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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6 군사 쿠데타 50년이 되는 시점에 박정희 통치가 우리에게 무엇인가, 지금의 대한민국에 무엇을 남겼는가에 대해 따져봐야 할 과제가 우리 앞에 놓여 있다. 권력자들의 음모와 살생 게임, 야만적 고문과 공포정치, 한강의 기적의 실제 경제성적표, 그리고 대통령의 술과 여자... '박정희 시대의 이야기'를 일주일에 2회 정도 풀어나갈 예정이다. - 기자말

전두환, 대부를 일러 바치다 

 박정희 대통령 시해사건을 발표하는 전두환 당시 계엄사 합동수사본부장
 전두환은 윤필용 사령관의 전횡에 대해 신 사장보다 먼저 박종규 실장에게 제보한 장본인이다(사진은 박정희 대통령 시해사건을 발표할 당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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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를 나서는 강창성의 손에는 대통령이 사인한 '윤필용 수경사령관 보직해임서'가 들려 있었다. 보안사에 돌아온 강창성은 즉각 이 통수권 명령을 집행했다. 그는 전화로 윤필용을 불러냈다.

"윤 장군, 어제 내가 얘기했던 문제로 각하를 뵙고 왔네. 지금부터 내가 말하는 것은 각하의 명령이네. 오늘 이후 별명이 있을 때까지 집에서 대기할 것. 이 일을 다른 사람들에게는 일절 말하지 말고…."

이날 오후 5시 30분 육군본부. 노재현 육군참모총장이 외국 출장 중이어서 참모차장 이민우 중장이 대리근무 중인데 보안사령관의 전화가 걸려왔다.

"차장님, 각하의 인사명령 하나를 알려드립니다. 제가 지금 각하를 뵙고 나오는 길입니다. 수경사령관 윤필용 소장은 오늘 자로 보직을 해임합니다. 그 후임자가 결정될 때까지는 기밀사항입니다. 본인에게는 제가 통고했습니다."

이 차장은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필동육본'이라 불릴 만큼 세가 당당했던 윤 사령관이 인사이동도 아니고 보직해임이라니 믿어지지가 않았다.

"아니 강 사령관, 무어라 그랬소? 보직해임이라고…."
"자세한 말씀은 나중에 드리겠습니다."

그날 저녁 보안사 긴급 간부회의가 소집됐다. 이 자리에서 강 보안사령관은 윤필용의 정치적 언행과 비리에 대한 내사 착수를 지시했다.

보안사 간부들도 윤필용 수경사령관의 보직해임 사실을 통보받고 사태가 일변했다는 것을 알았다. 이들은 즉각 수사팀을 구성했다. 또 윤필용에 대한 내사과의 동향보고 자료와 주변 인물들의 존안자료 일체를 모았다. 보안사는 그날부터 윤필용을 '근접감시 일일보고 대상자'로 정하고 그의 자택에 요원 두 명을 고정 배치했다.

보안사에서 'Y사건'이라는 암호로 명명된 윤필용 사건의 수사팀은 보안처장 김종진 대령, 정보처장 김병주 대령이 담당했다. 당시 지구대장으로 나가 있었으나 보안사 터줏대감 중 한 사람인 김학호 대령은 지원을 맡았다. 수사부서인 대공처장 김교련 대령은 윤필용과 친밀한 관계여서 Y수사팀에 들어가지 않도록 배제됐다.

수사의 실무책임자로는 사령부 특별조사업무를 맡기기 위해 석 달 전 군단보안부대에서 데려온 백동림(육사 15기·훗날 10.26의 김재규, 12.12의 정승화 수사책임자) 중령이 지명됐다. 백 중령은 소대장만 마친 뒤 방첩대에 들어갔다. 미국의 수사기관에서 거짓말탐지기 교육과정까지 수료한 보안사의 수사 베테랑이었다. 그는 1972년 12월 갑자기 사령부로 발령이 나고, 수사 전담 부서인 대공처 수사과와 별도로 신설된 보안처의 조사과장에 임명됐다.

