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명의 시민기자가 개의 기사를 작성하였습니다. 시민기자 전환하기
'국가'는 양 날의 검입니다. 국가는 법과 제도를 만들어서 사회를 통제하고 이를 지키지 않는 사람의 자유를 제약할 수 있습니다. 이 서슬이 퍼런 검을 누가 이용하느냐에 따라 민중들의 삶은 큰 굴곡과 변화를 겪어왔습니다.

기득권층이 자신의 이득만을 위해 '국가'라는 정치권력을 사용할 때는 항상 '거짓말'이 존재했습니다. 그 거짓말로 국민을 속이고 기만해 자신들의 잇속을 챙겼습니다. '국가의 거짓말'이라는 연재기사를 통해 구체적인 사례들을 들여다보고 혼란의 시대에 국가의 진정한 의미에 대해 다시 생각해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기자 말>

 1945년 4월 12일 일본 치란 특공기지에서 출격하는 가미카제 특공대의 하야부사 전투기 조종사에게 벚꽃가지를 흔드는 일본 여고생들.
 1945년 4월 12일 일본 치란 특공기지에서 출격하는 가미카제 특공대의 하야부사 전투기 조종사에게 벚꽃가지를 흔드는 일본 여고생들.
ⓒ 위키미디어

관련사진보기


[거짓말] 가미카제 대원들은 '천황폐하 만세'를 외치며 기쁘게 죽었다

국가와 천황폐하를 위해 250킬로그램의 폭탄을 적재한 특공기 제로센(零戰)을 타고 미군 함정에 몸통으로 돌진하는 가미카제 특공대의 정신은 우리 대일본제국의 상징입니다. 이렇게 자발적으로 국가와 천황폐하를 위해 자신의 가장 소중한 것을 서슴지 않고 내놓는 가미카제 특공대의 정신은 우리 대일본제국이 영원히 계승해야 할 사무라이 정신입니다.

이들의 희생이 헛되지 않도록 1억 국민 모두가 가미카제 특공대가 되어 옥쇄(玉碎)하겠다는 마음으로 국가와 천황폐화를 위해 끝까지 싸울 것을 다짐합니다. 대일본제국 만세! 천황폐하 만세!

[진실] 가미카제는 죽음을 강요당한 '살인'특공부대였다

일본의 보수 일간지 <요미우리신문>의 회장 및 주필인 와타나베 쓰네오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도쿄제국대학 입학 3개월 만에 육군포병연대에 징집되어 이등병으로 군생활을 했던 사람이다. 그는 2006년 2월 11일자 <뉴욕타임스> 기사를 통해 다음과 같이 얘기했다.

"가미카제 특공대원들이 '천황폐하 만세'라고 하며 기쁜 마음으로 돌진했다는 것은 전부 거짓말이다. 그들은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양들처럼 두려움에 젖어 눈을 내리뜨고 비틀거렸다. 어떤 사람은 일어설 수가 없어 억지로 비행기에 떠밀려 들어갔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가미카제(神風)는 제2차 세계대전 말기에 전투기에 폭탄을 싣고 적함에 충돌하여 자살 공격을 한 일본 제국의 특공대이다. '가미'는 일본어로 '신(神)'을, '카제'는 '바람(風)'을 뜻하며, '신이 일으키는 바람'이라는 뜻을 갖고 있다.

가미카제는 1274년과 1281년 일본 정복을 위해 쳐들어온 몽고군의 배를 전복시켜 기적적으로 일본을 구했다는 태풍의 이름에서 유래한다. 13세기에 몽고군을 격퇴(?)한 태풍처럼, 당시 전쟁에서 코너에 몰린 일본을 구할 것이라 기대하고 지은 이름인 셈이다.

특공작전은 확실히 죽음을 의미했기 때문에 당시 일본군 상층부는 특공대를 정규 군대로는 인정하지 않기로 했다. 육해군에 명령을 내리는 최종 책임자가 천황이었기에, 자칫하면 천황이 젊은이들을 죽음으로 내몬다는 인상을 줄 위험이 있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부대는 '동지 집단'이 자발적으로 편성한 것이어야 했고, 대원은 '자원'해서 기꺼이 참가한 것이어야 했다. 그러나 엄연히 현실은 달랐다.

