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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용지원센터
 고용지원센터
ⓒ 홍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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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2011년 고용전망 보고서에서 한국의 실업수당(실업급여) '소득보전율'이 꼴찌라고 지적했다. 그러니까 노동자가 실직하기 전의 임금과 비교해 실업수당이 어느 정도 되는가를 조사한 것이다. OECD 자료에 따르면 한국 실업수당의 소득보전율은 30.4%로 1위인 룩셈부르크 85.1%에 비해서는 1/3 정도밖에 되지 않는 수준이고, 이탈리아 46.7%, 폴란드 44.1%보다도 훨씬 낮다고 한다.

이미 시민사회에서는 2010년부터 한국의 실업수당이 수급액수가 너무 적고 기간도 짧아서 효과가 적다며 수급액수를 높이고 기간도 연장할 것을 요구해왔다. 현재 실업수당을 받기 위해서는 고용보험 가입기간이 180일 이상이 되어야만 가능하다. 그런데 갈수록 단기간 파트타임 노동, 단기계약직이 증가하고 있는 상황에서 고용보험가입기간 180일을 채우기가 쉽지 않은 게 현실이다.

특히 한국의 실업수당 문제점으로 많이 지적되는 것은 자영업자, 청년실업자, 비정규직 등이 많이 제외되어 있다는 것이다. 연구자들에 따르면 고용보험에 가입되지 못한 국민들, 그러니까 실업수당을 전혀 받을 수 없는 사각지대에 있는 국민의 숫자는 약 1000만 명에 달하는 것으로 조사되고 있다.

한국노동연구원의 조사에 따르면 실업수당을 받지 못한 이유로 54%가 '고용보험 미가입', '자발적 이직' 23.5%, 그리고 '보험기간이 모자라서'라는 이유가 13.4%에 달했다.

실업수당 받기가 하늘의 별따기

실제 청년유니온의 한 조합원은 물류센터에서 일하면서 받는 임금이 간신히 최저임금 수준에 달하는 정도라 스스로 고용보험을 비롯한 4대보험 가입을 거부하고 이 돈을 임금으로 받기도 했다. 임금 수준이 너무 낮다보니 4대보험 가입을 회피하게 되고 이러다 보니 실제 실직시에 실업수당을 받지 못하는 일이 발생하는 것이다. 이 조합원은 이후에 프랜차이즈 빵집에서 일했지만 이때도 고용보험 가입일수가 모자라서 실업수당을 받지 못했다.

결국은 이후에 행정인턴으로 4개월을 더 일해 고용보험 가입일수를 모두 채우고 나서야 태어나서 처음으로 실업수당을 받을 수 있었다. 처음으로 실업수당을 받게 된 그 조합원은 "실업수당을 받아서 안정적으로 다음 직장을 찾을 수 있는 조건이 되었다는 게 너무 좋기는 하지만 받을 수 있는 기간이 너무 짧아서 초조함을 느낀다"고 말한다.

실업급여는 최장 6개월을 받을 수 있도록 되어있지만 대부분은 3개월에서 4개월 수준에서 지급된다. 그 조합원은 실업수당이 끊기기 전에 다시 계약직으로 취업이 되어 생활을 유지할 수 있었다. 비정규직으로라도 취업을 하는 것이 다행이라면 다행인 것이다.

또 다른 조합원은 결핵을 앓게 되어 다니던 직장을 다시 그만두게 되었다. 그래서 병으로 인한 실직이라는 이유를 근거로 실업수당을 신청하기 위해 고용지원센터를 찾았지만 본인이 병으로 인해 일을 할 수 없게 되었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한 너무나 복잡한 절차들로 인해 결국 실업수당을 받을 수 없게 되었다.

정부가 매년 고용보험기금이 적자라는 이유를 들어 실업수당 부정수급자를 적발한다는 명목하에 관리를 지나치게 엄격히 하다보니 오히려 실업수당을 받아야 할 사람들이 받지 못하게 되는 일들도 일어나는 것이다.

실업수당, 너무 많이 주던데요?

청년유니온 토론회. 조합원들이 노동현장에서 자신이 겪은 일들을 이야기하고 있다.
 청년유니온 토론회. 조합원들이 노동현장에서 자신이 겪은 일들을 이야기하고 있다.
ⓒ 청년유니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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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태어나서 처음으로 실업수당을 받게 된 청년유니온의 한 조합원은 이렇게 말했다.

"실업수당 많이 주더라구요."

아니 이게 무슨 말인가? OECD가입국 중에서 꼴찌에 해당하는 한국의 실업수당이 많다고?

사정은 이렇다. 그 조합원은 파견회사에 등록되어 한 공기업에 사무직 파견노동자로 1년 가까이 일을 했다. 임금은 기본급 최저임금 90만8000원, 여기에 점심식사비 18만 원이 추가되었다. 그러나 건강보험, 국민연금, 고용보험 등으로 사회보험료가 제외되자 그에게 실제 지급된 임금은 98만 원이었다.

그렇게 1년을 일하고서 계약이 만료되고 실업수당을 받기 위해 고용지원센터를 찾아갔다. 고용지원센터에서 실업급여 신청을 하고 받게 된 실업급여는 최저임금의 90% 그러니까 86만 원이었다. 하루 8시간씩 때로 야근을 불사하며 한달내내 일해서 번 돈이 98만 원인데 일을 그만두고 받게 된 실업수당이 86만 원…. 일할 때 받았던 임금과 큰 차이가 나지 않았다.

비정규직으로 일하면서 워낙 저임금을 받다보니 정작 OECD 최하위 수준의 실업수당 액수가 자신이 노동하며 받던 임금과 차이가 없게 되어버린 것이다. 한마디로 웃지도 울지도 못하는 상황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실업수당, 더 당당하게 더 충분히 받자

도시노동자 평균임금이 2백몇십만 원의 수준인 상황에서 90만 원 정도 하는 실업수당 액수는 OECD에서도 꼴찌에 가까울 정도로 적은 액수인 것이 맞다. 그러나 한 달에 90만8000원의 최저임금만 간신히 받는 비정규직 청년들에게 실업수당은 때로는 제법 많은(?) 액수가 되기도 한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기분이 썩 좋지는 않다. 그 조합원은 이렇게 말한다.

"내가 그렇게 고생하며 일하던 노동의 가치가 결국은 실업상태에 있을 때와 차이가 없다는게 참 씁쓸하게 느껴졌다."

이처럼 한국의 실업수당은 그 액수와 규모, 대상자 범위 등 다양한 문제들을 안고 있다. 실업을 사회구조적인 문제로 보지 않고 개인의 잘못이나 능력의 문제로 보는 시각이 한국의 실업수당제도를 발전하지 못하게 한 것은 아닌지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실업수당은 일정기간 성실하게 노동한 것에 대한 또 다른 대가이며 헌법에 보장된 국가가 국민에게 일할 기회를 제공하는 의무를 다하지 못함에 대한 보상이기도 하다. 더 당당하게 많은 사람들이 실업수당을 받을 수 있고 더 충분히 받을 수 있어야 할 것이다.

덧붙이는 글 | 필자는 국내 최초의 세대별 노동조합 '청년유니온'에서 정책기획팀장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태그:#실업수당, #실업급여, #청년유니온, #조성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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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리적 보수에서 성찰적 진보가 함께 하는 평범한 시민들의 정당. 새로운선택 공동대표를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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