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이명박 정권 들어 교육과정이 여러 번 바뀌었습니다. 크게는 2009년 12월에 2009개정교육과정(총론), 2011년 8월 9일에 2009개정교육과정에 따른 교과교육과정(각론, 2011개정)이 고시돼 내년부터 학생들은 새 교과서로 배우게 됩니다. 먼저 2011개정교육과정 교과별 내용을 알아보고, 2009개정교육과정과 학교의 변화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기자말>

얼마 전, 언론에는 수학교육선진화방안으로 앞으로 수학 시간에 단순 계산문제가 줄어들고 계산기나 공학프로그램을 사용할 수 있다는 소식이 보도됐다. 교구를 늘리고 다른 교과 주제와 통합해 스토리텔링이 가능한 교과서를 만든다고 한다. 불필요한 내용을 줄이고 수준별 수업이 가능해졌다는 소식도 들렸다. 언뜻 보면 '수학이 쉬워지고 수학 수업이 재미있어 지려나'라는 생각도 든다.

2011년 8월 9일에 고시된 수학 교육과정의 특징
 2011년 8월 9일에 고시된 수학 교육과정의 특징
ⓒ 서울시교육청

관련사진보기


이런 것이 가능해지려면 다른 나라와 비교해도 양이 많고 어려운 수학교과 내용을 학생들의 발달 수준에 맞게 조정해야 한다. 마침 2011개정은 '창의성을 강조하고 교육내용 20%를 감축했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불필요한 개념을 없애고 조정했으며, 내용을 더 첨가했다는 이야기는 없다. 그런데 정말로 그럴까?

조삼모사식 개정, 여전히 내용 어려워

먼저 필자가 있는 초등교육과정연구모임에서 초등수학을 분석해 봤다. 2011개정 수학교육과정을 보면 초등학교 교육 내용에서는 2학년에 나오던 분수가 3학년으로 올라가고, 5학년의 할·푼·리, 6학년의 연비가 삭제됐다. 단순 계산 문제를 줄이고, 저학년의 덧셈과 뺄셈은 두 자리 수까지로 한정했다. 중학교 과정에서는 집합과 증명 문제를 없앴다.

그런데 수학 1, 2학년 내용을 직접 비교해 보니 별로 줄어든 느낌이 들지 않았다. 학년군제로 바뀌고 성취기준 수도 줄었지만 1, 2학년에게 어려운 덧셈을 뺄셈으로, 뺄셈을 덧셈으로 바꾸는 것이나 암산하기, 발달단계에 맞지 않는' □로 나타내고 구하기' 등이 여전히 남아 있었다. 여기에 '창의적으로' '문제해결전략' 이런 말들이 추가됐다. 10 이하의 수를 나누고 합성하던 것은 20으로 올려놓아 오히려 수준도 높아지고, 시간도 많이 들게 생겼다.

교과부가 교육내용 20%를 줄였다고 하는 기준은 무엇일까? 대부분은 성취기준 수다. 예를 들어 1, 2학년 수학 덧셈과 뺄셈에서 성취기준 15개를 통폐합해 5개로 줄이면 무려 1/3 가량이 줄어든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실제 내용이 줄었을까?

두 자리 수 덧셈을 하려면 먼저 한 자리 수부터 출발하고, 받아올림이 있는 것, 없는 것 등을 차례로 공부해야 한다. 지금 교과서는 이런 것을 성취기준으로 제시하고, 2011개정은 이런 단계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이 나와 있지 않거나 교수 학습 유의점에 따로 제시해 놨다.

하지만 문제를 풀려면 이 단계를 거치는 것이 좋다. 학생에 따라서는 경우의 수가 더 많아진다. 결과적으로 단순 계산하라는 내용은 나와 있지 않지만, 교구를 이용하든 문제를 풀든 이 과정을 거치지 않으면 학생들은 두 자리 수 덧셈을 능숙하게 하기가 어렵다. 내용이 줄었다는 것은 교과부의 꼼수라고 볼 수밖에 없다.