일본군에서 특공대를 처음 창설했을 때 육해군병학교 출신의 직업군인 가운데 특공대에 지원한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었다. 그러자 당황한 제1항공함대 사령장관 오니시 해군 중장은 "지금부터 전 부대를 특공대로 지정한다. 여기에 반대하는 자는 내가 목을 치겠다. 비판은 일체 허용하지 않는다"고 직접 훈시하고, 제201해군항공대부장 다마이 아사이치 중좌 등 그의 심복들로 하여금 해군병학교 출신 사관 몇 명에게 특공작전에 '지원'할 것을 사실상 '명령'하도록 시켰다.

필리핀 레이테만의 해군 특공작전을 인솔한 세키 유키오는 이런 식으로 동원된 것에 대해 "일본도 끝이다. 나 같은 우수한 파일럿을 죽이려고 하다니…. 나라면 굳이 몸체로 부딪히는 육탄 공격을 하지 않고도 적군 모함의 비행갑판에 50번 폭탄을 명중시키고 돌아올 자신 있다"며 한탄했다고 한다.

전사자 4000여 명 중 3분의 2가 '학도병'... 10대 소년도

 탁경현이 가미카제로 출격하기 전의 모습.
 가미카제 특공대원으로 희생된 조선인 탁경현의 출격 전 모습.
ⓒ 자료사진

관련사진보기

이렇게 직업군인들이 자원하지 않았기 때문에 대신 학도병이나 비행 예과 연습생들이 동원됐다. 사회학자 모리오카 기요미의 연구에 따르면 가미카제 특공대 전사자 3843명 중에서 학도병(장교 및 하사관 포함) 출신이 68.2%에 이를 정도였다.
더욱 비극적인 것은 하사관 전사자의 대부분이 미국과의 전쟁에 맞추어 모집 연령을 크게 낮추어 고등소학교 졸업생(14세)이나 구제중학교 3년생(15세), 4년생(16세) 재학생을 대상으로 선발한 10대 소년 비행병이라는 점이다. 그들은 그저 비행기를 타고 하늘을 나는 꿈에 부풀어 있는 미성년자에 불과했다.

소위 특공대원의 '지원'이라는 것은 대개의 경우 부대원 모두가 집합한 가운데 애국심이 미덕이라든가 천황과 일본을 위해 희생하는 것이 의무라고 하는 등의 일장 훈시를 들은 다음, 특공대원에 지원하고 싶은 사람은 앞으로 나오라는 식이었다. 분위기에 휩쓸려 주위의 사람들이 대부분 앞으로 나서는 상황에서 자기만 혼자 머쓱하게 나서지 않는 상황은 상상하기 힘들다.

때로는 이런 압박을 배제한다는 명목으로 눈을 가리게 한 다음에 지원하는 사람은 손을 들라고 요구하기도 했다. 하지만 거수할 때에 군복 소리가 나서 많은 사람이 지원한 것을 알게 되면 주저하는 사람도 지원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다.

만약 누군가 용기를 내어 지원을 거부한다면 어떻게 됐을까? 그에게도 '살아 있는 지옥'행 말고는 다른 선택이 남아 있지 않았다. 지원하지 않은 젊은이는 '바람직하지 않은 인물'로 낙인 찍혀 특공대와 다름없이, 어차피 죽음이 예정돼 있는 남방 전선으로 보내질 것이라는 분위기였다.

또 학도병의 의사 같은 건 완전히 무시되기도 했다. 구로다 겐지로는 특공대에 지원하지 않기로 작정하고 있었는데, 해군특공대 미타테 부대의 일원으로 자신의 이름이 호명되어 소스라치게 놀랐다고 한다. 상관이 그의 부대원 전원이 지원했다고 보고해버린 것이다.

가족에게 경제적으로 도움이 되기 위해서 특공대에 지원하는 경우도 있었다. 우메자와 가즈요는 1945년 4월 28일 특공대원으로 지원하여 18살에 전사한다. 그의 친동생 우메자와 쇼조 박사의 증언에 의하면, 그는 어머니의 강한 반대를 무릅쓰고 해군 비행 예과 연습생으로 지원하며, 남편을 잃고 여자 혼자 힘으로 자식들을 키운 어머니를 경제적으로 지원하는 것이야말로 효도하는 길이라고 설명했다고 한다.

