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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나무길과 겨울 소나타

호텔 정관루 앞길
 호텔 정관루 앞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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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낙원 별천지를 나오니 다시 추위가 밀려든다. 그래서 남이나라에서는 사람들이 추위를 피할 수 있도록 곳곳에 모닥불을 피워놓았다. 그렇지만 사람들은 모닥불을 쬐기보다는 종종걸음으로 자기 갈 길을 간다. 우리도 이제는 호텔 정관루(靜觀樓)에서 서쪽으로 똑바로 뻗은 길을 따라 강변길로 간다. 강변길에는 목책이 쳐져 있어 사람들이 강으로 떨어지지 않도록 배려했다.

우리는 이 길을 따라 잠시 북쪽으로 간다. 그런데 그 길로 계속 갈 수는 없다. 바람이 차기도 하지만, 우리는 전시관과 공연장을 보아야 하기 때문이다. 강변으로는 별장과 나루가 있고, 그 옆으로 아카시나무, 잣나무, 메타세콰이어, 굴피나무, 상수리나무 군락지가 조성되어 있다. 야외음악당을 지나 다시 송파 은행나무길로 접어든다.

강변길
 강변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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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오른쪽으로는 피노키오 인형, 솟대들을 볼 수 있다. 그리고 길 왼쪽으로 재활용 환경정원, 아트숍 에코알씨, 겨울연가 포토갤러리(戀歌之家), 남이섬 역사문화관이 이어진다. 남이섬이 환경과 재활용 등 자연친화적인(nature friendly) 모습을 보여주려 노력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나는 먼저 겨울연가 포토갤러리로 들어간다. 한자로 동계연가(冬季戀歌)라고 써 놓았다.

동계연가라는 표현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궁금하다. 일본어로는 冬のソナタ고, 중국어로는 冬天戀歌 또는 冬日戀歌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영어제목도 Winter Sonata다. 확인해 보니 영화 <겨울연가>가 대만에서 동계연가라는 제목으로 방송되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대만 사람들을 겨냥한 이름이 된다.

갤러리에는 특별한 게 없다. 벽에 남이섬의 모습을 담은 작은 사진이 패널 형태로 붙어 있을 뿐이다. 그리고 벽에는 낙서로 가득하다. 연인들이 한 사랑의 표식 또는 이곳을 다녀간 흔적을 알리는 글이 대부분이다.

남이역사문화관에서 알게 된 민씨 일가의 친일행적

우당서옥 현판
 우당서옥 현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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갤러리 옆에는 남이역사문화관이 있다. 글과 사진 그리고 유물을 통해 남이섬의 역사를 알 수 있도록 했다. 입구에서 우당서옥(藕堂書屋)과 추모루(追慕樓)라는 현판을 볼 수 있다. 남이섬 소유주인 민병도 가문의 집과 사당에 사용한 당호로 보인다. 우당서옥은 연꽃과 책이 있는 집이라는 뜻이고, 추모루는 조상을 추모하는 누각이라는 뜻이다.

우당서옥 앞에 어필(御筆)이라는 글자와 증좌영사(贈左營使)라는 글자가 보인다. 이걸로 봐서 임금이 당시 좌영사였던 민영휘(閔泳徽: 1852-1935)에게 하사한 것이 분명하다. 뒤에 쓴 을유소춘(乙酉小春)이라는 글자를 통해 이것이 1885년에 쓰여졌음을 알 수 있다. 1885년은 고종 22년으로 갑신정변이 실패로 돌아간 다음 해다. 민영휘는 당시 수구파로 친일 개화세력을 몰아내는 데 앞장섰다.

남이역사관
 남이역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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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1894년 갑오경장 때 민씨 척족 대부분과 함께 탐관오리로 분류되어 전라남도 신안군 임자도(荏子島)로 유배되기도 했다. 그러나 1897년에는 대한제국 수립에 참여 중추원 의장, 헌병대 사령관, 표훈원 총재 등을 지냈다. 그 후 그는 정치권에서 밀려나 1906년 휘문고등학교의 전신인 휘문의숙을 설립했다. 1910년에는 일본 정부로부터 자작 작위를 받고 은사금을 받았으며, 매국 공채 5만원을 사들이기도 했다. 그 때문에 그는 조선말부터 일제강점기를 살다간 대표적인 친일파 인사로 분류된다.

다른 전시물은 대부분 수재(守齋) 민병도(閔丙燾: 1916-2006)의 것이다. 민병도는 민영휘의 손자로 금융계에서 성공한 사람이다. 그는 일제강점기 조선은행에 입사하여 동일은행 취체역을 지냈다. 해방 후에는 조흥은행 상무를 거쳐, 5․16군사정권 수립 후 한국은행 총재를 역임했다. 그러나 일제강점기 친일활동을 하면서 할아버지와 함께 역사적인 오점을 남겼다.

민병도가의 사진
 민병도가의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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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8년 조선총독부 기관지 <매일신보>의 발기인으로 참여했고, 태평양전쟁 때에는 국방헌금이라는 명목으로 일본군을 지원했다. 그러나 해방 후에는 문화예술에 관심을 가지는 등 경제와 문화 분야에서 활동했다. 을유문화사 설립, 고려교향악단 창립, <새싹문학> 창간, 현대미술관 회장 등이 그가 이룩한 대표적인 업적이다.

