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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두 전 민주당 수석부대변인은 전남 구례에서 태어나 인근 곡성에서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다녔다. 작은 개울을 사이에 두고 행정구역이 곡성과 구례로 나뉘는 섬진강변의 작은 마을에서 자란 탓에 출생지와 출신학교의 군(郡)이 서로 달랐다. 김씨는 대학에 진학해서는 5·18진상규명투쟁위원장을 맡아 5·18광주민중항쟁을 세상에 제대로 알리는 데 힘썼다. 정치에 뜻을 둔 것도 이때부터였다.

김씨는 새정치국민회의 사무처 공채로 정당판에 들어와 지난 18년간 원내총무(현 원내대표)실과 대변인실 등 원내전략 분야에서 잔뼈가 굵었다. 한화갑 원내총무 시절에 '방탄국회'라는 신조어를 만들어낸 장본인이다. 김대중 총재의 집권으로 여당이 되었지만 다수당인 한나라당이 국회의원 회기중 불체포특권을 악용해 IMF 환란 책임자와 '세풍' 사건 주모자들을 보호하기 위해 '개점휴업' 상태로 국회를 열어놓은 상황을 빗댄 표현이었다.

김씨는 지난해 7월 김효석 의원(3선, 담양·곡성·구례)이 기득권 포기 및 후진 양성을 위해 호남 불출마를 선언하자 고향에 내려가 국회의원 출마를 준비해오다가 일찌감치 민주통합당(이하 민주당) 총선 예비후보 등록도 했다. 고향 사람들과 자신의 국회 및 청와대 행정관 시절의 이야기를 담은 <김재두의 섬진강 연가>라는 책의 출판기념회도 고향에서 열고 얼굴을 알렸다.

'정치 대목'에 시골 선거구에서 '역귀성'한 예비후보

19대 총선에서 전남 담양·곡성·구례 출마를 선언한 김재두 민주통합당 국회의원 예비후보가 18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민주통합당사에서 국회 정치개혁특위 민주통합당안(농촌지역 4개 선거구 감축)에 반대하며 단식농성을 벌이고 있다.
 19대 총선에서 전남 담양·곡성·구례 출마를 선언한 김재두 민주통합당 국회의원 예비후보가 18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민주통합당사에서 국회 정치개혁특위 민주통합당안(농촌지역 4개 선거구 감축)에 반대하며 단식농성을 벌이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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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설 귀성객들로 '정치 대목'을 맞이한 고향에서 개발에 땀이 나도록 뛰어도 시원찮은 그가 17일 서울로 '역귀성'을 해 국회 정론관에서 어렵게 마이크를 잡았다. 기자회견의 요지는 국회의원선거구획정위의 획정안을 존중해 달라는 거였다. 그 길로 그는 민주당 당사에서 '농촌 지역 선거구 사수'를 위한 단식농성에 돌입했다.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 아니 정확히 말하면 민주당 측 정개특위에서 해괴한 일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우선, 현행 국회의원선거구 획정절차를 보면, 국회의장은 원내교섭단체 대표와 협의해 민간인들로 선거구획정위원회를 구성토록 돼 있다(공직선거법 제24조 2항과 국회의원 선거구획정위원회 구성·운영 규칙). 이에 따라 법정기구인 선거구획정위가 획정위보고서(선거구획정안)를 국회의장에게 제출하면 국회 정개특회가 획정안을 존중해 최종안(공직선거법 개정안)을 확정한다.

국회에 여러 특별위원회가 있지만 예결특위와 함께 정개특위가 가장 중요한 까닭은 선거라는 '게임의 룰'을 정하기 때문이다. 선거구 획정은 선거라는 '게임'에서도 가장 기초적인 '룰'을 정하는 것이다. 그래서 정당의 의석수에 비례해 선임하는 상임위와 달리 정개특위는 여야 동수의 위원들로 구성된다. '게임의 룰'을 정하는 위원회의 특성상 '만장일치'를 꾀하기 위해서다.

