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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게 깎은 머리에 까무잡잡한 피부, 짙은 눈썹에 강렬한 눈빛, 턱 끝에만 기른 턱수염까지. 수컷 냄새가 물씬 풍기는 그는 '조폭' 아니면 최소한 '잘 노는 아저씨'처럼 보였다. 그런 그가 남을 위해 주걱을 든 지 3년째. 대체 무슨 사연이 있었을까?

'바하밥집'의 주인장 김현일씨.
 '바하밥집'의 주인장 김현일씨.
ⓒ 최원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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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2월 29일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대학원 학생 다섯이 봉사활동을 갔다가 '바하밥집(bahameal.tistory.com)' 주인 김현일(47)씨의 뭉클한 얘기를 들었다. 바하밥집은 서울시 동대문구 신설동에 있다. 대광중고등학교 옆에 딸린 작은 도서관에 더부살이하는 소규모 밥집이다.

오후 6시30분, 도서관 옆 모퉁이에 천막을 치니 무료급식소가 금세 차려졌다. 시간에 맞춰 노숙자 몇 분이 벌써 기다리고 있었다. 김씨는 얼른 달려가 인사하며 그들을 천막 안으로 안내했다. 호칭은 연신 '형님'이었다.

"저는 늘 그분들을 '형님'이라고 불러요. 저희 무료급식소에 오는 분들 대부분이 오륙십대거든요. 사실 이 분들이 다른 데서 그런 대우 받기는 힘들어요. 냄새 나고 더럽다고 피하기 일쑤죠. 하지만 저는 그런 쪽 비위가 좋아서 괜찮아요. 하하하. 이 분들하고 스킨십 하는 것도 좋고요. 그래서 어느덧 3년을 같이 지냈어요."

노숙자한테 거부당한 라면에서 배운 것

김씨는 지난 2009년 1월 24일 설을 앞두고 무료급식을 처음 시작했다. 달랑 컵라면 다섯 개와 빵을 들고 도서관 옆에 있는 안암2교 다리 밑으로 들어갔다. 추운 날씨에 노숙자 둘이 침낭 안에서도 떨고 있었다. 그 중 한 사람에게 다가가 컵라면을 건넸다. 춥고 배고프기 때문에 기분 좋게 받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노숙자는 김씨를 힐끔 쳐다보더니 컵라면을 바닥에 부어버렸다.

"그날 눈도 많이 오고 상당히 추운 날이었어요. 그래서 저는 그분들께서 맛있게 드실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저를 경계하더라고요. 노숙하는 분들은 서로 관계가 형성되지 않으면 불편하고 어색해해요. 사람들은 노숙자를 잠재적 범죄자로 보는데 그들 대부분은 범죄를 저지를 배짱이 없는 마음이 약한 사람들이에요. 오히려 (노숙자들은) 사람이 무서워서 어두운 곳에 숨어 살아요. 마음에 깊은 상처가 있는 사람들이죠."

김씨의 첫 무료급식 경험은 충격이었다. 그는 노숙자들의 마음을 얻는 게 우선이라고 생각했다. 많은 사람에게 급식을 제공하지 못하더라도 한 명 한 명에게 집중하겠다고 마음먹었다. 돈도 없고 건물도 없었다. 우선 대광중고등학교 인근 작은 도서관 옆에 아직 운영하지 않는 어린이집을 잠시 빌려 쓰기로 했다.
식사는 밖에 천막을 쳐서 제공하고, 추운 날에는 도서관 안에 있는 카페를 잠시 이용하기로 했다.

'바하밥집'에 들어서면 종이상자를 찢어서 만든 현판이 눈에 들어온다.
 '바하밥집'에 들어서면 종이상자를 찢어서 만든 현판이 눈에 들어온다.
ⓒ 양호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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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능력이 안 돼서 많은 사람을 챙기기는 힘들 거라고 생각했어요. 단 한 사람이라도 더 집중해서 배식하기로 했어요. 마더 테레사 수녀님 책을 읽다가 저자가 수녀님에게 어떻게 그렇게 헌신하는가 하는 질문에 '매 순간 한 영혼에 집중한다'고 답한 것을 본 적이 있어요. 큰 감동을 받았어요. 그래서 저도 한 분이라도 집중하려고 노력해요. 너무 사람이 많으면 그 분들을 인격적으로 대하기 힘들어요. 겉모습만 보고 쉽게 판단하게 되죠. 노숙하는 분들의 굴곡진 삶을 얘기 듣다 보면 공감이 가요."

