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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에서 무죄 확정 판결을 받은 정연주 전 KBS 사장이 13일 오전 <오마이뉴스> 팟캐스트 방송 '이털남 김종배입니다'에 출연해 '정연주와 터는 MB방송'을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대법원에서 무죄 확정 판결을 받은 정연주 전 KBS 사장이 13일 오전 <오마이뉴스> 팟캐스트 방송 '이털남 김종배입니다'에 출연해 '정연주와 터는 MB방송'을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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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12일 아침, 올 겨울 들어 가장 춥다는 일기예보를 들으면서 집을 나섰다. 오전 10시 대법원 1호 법정에서 나의 배임죄에 대한 대법원 최종 판결이 있을 예정이었다. 2008년 8월 19일, 죄명도 무시무시한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위반(배임)'으로 기소되었으니 어느덧 3년 5개월의 세월이 흘렀다.

"법조인 40년 생활에 이런 판결문은 처음"

나는 1심(2009. 8. 18.)과 2심(2010. 10. 28.)에서 모두 무죄 판결을 받았다. 단순한 무죄 판결이 아니었다. 검찰의 주장이 하나도 받아들여지지 않은 완벽한 무죄 판결이었다. 박정희 군부독재시절부터 오랜 기간 인권 변호사로 활동해 왔으며, 민변(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의 주춧돌 노릇을 한, 그리고 우리 법조계의 큰 어른인 조준희 변호사는 나의 1심 판결 뒤 그런 이야기를 했다.

"법조인 생활 40년 넘게 하면서 형사사건에서 검찰의 공소 사실을 이렇게 낱낱이 자세하게 반박한 판결문은 처음 본다. 이 판결문은 검찰의 터무니없는 공소 내용을 하나하나 기소하면서 심판한 것과 다름이 없다."

1심 판결문은 본문 76쪽을 포함하여 모두 165쪽에 이르는 방대한 것이다. 그렇게 터무니없고, 황당한 사건이었는데도, 검찰은 대법원에 상고했다. 검찰에게 남아도는 것은 시간과 인력인 모양이다. 모두가 국민의 세금인데, 검찰은 정치적 목적을 위해서는 그런 것에 전혀 개의치 않았다.

그러니 터무니없고 황당한 사건을 수사하고, 기소하고, 재판에서 져도 항소하고, 상고하고, 그랬다. 그냥 국민의 세금을 쏟아부으면서 정치적 표적을 향해 무자비한 가해를 멈추지 않는다. 그러고도 아무런 불이익을 받지 않는다. 아니, 오히려 승승장구한다.

정치 검찰은 표적으로 삼은 사건의 피고들에게는 그렇게 혹독하면서도 살아 있는 권력과 관련된 인물들에게는 친절한 아량을 베푼다. 수사도 하는 둥 마는 둥, 재판도 대충 대충이다. 나의 사건에 대한 대법원 확정 판결이 있기 얼마 전 그런 일이 있었다.

이명박 대통령 후보의 후원회장을 지낸 천신일 세중나모여행 회장에 대한 알선수재 사건에서 검찰은 상고를 포기했다. 천 회장에게 항소심에서 일부 무죄가 선고되면서 형량이 줄어들었는데도 검찰은 상고를 포기했다. 보통 같으면 검찰은 당연히 불복하고 상고했을 터다. 특히 정치적 표적이 그런 판결을 받았다면 검찰이 가만 있을 리 없다.

그런데 천 회장 사건 경우 검찰은 참으로 '너그러웠다'. 대통령의 친구, 대통령의 후원회장이 특별사면 대상이 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특혜'라는 비판까지 있었다. 정치적 표적을 향한 표독스러운 가해와는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나는 왜 3년 5개월 동안 이 거리를 오고 갔는가

정연주 전 KBS 사장이 대법원에서 '무죄' 확정 판결을 받은 가운데, 13일 오전 국회 법사위에 출석한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은 "법률적으로, 행정적으로 어떤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인지 모르겠다"며 사퇴할 의사가 없음을 밝혔다.
 정연주 전 KBS 사장이 대법원에서 '무죄' 확정 판결을 받은 가운데, 13일 오전 국회 법사위에 출석한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은 "법률적으로, 행정적으로 어떤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인지 모르겠다"며 사퇴할 의사가 없음을 밝혔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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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을 타고 서초동으로 향하고 있는데, 어느 기자에게서 전화가 왔다. 오늘 대법정에 직접 나올 거냐고 묻는다. 지금 그리로 가고 있다고 답했다. 재판이 끝나면 기자들이 올 모양이었다.