1, 2학년 수학 내용 비교
2007개정 - 학년별 제시 
<1학년 내용>
- 한 자리 수끼리의 덧셈과 뺄셈을 할 수 있다.
- '(두 자리 수)-(한 자리 수)'의 계산을 할 수 있다.
- 한 자리 수인 세 수의 덧셈과 뺄셈을 할 수 있다.
<2학년 내용>
- 두 자리 수의 범위에서 받아올림이 없는 덧셈을 할 수 있다.
- 두 자리 수의 범위에서 받아내림이 없는 뺄셈을 할 수 있다.
- 두 자리 수의 범위에서 받아올림이 있는 덧셈과 받아내림이 있는 뺄셈을 할 수 있다.

2011개정 - 1, 2학년군
<학습내용 성취기준>
② 두 자리 수의 범위에서 덧셈과 뺄셈의 계산 원리를 이해하고 그 계산을 할 수 있다
<교수․학습상의 유의점>
⑤ 덧셈은 두 자리 수의 범위에서 다루되 합이 세자리가 되는 덧셈도 포함한다

* 겉으로는 2011개정이 2007개정보다 내용이 많이 줄어든 것처럼 보이지만, 저 한 줄 속에는 최소 6단계의 내용이 숨어 있다.

내용 줄기는커녕 대학 수준의 내용 들어와

지난 1월 12일, 조선대에서 열린 전교조 참교육실천발표대회에서 초중등 교사들이 모여 2011개정교육과정 교과별 내용에 대한 분석 결과를 발표했다. 수학교과모임 대표가 수학내용에 대해 발표하기에 초등학교 교육내용과 비교하며 들어봤다.

고등학교 수학은 내용이나 체계가 많이 바뀌었다. 2009개정교육과정체제는 원래 고1까지 배우던 공통교육과정을 중3까지로 줄였다. 고등학교는 선택교육과정체제가 됐다. 덕분에 교등학교 교과내용은 기본-일반-심화 교과로 바뀌었다. 수학 교사들은 "빠진 내용은 조금 황당하고, 새롭게 들어간 내용이 많아 더 어려워졌다"고 입을 모았다. 예를 들어 수학 교육이나 생활에 기본이 되는 진법(수, 시간, 단위 환산법)이 줄어들어 수학 시간에 다룰 여유가 없다는 것이다.

2007개정교육과정과 2011개정교육과정 고교 수학과 영어 교과목 체계입니다. 2007개정에서는 전문교과가 특목고에서나 배우던 것인데 2011개정에서는 심화라는 이름으로 바뀌면서 모든 학교에서 배우게 됩니다. 수학교과 내용이 그만큼 어려워지고 학습부담이 커지게 된 것입니다.
 2007개정교육과정과 2011개정교육과정 고교 수학과 영어 교과목 체계입니다. 2007개정에서는 전문교과가 특목고에서나 배우던 것인데 2011개정에서는 심화라는 이름으로 바뀌면서 모든 학교에서 배우게 됩니다. 수학교과 내용이 그만큼 어려워지고 학습부담이 커지게 된 것입니다.
ⓒ 교과부

관련사진보기


대신 고급 수학Ⅰ에는 오일러 그래프, 해밀턴 그래프, 채색 다항식 등 새로운 내용이 들어가 오히려 양이 더 늘어났다. 고급 수학Ⅱ에는 복소수의 극형식, 극좌표, 극방정식, 테일러급수와 전개, 미분방정식, 극방정식으로 표현된 곡선의 영역, 모멘트와 질량중심, 이변수함수, 편미분, 이계편도함수, 임계점, 안장점, 그래디언트 등이 들어갔다.