민병도는 사업수완이 뛰어나 고려잠사(주), 그랜드 하얏트 호텔, 휘문학원 운영에 참여했으며, 1963년 6월 한국은행장에서 물러난 후 1965년에는 경춘관광개발(주)를 만들어 남이섬을 개발하기 시작했다. "내 한국은행에 사표를 던지고 어디 조용한 곳을 찾아다니다 남이섬을 찾았느니라." 그리고는 땅콩 밭에 나무를 심어 남이섬가꾸기 사업을 시작했다. 이후 남이섬은 종합 관광휴양지가 되었고, 2000년대 초까지 그의 아들 민웅기에 의해 운영되었다.

경춘관광개발(주) 시절의 유산
 경춘관광개발(주) 시절의 유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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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이섬이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된 건 2002년 10월이다. 강우현 대표가 민병도를 만나 남이섬 개발이라는 꿈같은 마스터 플랜을 제시했기 때문이다. 그러한 꿈이 어느 정도 실현되었으니, 남이섬이 꿈과 동화의 나라, 상상과 예술의 문화관광국 남이나라가 된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2000년만 해도 남이섬의 입장객은 27만 명에 불과했으나, 10년이 지난 지금은 한 해 200만 명이 찾는 종합 관광휴양지로 발전되었다. 그렇게 된 데는 강우현 대표의 앞서 가는 상상력과 실천력이 크게 작용한 측면이 있다.

이원승의 라이브 공연 '고래사냥'

이원승의 라이브 공연
 이원승의 라이브 공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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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문화관을 나오니 상상마루 무대에서 라이브 공연이 펼쳐진다. 한때 개그맨으로 활동하던 이원승이 노래를 부른다. 송창식의 '고래사냥'이다. "자 떠나자, 고래 잡으러. 삼등 삼등 완행열차 기차를 타고 어허허허..." 70년대 독재가 판치던 시절, 이 노래를 안 부른 사람이 없을 것이다. 12월 중순의 강추위에도 불구하고 무대 앞에는 많은 사람이 앉아 공연을 즐기고 있다.

다음으로 찾아온 곳은 '갤러리 N'이다. 이곳에는 조소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모두 적나라한 누드로 인간사회를 과장되게 표현하고 있다. 그런데 과장된 표현이 오히려 재미있다. 제목도 친구, 아름다움의 근원, 따사롭다, 사랑이 부족해, 나의 착한 아기 등 인간적이다. 그런데 이들 제목에 한글, 영문, 중문이 병기되어 있다. 예를 들어, 친구에는 Friend, 朋友가 있고, 따사롭다에는 Warmishing, 暖洋洋이 있다.

갤러리 N의 전시물 '친구'
 갤러리 N의 전시물 '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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갤러리 N 옆에는 중화미술관이 있다. 이곳에도 중국의 서예작품과 악기류 등이 전시되어 있다. 이들을 대충 보고 우리는 다시 밖으로 나온다. 날씨가 어찌나 추운지 건물 안으로 들어가 봄을 녹이고 다시 밖으로 나와 자연을 감상하는 일을 반복해야 한다. 밖으로 나오니 이번에는 많은 사람들이 모닥불에서 몸을 녹이고 있다. 이곳 남이섬에는 겨울 추위를 이길 수 있도록 중간 중간 장작불을 피워놓았다. 다들 온몸을 감싸고 추위에 단단히 대비를 했지만 불이 좋아 몰려든 것이다. 그런데 그들의 표정이 하나같이 밝다.

역발상에 대한 생각

역발상나무
 역발상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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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중앙 잣나무길을 따라 북쪽 남이나루 방향으로 걸어간다. 길 왼쪽으로 역발상나무가 보인다. 역발상나무란 죽은 나무를 거꾸로 세운 것이다. 줄기를 땅 속에 묻고 뿌리를 하늘로 향하게 하였다. "거꾸로 반대로 비정상의 정상화, 사람들은 그것을 역발상이라 부른다." 그러고 보니 그동안 우리는 옳고 그름에만 너무 집착한 것 같다. 그것을 같음과 다름으로 보면 안 될까? 그래, 모든 게 생각하기 나름이다.

그렇지만 그게 말처럼 쉽지는 않다. 정상을 추구하고, 남이 한 걸 따라하면 모든 일이 쉽기 때문이다. 또 전례가 있으니 시행착오를 덜 겪게 된다. 그래서 사람들은 남과 다른 새로운 것을 시도하지 못한다. 그러나 세상을 변화시킨 사람은 발상을 전환하고 역발상을 한 사람들 중에서 나온다. 그들은 또한 일상의 일에 의심을 품는다. 그런 면에서 강우현은 미술에서 배운 역발상을 현실에 접목시킨 사람이다. 그를 통해 남이섬은 새롭게 태어났다.

인공나무
 인공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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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사람은 생각과 상상을 머리 속으로만 하지만, 그는 그 발상을 남이섬에다가 펼쳐보였다. 나무를 심어 남이섬의 자연을 바꾸고, 재활용이라는 개념을 도입 문화를 바꿨으며, 공연장과 전시관을 통해 문화를 창출했다. 장군터를 만들고 인어공주 이야기를 만들어 스토리텔링을 강화하더니, 2006년 3월 1일에는 남이나라 공화국의 독립을 선언했다. 35만㎡의 가장 작은 나라, 그곳에는 외교장관, 국방장관, 환경청장이 있다. 앞으로 문화장관도 임명할 예정이고, 20여 개국 대사도 임명할 예정이다. 앞으로 남이나라 공화국이 어떻게 더 변신할지 두고 봐야겠다.


태그:#남이역사문화관, #민영휘, #민병도, #겨울연가, #역발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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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심분야는 문화입니다. 유럽의 문화와 예술, 국내외 여행기, 우리의 전통문화 등 기사를 올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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