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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 이은미가 최근 자전적 에세이집 <이은미, 맨발의 디바>를 펴냈다.
 가수 이은미가 최근 자전적 에세이집 <이은미, 맨발의 디바>를 펴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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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쟁을 부추기는 편집방향이나 순위를 호명하고 몇 등이라 낙인 찍는 기존의 방식이 아니라면. 또 뮤지션이 존중되고 다양한 음악이 순수하게 전달될 수 있는 새로운 방식이 도입된다면. <나는 가수다> 참여를 고민해 볼 수 있다."

사실은 나도 불편했다. 평소 내가 좋아했던 뮤지션이 <나는 가수다> 무대에만 서면 사시나무 떨 듯 떨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는 건 팬에게도 고통이었다. 자신의 순위가 어떻게 될까 걱정하는 모습이 생생하게 전달될 땐 함께 긴장해야 하므로. 서열주의, 경쟁, 지긋지긋한 단어들. 마음 편히 즐겨야 하는 대중문화조차도 그 서열주의로 긴장해야 하다니. 서글펐다.

그런데 최근 자전적 에세이집 <이은미, 맨발의 디바-세상에서 가장 짧은 드라마>를 낸 가수 이은미씨가 내 문제의식에 동의했다. 그는 처음 <나는 가수다> 프로그램이 시작됐을 때 "혼자서 소주 3병을 마셨다"고 했다. 너무 슬퍼서.

그는 지난 8일 <오마이뉴스>와 단독 인터뷰에서 "우리 사회가 저렇게까지 자극적인 장치를 하지 않는다면 음악도 안 듣겠다는 건가 생각했다"며 "대중이 음악을 듣고 좋고 나쁘고를 결정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프로 가수들을 1등부터 7등까지 줄 세우고 탈락시키는 장치는 불편했다"고 고백했다.

무엇보다 "저런 자극에 반응했던 대중들의 가슴을 어떻게 녹여 내 음악을 듣게 할 것인가 그것이 가장 큰 좌절이었다"며 "뭐가 그렇게 잘나 아직도 <나가수>에 출연하지 않느냐는 비판에 시달리지만 악순환의 고리가 반복되는 게 싫어 마치 외나무다리 한 가운데 앉은 것처럼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한 채 고민 중"이라고 말했다.

<맨발로 詩를 만나다>에 이은 두 번째 책 <이은미, 맨발의 디바>를 낸 그는 이 책을 통해 어릴 때부터의 개인사, 한국사회를 보는 시선, 소셜테이너의 사회참여 등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냈다. 다음은 그와 나눈 일문일답을 정리한 것이다.

- 자전적 에세이집 <이은미, 맨발의 디바-세상에서 가장 짧은 드라마> 책을 냈다. 이 책을 낸 동기는 무엇인가.
"1년에 몇 차례씩 출판제의를 받는다. 교재를 만들자는 제의도 있고. 매해 여러 출판사에서 많은 제의가 오는데 한 번쯤 내 삶을 정리해두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23년째 음악을 하고 있지만 음악에 대한 기록만으로는 별로 쓸 말이 없어서 이런저런 내 생각을 담았다. 무엇보다 음악 오디션 프로그램에 멘토로 나가면서 대중가수를 꿈꾸는 아이들이 지나치게 많다는 것을 확인한 순간, 이 직업을 너무 가볍게 생각하고 너무 쉽게 달려드는 게 아닌가 싶어서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을 해봐야겠다고 생각해서 시작한 일이다."

- 이 글을 쓰면서 가장 어려웠던 점은 무엇인가.
"석 달간 이 책을 쓰면서 어디까지 알려야 하나 많이 고민했다. 제 주변에 있는 분들에게 누가 되지 않고 쓰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생각을 많이 했다. 선의에서 한 말 때문에 누군가 상처 받거나 다른 여파가 생겨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슬프게도 그런 부분을 배제하니까 쓸 얘기가 별로 없었다. 후후."

- 매우 시크한 표지를 넘기니 프롤로그 제목이 '착하게 살자'였다. 그래서 한참 웃었다. 왜 이런 제목의 글을 첫머리에 올렸나.
"매일 되뇌는 말이다. 음악은 혼자 하는 일이 아니다. 저 같은 솔리스트는 그냥 혼자 하겠지 생각하시겠지만 전혀 아니다. 단독작업이 될 수 없다. 정말 많은 스태프가 저를 무대 위에서 빛나도록 돕는다. 그런데 인격형성이 덜 돼 늘 그들의 고충을 알면서도 날카롭게 대했다. 그런데 이제는 어느 정도 내 자신을 인정하고 사랑하면서부터 날카로운 가시들이 누그러졌다. 내 가시에 다른 사람들이 찔리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생각하며 산 건 한 7년쯤 되는 것 같다. 더 착하게 살아야겠다는 게 내 생각이다."

