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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6월 13일 저녁 여의도 KBS앞에서 이명박 정권 공영방송 장악음모 저지를 위한 촛불집회를 열고 있는 시민들이 '퇴진 최시중, 사수 정연주'가 적힌 현수막을 들고 있다.
 2008년 6월 13일 저녁 여의도 KBS앞에서 이명박 정권 공영방송 장악음모 저지를 위한 촛불집회를 열고 있는 시민들이 '퇴진 최시중, 사수 정연주'가 적힌 현수막을 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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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위반(배임)'

이 무시무시한 죄목은 2008년 8월 19일, 검찰이 나를 기소하면서 적용한 것이다. 그리고 1심과 2심에서 모두 무죄 판결을 받은 이 사건은 "이명박 정부 들어 진행된 검찰 수사 중 법조계에서 가장 황당한 수사로 꼽는 사례"(<한겨레> 11월 1일자)가 되었다. 일부 로스쿨에서는 나의 배임사건이 정치적 이유로 검찰이 자행해 온 '무리한 수사'의 주요 사례로 꼽혀 '케이스 스터디' 대상이 되고 있다는 얘기도 최근 전해 들었다.

'정치적 목적' 외에 달리 설명의 길 없는 황당사건

나의 '배임죄'가 이렇게 '유명'하게 된 이유는 매우 간단하다. 정치 검찰이 상식을 뛰어넘는 무리한 수사, 표적 수사를 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왜 그랬을까. '정치적 목적' 외에는 달리 설명할 길이 없다. '배임죄'는 나의 해임에 핵심 고리로 작용했으며, 그러한 정치적 목적에는 결정적 기여를 했다. 나의 해임뒤 정권의 KBS 직할체제가 가능했던 것이다. 정치 검찰은 그들의 '역할'을 다 한 셈이다. '해임'이라는 목적을 달성했으니까. 그랬기에 1심, 2심 '무죄' 판결도 정치 검찰에게는 별 게 아니었을 터였다. 수사 지휘라인의 고위 검찰들은 모두 탄탄대로의 승진길을 걸어왔다. '무죄 판결'에 대한 응징은커녕 되레 승승장구의 출세가도를 달려왔던 것이다.

자, 이제 로스쿨에서 '케이스 스터디'까지 되고 있는 '정연주의 황당 배임사건'을 한 번 자세하게 들여다보자. (사건의 내용이 좀 복잡하지만, 가능한 쉽게 풀어서 설명할 터이니, 독자 여러분들은 인내심을 갖고 차근차근 읽어주시면 고맙겠다. 그래야 이 역사적인 '황당 사건'을 제대로 이해할 수가 있게 된다).

때는 1993, 94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국회의 KBS 국정감사에서 '준조세 성격의 수신료 수입' 부분에 대해 왜 법인세 등 세금을 내느냐는 국회의원의 지적이 있었다. 그러자 1994년 11월, KBS는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그동안 세금을 더 많이 내서, 국가가 '부당이득'을 취했으니 이를 내놓으라는 취지의 소송이었다. 이른바 '부당이득금 반환청구 소송'이었다. 이 소송 건은 나를 '배임죄'로 고소(2008. 5. 14)한 조아무개 KBS 직원이 혼자 전담했다.

국가를 상대로 한 '부당이득금 반환청구 소송'의 내용은 쉽게 이야기하면 수신료가 과세 대상이 아닌데, KBS가 이를 과세대상으로 포함시켜 과다하게 법인세 등을 납부했다, 그렇게 '과다 납부'한 금액이 '부당이익'에 해당되니 이를 되돌려 달라는 것이었다. 법률적으로 좀 어렵게 표현한 소송문건에는 이렇게 되어있다.

수신료는 방송 용역(서비스)의 대가가 아닌 준조세여서 이에 대한 세금납부는 법률상 무효이므로 1989년부터 1994년까지 사이에 공사(KBS 지칭)가 납부한 세금 중 수신료 수입에 대해 납부한 세금 284억 원을 부당 이득금으로 반환하여 달라.

