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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늦 가을 우리집 작은 연못에 왜가리 한 마리가 날아왔습니다.
 지난 늦 가을 우리집 작은 연못에 왜가리 한 마리가 날아왔습니다.
ⓒ 송성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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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가리 녀석이 우리 집 연못에서 물고기 한 마리를 낚아챕니다. 잉어 새끼가 분명합니다. 새끼라고는 하지만 20여 센티미터 정도 크기입니다. 다락방 창문을 통해 그 장면을 생생하게 목격하다가 카메라를 꺼냅니다.

녀석의 그 가는 목으로는 도저히 넘길 수 없을 것처럼 보이지만 몇 차례 커다란 부리로 쪼아대더니 이내 긴 목으로 넘깁니다. 긴 목이 불룩해지는 것이 보입니다. 그 순간순간에 카메라 초점을 맞춰 보지만 거리상으로 표준렌즈로는 포착할 수 없습니다. 망원렌즈가 없다는 것이 못내 아쉽습니다.

지난 봄 집으로 들어서는 길목에 20여 평의 작은 연못을 만들었습니다. 멀리 보이는 건물은 작은 도서관입니다.
 지난 봄 집으로 들어서는 길목에 20여 평의 작은 연못을 만들었습니다. 멀리 보이는 건물은 작은 도서관입니다.
ⓒ 송성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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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종 왜가리의 먹이 사냥 장면이 포착되는 곳은 바로 우리 집 입구에 들어서 있는 작은 연못입니다. 본래 밭 자리였는데 비가 올 때마다 물이 고여 도저히 밭작물을 일굴 수 없어 지난 봄 작은 연못을 파놓고 거기에 마복산 도규네를 통해 얻어온 수련 몇 뿌리와 동관이 성님네 연못에서 캐온 백련 몇 뿌리를 넣었는데 초여름 무렵, 수련이 보기 좋게 꽃을 피우기 시작했습니다.

우리 식구뿐만 아니라 집 옆 작은 도서관을 찾아오는 아이들이며 먼 길 마다 않고 찾아오는 손님들이며 지나가는 사람들의 마음자리에 예쁜 연꽃 한 송이 담아가길 바랬습니다. 아직 꽃을 피우지는 않았지만 백련이 다 자라 꽃을 피우면 연 꽃차와 연잎차를 만들어 주변 사람들과 더불어 그 향기를 나눌 요량입니다.

한 여름의 작은 연못. 연못 주변에 호박을 심었습니다.
 한 여름의 작은 연못. 연못 주변에 호박을 심었습니다.
ⓒ 송성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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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에 수련과 백련 뿌리를 넣었는데 초여름부터 수련 꽃이 이쁘게 피었습니다. 아직 백년 꽃이 피게 되면 연꽃 차며 연잎차를 만들어 주변 사람들과 그 향을 나눌 요량입니다.
 봄에 수련과 백련 뿌리를 넣었는데 초여름부터 수련 꽃이 이쁘게 피었습니다. 아직 백년 꽃이 피게 되면 연꽃 차며 연잎차를 만들어 주변 사람들과 그 향을 나눌 요량입니다.
ⓒ 송성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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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꽃만 피어 있는 연못이 심심할 것 같아 집 부근 저수지에 통발을 놓아 새우와 피라미들을 잡아다 놓았고 또 지난 가을에는 30여 마리의 잉어까지 방류해 놓았습니다. 지난 가을 김동관 성님으로부터 손전화가 걸려왔습니다.

"어이, 얼른 해창만으로 오게나."
"뭔 일인디유?"
"메기 잡으러 가자구."
"메기 매운탕 끓여 먹으면 좋치유.  근디 베스나 블루길이라믄 몰라두, 해창만에 뭔 메기가 있다구 그류?"
"아 글쎄 와보라니께."

해창만에 메기 양식장이 있다는 소문을 들어본 적도 없고 하여 나는 뭔 메기인가 싶어 차를 몰아 10여 분 거리의 해창만으로 내달렸습니다. 동관이 성님이 기다리고 있는 곳은 끝없이 펼쳐진 해창만의 어느 농수로. 추수 뒤끝의 농수로는 바닥을 내보이고 있었고 농수로 끄트머리에 웅덩이처럼 물이 고여 있었습니다.

농수로 주변으로 펼쳐진 저수지에서는 늦가을 베스 낚시를 즐기는 사람들이 여기 저기 눈에 띄었습니다. 우리는 베스 낚시하는 사람들의 눈총을 받아가며 팬티 바람으로 용감무쌍하게 턱 높은 수로에 들어가 준비해온 활채를 펼쳤습니다. 