수학 교사들은 이런 개념은 지금도 어려운 수학을 아이들로부터 더욱 멀어지게 해 수학이 자연을 해석하고 사회현상을 설명하는 도구라는 기본적 가치를 잃게 할 것이라고 걱정했다. 게다가 이 때문에 수학을 포기하는 아이들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수학 내용이 어려우니 다른 교과 시간을 줄여 수학 시간을 늘리지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그렇다면 이 내용을 가르칠 만한 교사는 있을까? 발표자는 쉽게 답하지 못했다. 학교 교육과정에 나오지 않았기 때문에 많은 교사들이 대학 때 잠시 배웠다고 해도 학생들을 가르치기는 쉽지 않다는 이야기다. 그간 교육과정에 새로운 내용이 너무 많이 들어오고, 접근 방식이 달라져 어려운데 초등교사는 물론 한 교과만 가르치는 중등 교사들도 달라진 교과내용을 가르치기 쉽지 않단다.

교과부는 그간 교육과정 개정과정에서 생긴 학습결손에 대해 교재 지급도 모르쇠로 일관해 왔다. 때문에 현재 초등학교 6학년 학생들이 가장 큰 피해를 입고 있다. 2007개정교육과정에 따라 새로 생긴 교과목에 대한 교사연수도 제대로 시행하지 않은 교과부가 과연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늘 새 교육과정 발표만 하고 뒷감당은 교사 개인이나 학부모의 사교육으로 메워왔기에 이번 발표도 믿기 힘든 건 마찬가지다.

수준별 수업? 결국 1%를 위한 수학 교육

또한, 고교수학 체계도 문제라는 지적이 있다. 2011개정 수학 교육과정은 기본과목(기초수학), 일반과목(수학Ⅰ, Ⅱ, 확률과 통계, 미적분 Ⅰ, Ⅱ, 기하와 벡터), 심화과목(고급수학Ⅰ, Ⅱ) 3개로 나눠진다.

기초수학은 새로 생긴 것인데, 중학교 과정의 내용으로 일반 과목의 수학 교과를 이수하기 위한 수학적 개념과 원리 등이 담겨 있다. 심화과목은 전에는 특목고에서나 배우던 전문교과 내용을 가져다 만든 것이다. 학생 수준에 따라 수학수업을 맞춤식으로 운영할 수 있고, 일반고교 학생이 특목고에 가지 않고도 능력에 따라 심화내용을 배울 수 있다고 한다.

그런데 과연 심화과목을 수학에 재능이 있는 학생들만 배울까? 전문교과에서 심화교과로 바뀌는 순간, 대학에 가려면 학생들은 심화과목을 공부해야만 한다. 입학사정관제가 확대되고, 고등학교에서 배운 교과내용을 반영하기 때문에 배우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2014년부터 내용 난이도에 따라 수능을 A, B형으로 택해 응시할 수 있다. 또한, 2009개정교육과정에는 선이수과목제도라고 해 고등학교 때 어려운 내용을 배우면 대학에서 학점을 이수한 것으로 인정해주는 제도까지 있다. 대학에 가서나 배울 내용을 고등학교에서 배워오라더니, 이제는 교과서 내용까지 포함시킨 것이다. 말로는 사교육비를 줄인다고 하지만, 내용을 보면 사교육비가 줄기는커녕 더 늘어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물론 수학에 어려움을 느끼는 학생들을 위해 기초수학이라는 교과를 마련해줬다. 명목상으로 기초수학은 중학교 수준의 내용이라 고등학교 수학이 어려우면 이 내용을 배우고 다음 단계로 넘어가면 된다. 문제는 고등학교 3년 동안 일반과목 6개를 배우는 데도 시간이 부족한데, 기본 과목을 배우고 일반과목 - 심화과목으로 나가는 건 근본적으로 불가능하다는 데 있다. 즉 기본과목을 선택한 순간 학생 사이에 길이 정해지고, 이것이 대학 진학을 가늠하는 기준이 된다는 것이다.

