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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부터 2011년 <오마이뉴스> 지역투어 '시민기자 1박2일'이 시작됐습니다. 이번 투어에서는 기존 '찾아가는 편집국', '기사 합평회' 등에 더해 '시민-상근 공동 지역뉴스 파노라마' 기획도 펼쳐집니다. 이 기획을 통해 지역 문화와 맛집, 그리고 '핫 이슈'까지 시민기자와 상근기자가 지역의 희로애락을 자세히 보여드립니다. 어느덧 마지막, 이번엔 서울·경기·인천입니다. [편집자말]
고농도 방사선이 조사된 월계동 도로. 통행 인구가 많고 상가가 밀집한 구간이지만 원자력안전위원회는 도로 방사능 피폭시간을 '매일 1시간'으로 규정했다. 아스팔트 해체 작업은 상가와 주택 건물의 문턱 바로 앞까지 이뤄졌는데, 주민들은 도로와 바로 인접해 생활해왔다는 의미다.
 고농도 방사선이 조사된 월계동 도로. 통행 인구가 많고 상가가 밀집한 구간이지만 원자력안전위원회는 도로 방사능 피폭시간을 '매일 1시간'으로 규정했다. 아스팔트 해체 작업은 상가와 주택 건물의 문턱 바로 앞까지 이뤄졌는데, 주민들은 도로와 바로 인접해 생활해왔다는 의미다.
ⓒ 이지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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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월 1일, 인구가 밀집한 서울의 한 주택가 도로에서 고농도의 방사선이 확인됐다. 한국사회에서 전례 없는 방사선 오염 사건의 시작을 알리는 소식이었다. 사실 방사선 오염은 주로 핵발전소 인근에 사는 주민들이 감당해야 할 고통 정도로 간주됐다. 앞서 올해 초 포항과 경주지역 도로도 방사선에 오염된 것으로 드러났지만, 주목조차 받지 못했다.

물론, 지난 3월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국민들 사이에 일본에서 유입되는 공기와 음식물에 방사성물질이 섞였을지도 모른다는 불안은 퍼졌지만, 방사선은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니기에 대부분 의심하는 정도에 그치고 말았다.

그런데, 인간의 오감으로는 감지할 수 없는 방사선의 존재가 노원구 월계동의 도로를 측정하던 계측기의 화면을 통해 드러났다. 처음 조사를 실시했던 환경운동연합과 '방사능으로부터 아이들을 지키려는 모임(차일드세이브)'은 도로 바닥에 가까울수록 방사선량이 높게 나타났다는 점을 근거로 아스팔트를 오염원으로 지목했다.

실제로 다음날 원자력안전기술원의 정밀 측정 결과, 방사성물질이 도로 포장재에 혼입됐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도로에서 방사선 조사가 이루어지는 동안 학교에서 나와 집으로 돌아가는 어린 학생들이 그곳을 지나갔다. 가까운 초등학교는 현장 구간으로부터 80m 남짓 떨어져 있었다.

11월 3일, 월계동의 다른 도로에서 추가로 높은 방사선이 확인됐다. 앞서 주택가보다 구간의 길이가 두 배 긴 이 도로는 고등학교와 전철역을 사이에 두고 상가와 주택이 밀집해 인구와 차량의 통행이 잦은 곳이다. 두 구간의 도로는 모두 2000년에 시공됐다.

방사선 오염 위험성을 축소해온 한국정부

11월3일 방사성 세슘137이 검출된 노원구의 한 아스팔트 도로에서 간이 방사선 계측기가 시간당 최대 1.74마이크로시버트를 나타냈다. 이는 서울지역의 평균 자연 방사선량인 0.12마이크로시버트의 14배 수준이다. 이날 환경운동연합과 차일드세이브 등은 도로 인근 주민들에 대해 정부가 건강 역학조사를 실시하라고 촉구했다.
 11월3일 방사성 세슘137이 검출된 노원구의 한 아스팔트 도로에서 간이 방사선 계측기가 시간당 최대 1.74마이크로시버트를 나타냈다. 이는 서울지역의 평균 자연 방사선량인 0.12마이크로시버트의 14배 수준이다. 이날 환경운동연합과 차일드세이브 등은 도로 인근 주민들에 대해 정부가 건강 역학조사를 실시하라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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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스팔트에 섞여 들어간 방사성물질의 종류와 농도가 밝혀지면서 모두 놀랄 수밖에 없었다. 건축물과 토양을 비롯한 일상 공간에서 주로 나타나는 자연 방사성물질 라돈과 달리, 문제의 아스팔트에는 인공 방사성 핵종인 세슘137이 검출됐기 때문이다. 핵분열 과정에서 생성되는 방사성 세슘은 체내로 들어갈 경우 세포나 유전자를 공격해 암을 비롯한 질병을 일으키는 독성물질로 알려져 있다. 