특공대원에게 지급되는 연금이 가족에게 도움이 될 것이라는 얘기다. 이런 예는 드물지 않다. 정부가 직무의 위험도에 따라 보수를 높게 책정하고 특공대원으로 참전했다가 전사하는 경우에는 2계급 특진을 시켜줌으로써 젊은이들을 끌어들이려고 했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은 소리 지르고, 어떤 사람은 엉엉 운다"... 처참한 출격 전야

 사천시 서포면 외구리에 가미카제 특공대원 탁경현의 위령비가 건립되어, 10일 제막식을 앞두고 광복회 회원들이 항의하고 있다. 구로다 후쿠미씨 등 일본인들이 위령비를 향해 합장한 채 절을 하고 있는 모습.
 2008년 5월 10일 경남 사천시 서포면 외구리에 가미카제 특공대원 탁경현의 위령비가 건립되어, 제막식을 앞두고 광복회 회원들이 항의하고 있다. 구로다 후쿠미씨 등 일본인들이 위령비를 향해 합장한 채 절을 하고 있는 모습.
ⓒ 윤성효

관련사진보기


특공대의 기지 생활은 순탄치 않았다. 직업군인들은 자신보다 계급이 낮은 학도병의 사소한 행동을 못마땅하다고 생각할 때마다 당사자뿐만 아니라 부대 전원에게도 가혹한 체벌을 했다. 이로카와 다이키치는 학도병이 겪어야 했던 '생지옥'에 대해 다음과 같이 생생하게 증언했다.

"쓰치우라 해군항공대에 들어가고 나서는 얼굴 모양이 바뀔 정도로 구타당하는 '맹훈련'이 계속되었어요. 1945년 1월 2일 아침은 가네코라는 소위에게 20번이나 얼굴을 맞아 입안이 갈기갈기 찢어졌죠. 고대하던 새해 떡국도 못 먹고 피를 삼키며 지냈어요. 2월 14일은 같은 부대의 거의 전원이 외출했을 때 농가에서 주린 배를 채웠는데 그 벌로 추운 겨울밤에 7시간이나 콘크리트 바닥에 앉아서 몽둥이로 개돼지처럼 엉덩이를 두들겨 맞았어요.

그리고 한 사람씩 사관실에 불려 들어갔는데 나도 오랜 시간을 기다려 사관실에 들어가자마자 눈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또 맞았어요. 얼굴을 걷어차고 넘어뜨리고 다시 일어서면 곤봉을 휘두르면서 '자백'을 강요하고…. 맞아서 나가떨어지는 순간 머리가 마루 끝에 부딪혀서 중태에 빠진 친구도 있었어요. 병원에 실려갔는데 결국 못 돌아왔습니다."

직업군인들은 대개 말단에서 온갖 고생을 하다가 지위가 오른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학도병들에게 심리적 박탈감을 느꼈다. 그들은 대학은커녕 고등학교조차 다닌 적이 없는 자신들과 비교할 때 학도병들은 공부에 전념할 수 있는 특권 계급 출신이라는 생각에 기분이 좋지 않았던 것이다.

가미카제 특공대들의 유서나 사진, 그들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영화 등에서는 마지막 출격을 앞두고 웃는 얼굴로 경례를 하거나 손을 흔드는 장면을 볼 수 있는데 이것 역시 사실이 아니다. 그들의 비참한 모습은 가스가 다케오가 1995년 6월 21일에 오메자와 쇼조에게 쓴 편지에 잘 묘사되어 있다. 쓰치우라 해군 항공기지에서 급사, 세탁, 청소 일을 담당했던 가스가는 출격 전야에 목격한 특공대원들의 모습을 다음과 같이 회고했다.

기러기 룸에서 송별회를 했다. 내일 출격하는 젊은 사관들은 데우지 않은 술을 단숨에 들이키거나 벌컥벅컥 마셨다. 결국에는 모든 것이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사관들은 어두운 막장 아래의 전등을 칼로 쳐서 떨어뜨리고, 양손에 치켜든 의자로 창유리를 와장창 차례로 부쉈다. 새하얀 테이블보도 찢어버렸다. 군가는 욕하는 소리처럼 서로 뒤섞였다.

등화관제가 실시되는 군대에서 여기 기러기 룸의 술자리는 '별세계'다. 어떤 사람은 화가 나서 소리를 지르고, 어떤 사람은 엉엉 운다. 오늘 밤이 마지막인 이 목숨. 부모, 형제자매의 얼굴, 지인들의 얼굴들. 그리고 연인의 미소 띤 얼굴, 약혼자와의 슬픈 이별. 주마등같이 돌고 도는 상념은 끝도 없이 이어진다.

내일은 마침내 출격. 일본 제국을 위해, 천황폐하를 위해서라고, 젊고 고귀한 청춘을 바칠 각오를 하고 있지만, 흐트러진 테이블에 엎드린 사람, 유서 쓰는 사람, 팔짱 끼고 명상하는 사람, 엉망이 된 송별회장을 떠나는 사람, 몇 시간이나 묵묵히 뭔가를 쓰는 사람, 미친 듯이 춤을 추면서 꽃병을 부수는 사람. 이토록 처참한 출격 전야의 어찌할 바를 모르는 학도병의 심경은 너무나도 알려져 있지 않다….