그는 '뭔가 큰 사건 첩보가 또 포착됐나 보다'라고 짐작했다. 유신이 선포된 후 대학 재학 중 입대한 선임 병사들뿐 아니라 중령·대령급 사이에서 정치적인 비판 언동이 각급 보안부대에 보고되고 있는 분위기였다. 그는 5.16 직후의 장도영, 김동하, 원충연 사건과 같은 정치적 수사 과제에 대비해야 할 것으로 예상했다.

수사팀은 우선 사건의 발설자로 알려진 신범식 서울신문사 사장을 불러 진술을 들었다. 그 다음으로 강창성 사령관이 직접 1공수여단장 전두환 준장을 소환했다.

전두환은 윤필용 사령관의 전횡에 대해 신 사장보다 먼저 박종규 실장에게 제보한 장본인이다. 그러자 박종규는 전두환을 직접 대통령 앞에 세웠다. 박정희가 부하들의 이간질과 암투에 진저리를 내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아는 박종규는 자신이 보고하는 것보다 전두환이 직소하는 편이 더 효과가 있을 것으로 계산한 것이다. 그러나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거 쓸데없는 소리들 하지 말고 일들이나 잘 해."

박 대통령은 전두환에게 핀잔을 줬다. 그러다가 얼마 후 신범식이 골프장에서 한 얘기를 듣고 그는 전두환의 제보가 생각난 것이다.

'윤필용 동향' 존안 자료들을 정밀 분석하다

 1973년 4월 29일 육군본부 보통군법회의에서 특정범죄 가중처벌 위반 행위에 대한 선고에서 '윤필용 사건'의 당사자인 윤필용 수도경비사령관(맨 오른쪽)이 재판 내용을 듣고 있다.
 1973년 4월 29일 육군본부 보통군법회의에서 특정범죄 가중처벌 위반 행위에 대한 선고에서 '윤필용 사건'의 당사자인 윤필용 수도경비사령관(맨 오른쪽)이 재판 내용을 듣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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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수사팀은 김재규 보안사령관 때부터 보고받은 윤필용 소장의 동향에 관한 존안자료들을 정밀 분석했다. 특히 두 사람이 이른바 파워 게임을 벌였기 때문에 보안사가 윤 소장을 내사한 자료는 상당히 축적돼 있었다.

윤필용이 방첩대장을 끝내고 나간 뒤 박 대통령의 괘씸죄를 살 만한 첫 언행은 그가 사단장 시절인 1968년 정부의 경부고속도로 건설을 비판했다는 정보 보고였다. 그리고 3선 개헌 직후에는 정부에 대한 비판여론의 표적으로 이후락 청와대 비서실장을 지목, 해임해야 한다고 박정희에게 진언하다가 오히려 꾸중을 들었다. 이때부터 그는 이후락과 긴장관계에 들어갔다. 또 유신 선포 직후에는 박정희에게 군 장성 출신을 유정회 의원으로 많이 임명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그러자 박정희는 크게 면박을 줬다.

"쓸데없는 일에 관여하려 말고 맡은 일이나 잘해."

여러 차례 핀잔을 듣고 그는 박정희의 군 현역시절 부관으로서 이것저것 진언하던 관계가 이미 끝났음을 분명하게 알았다. 윤필용에 대한 최근의 내사 자료는 그가 군 장성 인사를 좌지우지하고 있으며, 영관급 인사도 그의 참모장 손영길 준장이 챙긴다는 소문이 주종이었다.

윤필용 직계들이 군 요직을 차지하고 앉아 진급을 미끼로 뇌물을 받는다는 제보도 있었다. 심지어 군 수뇌급 장성들이 1972년과 이듬해 신정 때 윤필용의 자택에 세배를 갔다는 동향보고에 Y수사팀은 아연했다. 윤필용의 직계세력은 3개의 맥으로 이루어져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첫 번째가 수경사 헌병대 출신으로 이루어진 육본 범죄수사단 등의 헌병장교들이었다. 범죄수사단장이 그 중간 보스였다. 두 번둘째는 육본 인사참모부의 진급과 등을 장악한 인사담당 장교들이다. 인사운영감과 대령과장을 지낸 뒤 1973년 초 전방 연대장으로 나간 권익현 대령, 진급인사실 신재기 대령 등의 이름이 적혀 나왔다.