1994년부터 시작된 KBS-국세청 간의 '세금 분쟁'

2008년 8월 8일 오전 정연주 사장 해임을 위한 이사회가 열리는 여의도 KBS본관 3층에 경찰 병력이 투입되어 직원들과 몸싸움이 벌어진 가운데, KBS 로고가 새겨진 유리문 뒤에서 한 노조 간부가 상황을 지켜보고 있다.
 2008년 8월 8일 오전 정연주 사장 해임을 위한 이사회가 열리는 여의도 KBS본관 3층에 경찰 병력이 투입되어 직원들과 몸싸움이 벌어진 가운데, KBS 로고가 새겨진 유리문 뒤에서 한 노조 간부가 상황을 지켜보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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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는 이런 취지의 소송을 1994년 11월에 서울지방법원에 제기했다. 1심 재판은 3년 가까이 진행되어 1997년 8월, 판결이 내려졌다. KBS가 패소했다. 판결의 요지는 '수신료는 방송 서비스의 대가가 아니라 공영방송 사업이라는 공익사업의 경비 조달을 충당하기 위한 특별부담금에 해당하고 그에 대한 세금납부는 위법한 것이지만, KBS가 아무런 이의 없이 자진해서 세금을 납부하였고, 국정감사에서 지적이 되자 비로소 소송을 제기한 점 등에 비추어 기존의 세금 납부가 당연 무효는 아니므로 부당이득이 아니다'는 것이었다.

1심에서 패소한 KBS는 항소했다. 그러나 항소심도 1998년 8월, 1심과 같은 취지로 KBS의 항소를 기각했다. 2000년 2월 말, 대법원에서도 원심을 확정했다. KBS는 '부당이득금 반환 소송'에서 모두 패했다.

그런데 이 재판에서 KBS는 비록 패소했지만, '수신료가 방송 서비스에 대한 대가가 아니라 (준조세에 해당하는) 특별부담금이고, 수신료에 대한 세금납부는 위헌'이라는 사실을 법원으로부터 인정받았다.

여기서부터 KBS와 국세청 사이에 기나긴 세금 분쟁과 소송이 이어지기 시작했다. 먼저 KBS는 '수신료가 특별부담금'이라는 판결을 근거로 하여 국세청을 상대로 세금을 되돌려 달라고 요청했다. 전문용어로는 '법인세(부가세) 감액경정 청구'였다. (법률 용어도 그렇고, 세금 관련 용어도 그렇고 참 복잡하고 어렵다. 그냥 쉽게 '세금 깎아서 돌려 달라' 하면 될 것인데, '감액경정 청구'라는 어려운 표현을 썼다).

국세청에서 이를 거부했다. 그러자 KBS는 국세청을 상대로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국세청에서 '세금 깎아서 돌려 달라'는 요구를 거부했는데, 이러한 국세청의 '거부' 조치를 법원에서 '취소'해 달라고 행정소송을 제기했던 것이다. 이 경우에도 법률용어는 참 어렵고 복잡하다. '법인세(부가세) 감액경정청구 거부처분 취소' 소송이다.

이 소송은 1999년 9월부터 시작되었다. 경아무개 변호사가 이 소송의 대리인이 되었다. 그는 나를 배임죄로 고발한 조아무개와 함께 검찰의 참고인으로 '배임'의 논리 제공에 주요한 역할을 했다.

6년 동안 17건, 끝이 보이지 않는 소송

지난 2008년 8월 6일 방송장악·네티즌탄압저지범국민행동은 서울 여의도 KBS본관앞에서 '정권 하수인 감사원' '청부감사 원천무효' 등의 피켓을 들고, '부실 경영 및 인사권 남용'을 이유로 KBS 정연주 사장에 대해 해임을 요구한 감사원을 규탄했다.
 지난 2008년 8월 6일 방송장악·네티즌탄압저지범국민행동은 서울 여의도 KBS본관앞에서 '정권 하수인 감사원' '청부감사 원천무효' 등의 피켓을 들고, '부실 경영 및 인사권 남용'을 이유로 KBS 정연주 사장에 대해 해임을 요구한 감사원을 규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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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KBS와 국세청 사이의 세금 분쟁은 이 소송이 끝이 아니었다. 2001년 2월 초부터 시작된 언론기관에 대한 국세청 세무조사가 끝난 뒤 국세청은 되레 세금을 왕창 더 부과했다. 법인세만도 1996년도 분 151억 원, 1997년도 분 233억 원, 1998년도 분 67억 원, 1999년도 분 347억 원, 2000년도 분 212억 원을 부과했다.