국회는 지난 94년 공직선거 및 선거부정방지법을 제정해 제15대 국회부터 현 18대 국회의원 선거까지 네 차례 선거구획정위를 구성한 바 있다. 공직선거법에서 국회의장이 각 교섭단체 대표들과 협의해 정치인을 배제한 민간위원들로 선거구획정위를 구성토록 한 배경은 정치적 이해관계 당사자인 현역의원들의 '게리 멘더링'(특정 정당이나 특정인에게 유리하도록 선거구를 획정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국회의장(3명)과 한나라당(4명) 및 민주당(4명) 추천 위원들로 구성된 이번 제19대 국회의원 선거구획정위(위원장 천기흥)는 지난해 9월부터 11월 하순까지 공청회와 수 차례 회의 끝에 획정위보고서(선거구획정안)를 11월 25일 국회의장에게 제출했다. 획정위안의 골자는 헌법재판소의 결정기준에 따라 전 지역선거구(248개)의 인구편차가 전국선거구 평균인구(20만4434명)의 ±50% 이내가 되도록 조정한 것이다.

민주당 정개특위에서 벌어지는 '해괴한 꼼수'

지난 11월 25일 국회의사당에서 천기흥(전 대한변협 회장) 제19대 국회의원선거구획정위원장이 선거구획정위안(보고서)을 박희태 국회의장에게 전달하고 있다.
 지난 11월 25일 국회의사당에서 천기흥(전 대한변협 회장) 제19대 국회의원선거구획정위원장이 선거구획정위안(보고서)을 박희태 국회의장에게 전달하고 있다.
ⓒ 김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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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따라 획정위는 인구상한선(31만406명)을 넘는 경기도 파주시 등 7개 선거구와 하한선(10만3469명)을 넘는 1개 선거구(부산 기장군)를 분구하고, 상한선에 미달하는 여수시 갑을 등 5개 지역 선거구를 통폐합해 지역구를 3석 늘렸다. 구체적으로 ▲ 경기도 여주·이천 ▲ 수원 권선구 ▲ 용인 기흥 ▲ 용인 수지 ▲ 파주 ▲ 강원도 원주 등을 분구하고, 현재 2개 선거구로 나뉜 ▲ 부산 해운대·기장 ▲ 충남 천안을 3개로 분할했다. 대신 3개 선거구로 나뉜 ▲ 서울 노원 ▲ 대구 달서는 2개 선거구로, 2개 선거구인 ▲ 서울 성동 ▲ 부산 남구 ▲ 전남 여수는 1개로 통합했다.

광역시도별 증감현황(괄호안은 현재 의석수)을 보면, 경기(51석)는 5석 증가하고 서울(48석)은 2석이 줄었다. 또 강원(8석)과 충남(10석)은 1석씩 늘어난 반면에 대구(12석)와 전남(12석)에선 1석씩 줄었다. 선거구 증가가 경기도에 집중된 것은 인구증가 때문이다. 지난해 10월말 기준으로 전국 16개 시도 중에 부산·전남만 인구가 감소하고 나머지 14개 시도는 증가했는데, 특히 경기는 80만1천 명이나 늘었다.

이에 비해 서울 성동구는 재개발 요인 때문에 인구가 일시적으로 감소하는 바람에 정작 선거가 있는 4월에는 인구가 원상회복될 것으로 예상되지만 현행 인구기준으로 통합이 불가피했다. 16개 시도 중에서 인구 감소폭이 가장 큰 부산(18석)은 남구가 2석에서 1석으로 줄었지만 기장이 독립선거구로 분구되면서 전체 의석은 유지했다. 이에 비해 전남은 정부 정책에 의해 3개 시군(여수시·여천시·여천군)이 도농통합을 한 여수시가 인구 감소로 2석에서 1석으로 줄어듦에 따라 전체 의석이 1석 줄었다.

18대 국회의원 선거구획정 기준일인 2007년에 비해 인구가 2.9% 가량 증가한 요인(9석 증가)을 감안하면 획정위안(지역구 3석 확대)은 인구증가 기준에 미치지 못하는 '소폭'이다. 그러나 국민 정서는 의원 정수 확대에 부정적이다. 따라서 국회가 획정위안을 수용하되 현행 의원정수(299명)를 고수할 경우 비례대표에서 3석이 줄게 될 가능성이 컸다. 그런데 민주당 정개특위에서 해괴한 일이 벌어졌다.

민주당은 지난달 정개특위를 열어 헌재의 결정기준(선거구 평균인구수의 ±50%)을 무시하고 최대(31만8천명 이하) 및 최소(10만6천명 이상) 선거구의 인구편차를 3:1로 조정해, 상한선을 넘는 ▲ 파주 ▲ 용인 기흥 ▲ 원주를 분구하고 ▲ 세종시 선거구를 신설하는 대신에 하한선에 미달하는 ▲ 경남 남해·하동 ▲ 경북 영천 ▲ 경북 상주 ▲ 전남 담양·곡성·구례를 감축해버렸다. 구체적으로 남해·하동은 사천시와, 영천시는 군위·의성·청송군과, 상주시는 문경시·예천군과 통합하고 담양·곡성·구례는 공중분해해 주변 지역구에 통폐합(구례·광양, 담양·함평·영광·장성, 곡성·순천)하는 것이다.