세 번째 부류로 윤필용의 직계가 많은 경남 울산 출신 인맥이 도마에 올랐다. 당초 윤필용은 이후락 중앙정보부장과 긴장관계였다. 그런데 직속부하인 수경사 참모장 손영길 준장과 이후락 부장의 막료인 이재걸 중정 감찰실장이 울산 출신 동향으로 가까운 사이였다. 이 두 사람과 중정에 많았던 울산 그룹이 나서 윤필용과 울산 출신인 이후락을 화해시켰다는 것이다.

그 후 윤필용은 술자리에서 이후락에게 "후계자는 형님이 하면 되는 것이고 각하가 더 노쇠해지기 전에 물러나시게 진언해야 한다"고 말했다는 정보가 입수돼 있었다.

윤 소장에 대한 존안자료 등 검토와 내사를 끝낸 수사팀은 1973년 3월 6일 오전 그의 자택에 수사관 2명을 보냈다. 집 앞에서 수사관 한 명은 차에 남아 있고 윤 소장과 잘 아는 김아무개 소령이 혼자서 들어갔다.

"사령관님, 저희와 잠깐 좀 가셔야겠습니다."
"그래, 올 줄 알고 기다리고 있었다."

윤필용은 이미 체념한 표정으로 선선히 일어났다. 윤필용이 구속된 후 1973년 3월 중순경부터 그의 직계세력으로 분류된 3대 인맥의 중간보스들이 '빙고호텔'이라 불리는 보안사 서빙고 분실로 줄줄이 잡혀 들어갔다. 이 Y사건 수사는 군사기밀로, 외부에 철저히 차단된 채 진행돼 일반 국민은 전혀 알지 못했다.

1973년 3월 중순 어느 날 저녁, Y사건 수사반장 백동림 중령은 문관들인 실무 수사관 4명과 그날의 일일결산을 하고 있었다.

"제보에 따라 추적한 결과 증거가 분명한데도 계속 오리발을 내미니…. 이런 놈은 좀 고생할 수밖에 없습니다."

윤필용계(系) 인사담당 장교들을 맡은 수사관이 이맛살을 찌푸렸다. 진급 청탁과 함께 돈을 쑤셔 넣은 성냥갑을 디밀어놓고 나온다는 인사비리 제보가 들어온 것이다. 뇌물을 주고 진급 청탁을 하는 장교는 따로 줄이 없는 비육사 출신들이 대부분이었다. 이를 끝내 부인하는 육본 인사참모부 진급실의 S 대령은 빙고호텔에서 가혹행위를 당했다.

실체를 드러낸 군내 비밀 사조직 '하나회'

윤필용계 3대 인맥 중 인사담당 장교들을 조사한 수사관은 Y사건 수사반의 일일결산 자리에서 반장인 백동림 중령에게 보고를 겸해 물었다.

"과장님, 그런데 '하나회'라고 들어보신 적 있습니까? 육사 출신들이 똘똘 뭉쳐서 윤 소장을 업고 다 해먹은 모양입니다."

수사관은 백 중령에게 하나회의 주요 보직 독점 사실과 인사 압력 등을 보고했다. 백 중령은 이를 강창성 사령관에게 직보했다. 이에 강창성은 육사 출신 영관급 장교들이 모여 있는 연구발전실의 실장 정상문 대령(육사 12기)을 불렀다.

연구발전실은 육사 우수졸업자와 교수부 요원들이 모인 곳이다. 실장 정 대령을 비롯해 신승철(육사 15기·전 한양대 교수), 윤창하(육사 15기), 황종대(육사 16기) 중령 등은 모두 반(反) 하나회 정서가 강한 사람들이었다. 이들이 하나회에 대한 초동조사를 담당했다.