이은미의 프롤로그..."착하게 살자"

- 20년 가까이 덮어둔 상처를 꺼내보거나, 불과 몇 달 전 일을 찬찬히 떠올리면서 불쑥불쑥 화가 나기도 한다고 했는데 요즘 사회적으로 가장 화가 나는 일은 무엇인가.
"사회적으로는 너무 많다. 제가 정치하는 사람이라면 참 아득할 것 같다. 그래서 하야하고 싶어질 것 같다. 아무도 없는 산골에서 조그만 오두막집에 살며 먹을 게 없으면 없는 대로, 눈이 많이 와서 갇히면 갇히는 대로 그렇게 살고 싶을 것 같다."

- 국내 대표적 소셜테이너다. 책을 보니 어릴 때부터 봉사단체에서 자원봉사를 한 것으로 나온다. 어떤 단체에서 활동했나.
"고등학교 1학년 때 '도덕 재무장'이라는 단체가 있었다. MRA 합창단. 각 학교별로 잘하는 아이들을 뽑아 세종문화회관에서 공연도 했다. 그때도 내가 솔리스트였다. 부른 곡목은 잔다르크. 보육시설을 방문해 노래도 하고 청소나 빨래도 돕고 방 정리도 함께 했었다."

- 요즘도 비슷한 사회봉사활동을 하시나.
"지금은 바쁘다는 핑계로 거의 못한다. 늘 라이브 공연을 하고 밴드와 연습을 해야 해서 예전처럼 많이 다니지는 못한다. 대신 금전적으로 해결하는 경우가 많아졌다.(웃음) 기금 마련 콘서트에 함께 하고. 1년에 한두 차례 정도는 광주 백선바오로의 집을 가는데, 그곳은 정신지체장애인 수용시설이다. 원장 수녀님께서 콘서트 기금으로 이쪽 시설과 저쪽 시설을 잇는 구름다리를 만들었다고 좋아하셨다. 그런 얘기를 들으면 뿌듯하다.(웃음) 두 팔 걷어 부치고 쓸고 닦고 못한 지는 오래됐다."

- 이 책을 통해 독자들에게 꼭 하고 싶었던 얘기는 무엇인가.
"불혹을 거치면서 내가 내 인생의 불혹을 사는 느낌이면 안 되겠다 생각했다. 나머지 내게 주어진 인생을 잘 마무리하는 것, 여태까지 살면서 맺은 신뢰에 여러분들이 배신감 느끼지 않도록 하는 것, 그런 게 가장 중요할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제 자신에게는 더 냉정해질 필요가 있고 타인이나 제 삶에 대해서는 좀 더 유연해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것이 나이 들어간다는 것일 테고, 서로 가슴을 나눌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 걸 그냥 정리해보고 싶었다."

<나가수> 프로그램을 처음 봤을 때 이은미는 "혼자서 소주 3병을 마셨다"고 했다. 너무 슬퍼서.
 <나가수> 프로그램을 처음 봤을 때 이은미는 "혼자서 소주 3병을 마셨다"고 했다. 너무 슬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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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마땅 산악회, 송호창 변호사 그리고 한국정치

- 책을 보면 산악회 활동을 하는 걸로 나온다. '못마땅 산악회'. 지금도 가동 중인가. 그 멤버 중 하나인 송호창 변호사는 이번에 민주통합당에 입당했다. 그가 정치를 잘 하겠나.
"송호창이라는 사람을 못 믿어서가 아니라 그의 맑은 영혼에 대한 믿음이 확고하기 때문에 사실은 걱정이 많다. 분명 그 맑은 영혼이 상처받고 피 흘릴 테니까. 아직까지는 한국정치가 그런 모습 아닌가. 그래서 개인적으로는 정치하는 것에 반대했다. 그러나 그는 이미 마음을 먹었더라. 잘 하려니 생각해야지 한다."