이른 아침 비행장으로 달려가 지난밤에 물이 아닌 찬 술을 나누어 마신(재회를 기약할 수 없는 이별의 경우, 술잔에 술 대신에 물을 따라 나누어 마시는 풍속이 있다) 용사는 히노마루(일장기) 머리띠를 매고 용감하게 높은 폭음을 내며 출격! 나는… 영령이 되신 분들의 일상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나와 마찬가지로 격렬한 훈련 뒤에 매일같이 잔인하고 고통스러운 기합이 계속되었다.

적진 명중률은 약 10분의 1... 군사적 효과는 미미

아예 극우인사 이시하라 도쿄 도지사가 제작을 맡은 영화 <나는 당신을 위해 죽으러 갑니다>는 가미카제 특공대를 미화하고 있다. 아예 극우인사 이시하라 도쿄 도지사가 제작을 맡은 영화 <나는 당신을 위해 죽으러 갑니다>는 가미카제 특공대를 미화하고 있다.
 극우인사 이시하라 도쿄 도지사가 제작을 맡은 영화 <나는 당신을 위해 죽으러 갑니다>는 가미카제 특공대를 미화하고 있다.
ⓒ 도에이

관련사진보기


특공대원은 죽음을 전제하는 특공 임무를 떠맡은 시점부터 이미 이 세계에는 없는 존재가 된다. 한번 출격하면 설사 적을 발견하지 못했어도 살아서 돌아오는 건 허용되지 않았다. 일례로 와세대대학 졸업생 특공대원 하나는 몇 번이나 적함을 발견하지 못하고 귀환했는데 9번째 돌아왔을 때는 사살되었다.

많은 대원들은 적함을 발견했어도 돌입하지 못하고 가까운 수면에 착륙하려고 시도했다. 나아가 일부러 기지 사령부 건물에 간신히 부딪히지 않을 정도로 저공비행한 다음 날아가는 대원도 있었다고 한다.

특공작전의 장비는 비행기와 어뢰로 이루어져 있었는데 그 어디에도 탑승원을 위한 구명장치는 구비되어 있지 않았다. 제로센(零戰)이라 불리는 단발엔진 탑재 함상전투기는 고도 2만 피트(약 6100미터)를 최고시속 372마일(약 600킬로미터)로 비행하는 성능을 가지고 있고 250킬로그램의 폭탄을 적재할 수 있었다.

폭탄의 무게와 가속도의 관계로 일단 급강하하기 시작한 비행기를 제어하는 것은 극히 어렵고 더구나 기체를 일으켜 세우는 것은 불가능했다.

가미카제 특공대는 비행기에만 국한하지 않았다. 일본군은 어뢰로도 공격했다. 잠수 어뢰 '가이텐(回天)'은 종류에 따라 조금씩 다르지만 제1형은 길이 14.75미터, 직경 1미터였다. 엄밀하게 말하면 어뢰는 아니었지만 탑승원이 몸체로 적의 함대에 부딪혀 공격을 가하는 것으로, 비장한 이미지를 담아 '인간어뢰'라고 불렀다.

모두 세 종류가 만들어졌는데 이 가운데 두 종류는 2인승이었다. 이 인간어뢰는 총 400기가 제조되었다. 탑승원은 무게 9톤의 어뢰 중앙에 쪼그려 앉아 1550킬로그램의 탄두를 가지고 30노트로 잠행했다. 어뢰는 모함에 장착되어 있고 미군의 군함 근처에서 수중으로 투하되었다. 당초의 어뢰에는 탑승원을 위한 탈출 장치가 설치되어 있었지만, 나중에 제조된 것에는 이러한 장치가 없어졌다.

특공작전은 초기에 미국인을 공포에 빠뜨렸지만 군사작전으로서의 효과는 미미했다. 작전 초기에는 반짝 효과를 보는 듯했으나 전투가 거듭되면서 조종사의 기량이나 병기의 성능은 현저히 떨어지고 적의 방어 기술은 향상되었다. 적진에 위협을 가해 명중하는 비율은 11.6%, 바다에 추락하는 비율은 5.7% 수준이었다.

