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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먹어야 산다. 먹는 활동을 통해 에너지를 얻고 우리 몸을 유지할 수 있다. 하지만, 먹을거리는 늘 불안하다. 수입식품, 식품첨가물, 화학조미료, 유전자조작식품, 환경호르몬, 농약 등 먹을거리 안전을 위협하는 많은 요인들이 있기 때문이다. 이들을 피해서 먹자니 먹을 게 없는 거 같고, 정보도 부족하다. 그렇다고 내가 먹는 모든 것을 농사지어 먹을 수도 없는 현실. '생태적으로 건강하게 지어진 먹을거리를 믿을 수 있는 유통구조를 통해 내 밥상에 올리는' 먹을거리 주권이 과연 나에게는 있을까? 나에게는 얼마만큼의 먹을거리 선택권이 있을까? 지금 우리 먹을거리 현실을 살펴보고 식량주권을 지키기 위해 새롭게 불어오는 착한 먹을거리에 대해 다섯 번에 걸쳐 살펴보고자 한다. <기자주>

통조림 식품에서 환경호르몬 물질인 비스페놀 A(이하 BPA)가 검출될 수 있다는 것은 이미 많은 모니터링과 연구를 통해 밝혀진 사실이다. BPA는 통조림의 오염과 부식을 방지하기 위한 코팅 물질로 사용되는데, 이 코팅 물질이 어느 정도의 온도에서 얼마나 보관되었는지, 통조림 안에 든 식품은 무엇인지에 따라 캔의 부식되는 정도는 달라진다. 환경호르몬 물질인 BPA가 용출돼 캔 안의 식품으로 옮겨가면 식품을 오염시킨다.

최근 환경호르몬 물질 BPA에 대한 새로운 문제들이 제기되고 있는 만큼 심각성도 크다.

하나는 BPA가 인체에 흡수되었을 때 유방암·전립선 암 등 생식계의 암을 발생시키고, 당뇨·비만 등을 유발할 수 있다고 보고됐다. 둘째는 '양'에 대한 논란이다. 그간 어떤 유해한 물질이 어느 정도 양일 때 인체에 영향을 미치는 지의 논란은 끊임없이 반복돼 왔다. 이런 논란이 있을 때마다 화학물질을 이용해 제품을 생산하는 업체들은 모든 화학물질들은 독성이 있으나 독성을 일으키는 양 이하는 괜찮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BPA의 '양'에 대한 새로운 논란이 일고 있다. 그중 하나를 소개하면 터프스 대학교의 애나 소토 연구팀은 BPA가 기존의 독성학자들이 실험한 것보다 200만 배나 낮은 농도로 존재할 때도 내분비계 교란을 일으킨다고 밝혔다.

환경호르몬의 위험성을 경고한 <슬로우데스>의 저자 릭 스미스와 브루스 루리에는 책에서 BPA는 지극히 낮은 용량으로도 내분비계를 교란하는 효과를 보이기 때문에 용량 규제를 통해서는 소비자의 안전을 확보할 수 없다고 밝혔다.

우린 생활 속에서 얼마나 BPA에 노출돼 있을까

발암물질없는사회만들기 국민행동은 19일 오전 서울시교육청앞에서 '환경호르몬 통조림, 언제까지 아이들에게 먹여야 하나?'를 주제로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발암물질없는사회만들기 국민행동은 19일 오전 서울시교육청앞에서 '환경호르몬 통조림, 언제까지 아이들에게 먹여야 하나?'를 주제로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 이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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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이렇게 위해성이 제기되는 BPA는 어떤 과정을 통해서 주로 우리 몸 속으로 들어오게 되는 것일까?

폴리카보네이트라고 불리는 마치 유리처럼 생긴 플라스틱 용기(밀폐용기, 물병, 젖병 등에 사용됨)는 그 안에 음식을 보관할 경우, BPA가 용출, 음식을 오염시킬 수 있다. 통조림이나 음료 캔의 코팅 부분도 부식될 경우, 코팅제가 녹으면서 음식으로 전이·노출된다.

치과 치료 과정에 쓰이는 '레진'이라는 물질 또한 장기간 우리 입안에 있게 되면 몸으로 BPA가 전이될 수 있다. 감열처리된 영수증 또한 피부접촉을 통해 BPA에 노출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BPA는 열이 가해지면 용출이 더 잘 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이중 통조림 캔은 BPA의 주요 노출원으로 꼽힌다. 올해만 해도 그랬다. 미국 FDA는 지난 5월 <농업식품화학지>에 총 78개 캔 제품 중 71개 통조림에서 BPA가 검출됐다고 밝혔다. 이 연구는 지난 2007년 미국의 시민단체 EWG(환경작업그룹)가 실험했던 97개 제품 중 55개 통조림에서 BPA가 검출된 결과를 재확인한 것이었다.

