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잉어를 변론할 생각은 없다. 잉어가 무슨 잘못이 있담. 이건 잉어가 아니라 '잉여'를 위한 변명이다.

여기서 말하는 잉여는 당산동에 거주하고 합정동에 서식하는 한 잉여(그건 나!)를 지칭한다. 이 잉여놈을 변호하기 이전에, 일단 내 자신이 과연 정말 잉여인가 따져볼 필요가 있다. 일단 잉여의 사전적 의미를 찾아보았다. 국어사전에서 잉여란 '다 쓰고 난 나머지'를 뜻한다. 이 사전적 정의를 '인간'에게 적용시켜보면 '사회가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제외한 나머지' 정도의 의미가 될까? 한마디로 '쓸모없는 인간'이란 뜻. 물론 우리 엄니는 내가 인간이라는 전제를 의심하곤 하지만!

 

사전적 정의 말고 다른 기준은 없을까? 굴지의 포털1위 네이버를 통해 '잉여의 기준'을 검색해 보았다. 다양한 누리꾼들이 생각하는 잉여의 기준을 접할 수 있었지만, 표준화된 잉여의 기준을 찾을 수는 없었다. 세상 천지가 입에 잉여란 말을 달고 살고, 심지어 월간 <잉여>라는 매거진까지 창간된 마당에 잉여인지 아닌지 판단할 수 있는 객관화된 기준이 없단 말인가!(애매하다. 잉여의 기준을 하루빨리 정해주시길 <개콘> '애정남'에게 강력 요구한다!)

 

그래서 다시 처음 사전적 정의로 되돌아가 어휘 하나하나와 행간에 담긴 의미를 다시 곱씹어보았다.


사회가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제외한 나머지.

 

'사회'? 무슨 사회? 설마 <해품달> 4회를 말하는 건 아닐꺼고, 결혼식 사회… 따위는 더더욱 아니겠지(…미안하다)? 곰곰히 생각해보면 소위 잉여라 불리는 사람들에게는 결정적인 공통점이 있다. 그것은 바로 '직업'이 없는 백수라는 것. 다시 말하면 자본주의적 생산활동에서 벗어나 있다는 말이다. 자, 하나의 의미가 도출되었다. 여기서 말하는 '사회'가 뜻하는 바는 "자본주의적 생산 사회"라 해두자.

 

'필요로 하는'? 자본주의 경제가 가장 필요로 하는 것은? 정답은 이윤창출. 이건 중딩들한테도 너무 쉬운 문제다. 한가지 더 덧붙여보자면 안정적으로 이윤창출을 계속해 나갈 수 있는 사회를 유지하는 것 정도? 마치 지금 내게 가장 필요한 것은 여친이지만, 안정적으로 연애를 지속해나갈 수 있는 현금 역시 필요한 것과 같다.

 

'사람'? 자본주의적 경제시스템안에서 사람을 거칠게 나눠보면 두 종류로 나눌 수 있다. 자본가와 임금 노동자. 이렇게 살펴본 의미를 덧붙여 문장을 보완해 보았다.

 

(자본주의적 생산) 사회가 (이윤창출 및 사회유지를 위해) 필요로 하는 사람(자본가, 임금노동자)들을 제외한 나머지.


나는 자발적 잉여다. 이렇게 마련한 기준에 따르면 난 잉여가 맞다. 28살에 어디 내세울 만한 직업이 없는 남자사람. 1주일 168시간 중 수면시간 56시간, 먹고 싸는 시간 넉넉 잡아 21시간, 알바 6시간, 그리고 나머지 잉여시간 85시간.

 

<해품달> <하이킥> <뿌나> <셀초(셀러리맨 초한지… 이런 말은 없나?)> 등 각종 드라마를 빠짐없이 섭렵하고 있으며, 명절이 되면 친척들과 마주하는 시간을 최소화시킬 궁리만 하고, 인류의 진화와 똑똑한 침팬지 칸지를 디깅하느라 해가 떠서야 잠에 들기도 하고, 때로는 합정동 카페에 앉아 마냥 멍때리기도 한다. 그래, 나 빼도 박도 못하는 잉여 그 자체다(똑똑한 침팬지 칸지 이야기는 다음에 자세히 할 필요가 있다).

