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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왕
▲ 세종 대왕
ⓒ 이정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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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대왕과 정비 소헌왕후 슬하에는 8남2녀가 있다. 그들의 금슬은 좋았지만 정치적인 격랑기에는 사랑도 소원했다. 친정아버지가 시아버지에게 죽임을 당하는 슬픔의 계절에는 잠자리도 뜸했다. 태종이 세상을 떠나고 세종의 정치적 입지가 안정화되면서부터 이들의 관계도 성숙해졌다. 이 때 회임하여 낳은 아들이 수양대군, 안평대군, 임영대군이다. 이들은 한 살 터울 연년생이다.

이 때 이들 사랑의 틈바구니를 헤집고 들어오는 여인이 있었으니 궁녀 강씨다. 수려한 외모에 세종은 첫눈에 반했다. 왕비 이외의 첫 여자다. 강씨는 곧 승은을 입어 왕자를 낳았다. 세종의 제1서자인 화의군 이영이다.

강씨는 공교롭게도 소헌왕후 심씨의 조카다. 이모의 천거로 궁에 들어와 이모부를 가로챈 여인이 된 것이다. 기구한 운명이지만 그녀에게는 죄가 없다. 이쁜게 죄라면 죄랄까. 강씨의 어머니는 청송심씨로 심온의 둘째 딸이자 소헌왕후의 여동생이다. 따라서 강씨에게 있어 세종은 지아비이며 이모부다.

못 말리는 왕자, 또 사고를 치다

세종의 18명 아들 중에 가장 한량스러운 왕자가 안평이라면 밝히는 왕자는 화의군이다. 그는 형 임영대군과 함께 외간 여자를 남장시켜 경복궁으로 들어가려다 수문장에게 발각되어 곤혹을 치르기도 했고 조관(朝官)의 기첩을 빼앗은 사건으로 직첩이 몰수되기도 했다. 그런 그가 또 사고를 쳤다. 아우 평원대군의 첩 초요갱과 염문을 뿌린 것이다.

"화의군이 평원대군의 첩 초요갱과 간통한 것은 강상을 어지럽히는 중대한 범죄이오니 엄중히 다루어 풍속을 바로 세우소서."

삼정승과 육조판서들이 빈청에 모여 의논한 결과를 승정원에서 아뢰었다. 화의군의 애정행각이 현안으로 떠오르자 혜빈 양씨가 구명에 나섰다. 궁녀로 들어와 세종의 후궁이 된 그녀는 세자빈이 아들을 낳고 죽자 세손을 맡아 기른 여인이다. 그녀는 화의군의 생모는 아니었지만 자신 소생 한남군과 영풍군을 챙겨주는 화의군을 살갑게 대해주었다.

화의군의 아내와 함께 임금을 알현한 혜빈은 화의군의 선처를 호소했다. 임금에게 혜빈은 할머니 되지만 어머니와 같은 존재다. 이들의 임금 알현을 환관 엄자치가 주선했다. 궁에서 나온 그들은 화의군과 함께 금성대군 이유의 집으로 향했다.

여자의 늪에 빠져 놀다가 죽음의 덫에 걸린 왕자

"초요갱은 양갓집 규수도 아니고 평원대군이 슬쩍 스치고 지나간 기생 일뿐입니다. 상당히 오래된 일을 지금에야 끄집어내어 문제를 삼는 것은 나와 금성 아우님을 죽이려는 모략입니다."

화의군이 목소리를 높였다.

"형님! 목소리를 조금 낮추십시오. 낯 말은 새가 듣고 밤 말은 쥐가 듣는다 하지는 지금 저희 집에는 밤 말도 사람이 듣습니다."
"여기뿐만이 아니라 저희 집에도 세작이 쫙 깔려있습니다."

영양위 정종이 맞장구를 쳤다.