연구발전실장 정상문은 강창성에게 불려 가 하나회 조사를 지시받고, 얼마 후 다시 그를 만나 하나회의 문제점을 아는 대로 토로했다.

"오래 전부터 7성회라는 것은 있었습니다. 7성회가 확대된 단체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강 사령관은 보고를 듣고 사령부 내 전 육사 출신 장교들에게 동기생 중 하나회원에 대해 모든 정보를 적어내도록 지시했다. 육사 출신으로 비(非) 하나회 장교들인 연구실 요원들은 '군내에 인맥과 파벌을 조성하고 인사비리까지 저지른 사조직 하나회를 이번 기회에 발본색원해야 한다'고 의견을 모았다.

하나회 조직의 핵심 전두환과 노태우

 전두환 노태우 전대통령이 12·12및 5·18사건에 관련한 재판을 받고 있다.(1996.12.16)
 전두환 노태우 전대통령이 12·12및 5·18사건에 관련한 재판을 받고 있다.(1996.1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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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3년 3월 20일경 Y수사반에 2차 수사 지시가 떨어졌다. Y팀은 군내 사조직 하나회의 규모와 지금까지의 비밀활동 내용에 대한 조사에 착수했다. 1차 수사에서 구속한 10명 중 손영길, 권익현(이상 육사 11기)뿐 아니라 윤 소장의 전횡을 처음 제보했던 1공수여단장 전두환 준장과 전방 연대장 노태우 대령이 핵심 수사 대상으로 떠올랐다.

또 청와대의 최근접 근위부대장인 수경사 30대대장 이종구 중령과 윤필용의 비서실장을 지내고 전방 포병대대장으로 나가 있던 박정기 중령, 그리고 바로 보안사 인사과장인 배명국 중령 등 육사 14기의 선두주자들이 그 아래 중간 보스들이었다. 보안사 안에도 수경사를 관장하는 506대장으로 강창성 자신이 중용한 정동철 대령(육사 12기)을 비롯해 허화평, 허삼수 소령(육사 17기) 등 하나회가 요직에 포진하고 있었다.

Y수사반은 하나회의 조직자인 전두환, 노태우 두 사람에게는 수사관을 보내 진술을 받도록 하고, 총무 격으로 드러난 이종구 중령을 소환했다. 우선 비밀사조직의 명단을 압수하는 일이 급선무였다. 그러나 이 중령은 끝내 버텼다. 그는 친목모임에서 연락하는 일을 맡아 명단을 30대대 캐비닛에 뒀다가 분실했다고 진술했다. 수사반은 그를 2박 3일간 닦달하면서 30대대장실을 뒤지기도 했으나 명단은 입수하지 못했다.

Y수사반장 백 중령으로부터 2차 수사의 중간결과를 보고받은 강창성은 의외로 큰 비밀조직이 숨어 있다는 데 놀랐다.

1973년 3월 말, 강창성은 박정희에게 윤필용사건 수사결과를 보고했다. 박정희는 구속된 10명을 모두 군법회의에 회부하고 이후락 중정부장의 주변도 철저히 조사해 보고하라고 지시했다.

"각하, 그러나 이 부장은 청와대 비서실장을 지냈는데 윤 소장과 함께 각하의 최측근들을 모두 자르는 것은 국민의 눈에 좋지 않습니다."

박정희는 잠시 생각하는 표정이었다.

"그 손발을 잘라 세력화하지 못 하게만 하면 되지 않겠습니까? 또 이 부장은 윤 소장에게 적극 가담한 것은 아닙니다. 그보다도 이번 사건수사에서 가장 큰 문제점은 윤 소장을 추종한 비밀사조직이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강 사령관은 Y수사반이 파악한 육사 14기까지의 하나회 핵심 20여 명의 명단을 내놓았다. 그러자 박정희는 명단을 들여다보다가 무언가 망설이는 표정이 됐다.

"그냥 두고 가지…."