서초역에서 내려 대법원 쪽으로 걸어갔다. 일기예보대로 날씨는 매웠다. 주변을 둘러본다. 대법원 건너편으로 검찰 건물이 보이고, 그 너머로 1심, 2심 재판을 받았던 법원 건물이 보인다. 이 거리를 3년 5개월 동안 오고 갔다.

봄엔 개나리 진달래가 지천으로 피었고, 여름이면 푸른 잎새들이 넘치는 생명을 뿜어댔다. 그 잎새에 노랑 빨강 물이 드는가 싶다가, 어느새 겨울이 다가오면 자신을 텅 비운 나무들은 묵언수행 하는 수행자처럼 서 있었다. 그렇게 계절을 몇 번씩이나 바꾸면서 나는 서초동 거리를 오갔다.

나는 무슨 죄를 지었는가. 무슨 죄를 지었기에 이렇게 긴 세월 동안 이 거리를 떠돌고 있는가.

대법원 1호 법정으로 향했다. 들어가는 입구의 몸 검색이 1, 2심 법정 때보다 더 엄격하다. 호주머니 물건을 다 끄집어내고, 금속탐지기로 몸 전체를 수색한다. 1호 법정 앞에는 많은 사람들이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저 사람들 가운데는 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억울한 심정으로 마지막 판결을 기다리고 있을까.

"검찰의 상고를 기각한다"... 열 글자에 담긴 3년 5개월

1호 법정 입구 게시판에는 그날 있을 대법원 판결 사건 목록이 붙어 있다. 내 사건을 찾아보니 저 뒤에 있었다. 대충 보아도 이날 오전 선고할 사건이 수백 건 되어 보인다.

세 분의 대법관이 법정에 들어섰다. 돌아가면서 자신이 주심을 맡았던 사건에 대해 선고를 한다. 거의 대부분 판결이 '상고 기각'이다. 간혹 "원심 중 어느 부분을 파기하고 원심으로 환송한다"는 판결이 나왔다. 내 사건 차례가 왔다.

"검찰의 상고를 기각한다."

딱 열 글자였다. 그 열 글자의 마지막 판결을 듣기 위해 3년 5개월의 세월을 보냈다. 그 세월 속에는 정치 검찰의 잔혹한 올가미뿐 아니라 그들과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나의 인격을 살해한 수구언론의 가해도 함께 있었다.

그들은 재판이 시작하기 전에는 정치 검찰이 던져주는 '피의사실'을 대문짝만 하게 실으면서 나를 중죄인으로 기정사실화했다. 그러나 정작 1심, 2심에서 무죄 판결이 나고, 대법원에서 무죄 확정 판결이 나왔어도, 그들은 아예 무시하거나 구석에 아주 짧게 보도했다. 이게 무슨 언론인가.

그 세월 동안 나는 온몸으로 절감했다. 검찰과 언론을 제자리에 가져다놓지 않고는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사회는 불가능하다는 점을.

10일 오후 서울 상암동 <오마이뉴스> 대회의실에서 <정연주의 증언> 출판 기념 저자와의 대화 '이명박 정권은 왜 정연주를 제거하려 했는가?'가 열리고 있다.
 10일 오후 서울 상암동 <오마이뉴스> 대회의실에서 <정연주의 증언> 출판 기념 저자와의 대화 '이명박 정권은 왜 정연주를 제거하려 했는가?'가 열리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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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결을 듣고 법정 밖으로 나오니 기자들과 텔레비전 카메라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무죄 확정 판결에 대한 소회를 묻는다.

"우리 사회의 정의를 위해 복무하지 않고 정권의 권력을 위해 봉사하는 정치 검찰의 무모한 행태에 대한 엄중한 심판"이라고 말문을 열었다. 나를 파렴치한 중죄인으로 몰면서 나의 인격을 무참하게 짓밟고, 나의 '강제해임'의 핵심요인이 된 배임죄라는 올가미를 엮은 정치 검찰의 이름도 하나하나 거명했다.