"김종서장군 죽이고 안평대군 죽였으니 이제 저들의 눈에는 오직 금성밖에 없습니다. 첫째도 몸조심 둘째도 몸조심입니다."

혜빈 양씨가 거들었다.

"우리 아버지가 일찍이 말하기를 '반드시 떠돌아 다니다가 죽을 자가 있을 것이다.' 하셨습니다."

화의군 이영의 아내가 열을 올렸다. '그 자'가 누구인지는 특정하지 않았지만 이심전심으로 공감하는 자였다.

"떠돌아 다니다가 죽기 전에 먼저 죽여야 합니다."

지내시부사 윤기가 열변을 토했다.

"수양을 죽이는 것은 아직 때가 아닙니다."

영양위 정종이 시기상조론을 폈다. 금성대군 집에서 회합한 그들은 결론 없이 헤어졌다. 돌아가는 영양위에게 금성은 금대(金帶)를 선물했다. 이 때 혜빈 양씨 소생 수춘군이 병약하여 금성대군 집에서 피접 요양하고 있었기 때문에 혜빈은 금성대군 집에서 살다시피 했다.

급하게 치고 나가면 역풍을 맞을 수 있다

이들의 회합은 즉각 명례궁에 알려졌다. 오고 간 대화 내용까지도 수양 귀에 들어갔다. 허나, 수양은 서두르지 않았다. 급하게 치고 나가단 역풍을 맞을 수 있다. '천천히 처결해도 시간은 우리 편이다.' 라는 자신감이 붙은 것이다. 헌납 서강이 깃발을 들었다.

"환관의 직임은 문(門)을 소제하거나 전지를 받들어 출납하는 것이 소임인데 국정에 간여하고 조정을 경멸했다면 불경한 처사입니다. 엄히 다스리소서."

화의군과 혜빈 양씨의 편의를 제공한 환관 엄자치가 도마 위에 올랐다. 수양이 나섰다.

"환관 엄자치가 본분을 망각하고 월권했다면 조정을 능멸한 처사입니다. 역경에 이르기를 '하늘과 땅은 교접하는 태괘(泰卦)다'라고 하였습니다. 만약 주상과 신하 사이에 가로막히는 것이 있어 서로 통하지 않는다면 이는 소통 부재입니다. 위와 아래가 통하지 않으면 어찌 옳은 정치라 할 수 있겠습니까? 이를 가로막는 자가 있다면 능치처사해도 부족함이 없습니다."

일차 희생자는 만만한 환관이다. 엄자치를 의금부에 하옥한 수양은 그를 곧바로 하삼도의 관노로 영속시켰다. 이에 불만을 품은 간원에서 더 멀리 내치라 하여 제주도 유배령을 받고 현지로 가다 길에서 죽었다. 한때는 김종서와 황보인을 참살하는데 공을 세워 계유정난 공신에 올랐지만 버릴 때는 헌신짝처럼 버린 것이다.

"화의군이 최승손, 김옥겸과 더불어 금성대군 집에서 잔치를 베풀고 활을 쏘았습니다. 무인들이 서로 패거리를 짓고 사사로이 모임을 가졌으니 어찌 사유가 없겠습니까? 유사에 회부하여 죄를 밝히소서."

사간원에서 들고 일어났다.

"금성대군 집에서 무인들이 모임을 가졌던 것이 한두 번이 아니었으니 이것이 어찌 공연히 모였겠습니까? 반드시 모종의 모의가 있었을 터이니 이들을 유사에 내려 추국하소서."

불똥이 금성대군에게 튀었다. 수순이다. 무르익었다고 생각한 수양이 참모들을 소집했다.


태그:#세종, #화의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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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事實)과 사실(史實)의 행간에서 진실(眞實)을 캐는 광원. 그동안 <이방원전> <수양대군> <신들의 정원 조선왕릉> <소현세자> <조선 건국지> <뜻밖의 조선역사> <간신의 민낯> <진령군> <하루> 대하역사소설<압록강>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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