"어제 여기서 메기를 잡았었는디, 아직 많이 남아 있을겨."

동관이 성님 말대로 수로에는 큼직한 메기들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메기는 서너 마리에 불과했습니다. 그 보다는 베스와 20여 센티미터 크기의 잉어 새끼들이 말 그대로 바글바글했습니다. 추수가 끝날 무렵 농수로의 물이 빠져 나가면서 그 웅덩이에 갇혀 오도 가도 못한 놈들이었습니다.

활채질 한 번에 서너 마리씩, 불과 몇 십분 만에 한 양동이 가득 채웠습니다. 몇 양동이는 거뜬하게 채울 수 있었지만 더 이상 욕심 부리지 않고 집으로 돌아와 세 마리의 메기와 30여 마리의 잉어를 연못에 방사했습니다.

그로부터 한 달도 채 안 돼 왜가리 한 마리가 연못 주변을 어슬렁거리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녀석에게는 새우에 피라미, 큼직한 잉어들이 바글거리는 연못은 더 없이 좋은 먹이 저장고였던 것입니다. 20여 평에 불과한 작은 연못이다 보니 먹이 사냥도 손쉬웠을 것입니다.

봄부터 가을까지 집 주변 들녘에 심심치 않게 보였던 왜가리들이 추수가 끝나면서 쉽게 눈에 띄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모두들 겨울이 오기 전에 어디론가 먹이를 찾아 서둘러 떠났을 터인데 그 한 녀석만 눈에 띄었던 것입니다. 아마 나처럼 느려터진 녀석이었던 모양입니다. 하지만 그 느려터진 덕분에 올해 밭농사를 잘 지은 나처럼 녀석 또한 연못의 물고기들을 독식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지난 가을부터 한 겨울인 지금에 이르기까지 작은 연못에 왜가리 녀석이 단골손님으로 찾아왔습니다.
 지난 가을부터 한 겨울인 지금에 이르기까지 작은 연못에 왜가리 녀석이 단골손님으로 찾아왔습니다.
ⓒ 송성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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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렁이에 새우, 피라미와 같은 작은 민물고기, 해창만 수로에서 건져온 큼직한 잉어에 이르기 까지 작은 연못은 녀석의 먹이 저장고 입니다.
 우렁이에 새우, 피라미와 같은 작은 민물고기, 해창만 수로에서 건져온 큼직한 잉어에 이르기 까지 작은 연못은 녀석의 먹이 저장고 입니다.
ⓒ 송성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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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 연못을 향해 짖어대던 우리 집 개 곰순이 녀석조차 더 이상 짖어대지도 않았습니다. 처음에는 곰순이가 짖어댈 때마다 녀석은 곧장 연못을 떠났지만 어느 날부터는 곰순이가 짖어대도 날아가지 않았습니다. 묶여 있는 곰순이는 더 이상 위험 대상이 아니라는 것을 인지했겠지요.

엄청난 인내심으로 풀숲에 잔뜩 웅크려 작은 새를 사냥하고 있는 우리 집 고양이, 보리 녀석은 왜가리 근처에 얼씬도 할 수 없는 모양입니다. 날개를 촤악 펼치면 1미터 가까이 되는 왜가리 녀석이었기에 보리 녀석으로서는 도저히 대적할 수 없는 상대였겠지요. 연못을 찾아오는 왜가리 녀석에게 있어서 가장 위험한 상대는 나 같은 인간들이었습니다.

"저 자식이 애써 잡아 놓은 물고기들을 다 잡아 먹네. 저러다가 잉어 한 마리도 못 건지겠네. 저걸 어떻게 하지?"

사실 내가 연못에 메기와 잉어를 풀어 놓은 속셈은 따로 있었습니다. 연못을 유영하는 관상어로보다는 손쉽게 잡아 매운탕이라도 끓여 먹을 심사였습니다. 연못을 독식하고 있는 왜가리 녀석을 쫓아 보낼까 생각하다가 그만두었습니다.

나는 연못 속의 물고기를 먹지 않아도 아무런 지장 없이 생활할 수 있는데 녀석은 다를 것입니다. 물론 다른 장소에서 먹잇감을 찾을 수 있겠지만 한 겨울, 우리 연못만큼 손쉬운 사냥터는 없겠지요. 내가 겨우내 땔감을 찾아 헤매고 다니듯이 녀석은 먹잇감을 찾아 겨우 내내 먹이 사냥이 가능한 수심 얕은 해창만 곳곳을 찾아 헤매고 다녀야 할 것입니다.