'바하밥집'은 화·목요일에는 저녁식사, 토요일에는 점심과 저녁식사를 제공한다. 화·목요일에는 스물에서 마흔 명 정도가 찾아오고, 토요일에는 여든에서 많으면 120명까지 온다고 한다. 김씨는 늘 그 세배 정도 음식을 준비한다. 그래도 음식이 남지 않기 때문이다.

"저희 손님(노숙자)들은 보통사람들 세 배를 드세요. 생존을 위해서예요. 언제 다시 먹을 수 있을지 모르니 있을 때 많이 먹는 게 몸에 뱄어요. 저도 당뇨가 있지만 이분들 중에는 당뇨 같은 지병을 앓고 있는 이도 많은데 식이조절은 전혀 못하죠. 이 분들의 관심사는 저녁식사를 '어디서 먹을까'가 아니라 '먹을 수 있을까 없을까'예요."

수배 중이던 '건달'이 밥집 '주인'으로

김현일씨는 <단비뉴스> 기자들에게 노숙자들의 이야기를 담은 영상을 보여줬다.
 김현일씨는 <단비뉴스> 기자들에게 노숙자들의 이야기를 담은 영상을 보여줬다.
ⓒ 최원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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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씨가 노숙자들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는 것은 그 역시 노숙생활을 해봤기 때문이다. 1997년 우리나라가 금융위기를 맞았을 때 그는 노숙자가 됐다. 아내는 둘째 아이를 임신하고 있어서 친정으로 들어갔다. 아내와 아이를 위해 열심히 살겠다고 마음을 고쳐먹은 뒤 맞은 위기였다.

"서울역에서 노숙을 시작했는데, 처음에는 부끄러워서 고개도 못 들었어요. 혹시 누가 알아볼까 봐서요. 노숙자들이 줄을 서서 밥을 받아먹는데 저는 절대 저 짓은 하지 않겠다고 생각했죠. 그런데 하루 이틀 지나니까 아무렇지 않게 길거리에서 밥을 먹게 되더라고요. 그렇게 석 달 동안 노숙생활도 하고 이런저런 일을 찾아서 했어요."

김씨는 대구에서 주먹깨나 쓰는 건달이었다. 서른이 될 때까지 사고가 끊이질 않았다. 다른 조직과 싸움이 붙어 폭력 혐의로 경찰에 쫓기는 몸이 됐다. 1995년 2월, 서울에서 도피생활을 하던 그는 거리에서 잊지 못할 경험을 했다. 새벽부터 신문을 배달하는 아이들을 본 것이다. 흔한 광경이었지만 그날 그는 자신이 한없이 부끄러웠다.

두 달 후 김씨는 <한국일보> 배달 일을 시작했다. 그곳에서 경리 일을 하던 지금 아내 김옥란(40)씨를 만났다. 김씨는 수배 중이었기에 혼인신고도 못한 채 동거를 시작했다. 1996년 아내가 첫 아이 지원이를 낳았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출생신고를 해야 하는데 법적 남편이 없으니 첫 아이가 사생아가 될 판이었다. 아이를 위해 용단을 내려야 했다. 결국 혼인신고를 했고, 이틀 뒤 경찰이 집에 들이닥쳤다.

'바하밥집'은 대광중고등학교 옆에 딸린 도서관에서 더부살이를 하고 있다. 도서관 모퉁이에 천막을 쳐서 식당을 만든다.
 '바하밥집'은 대광중고등학교 옆에 딸린 도서관에서 더부살이를 하고 있다. 도서관 모퉁이에 천막을 쳐서 식당을 만든다.
ⓒ 양호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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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아이를 안았을 때 눈물이 쏟아지더라고요. 아이가 너무 불쌍했어요. 왜 하필 내 아이로 태어나서 이 고생을 하나 생각했죠. 대구까지 송치되는데 담당 형사가 저와 아내의 대화를 듣더라고요. 사정이 너무 딱해 보였는지 담당 검사에게 직접 신원보증을 해주면서 제가 바로 풀려나게 해줬어요. 기소유예 결정이 났죠. 저는 그 후 정말 열심히 살겠다고 다짐했고 여러 일을 했는데, 갑자기 IMF가 터진 거예요. 아기 분유 값을 벌어야 했죠. 나쁜 생각도 했는데 그렇게 번 돈으로 분유를 사 먹이는 게 아이에게 좋을까 생각되는 거예요. 그때 잘 참아서 지금 이 자리까지 온 거죠."