세슘137의 반감기가 30년이란 점을 염두에 둔다면, 아스팔트가 시공되고 10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방사능의 초기 농도가 거의 유지되고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우연히 그곳을 지나던 어느 시민에 의해 계측기 경보가 울리지 않았더라면, 인근 주민들이 고농도 방사선에 노출됐을 기간이 얼마나 더 늘어났을지 아무도 모른다.

지금까지 복잡한 핵발전 기술의 통제나 방사선 오염과 관련된 정보는 주로 핵산업계와 소수의 전문가들이 독점하고 공식적인 평가를 내려왔다. 정부가 국내에서 가장 노후한 고리1호기의 수명연장 평가보고서를 공개하지 않는 것은 하나의 예시일 뿐이다.

'원자력 진흥'을 전면적인 국가정책으로 내세우는 한국 정부는 핵발전소와 방사선 오염에 대한 중요 정보를 공개하지 않거나 위험성을 축소했다는 논란에 끊임없이 휩싸여왔다. 월계동 방사성 아스팔트의 경우에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지만, 이전과는 조금 달랐다. 시민과 환경단체가 문제를 먼저 확인해서 알렸고, 무엇보다 오염원이 누구나 접근 가능한 주택가 도로였기 때문이다.

사실상 주민보호엔 무심했던 원자력안전위원회

공교롭게도, 교육과학기술부에서 분리돼 원자력 안전규제를 책임지는 독립기구로 지난 10월 26일 신설된 원자력안전위원회는 출범한 지 일주일 만에 방사성 도로 문제와 맞닥뜨리게 됐다. 그래서 방사성 아스팔트 처리나 건강영향 평가 대목은 원자력 안전에 대한 당국의 신뢰성을 가늠하는 일종의 지표가 됐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사건 발생 뒤 40일이 지난 현재까지 원자력안전위원회는 방사선 방호의 책임기관으로서 주민 보호에는 사실상 무심했을 뿐 아니라 무능력했다.

월계동 아스팔트에 고농도 방사성물질이 함유돼 있는 것으로 규명됐지만, 원자력안전위원회는 인근 주민들의 방사선 피폭량은 기준치 이하라며 "안전에 문제가 없다"고 단언했다. 원자력안전위는 "지역 주민이 받을 수 있는 연간 방사선량은 0.51-0.69밀리시버트(mSv)로, 원자력안전법에서 정한 일반인 연간 선량한도인 1밀리시버트 미만"이라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방사성 아스팔트에 대해 '중저준위 방사성폐기물'에 해당한다고 인정하면서도, 원자력안전위가 이를 안전하다고 평가하는 근거는 뭘까?

앞서 언급한대로, 월계동 고등학교 앞 도로의 경우 통행량이 많고 상가가 밀집한 구간이다. 그런데 원자력안전위원회는 도로에서의 방사선 노출 시간을 '매일 1시간'으로 가정했다. 10년을 이곳에서 살았다는 주민은 <국민일보>와 한 인터뷰에서 "항상 차가 다니는 도로이기 때문에 먼지가 날리고 바로 옆에 주택가와 상가가 있어 우리들은 사실상 24시간 방사능에 노출된 상태였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정부 관계자는 "도로에 붙어서 24시간 생활하는 사람은 없다"고 잘라 말했다.

어떻게 현장의 생활환경에 대해 정부 관계자가 주민들보다도 더 확신하는 것일까. 피폭량은 방사선의 세기와 시간에 비례하기 때문에, 주민들이 얼마나 방사선에 노출됐는지는 건강영향을 평가하는 데 중요하다.

왜 1시간일까? 월계동 사건과 비교할 만한 사례가 있다. 지난 10월 일본 도쿄도 세타가야구 주택가의 한 도로에서 고선량의 방사선이 계측됐을 때 문부과학성은 '매일 8시간' 기준을 가정했다. 이렇게 계산하면 연간 17밀리시버트의 피폭량에 해당해 월계동 수치의 무려 24배 수준이다. 그런데도 일본 정부가 이렇게 발표할 수 있었던 이유는 후쿠시마 사고 이후 일반인의 연간 피폭선량을 1밀리시버트에서 20배인 20밀리시버트로 상향 조정했기 때문이다.

방사선 피폭이 오히려 건강에 이로울 수 있다?

11월4일 노원구청이 월계동 주택가에서 방사능 아스팔트를 굴착기를 동원해 걷어내고 있다.
 11월4일 노원구청이 월계동 주택가에서 방사능 아스팔트를 굴착기를 동원해 걷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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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시 사례는 더 흥미롭다. 포항의 송도동 도로에서 시간당 최고 1.22마이크로시버트에 해당하는 높은 방사선이 나타났는데, 포항시는 '매일 10분' 피폭된다고 가정했다. 덕분에 평가된 피폭량은 극미량에 가깝게 계산됐다. 이에 대해 포항환경운동연합은 "송도동의 도로는 시내 한가운데를 관통하는 4차선 도로로 주택, 상가가 늘어서 있어서 주민들의 왕래가 빈번한 곳"이라고 반박하며 주민들과 함께 도로의 재포장을 요구하고 있다.