- 송호창 변호사 같은 분이 정치로 가서 어떤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나.
"그는 꼭 대변인이 돼야 한다. 브리핑을 하더라도 국민들이 문제의 본질을 명확히 알 수 있도록 해주는 역할을 맡았으면 좋겠다. 그래야 국민이 혼란을 느끼지 않는다. 무슨 말인지 모르겠는 모호한 논평이나 브리핑 그런 것 하지 말기 바란다. 한국사회 중요 논쟁의 쟁점이 무엇인지 명확히 알려주는 그런 대변인이 되길 바란다."

- 10·26 서울시장 선거에 멘토로 참여했다. 마지막 날 유세에도 동참했는데 어땠나.
"박원순 변호사님은 예전부터 알고 지냈고 너무 존경하는 분이어서 조금이라도 보탬이 될 수 있다면 돕고 싶었다. 그런데 결과적으로는 별로 보탬이 되지 못한 것 같다. 선거 전날 종로까지 지원유세를 따라갔었다. 캠프에서는 저와 후보님, 한명숙 전 총리가 맨 앞줄에 서서 시민들과 인사해주기를 바랐는데 정치인들이 참 무섭더라. 누군가 제 뒤통수를 냅다 잡아서 두 번이나 내동댕이쳤다. 그럴 때 저는 송호창 같은 사람이 걱정되는 것이다. 그러나 뭐, 여러 가지로 우리 사회가 좀 더 폭넓게 성장하는 과정이리라 생각하고 싶다. 올 총선과 대선이 지나고 나면 더 많은 완충장치가 생길 거라고 기대한다."

- 음악 오디션 프로그램에 멘토로 출연해 기본기를 강조했다. 멘토의 가장 중요한 덕목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얼마 전 기사를 보니까 실용음악과 지원자가 14명인데 6000명이 몰렸다. 도대체 아이들이 왜 이토록 이걸 원할까. K팝 열풍도 있지만 대중 음악가는 굉장히 쉽게 돈을 벌 수 있고 자기를 알릴 수 있는 길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학문에 자신을 바치고 끊임없이 연구하는 학자, 풀리지 않는 명제를 붙들고 씨름하는 연구자, 이런 것보다는 그냥 먹고 놀고 즐기는 연장선 정도로 생각하는 것 같았다.

그런데 누구나 서른 살이 넘기 전에 알게 되지만 세상에 쉬운 일은 없다. 그런 걸 사회적 장치와 부모의 역할로 아이들이 판단하도록 도와야 하는데 우리 어른들이 그 역할을 제대로 못해주고 있구나 싶었다. 그래서 난 기본기를 가장 강조했다. 시작하는 단계의 아이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그 일을 대하는 태도, 진지함 이런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내가 얼마나 간절히 원하는 일인가, 아이들이 스스로 알기 바랐다. 그러나 잘 모르는 것 같았다. 도대체 선생님이 왜 나한테 이런 말을 하는 것일까. 그러나, 나중에 시간이 지나서 자기 자신의 경험자락 한 페이지가 넘어가기 전에 아 선생님이 이래서 이런 얘기를 했구나 그걸 알기만을 바랄 뿐이다."

<나가수> 보며 소주 세 병 마신 까닭

 "뭐가 그렇게 잘나 아직도 <나가수>에 출연하지 않느냐는 비판에 시달리지만 악순환의 고리가 반복되는 게 싫어 마치 외나무다리 한 가운데 앉은 것처럼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한 채 고민 중"이다.
 "뭐가 그렇게 잘나 아직도 <나가수>에 출연하지 않느냐는 비판에 시달리지만 악순환의 고리가 반복되는 게 싫어 마치 외나무다리 한 가운데 앉은 것처럼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한 채 고민 중"이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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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에서 요즘 대중의 관심이 <나는 가수다>라는 프로그램에 많이 쏠려 있다고 했다. 요즘 <나는 가수다> 프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나는 처음 그 프로그램이 출발할 때 슬펐다. 앉은 자리에서 소주 3병을 마셨다. 우리 사회가 저렇게까지 자극적인 장치를 하지 않는다면 음악도 안 듣겠다는 건가? 너무 슬펐다. 음악을 들어주는 사람들이 그 음악이 좋고 나쁘고를 결정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프로 가수들을 1등에서 7등까지 줄 세우고 탈락시키는 장치를 만들고 명예졸업하고 등등의 자극적인 시스템을 만들어놓고 그걸 즐기는 대중의 모습이 나는 슬펐다."