 

세상은 잉여와 안잉여로 나뉜다. 그런데 다시 잉여는 자발적 잉여와 비자발적 잉여로 나눌 수 있다. 전자는 애초에 취업할 생각이 없었거나 혹은 구직 활동 끝에 스스로 취업을 포기한 잉여를, 후자는 취업을 간절히 원하지만 자신의 가치를 알아주는 회사를 아직 만나지 못한 잉여를 의미한다. 그런데 사실 엄밀히 따지자면 비자발적 잉여들은 경제 구조적 관점에서 진정한 잉여라고 볼 수 없을 지도 모른다. 마르크스에 따르면 자본주의 경제는 기술적 실업으로 형성되는 비자발적 잉여들, 즉 취업지망생들을 반드시 필요로 한다. 임금 노동을 원하는 산업예비군(취업지망생)의 존재가 노동시장을 더욱 경쟁적으로 만들어 임금을 하락시키기 때문이다. 따라서 앞선 내 맘대로 정의에 따르면 진정한 잉여 중의 잉여, 킹 오브 더 잉여, 잉여의 성골은 바로 자발적 잉여라고 할 수 있다.

 

미안한다. 위의 잉여 구분은 똑똑한 척하기 위한 잔재주였다. 정규직, 비정규직 나누듯 구분지어 잉여들의 아름다운 단합을 해칠 생각은 없다. 그저 내 이야기를 조금 더 상세히 하려는 것 뿐. 아무튼 위 구분에 따르면 난 전자, 즉 자발적 잉여에 해당한다. 많은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대학을 다녔지만 그 흔한 스펙 하나 없다. 학점? 묻지 마라 다친다(진짜 다친다. 우리 어미니는 마음을 다치셨다). 영어 점수? 대한민국 대학생 중에 토익 한번 본 적 없는 사람이 나말고 또 있을까?(아, 있다. 내 절친들…) 오픽? 그거 먹는 거임? 뿌잉뿌잉.*^^*

 

자발적이고 비자발적이고를 떠나서 28세 잉여남자를 바라보는 세상의 시선은 불편하기 짝이 없다. 우리 어머니는 나만 보면 속에서 핵폭발이 일어나시고, 잘나가는 친척들은 '한심한 인간아 정신차려라'라는 눈빛을 보낸다. 누나는 날 세상에서 제일 하찮은 애라고 부르고, 대기업에 다니는 선배들은 내게 아직 늦지 않았다며 어색한 위로를 보낸다. 윗사람들도 그러한데 도대체 그 많은 후배들은 날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누군가를 만날 때마다 듣게 되는 질문들에 매번 답하는게 귀찮아서 쓰는 잉여를 위한 변명. 이것은 물론 외부의 따가운 시선으로부터 나 자신을 방어하기 위한 목적만 있는 것은 아니다. 이건 그냥 나 자신의 삶을 정리하고 의미를 부여하기 위한 지극히 개인적인 행위. 혹은 정말 하찮은 푸념이나 자기합리화일지도 모른다. 반면 이것은 한 가지 가치만을 일방적으로 주입하는 세상에 대한 따끔한 일갈인 동시에,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수많은 잉여들과 뜨거운 가슴으로 하나 될 수 있는 감동적인 서사시이며, 치열하게 살아가는 안잉여들이 잠시 자신의 삶을 돌아볼 수 있도록 마련된 휴식처이기도 하다.

 

미안. 깔때기가 좀 심했나? 다 농담이었다. 사실 아무 거창한 이유 없다. 그냥 손가락으로 떠는 수다라고나 할까? 잉여를 위한 변명을 하기 위해서 무엇보다 먼저 던져야 할 질문이 있다. 나는 '왜' 잉여가 되었는가. 무엇 때문에 스스로 잉여의 길을 택했는가. 오글오글.

덧붙이는 글 | 개인블로그에 올림


태그:#잉여, #변명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