1998년, 김씨는 지인을 통해 노숙생활에서 헤어나와 서울 신촌에서 가스통과 얼음을 배달하는 일을 시작했다. 3000만 원에 집도 얻었다. '귀신 나오는 흉가'라는 소문이 나 헐값에 나온 집이었지만 그와 가족이 살기에는 더없이 좋은 조건이었다. 김씨 집 옆에는 나들목교회 김형국 목사의 집이 있었다. 그것을 인연으로 그는 탈북청소년과 가출청소년들을 집에서 보살피게 됐다.

"저는 종교가 없었는데 2002년 나들목교회 창립예배에 가면서 그 인연으로 사역(교회에서 말하는 봉사)을 하게 됐어요. 탈북청소년이나 가출청소년을 맡았는데, 많은 때는 30명까지 저희 집에서 보살폈죠. 말썽부리는 아이들이지만 제 말은 잘 듣더라고요. 목사님께서 제가 하는 일이 '바나바 하우스(Barnabas House)'라고 말씀하시더라고요. 그때 처음 봉사라는 것을 하게 됐어요. '바나바'는 1세기 중반 초대 그리스도교 전도자인데, 자신의 재산을 털어 어려운 사람을 도운 사람이라고 하더라고요. '바하밥집'도 '바나바 하우스 밥집'의 줄인 말이에요."

노숙자 무료급식소 '바하밥집'에 노숙자들이 찾아와 따뜻한 한 끼의 식사를 하고 있다.
 노숙자 무료급식소 '바하밥집'에 노숙자들이 찾아와 따뜻한 한 끼의 식사를 하고 있다.
ⓒ 양호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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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푸는 게 아니라 제가 받고 있습니다"

서울에는 크고 작은 밥집이 수백 개 있지만 '바하밥집'이 특별한 이유 중 하나는 10년 넘게 노숙하던 사람 셋이 재활해 함께 일하고 있다는 점이다. 김씨는 주민등록이 돼 있지 않은 노숙자를 찾아 주민등록을 시켜주고 기초생활수급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돕고 있다. 김씨가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노숙자들과 '형님, 동생'하며 친하게 지내는 것이다.

"저는 그 분들에게 무엇을 베푸는 게 아니에요. 오히려 그 분들을 통해서 은혜를 받고 있어요. 이런 일을 할 때 가장 조심해야 할 게 내가 가진 것으로 자비를 베푼다는 마인드예요. 자비를 베푼다는 생각을 갖게 되면 노숙자들에게는 거지근성을 만들고 봉사자들은 연민의 감정만 갖게 되죠. 다만 저는 그 분들이 공동체 생활을 할 수 있는 '통로' 정도 역할만 하는 거예요. 공동체의 의미를 잃은 사람들에게 그 의미를 갖다 주는 거죠."

노숙자 생활을 하다 사회에 적응한 대표적인 사례가 '바하밥집'에서 반장으로 불리는 조운학(58)씨다. 조씨는 1998년 아내와 이혼한 뒤 서울역에서 시작해 서울 각지에서 13년간 노숙생활을 했다. 노숙생활을 하면서 치아건강이 나빠져 아랫니 3개만 남고 모든 이가 빠져버렸다. 그래서 늘 마스크를 끼고 다녔다. 일용직 노동을 하며 다쳐서 몸이 성한 데가 없었다.

13년간 노숙 생활을 하다 지금은 '바하밥집'의 반장으로 노숙자들을 밥집에 인도하는 조운학씨(왼쪽)와 외식업을 하다 밥집에서 봉사활동을 하고 있는 김지곤씨.
 13년간 노숙 생활을 하다 지금은 '바하밥집'의 반장으로 노숙자들을 밥집에 인도하는 조운학씨(왼쪽)와 외식업을 하다 밥집에서 봉사활동을 하고 있는 김지곤씨.
ⓒ 최원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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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계천에서 노숙하던 조씨는 우연히 김씨를 만났고, 2009년 1월 '바하밥집'이 문을 열 때부터 함께 일했다. 한 의사의 도움으로 위아래 이를 모두 공짜로 임플란트 수술도 받았다. 주민등록도 해서 기초생활수급지원을 받고 있다. 지금은 차디 찬 거리가 아닌 고시원에서 산다. 조씨는 이제 마스크를 벗고 활짝 웃을 수 있게 됐다.

