은 아내의 불륜을 통해 두 딸과 점점 가까워지고 가족의 소중함을 알게 되면서 친척들과 의견을 달리 하게 된다. 그리고 그곳이 전혀 이질적이었던 두 이야기가 겹쳐지는 지점이다.

<디센던트>는 지난 1월에 열린 2012년 골든 글로브 시상식에서 작품상, 남우주연상을 수상했고, 오는 26일 열리는 아카데미 시상식에서는 작품상, 감독상, 남우주연상 등 5개 부문의 후보에 올라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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