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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를 사랑합니다>의 한 장면
 <그대를 사랑합니다>의 한 장면
ⓒ N.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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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 연휴에 먹고 남은 뻣뻣하게 굳은 잡채를, 식용유를 듬뿍 두르고 달군 프라이팬에 집어넣었더니 기름이 튀고 난리다. 그 끓던 기름 몇 방울이 내 팔뚝으로 떨어졌다. 세상에 이리도 뜨거울 수가. 후다닥 프라이팬을 바닥에 내던지고 연고를 찾아 바르고 밴드로 꽁꽁 동여맸지만 참을 수 없을 만큼 화끈거리더니 나중엔 머리까지 지끈거린다.

기름은 물보다 더 높은 온도에서 끓는다더니 그래서 이렇게 뜨거운가 보다. 이런 끓는 기름을 사타구니에 부었으니 옛날의 그 남자 무지 뜨거웠겠다. 오래전 얘기다. 신문 어디엔가 나고 방송도 타고. 많은 분들의 기억 속에 아직도 남아 있을 그 사건. 여자에 빠진 남편이 매일 밤 외박을 밥 먹듯이 하고 새벽에나 집에 들어와 하루 종일 자는 게 미웠던 부인. 얼마나 미웠으면 곯아떨어져 자고 있는 남편의 사타구니에다 끓는 기름을 부어서 중상을 입힌 사건이다. 기름을 뒤집어 쓴 그 남자는 다행히도 목숨은 건졌으나 아랫도리는 평생 제 구실을 못하게 됐다는 결말까지도 함께 기사에 나왔던 것으로 기억한다.

프라이팬에 얽힌 사건 또 하나 있다. 당시 신문에도 난 사건으로 내가 아는 선배가 해준 얘기다. 노무현 대통령 임기 마지막 해였던 것 같다. 오후 8시 쯤, 부천의 한 병원응급실. 70대 초반 정도 되어 보이는 노인 두 분이 119 구급차를 타고 응급실로 들어섰다. 머리에 피를 흘린 채 의식을 잃은 할아버지와 얼굴이 하얗게 질려 부들부들 떨고 있는 할머니. 행여 뇌진탕은 아닌가 하여 병원에서는 온갖 검사를 다 해보았지만 할아버지는 잠시 그냥 의식을 잃은 것뿐 오래지 않아 깨어났다.

한편 검사받는 내내, 병원 한구석에 쭈그리고 앉아 하얗게 질린 얼굴을 좌우로 계속 흔들며 "제가 영감을 죽였습니다"하고 중얼거리는 할머니를 본 응급실 의사들. 다친 할아버지보다도 할머니가 더 심각해 보여 간신히 진정시키고, 사연도 듣고, 정신과 상담과 치료도 받게 해 귀가를 시켰단다. 할머니가 할아버지의 머리를 프라이팬으로 내려친 이 사건의 전말을 알게 된 의사들. 하나같이 할아버지를 이 지경으로 만들어 놓은 할머니를 동정했다고 한다. 남편 머리를 프라이팬으로 치고도 동정을 받았던 그 할머니의 사연은 이랬다.

수십 년 동안 바람 피운 할아버지... 의사들 "맞을 만하셨네요"

<그대를 사랑합니다>의 한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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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초반에 결혼해 아들딸 5남매를 낳아 시집 장가 보내고 이제껏 잘(?) 살아온 두 살 터울의 부부였던 그들. 하지만 결혼한 해부터 바로 몇년 전까지 평생토록 그놈의 바람기는 늙지도 않는지 일 년이 멀다하고 할아버지는 여자를 바꿔가며 바람을 피워 할머니 속을 태웠다. 밖에 나가 '정식으로' 살림 차리기가 수십 번.

이런 한량 할아버지와는 달리, 매우 소극적인 성격으로 아무리 속이 상해도 속으로만 삭히고 심지어 자식들에게조차 내색 못하고 끙끙 냉가슴만 앓고 살아왔던 할머니. 환갑을 훨씬 넘긴 몇 년 전, 나이가 들어 힘이 부치는지 뒤늦게 할아버지가 집으로 영구 귀환(?)을 하셨단다.