"길을 걷다가 노숙하는 사람들 보면 저도 모르게 몸이 움츠려지고 얼마나 추울까 걱정하게 됩니다. 제가 겪어봐서 그것을 상상하게 되는 거죠. 저는 그런 노숙자들을 데려다 밥을 드리고 좀 더 좋은 생활을 할 수 있게 돕고 있어요. 새해 소망은 한 사람이라도 더 따뜻한 밥 한 끼 같이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겁니다."

조씨처럼 재활에 성공하는 경우는 드물다고 한다. 사지도 멀쩡한데 왜 일을 하지 않느냐며 노숙자들을 곱지 않은 시선으로 보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노숙자 대부분이 정신적 장애가 있고, 여러 사람과 일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라고 한다. 알코올중독과 대인기피증으로 일용직도 하루 이틀 하다 쫓겨난다. 김씨는 노숙자의 90%가 이미 태어날 때부터 만들어지는 사회구조이고, 그런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는 게 급선무라고 말한다.

"노숙자들에게 균등한 재활의 기회 주는데 왜 못하냐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균등한 게 절대 공정한 게 아니에요. 인문학강의다 뭐다 해서 교육한다고 해봐요. 그분들 중에는 그런 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 분이 거의 없어요. 그분들에게 맞는 방식을 찾아야죠. 가족도 친구도 공동체도 없는 사람들이에요. 그분들 처지에서 생각해야 돼요."

'바하밥집' 김현일 주인장은 밥집을 하는 것에 대해 자비를 베푸는 게 아니라 오히려 은혜를 받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바하밥집' 김현일 주인장은 밥집을 하는 것에 대해 자비를 베푸는 게 아니라 오히려 은혜를 받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 양호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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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옳은 일에는 머뭇거릴 필요 없어요"

김씨는 지난 2년간 아내에게 월급을 갖다 주지 못했다. 무역회사에 다니는 아내는 그래도 김씨에게 잔소리 한 번 한 적이 없다고 한다. 김씨는 교회와 사회에서 보내주는 후원금으로 밥집을 꾸준히 운영하고 있다. 없는 살림이지만 앞으로 밥을 굶는 청년들을 위한 밥집도 구상하고 있다.

"신림동에 밥을 굶는 청년들이 많이 있다고 하더라고요. 하루에 삼각김밥 두 개로 때운다고 하네요. 그곳에 밥집을 하나 만들고 싶어요. 1500원에서 2000원이면 먹을 수 있는 밥집을 만들어서 고시원에서 공부하는 학생들이 굶주리지 않길 바랄 뿐이에요."

바하밥집에서 봉사활동을 하고 있는 김지곤(32)씨도 뜻을 함께하고 있다. 외식업을 했던 경험을 살려 김씨를 도와 청년들을 위한 밥집 만들기에 동참할 생각이다.

"저는 이곳에서 봉사하는 게 아니에요. 진짜 사랑이 무엇인지 그것을 배우는 거죠. 저를 위해서 여기에 온 것이고, 이곳에 있다 보면 오만 가지 고민거리도 사라져요. 삶에 대한 가치관이 바뀌는 시기인 것 같아요. 제약도 많고 어려움도 있겠지만 본질을 잃지 않고 꼭 밥집을 계속 만들어가는 게 새해 소망이에요."

김현일씨는 3년 동안 '바하밥집'을 운영하면서 많은 사람들에게 희망과 영감을 줬다. 한때 '주먹'으로 세상을 싸늘하게 만들었지만 지금은 '주걱'으로 세상을 따뜻하게 만들고 있다. 김씨에게 '바하밥집'은 시작에 불과하다. 김씨는 미국의 세비어 교회나 페어스타트 식당처럼 사회에 공헌하고 싶다고 했다.

"세비어 교회는 워싱턴 북쪽 빈민지역에 있어요. 노숙자들이 일할 수 있게 도와주거나 공동체에서 생활할 수 있도록 하고 있어요. 시애틀에는 페어스타트라는 식당이 있는데, 2500인분을 만들어서 500인분은 팔고 2000인분은 무료급식에 씁니다. 요리사들이 노숙자들에게 요리를 가르치죠. 저는 목공 일을 배워서 공방을 차리려고 합니다. 노숙자들이 작품을 만들 수 있게 하려고요. 크게 생각하면 일이 안 풀려요. 작은 것부터 하나씩 해야죠. 옳은 일에는 머뭇거릴 필요가 없어요. 그냥 마음대로 다 해보세요."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세명대 저널리즘스쿨대학원 온라인 미디어 <단비뉴스>(www.danbinews.com)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바하밥집, #무료급식소, #김현일, #노숙자, #단비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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