특히 캔으로 포장된 콩깍지(green bean)에서는 730ppb 정도의 BPA가 검출됐으며, 이는 콩깍지 1회 제공량 만으로도 영구적인 독성을 일으킬 수 있다.

지난 10월 국정감사 기간 중 박병석 민주당 의원이 통조림 식품에서의 BPA검출 결과를 발표하며, 어린이들의 건강이 우려되니 정부와 산업계가 안전성 확보를 위해 노력해 줄 것을 요청했다. 11월에는 하버드 보건대학원 연구팀이 통조림 수프를 먹을 경우 직접 만든 수프를 먹을 때보다 소변에서 검출되는 BPA 농도가 12배나 높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이처럼 통조림 캔 식품의 안전성에 대한 문제제기가 이어졌지만 식약청은 지난 3월 유아용 젖병에 BPA 사용을 금지한다는 입법 예고를 한 것 외에는 통조림 캔 식품에 대한 어떠한 관리 계획도 발표하고 있지 않다.

이에 '발암물질없는 사회만들기 국민행동(준)(이하 발암물질 국민행동)'은 우선 화학물질의 피해로부터 민감한 어린이들의 급식용 식자재 통조림 캔 식품이 BPA에 오염되지 않았는지 조사를 진행했다.

조사 대상 품목은 학교 초등학교 급식 식자재 납품 목록과 그간 연구 모니터링을 통해 BPA 용출이 잦아 우려되는 품목이었다. 또한 다양한 품목에서의 용출 정도를 확인하기 위해 과일, 야채, 어류, 육류, 소스류 등 다양한 식품군 등을 고려해 총 29개의 통조림을 선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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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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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사결과, 총 29개 식품 중 25개 식품인 86%에서 BPA를 검출할 수 있었다.  BPA가 검출된 25개 식품의 BPA 농도는 4.01~281.09㎍/㎏(=ppb, part per billion, 10억 개 중 하나)였다. 밑의 도표에서 보듯이 가장 높은 BPA가 검출된 것은 꽁치로 281.09㎍/㎏였으며, 토마토케첩에서 가장 낮은 BPA 4.08㎍/㎏가 검출됐다.

굴소스 2개, 돈가스 소스 및 오이피클 2개 제품에서는 BPA가 불검출됐다. 통조림 내 식품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다양한 종류의 식품에서 BPA가 검출된 것이다.

이중, 꽁치통조림은 조사제품 4개 모두에서 BPA가 157.73~281.09㎍/㎏ 검출됐다. 이는 검출되지 않거나, 혹은 10㎍/㎏ 미만으로 검출된 다른 제품들과 비교해도 월등히 높은 수치다.
그림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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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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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PA로부터 국민의 건강을 지키기 위한 각계의 노력

BPA의 안전성에 대한 논란은 이미 수십 년간 반복돼 온 만큼, BPA의 안전성에 대한 연구와 이로부터 안전한 제품을 만들기 위한 기업들의 노력도 계속 돼 왔다.

지난 2006년 우리나라 한 방송사가 '환경호르몬의 역습'이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BPA가 사용된 폴리카보네이트 플라스틱 용기에서 BPA가 용출되어 내분비계 이상을 일으킨다고 방송했다. 이 논란 이후 국내 최대의 식품밀폐용기이며 폴리카보네이트 밀폐용기를 생산하던 대표적인 회사인 락앤락은 올해 4월 BPA를 사용하지 않고 신소재로 개발된 플라스틱 밀폐용기 BPA 프리 시리즈를 도입, 연간 250억 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지난 8월에는 한국소비자원이 영수증 등에서 환경호르몬 물질인 BPA가 검출되었다며, 영수증 취급 업무자나 영유아가 있는 가정의 주의가 필요하다고 권고했다.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BPA'는 생식(生殖)기관에 독성을 야기할 수 있는 물질이다.

이어 10월 국정감사에서는 박병석 의원이 통조림 제품에서 환경호르몬 물질인 BPA가 검출됐다고 발표했다. 박 의원은 "비스페놀 A(BPA)에 대한 지속적인 모니터링을 해야 한다"며 "우선 어린이들이 즐겨 먹는 통조림 제품에 대해 비스페놀 A(BPA)를 낮추기 위한 학계·산업계와 정부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우리나라와는 달리, 외국에서는 적극적인 대안 마련이 이어지고 있다. 

