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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문 3단으로 된 기단을 쌓고 그 위에 대문을 사이로 사랑채와 행랑채를 지었다
▲ 대문 3단으로 된 기단을 쌓고 그 위에 대문을 사이로 사랑채와 행랑채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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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화성시 서신면 궁평리 오얏리길 56에는, 중요민속문화재 제125호인 화성 정용래 가옥이 자리하고 있다. 이 가옥은 참 나하고는 운 때가 맞지 않는 집이란 생각이다. 벌써 4번 째 찾아간 곳이지만, 한 번도 제대로 집안을 돌아보질 못했다. 두 번은 보수공사 중이라 사진을 찍지 못하고 돌아섰고, 두 번은 굳게 잠겨 있었기 때문이다.   

1800년대 말에 지은 초가집인 정용래 가옥은, 'ㄱ'자형 안채와 대문을 사이에 둔 '一'자형 사랑채, 행랑채가 모여 경기도의 전형적인 튼 'ㅁ'자형의 평면구조를 보이고 있다. 대문을 들어서면 바로 안마당이며, 대문을 들어서면서 왼쪽에 사랑채가 있고 오른쪽에 행랑채가 자리 잡고 있다.

사랑채 두칸 사랑채는 앞에 툇마루를 놓았다.
▲ 사랑채 두칸 사랑채는 앞에 툇마루를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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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랑채 대문을 들어서면서 그 옆으로 행랑채를 꾸몄다
▲ 행랑채 대문을 들어서면서 그 옆으로 행랑채를 꾸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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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월 초하루에 찾아간 집

설날에는 그래도 서해안으로 사람들이 많이 몰려오는 날이니, 이 집도 개방을 하였을 것 같아 화성 서신으로 달려갔다. 오이도와 대부도, 선재도를 돌아 찾아간 집은, 대문이 잠겨있다. 할 수 없이 집 주변을 돌면서 촬영을 하는 수밖에. 누군가 이 집의 일가가 되는 분인 듯 어디서 왔느냐고 묻는다. 신문사에서 왔다고 하니, 좋은 일로 사진을 찍느냐고 묻는다.

요즈음 답사를 다니다가 보면 이런 질문을 상당히 많이 받게 된다. 그만큼 답사를 하는 사람들이 늘었다는 것은 좋은데, 무분별하게 나쁜 것만 찾아내 소개를 한다는 것이다. 물론 제대로 관리를 한다면 그런 것을 염두에 둘 필요는 없겠지만, 관리를 하는 사람들 입장에서는 별로 달갑지 않은 손들이란 생각이다.

툇마루 누마루로 깐 툇마루. 초가의 마루답지 않게 놓은 것으로 보아 당시로서는 잘 지은 집이다.
▲ 툇마루 누마루로 깐 툇마루. 초가의 마루답지 않게 놓은 것으로 보아 당시로서는 잘 지은 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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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물 곳간채 뒤편으로는 우물이 있다
▲ 우물 곳간채 뒤편으로는 우물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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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용래 가옥 뒤편 낮은 언덕 뒤에는 고래등 같은 기와집이 자리하고 있다. 바로 중요민속문화재 제124호인 정용채 가옥이다. 전형적인 지방 토호의 집인 정용채 가옥과 이 초가집은 같은 문중의 집으로, 화성시의 자랑거리인 문화재 중 하나이기도 하다.

부유한 농민의 집인 정용래 가옥

지난해, 이 집을 찾았을 때는 보수공사 중이었다. 담장은 물론 집안 전체를 보수하는 중이라 그냥 돌아설 수밖에. 정용래 가옥은 대문을 들어서면 바로 안마당이다. 안채는 사랑채가 마주보이는 곳에 대청과 건넌방을 두고, 꺾이는 왼쪽 아래로 찻방, 안방, 부엌을 두었다. 대청의 뒷벽에는 왼쪽으로 뒤창을 내고 오른쪽으로 벽장을 만들어서 조상들의 위패를 모신 사당으로 사용하고 있다.

안채 안채의 측면. 대문이 잠겨잇어 담 밖으로만 돌았다. 뒤편으로 다락처럼 돌출을 시켜 사당을 꾸몄다
▲ 안채 안채의 측면. 대문이 잠겨잇어 담 밖으로만 돌았다. 뒤편으로 다락처럼 돌출을 시켜 사당을 꾸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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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마당 사랑채와 안채 사이가 바로 안마당이다. 이 집은 대문을 열고 들어서면 바로 안마당이 된다
▲ 안마당 사랑채와 안채 사이가 바로 안마당이다. 이 집은 대문을 열고 들어서면 바로 안마당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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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사당을 따로 두지 않는 민가에서 통상 쓰는 수법이다. 바깥마당은 사랑방 앞으로 터져 있으며 왼편에 헛간채가 있다. 사랑채는 집 앞으로 보이는 들판을 볼 수 있도록 밖으로 개방이 되어있다. 전체적으로 이 집은 민가의 격식과 쓰임새를 갖추었던 부유한 농민의 집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실제로 이 일대는 초계 정씨들의 집성촌으로 지역에서 상당한 부를 축적한 일가였다고 한다. 지금도 이 일대에는 초계 정씨들이 상당수가 기거를 하고 있단다. 대문을 사이에 두고 양편으로 나뉘어져 있는 사랑채와 행랑채. 집 앞쪽으로는 각각 툇마루를 두어, 밖을 볼 수 있도록 하였다. 사랑채와 대문은 3단의 단을 쌓고 그 위에 집을 올렸다.

안채의 뒤편 안으로 들어갈 수가 없어 담 밖에서 본 모습이다. 안채의 부엌과 안방, 그리고 찻방의 뒤편이다
▲ 안채의 뒤편 안으로 들어갈 수가 없어 담 밖에서 본 모습이다. 안채의 부엌과 안방, 그리고 찻방의 뒤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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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채 안마당을 지나면 ㄱ 자형의 안채가 있다. 안마당 안으로 대청과 마루를 높인 건넌방이 보인다,
▲ 안채 안마당을 지나면 ㄱ 자형의 안채가 있다. 안마당 안으로 대청과 마루를 높인 건넌방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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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티나무 정용래 가옥의 앞에 자리하고 있는 수령 380년 정도의 느티나무
▲ 느티나무 정용래 가옥의 앞에 자리하고 있는 수령 380년 정도의 느티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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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주위로 한 바퀴 돌면서 집안을 살펴본다. 아직은 정비가 마무리 되지 않은 듯하다. 요즈음 고택의 보수를 하면서 조금은 원형에서 벗어나고 있는 모습들을 보면서, 문화재의 보존을 위한 보수에 대해 언젠가는 꼼꼼히 짚어봐야 겠다는 생각을 한다.

집 앞에 수령 380년 정도의 커다란 느티나무 한 그루가 서 있어, 여름이면 그 또한 장관일 듯한 화성 정용래가옥. 그래서 문화재답사란 사시사철 변화하는 모습을 보아야 한다는 생각을 한다. 이 곳 역시 기억을 해두었다가 다시 한 번 찾아야겠다. 그 때는 집안을 옳게 돌아볼 수 있으려는지.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수원인터넷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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