이렇게 수학 내용을 어렵게 만들어놓고 수준에 따라 선택하라고 하면 학교의 수준별 수업은 사교육 정도를 가늠하는 척도와 다르지 않게 된다. 또한, 학생들의 선택은 결국 부모의 경제력 수준에 따라 달라질 가능성이 크다. 결국, 교사가 보기에 이 교육과정은 상위 1%나 따라올만한 내용이라는 것이다.

일단 수업시간에 쓸 자부터 주세요

교사와 학생은 수학이 너무 어렵다고 한다. 초등학생 자녀를 둔 학부모들도 교과서에 나온 내용을 이해할 수 없고, 집에서 가르치기도 어렵단다. 때문에 교과부는 학생용 CD에 답을 달아놨다. 급기야 교육과정 교과서서비스에는 전 학년 답안지 파일을 올려 놓을 지경에 이르렀다. 교과부 발표를 보니 수학 사교육비만 더 증가하고 있다. 어떤 고등학교에서는 수학 서술형 평가를 봤는데 0점 맞은 학생이 50%가 넘었다고 한다. 교사들은 수학이 1%를 위한 교과로 전락하고 있다고 걱정한다.

이런 상황에서 교과부는 왜 '선택'과 '수준별'이라는 미명 아래 수학 교육과정 내용을 더 어렵게 만들고, 평가도 힘들게 바꿨을까. 말로는 창의성을 기른다고 하지만, 어디 창의성이 돈으로 길러지고 시간을 많이 투자한다고 해서 느는 것일까. 이렇게 문제 투성이의 수학 교육내용을 개선하다면서 교과부는 공청회를 비공개로 열고 있다. (관련기사 : 사교육 받아도 어려운 수학, 공청회까지 비밀로?)

6학년 1학기 71쪽. 딱풀을 재는 활동입니다. 사진속의 자의 눈금은 한 자리수인데 버젓이 9.42이고 지름이 3이니 원주율 3.14가 나옵니다. 교과서나 실생활에서나 학생들에게 소수점 두자리를 잴 수 있는 자는 없습니다. 문제는 사교육을 한 학생들은 버젓이 머릿속으로 계산한 숫자를 읽고, 모르는 학생들은 대충 읽는다는 것입니다.
 6학년 1학기 71쪽. 딱풀을 재는 활동입니다. 사진속의 자의 눈금은 한 자리수인데 버젓이 9.42이고 지름이 3이니 원주율 3.14가 나옵니다. 교과서나 실생활에서나 학생들에게 소수점 두자리를 잴 수 있는 자는 없습니다. 문제는 사교육을 한 학생들은 버젓이 머릿속으로 계산한 숫자를 읽고, 모르는 학생들은 대충 읽는다는 것입니다.
ⓒ 교과부

관련사진보기


교과부는 거창한 말을 앞세우기보다 지금 발생하고 있는 문제 하나라도 제대로 해결해야 할 것이다. <교과서를 믿지 마라>에는 지금 발생하고 있는 문제가 적나라하게 담겨 있다.

'초등학교 3학년을 가르치는 교사들은 원을 그릴 수 있는 컴퍼스가 없어서 수업을 제대로 못했다.'

'초등학교 6학년 과정에는 자로 딱풀의 원주와 지름을 재라는 내용이 있다. 하지만 교사들은 소수점 둘째 자리까지 잴 수 있는 자가 없어 대충 눈대중으로 원주를 잰다. 하지만 학원에서 미리 배워 온 학생들은 문제를 척척 풀었다. 교사들은 당황했다.'

이런 상황에서 학생들이 수학에 대한 호기심이나 수학적 감각을 기를 수 있을까. 교과부는 99%의 학생들이 따라가지 못할 교육과정을 제시할 게 아니라 수학 교육의 기초부터 다시 고민해야 할 것이다.

덧붙이는 글 | 다음 기사에서는 사회 교과를 중심으로 무리하게 내용을 줄이느라 교육내용 체계가 이상해지고 경제계의 입장만 반영된 경우를 알아보겠습니다.



태그:#2011개정수학교육과정, #2009개정교육과정, #수학교구
댓글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5,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