녀석은 우리 식구가 녀석을 해치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눈치 챈 모양입니다. 처음에는 우리 식구가 집 마당에만 나서도 저 멀리 앞산 쪽으로 휙 하니 날아가버렸는데 이제는 연못 쪽으로 다가가지 않는 이상 날아가지 않습니다.

우리 식구뿐만 아니라 찾아오는 손님들에게도 녀석은 기분 좋은 눈요깃감이 되어 주곤 합니다. 전화선이 들어오지 않을 뿐더러 텔레비전조차 없는 우리 집에 훌륭한 다큐멘터리 영상을 제공합니다.

우리집에는 텔레비전이 없습니다. 하지만 왜가리, 때로는 청둥오리까지 날아드는 작은 연못은 먼 길 마다 않고 찾아온 반가운 손님들에게 생생한 '다큐멘터리 영상'을 제공하기도 합니다. 거실 창문을 통해 왜가리가 날아온 작은 연못을 지켜 볼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집에는 텔레비전이 없습니다. 하지만 왜가리, 때로는 청둥오리까지 날아드는 작은 연못은 먼 길 마다 않고 찾아온 반가운 손님들에게 생생한 '다큐멘터리 영상'을 제공하기도 합니다. 거실 창문을 통해 왜가리가 날아온 작은 연못을 지켜 볼수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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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가리 녀석이 어른 손바닥보다도 더 큼직한 잉어를 낚아채 그 긴 목으로 넘기는 생생한 장면을 목격하다보면 늘 망원렌즈가 아쉽습니다. 망원렌즈가 있으면 저 생생한 장면을 찍어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줄 수 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때마침 지난주에 서울 근교에 살면서 '자유학교'에 다니는 쌍둥이, 민희 민경이네 가족이 놀러 왔습니다. 민희 민경이네 식구가 우리 집에서 머물고 있는 며칠 내내 왜가리 녀석이 여지없이 작은 연못을 찾아왔습니다.

자유학교 선생님이기도 한 민희 민경이 엄마는 망원렌즈를 갖추고 다양한 사진을 찍어 오고 있었는데 나는 그 망원 렌즈를 빌려 왜가리 녀석을 찍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돗자리 깔아 놓으면 하던 일도 멈춘다는 말이 있듯이 녀석은 20여 센티미터 크기의 잉어를 잡아먹는 모습을 망원렌즈에 포착할 수는 기회를 주지 않았습니다.

물고기들은 물이 얼 정도로 추운 겨울에는 움직임이 거의 없습니다. 간혹 송사리만큼 아주 작은 물고기 떼들이 보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수심 얕은 작은 연못 속에 한정된 먹잇감들, 그마저 카메라로 포착될 만한 잉어들은 연못의 진흙 바닥 속에 몸을 숨겼을 터이니 사냥이 쉽지 않을 것이었습니다.

물고기들의 움직임이 거의 없다보니 녀석은 차갑게 얼어붙은 공기의 입자처럼 아주 느리게 움직입니다. 내가 망원렌즈를 통해 녀석의 움직임에 촛점을 맞추고 있듯이 녀석은 먹이의 움직임에 촛점을 맞추고 정물화처럼 미동도 없이 꼼짝 않고 기다리는 시간이 더 많습니다. 어쩌다 거친 바람이 연못을 할퀴고 지나갈 뿐입니다.

먹이를 잡는 순간을 포착하고자 하는 욕망으로 가득한 나는 결국 견디지 못해 망원렌즈의 초점을 거두고 말았는데 녀석은 대자연이 그러하듯 절대로 서두르는 법이 없습니다. 먹이감이 움직일때까지 끊임없이 기다립니다.

요즘은 날이 춥다보니 아침나절에는 연못이 꽁꽁 얼어 있습니다. 오늘은 연못의 얼음이 풀리는 점심 무렵, 마당에 모이를 찾아 헤매고 있는 두 마리의 산비둘기가 날아왔고, 여지없이 연못에 왜가리 한 마리가 날아왔습니다. 배추와 마늘, 양파가 심어져 있는 밭으로 나서는데 산비둘기가 푸드득 날아갑니다.