수사담당 이기옥 당시 서울중앙지검 검사, 당시 서울중앙지검 조사부장인 박은석 현 대구지검 2차장, 당시 서울중앙지검 1차장 최교일 현 서울중앙지검장, 명동성 당시 서울중앙지검장, 임채진 당시 검찰총장의 이름을 또박또박 거명했다.

그리고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에게 사퇴를 요구했다. 그는 두 번씩이나 국회에서 나의 무죄가 대법원에서 최종 확정되면 책임을 지겠다고 밝혔던 것이다.

그러면서 나는 기자들에게 그런 이야기를 했다. 인간이 다른 동물과 다른 점은 부끄러움을 아는 것이라고. 부끄러움을 알기에, 자신이 잘못한 것을 알면 이를 진심으로 뉘우치게 되고, 자신의 행위에 대해 사죄하고, 책임 있는 행동을 취하게 되는 법이다.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인간은 다른 동물과 다르지 않다.

법원 밖에서 기자들을 만난 자리에서 내가 이름을 또박또박 밝힌 대상이 정치 검찰뿐 아니었다. 나는 나의 변호를 맡아준 우리시대의  파수꾼, 민변 변호사들 이름을 고마운 나의 마음을 가득 담아 한 분 한 분 밝혔다. 민변의 큰 어른인 조준희 변호사, 당시 민변 회장인 백승헌 변호사를 비롯하여 김기중, 송호창, 한명옥 변호사의 이름을 말했다. 이 분들의 도움이 없었다면 나는 얼마나 외롭게, 힘들게 정치 검찰과 싸웠을까 하는 생각을 할 때가 한 두 번이 아니었다.

세상이 다시 뒤집어져서 인간의 권리가 무참하게 짓밟히고, 언론의 자유, 표현의 자유, 양심의 자유가 마구 망가지고 있는 MB 정권에서 시대의 파수꾼인 민변 변호사들이 참 많이 바빠지게 되었다.

저 해맑은 눈망울의 아이들이 어른된 세상에서는...

기자회견을 끝내고 법정 밖으로 걸어 나오는데 텔레비전 카메라가 앞에서 계속 나를 찍어댄다. KBS 카메라도 보인다. 마침 대법원에 현장 학습을 나온 듯한 초등학교 아이들이 우르르 내 주변에 모여든다.

"와, 텔레비전 카메라다. 우리도 같이 찍자."

아이들은 해맑게 깔깔대며 내 옆에 찰싹 붙는다. 그들이 나를 알 리 없고, 나의 죄명을 알 리 없고, 정치 검찰의 행태를 알 리 없다. 저 해맑은 눈망울의 아이들이 어른이 되는 세상에는 나와 같은 일이 결코 반복되어서는 안 되는데…. 가슴이 저려왔다.

아내에게 전화를 했다. 눈발 흩어지는 만경의 들판에서 운명처럼 만난 아내는 나와 결혼한 뒤 참 고생을 많이 했다. "이제 다 끝난 거예요?"라고 아내가 묻는다.

조금 시간이 지나니 지인들로부터 전화와 문자 메시지가 계속 왔다. 대부분 그렇게 이야기했다. 지극히 당연한 결과인데, 사필귀정인데, 그래도 축하드린다고. 이제 마음 고생 그만 하시라고.

그랬다. 지극히 당연한 결과인데, 사필귀정인데, 그런데도 확정 판결을 받고 나니 마음은 한결 편안해졌다. 그만큼 정치 검찰의 올가미가 혹독한 것이었다.

대법원 정문을 나와 지하철 쪽으로 걸어갔다. 저 건너 쪽으로 검찰청 건물이 보였다. 3년 5개월 전 일이 새삼스럽게 선명한 그림으로 떠오른다. 검찰은 내가 강제해임 뒤 집으로 돌아오자 바로 나를 체포하러 내 집에 들이닥쳤다. 만 30년 만에 다시 검찰에 잡혀가는 신세가 되었다. 30년 전에는 긴급조치 9호 위반으로 잡혀갔는데, 이번에는 배임이라는 파렴치범이 되어버렸다.


태그:#정연주, #KBS, #정치 검찰, #대법원, #사필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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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동아일보 기자, 한겨레 워싱턴 특파원, 논설주간, kbs 사장. 기록으로 역사에 증언하려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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