- 프로가수들조차 경쟁해야 살아남는 정글 같은 방식이 불편했던 것인가.
"자극은 더 큰 자극이 아니면 이미 그건 자극이 아닌 게 된다. 저런 자극에 반응했던 대중의 가슴을 어떻게 녹여 내 음악을 듣게 할 것인가. 그게 가장 큰 좌절이었다. 아마추어가 음악을 평가하는 것은 당연하다. 가수들의 음악을 평론가가 작가주의로 평가할 일은 더욱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또 이런 것도 있다. 본인의 음악적 색깔을 보여주겠다고 참여한 가수들도 솔직히 7등을 해서 탈락하면 창피한 것이다. 그러다보니 점점 <나가수>식 편곡이 나오기 시작했다. 세상에 그런 음악만 있는 것은 아닌데, 편곡도 자극적으로 해야 하는 것인가 속상했다."

- <나가수>에 출연하라는 제의를 많이 받지 않나.
"많이 시달린다. 뭐가 그렇게 잘났길래 안 나가니? 후후. 각각 자기 음악을 하는 멋진 음악인들인데, 또 한 사람이 가진 음악의 폭이 아무리 넓어도 그가 잘하는 것이 있고 못하는 것이 있는데, 전혀 다른 음악적 표현을 하는 것은 정말 쉬운 일이 아닌데, 그걸 못하는 사람이 꼴찌가 되니까 자꾸 자극적인 편집을 하는… 슬펐다. 또, 음악가들이 자기 무대에 대한 자긍심이 있었으면 했는데 떨어질까봐 두려워하는 모습이 자꾸 비춰지는 것도 싫었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일 <나가수>에서 시즌2 작업을 하면서 나와 달라 요청한다면.
"경쟁을 부추기는 편집방향이나 순위를 밝히고 너는 몇 등 이렇게 낙인을 찍는 기존의 방식이 아니라면, 또 뮤지션이 존중되고 내용이 순화되어, 다양한 음악이 순수하게 전달될 수 있는 새로운 방식이 도입된다면 참여를 고민해 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대중문화예술인은 자기가 가진 권력을 올바르게 써야 한다"

- 이 책에서는 대중음악의 질적인 퇴보를 막고 대중음악이 선순환 될 수 있도록 정성을 들여 달라는 당부를 했다. 어떤 메시지인가.
"존중의 문제다. 음악을 만드는 사람들은 그 음악을 만들면서 행복한 작업시간이 있을 수도 있지만 참 힘겨운 시간을 보낼 때도 있다. 저는 늘 제 재능의 한계를 느끼고 좌절한다. 그렇게 고생 고생해서 정성 쏟아 만든 작업을 너무 쉽게 사용하다가 껌 종이에 껌 싸 버리듯이 그렇게 하는 것 같다. 그건 공짜로 음원을 듣는 분들에게도 해당되는 얘기다. 객석과 무대의 차이도 분명 있다. 서로에 대한 존중을 하지 못하는 마인드. 너는 대중예술가니까 내가 원하면 뭐든 해야 돼! 이런 인식. 음악을 만드는 사람들의 노력을 100% 이해해달라는 것은 아니다. 그저 기본적인 존중을 보여주였으면 좋겠다."

- 대중문화예술인의 사회참여에 대해서도 한 말씀 하셨던데.
"대중을 상대로 하는 예술가들이 대중의 냉정한 잣대로 난도질을 당하는 경우도 많지만 그들이 품어주는 너른 자락 속에서 어쩌면 남들이 누리지 못하는 큰 권력을 누린다. 그렇기 때문에 대중문화예술인들은 어떤 방식으로든 자기가 가진 권력을 올바른 방식으로 써야 한다는 게 내 생각이다. 그것이 정치적 참여일 수도 있고 사회문화적 참여일 수도 있다. 할 수 있는 한 본인의 능력이 사회적 선의로 쓰일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게 중요하다."

- 끝으로 하고 싶은 말은.
"끊임없는 삶의 경쟁. 그것의 문제의식을 이해하는 분들이 조금 더 많아진다면 더 살아볼만한 그런 나라가 되지 않을까 싶다. 가끔은 온힘을 집중하고 모아야 하는 에너지가 필요할 때도 있지만 가끔은 또 다 내려놓고 스스로 들여다보는 시간도 필요하듯이 지금 우리 사회가 잠깐 내려놓고 스스로 들여다봐야 하는 시기는 아닌가. 아프지만 불편한 부분들도 한 번은 서로 들여다보면서 격려하고, 그리고나서, 그래! 우리 잘할 수 있을 거야! 그렇게 시작하면 좋겠다. 곧 봄이므로!"


태그:#이은미, #나는 가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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