얼마 안 있어 일본은 더 이상 제대로 기능하는 비행기나 어뢰를 생산할 수 없게 되었다. 지상에서 이륙조차 할 수 없는 비행기나 이륙한다고 해도 기계 고장으로 어쩔 수 없이 되돌아오는 비행기가 적지 않았다. 잠수 어뢰도 자주 고장을 일으켜 탑승원들은 목표로 하는 군함에 격돌할 수 없었거나 어뢰에 갇힌 채 해저에 침몰해 질식사하기도 했다.

"뭐가 애국이고 뭐가 조국이란 말인가"... "죽고 싶지 않다, 외롭다"

<사쿠라가 지다 젊음도 지다> <죽으라면 죽으리라> 등의 책을 통해 가미카제 특공대의 진실을 생생하게 파헤친 오누키 에미코의 책 <죽으라면 죽으리라>에는 다음과 같은 학도병과 특공대원의 수기가 생생하게 실려 있다.

뭐가 애국이고 뭐가 조국이란 말인가? 뜬구름 잡는 추상적인 개념들 때문에 수백만의 생명을 해치고, 수천만, 수억의 인간으로부터 자유를 빼앗는 일을 받아들이라는 것인가?
- 사사키 하치로, 도쿄제국대학 재학 중 징집, 향년 22살 전사

지금은 새벽이다. 밤 3시다. 오전 3시다. 아아! 죽고 싶지 않다. 외롭다. 왜 이리 외로운 걸까.
- 하야시 타다오, 교토제국대학 재학 중 징집, 향년 24살 전사

짧은 생명이지만 추억의 순간은 많다. 많은 것을 누려온 나로서는 이 세상과 이별하는 것이 견디기 힘들다. 하지만 되돌아볼 것 없이 나는 적진에 돌격해야 한다.
- 하야시 이치조, 교토제국대학 재학 중 징집, 향년 23살 전사

이들이 비행기나 잠수함에 몸을 실어 자살 공격을 하기 위해 태어난 것은 분명 아닐 것이다. 도대체 이들의 모습 어디에서 '천황폐하 만세'를 외치며 기쁜 마음으로 적진을 향해 돌진하는 가미카제 특공대의 모습을 찾을 수 있는가? 전쟁보다 더 인간을 집단적으로 악마에 가깝게 만드는 일은 없다. 그런데 이들의 애처로운 죽음조차 자신의 이익을 위해 사용하는 무리들이 여전히 남아 있다.

가미카제 특공대는 이들의 이익을 위해 미디어를 통해 미화되고 왜곡된다. 2001년 2월 9일 총리 취임을 앞두고 고이즈미 준이치로는 가고시마의 치란특공평화회관을 방문하여 그곳에 전시된 한 소년 비행병의 편지 앞에 양손을 짚고 한동안 소리 없이 흐느끼는 퍼포먼스를 벌인다. 총리 취임 즈음해서는 "총리대신의 배명을 받은 현재도 특공대 청년의 심경에 비하면 이런 고생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기분으로 난국에 대처해나갈 것"이라고 지껄인다.

"가미카제 특공대원들이 '천황 폐하 만세'라고 하며 기쁜 마음으로 돌진했다는 것은 전부 거짓말이다. 그들은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양들처럼 두려움에 젖어 눈을 내리뜨고 비틀거렸다. 어떤 사람은 일어설 수가 없어 억지로 비행기에 떠밀려 들어갔다."

앞서 언급했던 와타나베 쓰네오 요미우리 회장의 이 발언은 바로 고이즈미처럼 특공대를 자신의 이익에 맞춰 미화하고 왜곡하려는 우익분자들의 시도에 쐐기를 박기 위한 것이었다. 그래서 그는 특공대원들에게 감격의 눈물을 흘리고 야스쿠니신사에 집착하는 고이즈미를 "역사도 철학도 모르고 전혀 교양이 없는 사람이다"라고 비난한 것이다.

덧붙이는 글 | 본문에 인용된 가미카제 관련 증언은 <사쿠라가 지다 젊음도 지다>(오오누키 에미코 씀, 이향철 옮김, 모멘토 펴냄, 2004년), <죽으라면 죽으리라>(오오누키 에미코 씀, 이향철 옮김, 우물이있는집 펴냄, 2007년)에서 발췌한 것입니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주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후원하기

<원숭이도 이해하는 자본론> <차베스, 미국과 맞짱뜨다> <청춘에게 딴짓을 권한다> <세상을 바꾼 예술 작품들> <국가의 거짓말> <원숭이도 이해하는 마르크스 철학> 등 몇 권의 책을 쓴 저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