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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승도 없고 제자도 없는 시대라고들 한다. 학교와 교사는 동네북이 된 지 오래고 하루가 멀다 하고 방송과 신문을 장식하는 건 '교권 추락', '학생 폭력', '왕따', '자살', 그리고 학생 인권에 무감각한 학교의 행태들이다.

존경과 사랑, 환대와 우애, 나눔과 협동 같은 말은 학교 현장을 다룬 기사에서는 찾아보기 힘들다. 학교는 이미 아이들이 즐거이 꿈꾸고 공부하며 건강하고 밝게 성장하는 공간이 아니게 되었다.

이는 학교를 오로지 무한경쟁 시장으로 만들고자 한 이명박 정부의 신자유주의 정책의 결과이면서 동시에 적지 않은 가슴 뜨거운 교사들이 이러한 갑갑한 상황 앞에서 지쳐 버린 데에도 그 일말의 이유가 있을 것이다.

"학교는 죽었다"고 선언했던 이반 일리치의 통렬한 비판을 떠올리지 않더라도 우리 시대의 학교가 진작 '교육 불가능'한 곳이 되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부정하기 힘들게 되었다.

죽은 학교, '교육 불가능' 학교에 희망은 있나?

여기에 담긴 글들은 오마이뉴스 <안준철의 시와 아이들> 꼭지에 연재되어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았던 에세이다.
 여기에 담긴 글들은 오마이뉴스 <안준철의 시와 아이들> 꼭지에 연재되어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았던 에세이다.
ⓒ 교육공동체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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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분명한 것은 학교가 죽었든 살았든, '불가능'이든 '가능'이든 간에 지금 이 시간도 초·중·고 학생 700여 만 명이 전국방방곡곡의 1만천여 개 학교에서 밤하늘의 은하수처럼 존재하고 있으며 고교생의 경우 아침 8시 전부터 오후 9시 넘어서까지 학교에서 힘껏 공부하거나 힘껏 버티거나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 같은 공교육의 현실에 절망하여 떠나는 교사들(그러기에 오히려 꼭 남아 있어야 할 것 같은)도 늘어만 간다. 어찌할 것인가.

교육 에세이집 <그 후 아이들은 어떻게 되었을까>(우리교육, 2004)로 학교와 교육의 희망을 꿈꾸는 많은 이들에게 감동을 선사했던 시인 안준철 교사(순천 효산고)가 이번에는 <넌 아름다워, 누가 뭐라 말하든>을 펴냈다.

<그 후 ……> 속 아이들의 그 이후 이야기이자 교사 안준철의 '그후 이야기'이기도 한 이 에세이집은 여전히 알콩달콩, 씁쓸 짭짤한 아이들과의 '사랑과 전쟁'(!) 이야기이기도 하다. 하지만, 7년 세월 사이 찬란하기에 더욱 쓸쓸한 가을처럼 한층 깊어진 그의 사랑 철학이 도처에서 빛을 발한다. 콧등을 찡하게 만든다.

아이들을 사랑 않고는 하루도 살 수 없다 어느 교사

무엇보다 나이 쉰 중반을 훌쩍 넘어선 교사 안준철은 30여년 전이나 지금이나 한결같이 아이들을 향한 '사랑'을 말하고 있다. 짝사랑이든 헛되어 보이는 사랑이든 상관없다. 그는 사랑하지 않고선 못 배긴다고 고백한다. 놀라운 일이다. 믿기 어려운 일이다.

그도 물론 보통 사람, 보통 선생님인지라 하루가 멀다 하고 아이들과 실랑이를 벌이고 미주알고주알 다투기도 하지만, 그는 늘 사랑의 자리로 돌아온단다. 아이들을 믿고 사랑한단다. 그러지 않고서는 단 한 순간도 살 수 없단다. 

그렇기에 <넌 아름다워, 누가 뭐라 말하든>은 아이들을 향한 변함없는 사랑 고백 이야기의 화수분과도 같은 책이다. 모두 4부로 구성된 책의 소제목들 중에서 '사랑'이 들어있는 것만 먼저 일별해 보자.

'쉬운 사랑' 이야기.
2% 부족한 아이들과의 사랑
사랑하는 사람들끼리는 거짓말하지 않는 거야!
사랑하면 교육이 쉬워진다.
사랑의 인내가 버거우면 한 호흡의 여유로
"선생님, 제발 절 사랑하지 말아주세요!"