'제 코가 석자'인 한나라당, 자체 획정안도 못만들어

주성영 한나라당 의원
 주성영 한나라당 의원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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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분은 "국회의원 정수는 가급적 현행대로 유지한다"는 거였다. 그러나 당초 민주당 측이 획정위안의 문제점을 지적하며 내세운 논리는 "농어촌 및 비수도권의 지역 대표성 확보 배려를 위해 도시지역 분구를 최소화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민주당 측 획정안은 농어촌 선거구 4곳만 감축하는 것이다. 자가당착이자 이율배반이다.

특히 여수시(갑·을) 선거구를 유지하기 위해 김효석 의원의 불출마로 '무주공산'인 담양·곡성·구례를 '갈기갈기' 찢어발겨 주변에 붙인 것은 행정구역과 교통 접근성 등을 무시한 전형적인 '게리 멘더링'이다. 또한 인구하한선이 넘는 여주군(10만9천 명)을 이천시와 묶어두는 것은 위헌 소지가 크다.

여야 동수인 정개특위는 여당과 야당이 각자의 획정안을 만들어와 협상을 벌인다. 그런데 담양·곡성·구례를 제외한 감축 대상 선거구가 모두 한나라당 지역구라는 점에서 민주당 측 획정안을 한나라당이 받아들일 가능성은 별로 없어 보인다. 문제는 디도스 공격과 '돈봉투' 사건의 여파로 '제 코가 석자'인 한나라당 측이 아직 자당의 획정안조차 만들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런 연유로 선거를 80여 일 앞두고도 국회의원 선거구가 확정되지 않자 이천·여주 선거구에 예비후보로 등록한 엄태준(통합진보당)씨는 18일 "국회는 서둘러 획정위원회의 보고서를 검토하고 이에 명백한 위법사항이 없으면 선거구획정위의 보고서 내용에 따라 선거구를 획정해야 한다"면서 선거구 미획정행위에 대해 헌법소원을 청구했다. 국회의 선거구획정이 늦어지면서 분구나 합구 대상 지역구에 출마한 후보와 유권자들이 각각 공무담임권과 선거권을 침해받고 있다는 청구 취지다.

실제로 한나라당은 선거구획정위가 보고서를 제출한 지 두 달이 지났지만 정개특위 이해 당사자 및 간사 교체 등 이런저런 이유로 허송세월하고 있다. 한나라당 정개특위는 17일 간사를 김기현 의원에서 주성영 의원으로 바꿨다. 김 의원은 이에 앞서 11일 자진 사퇴했다. '사퇴의 변'은 획정위안에 부산 기장군을 신설하게 돼 있는데 지역구(울산 남구을)가 기장군 옆이라서 자신도 '이해 당사자'라는 거였다.

이에 앞서 박근혜 한나라당 비대위원장은 "지역구 획정의 이해 당사자들이 특위 간사와 위원을 맡고 있어 논의가 부진하다"며 김정훈 간사를 김기현 의원으로 바꿨다. 부산 남구는 인구상한선 미달로 갑·을 선거구에서 1개 선거구로 통합대상이다. 선거구 획정 문제로 2주 사이에 여당 정개특위 간사가 두 차례나 바뀐 셈이다. 그러나 대구 지역신문과 인터뷰에서 밝힌 주성영 간사의 취임일성도 선거구획정위의 대구 달서구 선거구 감축안(3개→2개)은 불합리하다는 것이었다.

결국 한나라당은 선거구획정위안을 받아들이지도, 다른 대안을 만들지도 못하면서 '갈팡질팡'하고, 민주당은 특정지역구를 챙기느라 현역의원이 없는 선거구를 '갈기갈기' 찢어발기는 '꼼수'를 부리면서 선거구획정위안을 무력화시키고 있다. 국회 정개특위는 설 연휴 이후 26일과 30일 공직선거법 개정소위를 거쳐 31일 정개특위 전체회의에서 선거구획정안을 최종 확정한다는 계획이지만 어떤 안을 확정하더라도 비난을 면키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태그:#디도스 공격, #돈봉투, #박근혜, #주성영, #선거구획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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