미국의 식품유통 2위 회사인 크로거(2010년 822억 달러 매출)는 BPA를 소비자가 우려하는 화학물질로 인식하고 BPA를 제한하려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크로거는 물컵이나 고무젖꼭지와 같은 영유아용품에서 BPA를 제거하는 것을 최우선 순위로 정하고 지난 2007년부터 영유아용품 제조사들에게 크로거는 BPA가 포함된 제품을 취급하지 않겠다는 통보를 했다. 현재 영유아용품에서 BPA가 포함된 제품을 발견할 수 없을 정도로 완벽하게 전환했다.

우리나라에서도 문제가 된 적이 있는 출력용 영수증에서도 BPA 제거를 위해 노력 중이다. 크로거는 2011년 말까지 소비자들은 완벽하게 BPA가 없는 영수증을 받게 될 것이라고 발표했다.

세계적 영유아 제품 기업인 거버는 지난 2006년 유아용 젖병에 함유된 BPA가 내분비계 장애를 유발할 수 있다는 보고서가 나오자 젖병 제조업체 본 프리를 설립하고 BPA가 없는 젖병을 생산하고 있다. 이어 2009년 3월에는 미국 6대 우유병 생산 업체(아벤트, 디즈니 퍼스트이어스, 거버, 닥터브라운, 플레이텍스, 이븐플로우 등)가 "BPA 함유 젖병생산 중단 합의"했다.

크로거를 비롯한 CVS, Kmart, Safeway, Sears, Toys R Us, Walmart, Wegmans Foods and Whole Foods 등 대형마트들은 매장 내에서 단계적으로 BPA를 철수하겠다고 밝혔다. Eden Foods, Muir Glen(General Mills의 자회사)은 BPA 프리 통조림 제품을 생산하고 있다.

일본 대다수의 제조회사는 1997년에 BPA 사용을 줄이거나 없애기 위해서 캔 라이닝을 자발적으로 바꿨는데, 이는 건강에 대한 우려 때문이었다. 2003년 일본의 한 연구는 시민 소변 중 BPA 농도가 캔 라이닝을 바꾼 후에 50%까지 감소했다고 보고했다.

언제까지 위험한 통조림 식품을 아이들 급식에 올릴 것인가

추운 겨울철이면 더욱 생각나는 따뜻한 캔커피.
 추운 겨울철이면 더욱 생각나는 따뜻한 캔커피.
ⓒ 엄지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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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정부는 통조림 캔에서 얼마나 BPA가 용출되는지 기준을 설정(용출량 규정 0.6ppm 이하, 현 EU기준와 동일)해 관리하고 있으며 이를 세계적 수준이라고 말한다. 더이상의 안전관리 강화 방안은 언급도 하지 않는다. 이 규정이 너무 약하니 관리 기준을 강화해야 한다는 요구가 거센 데도 말이다.

발암물질 국민행동은 정부에 '통조림 제품에서 BPA가 검출되지 않도록' 관리 기준을 마련할 것과 자발적으로 영유아 어린이집, 유치원과 학교 급식 자재에는 BPA 코팅이 되어 있는 통조림 캔을 사용하지 말 것을 권고한다. 이미 BPA 프리 제품의 생산이 이루어지고 있고, 통조림 외의 다른 포장재 제품의 판매도 일반화되어 있는 만큼 문제가 되고 있는 BPA 용출이 우려되는 통조림 제품을 아이들 급식 식자재로 굳이 사용할 이유가 없다.

우선적인 조치가 취해지고 난 후, 어린이 급식용으로 제공되는 통조림 캔에 대해 "BPA로부터 안전"하다는 인증제도를 도입해야 한다. 아이들 급식 식자재로 사용되는 통조림 캔에 대해 정부는 안전관리 기준을 신설하고, 이 기준에 따라 BPA가 용출되지 않는다는 인증마크를 부여해 어린이 건강을 보호해야 한다.

또한 시민들이 이를 인식하고 제품을 구매할 수 있도록 제품 포장재에 경고 문구를 붙여야 한다. 겨울철 따뜻한 캔 커피를 마실 때, 아이들에게 만들어 줄 참치 통조림을 고를 때, 스파게티 소스를 고를 때 적어도 우리는 그 제품의 안정성에 대해 알 권리가 있다.

'사전 예방적 원칙'이라고 부르는 철학이 먹을거리만큼은 확실히 적용돼야 한다. 한 번 먹은 음식은 다시 뱉어내지도 못한 채 우리 몸의 일부가 되니 말이다. 그 물질의 위해성이 완전히 입증되기 전이라 해도 가능성이 충분하다면 그 물질에 대한 적절한 안전관리 조치를 취해야 한다. 그것이 정부의 역할이다. 그리고 국민들은 적절히 제공된 정보를 통해 안전한 제품을 선택할 수 있는 권리를 가져야 한다. 이 또한 식량주권이다.


태그:#환경호르몬, #비스페놀A, #발암물질국민행동, #서울환경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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