"너만 상처 받는 게 아니야, 선생님도 상처 받아"

그러나 사랑의 길이 쉽지 않다는 건 고금의 진리. 그 사랑이 진실할 때는 더욱 그렇다. 그도 "한순간 화를 참지 못하여 한 아이와 감정을 상하고" 마는 때가 있으며 말문이 막혀 "위기의 순간"을 맞이할 때도 있다.

그런가 하면 막무가내 대들거나 퉁명스런 애들에게는 "너만 상처 받는 게 아니야, 선생님도 상처 받아"라고 솔직한 섭섭한 마음을 내비치기도 하며 "왜 교사는 항상 학생들에게 져야 하지?" 자신에게 되묻기도 한다. 하 답답하면 "인마, 너 대신 내가 운다" 소리도 친다. 그럼에도 그가 사랑의 '순례'를 멈추지 않는 힘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우선 그는 이른 아침 일어나면 거의 매일 두 손 모아 기도한다. "오늘 하루도 아이들을 사랑하게 해 주소서." 그러나 변화무쌍한 수많은 아이들을 기도만으로 하나하나 사랑을 주기란, 사랑을 하기란 불가능하다. 방법이 필요하다.

그는 3월 새 학기가 시작되기 전인 2월에 담임 맡은 반의 아이들이 정해지면 아이들에게 하나하나 전화 인사를 한다. 그러면 개학 해서는 서로 구면이 되고 아는 사이가 된다는 것이다. 그런가 하면 수업 시간마다 그는 반드시 아이들의 이름을 부르고 반드시 2, 3초 눈을 맞춘다. 그런데 대답도 시들하고 끊임없이 떠들기만 하는 아이는 어떡할까? 한 시간 동안 열 번도 더 이름을 부르고 열 번도 더 눈을 맞춘다.

그리하여 그는 "선생님, 떠드는데 왜 사탕을 줘요?", "맞아요. 전 나쁜 아이예요!", "선생님 지금 착한 척 하기는 거잖아요!", "저 지금 코딱지 파고 있는데요"라고 하는 아이들 앞에서 울기도 하고, "가을바람이 너무 좋아서" 문득 한 아이에게 전화를 한다.

"수업하다가 세 번 울었습니다"라고 고백하기도 하는 시인 안준철 교사의 다음과 같은 시(그가 학생들 생일을 기념해 써서 헌정한 시는 800여 편에 이르는데 그 중 한 편)의 마지막 대목은 필경 내 눈시울을 적시고 말았음을 나 역시 고백해야겠다.  

너는 주인이고, 나는 종이니
나를 딛고 일어나
다만, 세상을 향기롭게 하는
아름다운 사람이 되거라 ( 책, 45쪽)

그렇기에 아이들은 그에게 편지를 쓴다. 문자를 보낸다. 전화를 한다. 요컨대 아이들은 그를 '사랑'하는 것이다.

사랑하는 선생님께!
항상 칭찬해 주시고 위로해 주시고 친구 같은 선생님이 제 곁에 있어서 지금까지 너무 행복했고 힘들어도 견딜 수 있었어요. 요새 제게 너무 힘든 일도 있고 그랬지만(……) 이젠 다짐했어요. 절대 울지 않기로. 혼자서도 꿋꿋이 당당하게 다니기로요! (……) 예전처럼 밝고 활기찬 모습 보여드릴게요. 선생님 항상 걱정해주시고 문자 보내 주시고 다독여 주셔서 감사하고 존경해요. 선생님, 그리고 사랑해요!!(책, 122쪽)

이 땅의 학교 현장에서 실낱같은 희망이라도 보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나는 <넌 아름다워, 누가 뭐라 말하든>을 두 번, 세 번 읽기를 권하고 싶다. 그러면 어쩌면 단풍이 물들듯 우리의 가슴도 교사 안준철의 진한 아이들 사랑으로 물들어갈 지도 모르니까. 아니 그러지 않고는 배길 수가 없을 테니까.


넌 아름다워, 누가 뭐라 말하든 - 안준철의 시와 아이들

안준철 지음, 교육공동체벗(2011)


태그:#교육공동체 벗, #교육 희망, #전교조, #왕따, #안준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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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에서 문학과 철학을 공부했고 오랫동안 고교 교사로 일했다. <교사를 위한 변명-전교조 스무해의 비망록>, <윤지형의 교사탐구 시리즈>, <선생님과 함께 읽는 이상>, <인간의 교사로 살다> 등 몇 권의 책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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