그 후로 그 사건이 있던 날까지도 할머니는 하루 세끼 꼬박꼬박 할아버지에게 밥 해 바치며 그 뒤치다꺼리를 계속 해왔다. 사건 당일. 그날도 늘 하던 대로 따끈한 저녁밥을 차려 먹고는 막 설거지를 시작한 할머니. 그때 TV를 보던 할아버지가 갑자기 일어나 일하는 할머니 곁으로 와서는 "과일 먹자"고 했던 모양이다. 그 소리를 듣자마자 세제를 잔뜩 묻혀 프라이팬을 닦고 있던 할머니가 세제 묻은 그 프라이팬으로 할아버지 머리를 내리쳤던 것이다. 프라이팬에 머리를 맞은 할아버지는 그대로 주저앉아 정신을 잃었다.

머리에 피를 흘린 채 꼼짝도 하지 않는 할아버지를 본 할머니는 당신이 남편을 죽인 것으로 착각하고 119로 전화를 걸고는 부들부들 떨면서 "내가 영감을 죽였습니다"하고 신고를 해 응급실까지 가게 됐다는 사건이다. 평생을 바람둥이 남편과 살면서도 말 한마디 못하고, 여자의 삶이 이런 것이려니 하며 싫은 내색 한 번 하지 못했던 할머니. 아마도 그녀 가슴 속 한가운데 시베리아의 칼바람이 드나들 만큼의 큰 구멍이 뻥 뚫려있었을 것이다. 살면서 쌓아온 모든 한이 그날 그 순간에 모두 폭발해버린 것이고. 사정을 다 듣고 난 응급실 의사들. 하나같이 하는 말이 걸작이다.

"할머니, 때릴 만하셨네. 할아버지는 맞을 만하셨고."

행복한 노후 위해 필요한 '부부 애정 보험'

여자의 한은 이토록이나 무섭다. 오죽했으면 오뉴월에도 서리가 내린다하지 않던가. 자동차를 위해서는 차 보험이 있고, 노후를 위해서는 연금보험이 있다. 사람들은 미래에 닥칠지도 모르는 알 수 없는 재난이나 질병을 대비하여 보험을 든다. TV만 틀면 유명 연예인들이 앞 다투어 선전하는 보험들도 가지가지 여러 종류가 많던데 이참에 하나 더 보태자. 늘그막에 닥칠지도 모르는 부부 애정 재난에 대비하여 '부부 애정 보험'은 어떨까.

생명공학의 발달 때문인지, 빨라진 정년퇴임 때문인지, 앞으로는 퇴임 후에도 40년 이상을 부부가 같이 살아야 할지도 모른다. 새해 들어서 최대 관심 화두인 노후대책. 그거 뭐 별 거 있겠는가. 젊었을 때 너무 자식 교육에만 '올인'하지 않고, 넘치는 힘 괜히 허세부리고 쓸데없는 곳에 낭비하지 않고, 평생 옆에서 죽을 때까지 확실한 리턴을 해줄 사람에게만 투자하면 되겠지. 그때를 대비해 들어두는 보험이라 생각하고 지금부터라도 내 곁에 있는 평생 동반자를 알뜰살뜰 보살피는 안전한 투자나 해야겠다.

그동안 한마디 불평도 하지 않고 큰 문제를 일으킬 것 같지도 않은 조용하고 내성적인 사람. 그런 사람이 가슴속에 쌓이고 쌓인 화를 폭발하게 되면 더욱 위험하단다. 적어도 내 남편, 혹은 내 부인 손에, 무거운 프라이팬이 거꾸로 들려지는 일은 막아야 하지 않겠는가. 행복한 삶을 위해 가장 먼저 들어야 하는 보험은 바로 내 곁에 있는 반려자를 배려하고 위하는 '사랑의 보험'이다.


태그:#노후대책, #노인연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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