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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안티고네>는 국가인 크레온 왕과 개인 안티고네의 치열한 대결을 보여준다.
▲ 연극 <안티고네>중 왕 크레온(박완규 역)과 안티고네(박윤정 역) 연극 <안티고네>는 국가인 크레온 왕과 개인 안티고네의 치열한 대결을 보여준다.
ⓒ 문성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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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비극의 대표적 수작으로 꼽히는 <안티고네>는 국가와 개인의 대립을 보여주는 대서사시로 아이스킬로스, 에우리피데스와 함께 고대 그리스 3대 비극시인으로 꼽히는 소포클레스의 대표작이다. 대학로 선돌극장에서 2월 2일부터 26일까지 공연되는 극단 백수광부의 연극 <안티고네>(김승철 연출)는 사회, 국가의 체제를 상징하는 크레온(박완규 역)과 개인의 신념을 대표하는 안티고네(박윤정 역)의 치열한 싸움이 권투경기장을 연상시키듯 사각형의 링 안에서 펼쳐진다.

오이디푸스왕이 스스로 눈을 찔러 맹인이 되고 테베에서 추방되자 두 딸 안티고네와 이스메네는 아버지의 길안내자가 되고, 오이디푸스가 죽자 테베로 돌아와 왕자리를 두고 싸우는 두 오빠 에테오클레스와 폴리네이케스를 화해시키려 하지만 결국 그 둘은 모두 죽고 만다. 왕이 된 외삼촌 크레온은 에테오클레스의 장례는 국가법으로 성대히 치러주지만, 폴리네이케스의 시신은 들판에 버려두라고 명령한다.

"폴리케이네스의 시체를 들판에 버려둔 채 들짐승과 날짐승의 먹이가 되도록 놓아둘 것이다! 폴리케이네스의 주검을 거두어주거나 애도를 표하는 자가 있다면, 그가 누구라도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준엄한 처벌을 면치 못할 것이다!" (긴급명령 18호)


크레온이 안티고네가 죽자 분노하는 아들 하이몬(김현중 역)을 진정시키고 있다.
▲ 크레온 왕과 아들 하이몬(김현중 역) 크레온이 안티고네가 죽자 분노하는 아들 하이몬(김현중 역)을 진정시키고 있다.
ⓒ 문성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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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객이 무대에 입장하면 가운데 철창 안에는 안티고네가 잡혀와 있다. 오빠의 시신을 묻어주려 한 것이다. 테베의 왕 크레온이 내린 "긴급명령 18호"가 적힌 종이를 시민으로 분한 배우가 관객에게 다가와 나눠주고서 낮고 무서운 목소리로 읊조린다. 관객들은 연극이 진행되는 90여 분 동안 치열하고 처절한 원형경기장 속의 팽팽한 대립 사이에서 갈등할 수 밖에 없다.

국가와 개인, 개인과 국가. 개인이 있어야 국가가 존재할 수 있다. 하지만 국가의 질서 안에서야 개인도 유지될 수 있다. 안티고네는 처절히 혈육의 정으로 인간 도리를 다 했음을 주장하며 자신이 살 것을 과감히 포기하지만, 외삼촌 크레온 왕은 국가의 법을 어긴 안티고네를 가혹히 심문하기도 하고 회유하기도 한다. 하지만, 안티고네가 완강히 반항하자 결국 처형한다.

각각 2010년과 2011년 히서연극상, 올해의 기대되는 연극인상을 수상한 두 남녀 주인공인 박완규와 박윤정의 연기대결이 무척 돋보인다. 공연 내내 갇힌 공간 안에서 인간감정과 법질서와 통치에 대하여 이들은 긴박하게 논의한다. 머리채를 잡고, 부둥켜 안고, 목놓아 소리치고, 운다. 무대는 별다른 구조물 없이 단지 사각 철창과 그 안팎, 그리고 왕비 에우리디케가 위치한 관객석을 활용하지만 집중감과 때때로 무척 넓은 동선도 보여준다. 극은 원작보다 더욱 격앙되고 치열한 대사톤과 인물간의 대결구도를 보여주며 수천 년전 그리스 고전을 더욱 세련되게 현대화하였다.

크레온 왕은 모든 것이 자신의 탓이라며 오열한다.
▲ 왕비 에우리디케(서진 역)의 죽음. 크레온 왕은 모든 것이 자신의 탓이라며 오열한다.
ⓒ 문성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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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티고네가 죽자 그의 약혼자이자 크레온의 아들인 하이몬(김현중 역)도 따라 자살한다. 아들이 죽자 왕비인 크레온의 아내 에우리디케(서진 역)도 가슴을 찔러 자살한다. 크레온 왕은 모든 것이 자신의 잘못이라며 왕비에게 엎드려 오열하지만, 국가통치와 가족을 모두 지키는 것을 양립하기 참 어렵다.

음악 또한 독특한 역할로 극의 재미를 한층 돋운다. 이 <안티고네>에서 배우들은 피아노 뿐 아니라, 하모니카, 멜로디온, 천둥소리 등의 특수악기로 효과음까지 직접 만들어내며 긴장된 극의 분위기를 고조시킨다. 특히 마지막에 크레온이 아들과 왕비를 모두 잃고 처연한 상황일 때 배우들이 코러스가 되어 부르는 노래는 무척 비탄적이면서도 감정을 고조시킨다.

요즈음 대학로 극장가에는 코믹물이나 가벼운 소재의 연극들이 많아지고 있다. 이런 와중에 <안티고네> 같은 고전 비극의 재공연은 가뭄의 단비와도 같은 명품이겠다. 작품내용이 오늘날의 정치상황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고, 언제나 변하지 않을 쟁점이기 때문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KNS서울뉴스(http://www.knsseoulnews.com)에도 함께 송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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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안티고네, #극단 백수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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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을 전공하고 작곡과 사운드아트 미디어 아트 분야에서 대학강의 및 작품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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