강창성은 의외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후락 부장까지 손댈 뜻을 밝힌 대통령이 군 장교들의 비밀사조직에 대해 미온적인 반응을 보인 것은 이상했다. 며칠 후 윤필용의 후임으로 수경사령관이 된 진종채 소장이 강 사령관에게 전화를 걸어왔다.

"앞으로 수경사 요원에 대해 조사할 일이 있을 때는 내 동의를 구해서 해주시오."

이후 보안사에 대해 두 갈래의 반격이 가해지기 시작했다. 하나는 하나회의 후원그룹이고, 다른 하나는 이후락의 중앙정보부였다.

강창성 좌천시켜 '하나회' 문제를 덮어버린 박정희

 박정희.
 박정희.
ⓒ 오마이뉴스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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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3년 5월 초 어느 날 출근시간 직후, 보안사령부에 긴급보고가 들어왔다.

"보안사 간부들이 출근길에 연행돼 갔습니다. 육본 범죄수사단 요원들이 끌고 갔는데 중앙정보부가 이첩한 사건이라고 합니다."

사태는 심각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참모장인 김귀수 준장(육사 9기)이 군수참모 이진백 대령(육사 11기), 병참장교 이동수 소령(육사 16기)과 함께 잡혀갔다. 김 준장은 보안사에 근무해본 적이 없는 야전 출신으로 강 사령관이 데려온 측근이었다.

중정이 이첩한 내용에 따르면 이들이 보안사의 비축용 자동차 연료인 휘발유를 팔아먹었다는 것이었다. 이렇게 해서 강창성에 대한 이후락의 반격 작전으로 '보안사 휘발유 사건'이 터졌다.

오래 전부터 보안사는 군용 휘발유를 많이 확보해뒀다가 이것을 팔아 정보수사비로 쓰는 게 관행화돼 있었다. 그런 살림살이는 참모장의 전결사항이었다. 다 알려진 비밀이었지만, 엄연한 탈법행위여서 보안사 간부 3명은 군용물 횡령유용 혐의로 즉각 구속됐다. 그러잖아도 범죄수사단의 헌병수사관들은 보안사가 윤필용 사건을 수사하면서 단장인 지성한 대령 등을 거칠게 다룬다는 얘기에 앙심을 품고 있었다. 김귀수 보안사 참모장은 범죄수사단에서 마대를 뒤집어쓴 채 뭇매를 맞고 퉁퉁 부은 나머지 마대가 벗겨지지 않는 참혹상이 됐다.

하나회 수사가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고 그 조치를 기다리던 1973년 8월 7일, 강창성은 청와대의 연락을 받고 태릉골프장에 나갔다. 박정희가 박종규 경호실장, 최우근(육사 3기) 육사교장과 함께 나와 있었다. 대통령은 둘이만 있는 자리에서 운을 뗐다.

"강 장군 말이야, 며칠 전에 서종철, 진종채 장군이 내 방에 왔었어. 강 장군을 그 자리에 그대로 두면 경상도 장교의 씨가 마르겠다고 그래…."

이른바 영남군벌이 박정희에게 직소한 것이다. 그렇잖아도 박정희는 군내 친위대인 하나회가 쑥밭이 되는 것을 보고 다른 생각을 하던 중이었다.

다음 날 강창성은 이민우 육참차장으로부터 3관구 사령관으로 좌천되는 인사 명령을 통보받았다. 하나회 수사는 그것으로 끝이었다. 그때 제대로 발본색원했더라면 훗날 12.12 군사반란과 5.18 광주시민항쟁 살상진압은 없었을 텐데…. 역사는 항상 아쉬운 대목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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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정치학과 학사 석사 박사, 하버드대 니만펠로십 수료. 동아일보 논설위원, 오마이뉴스 논설주간, 경기대 정치전문대학원장, 한국정치평론학회 회장, 대통령자문 정책기획위원, 제17대 국회의원(비례대표) 등 역임. 현재 방송통신위원회 상임위원. 저서 : '한국정당과 정치지도자론' '군부와 권력' '우리시대의 정치와 언론' 외 10여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