KBS는 이러한 법인세 추징금이 부당하다며 국세청을 상대로 다시 소송을 제기했다. 법인세를 추가로 더 매긴 결정을 취소하라는 '법인세 부과처분 취소 소송'이었다.

이리하여 KBS와 국세청 사이에는 1999년부터 시작하여 2005년 말 서울고등법원의 조정으로 매듭지어질 때까지 모두 17건의 소송이 진행 중이었고, 당시까지 있었던 1심 판결의 결과는 KBS 입장에서는 7승9패(1개 사건 미판결)였다.

그렇다면 KBS와 국세청 사이에 왜 그렇게 많은 세금 소송이 진행되었고, 그 소송의 진행이 위에서 보는 것처럼 6년간 진행되었는데도 끝이 보이지 않았을까.

이유는 뜻밖에도 간단하다. KBS의 수입은 수신료와 광고 수입(대체로 4 대 6의 비율)은 확실하게 분리되는데, 비용에서 이를 비과세(수신료)와 과세(광고수입)로 구분하는 일이 쉽지 않다는 점이다. 그래서 세금을 매기는 과세금액을 어떻게 정하는가 하는 문제를 둘러싸고 분쟁이 끊이지 않았던 것이다. 만약 수신료 수입과 광고 수입에 꼬리표가 붙어 있다면 지출 내역도 비과세와 과세가 구분이 될 터인데, 돈에 꼬리표가 없다 보니, 그걸 가려내는 방법이 늘 분쟁의 소지였던 것이다.

검찰 주장대로면 KBS, 법인세 한 푼도 낼 필요 없어

<정연주의 증언> 표지
 <정연주의 증언> 표지
ⓒ 오마이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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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나를 고발한 조아무개, 그와 함께 소송을 해온 경아무개 변호사, 그리고 나를 배임죄로 기소한 검찰의 주장은 이러하다. 법인세 경우를 가지고 설명하면, 수입에서는 수신료가 비과세니 전체 수입에서 이 부분(40% 정도)를 제외한다. 그리고 비용 부문에서는 KBS의 특성상 이를 분리하는 것이 불가능하니, 이를 모두 비용으로 처리해야 한다. 이럴 경우 수신료 수입을 제외한 수익(전체 수익의 60% 정도)에서 '전체 비용'을 제하고 나면 수익은 항상 마이너스가 된다. 따라서 법인세를 한 푼도 안 내도 된다.

KBS가 국세청을 상대로 한 소송에서의 주장도, 그리고 검찰이 내게 배임죄를 뒤집어씌우면서 배임액수를 계산할 때 주장의 핵심 근거도 바로 이 논리였다.

그러니까 검찰의 배임죄 적용 논리, 나를 고발한 조아무개의 고발 논리의 핵심은 이렇다. KBS의 특성상 비용은 절대 분리할 수 없으니, 국세청을 물고 늘어져서 끝까지 재판을 하면 그동안 낸 세금을 모두 받아 낼 수 있으며, 국세청은 다시 세금을 부과할 수는 없다는 게 골자였다. 그렇게 끝까지 재판을 하면 결국은 이길 텐데, 정연주 사장이 연임에 눈이 멀어 2005년의 적자를 모면하고자 서둘러 법원 조정을 통해 세금 문제를 끝냄으로써 다 받을 수 있는 돈을 포기하고 일부만 돌려 받았으니, 배임이라는 것이었다.

이런 논리와 주장이 성립되기 위해서는 ▲ 1심 승소 판결이 대법원에서도 그대로 유지될 것 ▲ 국세청은 KBS에 세금을 모두 환급해주고 난 뒤 다시 세금을 부과하지 않을 것 ▲ 설령 국세청에서 다시 세금을 부과할 경우에라도 KBS가 다시 소송을 제기하여 이 소송에서도 대법원까지 모두 승소하게 될 것 등 기적이 전제되어야 한다.

나의 배임죄는 이처럼 구체화되지도 않은, 구체화될 수도 없는 '승소금액'을 전제로 하여 만들어진 황당한 것이었다. 그런데 이건 한 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황당한 내용은 이밖에도 참 많았다. 그런 내용을 가지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치르고, 자원과 시간을 낭비해야 했는지….


태그:#정연주, #KBS, #조세 소송, #정치 검찰, #황당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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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동아일보 기자, 한겨레 워싱턴 특파원, 논설주간, kbs 사장. 기록으로 역사에 증언하려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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