연못 위를 날아가는 왜가리. 어느 순간 녀석은 나를 길들이고 있었습니다.
 연못 위를 날아가는 왜가리. 어느 순간 녀석은 나를 길들이고 있었습니다.
ⓒ 송성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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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못의 왜가리도 덩달아 긴 날개를 퍼덕이며 바다 쪽 앞산으로 날아갑니다. 왜가리가 사라진 저 멀리 앞산 능선에서 바람에 흔들리는 키 큰 소나무 가지가 보입니다. 허공을 보다가 문득 자연에 눈을 돌리는 순간만큼은 복잡한 내 머릿속이 비어져 가고 있다는 것을 인식합니다. 허공처럼 본래 아무것도 없는 것인데 그 어떤 욕망에 갇혀 살아가고 있는 나를 봅니다.

그렇게 왜가리 녀석의 몸짓 하나 하나에 초점을 맞추다 보면 이런 저런 잡생각이 사라집니다. 나로도에 추진 중인 골치 아픈 화력발전소 건설 문제를 잠시 잊을 수 있습니다. 또한 그 비움으로 인해 화력발전소 건설에 대응할 힘을 얻게 됩니다.

"왜가리 녀석이 매일같이 연못에 출퇴근하는디 저 놈을 한번 길들여볼까 싶네요."

우리 집에 찾아오는 손님들에게 왜가리 녀석을 소개하면서 농담 삼아 말하고 있지만 사실 내가 녀석에게 길들여져 가고 있었습니다. 기분 좋은 길들임. 나는 녀석에게 길들여져 갈수록 기분이 좋아집니다. 내가 인적이 없는 자연 속에 발을 내딛을수록 기분이 좋아지는 것처럼 말입니다.

내가 왜가리를 길들이려는 순간 나는 연못에 갇히게 될 것입니다. 왜가리는 자연입니다. 자연을 길들이려 하는 순간 욕망이라는 고통이 찾아옵니다. 하지만 자연에 길들여질수록 적어도 내 의식은 자유롭습니다. 자연은 내 의식을 맑게 정화해 주는 평화로운 안식처입니다. 그렇게 녀석은 자유로운 날개 짓으로 연못을 오가며 나를 자연이라는 안식처에 길들여 가고 있었던 것입니다.

내가 핵발전소나 화력발전소를 반대하는 이유는 바로 이러한 안식처를 잃지 않기 위함입니다. 내가 자연에서 얻는 에너지가 행복을 가져다준다고 맹신하고 있듯이 어떤 사람들은 핵발전소나 화력발전소를 통한 에너지가 행복을 가져다준다고 맹신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내면에는 인간의 욕망이 숨겨져 있습니다. 화력발전소는 또다른 욕망의 생산공장입니다. 자연을 파괴하고 얻게 되는 욕망은 결코 진정한 행복을 가져다주지 못합니다. 인류에게 가장 큰 위협이 되고 있는 핵발전소나 온갖 공해를 유발하는 화력발전소를 통해 전기를 더 많이 쓰고 온갖 소비제품들을 더 많이 생산하여 더 많이 소비하는 것에서 과연 진정한 행복을 얻을 수 있을까요?

내가 왜가리의 먹잇감인 연못 속의 물고기에 탐을 내는 순간 나는 왜가리를 쫒아내야 합니다. 왜가리를 쫒아내기 위해 이맛살을 찌푸리고 온갖 방법을 동원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하여 욕망이라는 물고기를 손쉽게 잡아먹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 집 작은 연못은 더 이상 왜가리를 통해 얻어지는 자유로운 안식처로 존재하지 않을 것입니다. 나는 결국에 가서는 그 욕망이라는 연못에 갇히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내가 적게 먹는 만큼 자연은 내게 왜가리가 날아드는 평화로운 안식처, 행복이라는 연못을 제공합니다.

덧붙이는 글 | 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 따르면 왜가리는 우리나라 전역에 걸쳐 번식하는 흔한 여름새이라고 합니다. 일부의 적은 무리는 남쪽지방과 도서지방에서 월동하는 텃새이고 번식은 대개 집단을 이루어 백조류(주로 중대백로)와 함께 군집번식을 하나 왜가리만의 집단번식지도 드물지 않다고 합니다. 근년에 와서는 농약과 공장폐수 등으로 오염된 먹이를 먹고 적지 않은 피해를 입고 있어 점차 그 수가 줄어들고 있다고 합니다.



태그:#왜가리, #자연의 주는 안식처, #길들이기, #욕망의 생산공장 화력발전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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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살리고 사람을 살릴수 있을 것이라 믿고 있는 적게 벌어 적게 먹고 행복할 수 있는 길을 평생 화두로 삼고 있음. 수필집 '거봐,비우니까 채워지잖아' '촌놈, 쉼표를 찍다' '모두가 기적 같은 일' 인도여행기 '끈 풀린 개처럼 혼자서 가라' '여행자는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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