정부마다 임의적인 기준을 적용해 방사선 피폭량을 평가하지만 '기준치 이하'라는 결과에 도달했다는 점은 동일하다. 기준치 이하라면 "안전하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는 방사능에 대해 "안전하다"는 결론에 도달하기 위해서 매우 자의적인 근거를 들었다고 평가할 수밖에 없다. 정부가 왜 이런 결론에 도달하고 싶어 했는지는 한 핵공학자의 발언에서 엿 볼 수 있다.

방사성 아스팔트가 건강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를 놓고 논쟁이 계속되는 가운데, 지난 11월 21일 대한방사선방어학회는 '서울 노원구 일부도로 방사성 물질 측정 관한 설명회'를 열었다. 표면적으로 이 설명회는 방사선 오염을 둘러싼 일반인의 불안을 해소해준다는 목적으로 열렸지만, 오히려 핵공학자나 방사선의학자들의 초조함을 그대로 드러내는 자리가 됐다.

이날 이재기 한양대 원자력공학과 교수는 방사성 아스팔트 사건으로 인해 사람들이 원자력 기술을 위험한 것으로 간주하게 될 것을 우려했다. 이 교수는 "사소한 방사선 사건을 자꾸 논쟁을 지속하게 되면 다른 국민들로 하여금 (원자력 기술이) 굉장히 위험한 것으로 오해하게 만들고 결국 낙인의 피해를 받게 되는 심각한 사회 문제로 이어진다"고 말했다. 또 낮은 수준의 피폭량에 의한 인체 영향이 아직 과학적으로 검증되지 않았을 뿐더러, 저선량의 방사선 피폭이 '건강에 이로울 수 있다'는 주장이 동물실험 사례를 근거로 제기되기도 했다.

위험한 방사성물질이 아스팔트에 섞여 주택가 도로의 포장재로 쓰였지만, 정부나 원자력안전위원회는 책임을 인정하고 있지 않다. 대신 정부는 주민 뒤로 숨는 방법을 선택했다. 아이를 둔 학부모를 비롯한 주민들의 불안이 커지고, 철거한 아스콘 폐기물을 어떻게 처리할지를 놓고 구청이 발을 동동 구르기만 했을 때도 원자력안전위원회는 자신의 역할을 '기술적 자문'으로 한정했다. 지금까지도 330톤에 이르는 방사성 아스팔트는 일반 천막에 덮인 채 마들공원과 구청 뒤 공영주차장 부지에 나누어져 보관 중이다.

자발적 방사선 감시 운동의 시작, 다 정부덕분

11월16일 원자력안전위원회 앞에서 서울환경운동연합과 마들주민회 등 시민단체가 정부에 방사능 아스팔트 폐기물 처리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11월16일 원자력안전위원회 앞에서 서울환경운동연합과 마들주민회 등 시민단체가 정부에 방사능 아스팔트 폐기물 처리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 한숙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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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계동 주민들에게 방사성 아스팔트 사건은 아직 끝나지 않은 문제다. 환경단체와 주민들의 요구로 서울시는 전문가팀을 꾸려 건강조사를 진행 중이다. 또 2000년 이후 시공된 서울지역 전체 도로 5760구간을 대상으로 방사선 조사가 확대 실시됐다. 지자체는 방사성물질이 자신의 관할 구역 도로에서 나타났다는 이유로 무리할 정도의 행정역량을 집중해 후속 대책 마련에 매달리고 있지만, 정작 원자력안전위원회는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더 심각한 문제는 '제2의 월계동'이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도로뿐만 아니라 대학병원과 인천의 초등학교 운동장에서까지 평균선량을 웃도는 방사선이 계측됐다. 생활 주변에서의 방사선 오염이 전국적으로 확인되기 시작했다. 원자력안전위가 올해 말까지 도로포장과 관련된 정유, 철강, 아스콘 업체에 대해 실태조사를 벌이겠다지만, 방사선 오염이 도로를 넘어 이미 훨씬 더 광범위하게 존재해 왔다는 의미다.

월계동 사건을 계기로 방사성물질의 일상적 이동과 관리에 대한 정보 공개가 이루어져야 한다. 11월 말, 유럽에서 핵폐기물 수송을 반대하며 철로를 점거한 대규모 시위가 열린 모습이 보도됐지만, 아직 우리에게 생소한 장면이었다. 그런데 이런 시위가 가능한 것은 방사성폐기물의 이동에 대한 정보가 일반에게 투명하게 공개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국의 사정은 다르다. 예를 들어, 노원구 공릉동에 있는 원자력연구원의 원자로에서 나온 사용 후 핵연료가 1985년 대전으로 이송됐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그리고 13년 뒤 트럭에 실은 299개의 사용 후 핵연료가 인천항을 통해 미국으로 나갔다는 정보를 인근 주민들은 알고 있었을까? 만약 차량이나 선박의 사고 따위로 일부의 핵연료라도 유출된다면, 핵발전소 사고에 버금가는 방사선 오염으로 이어질 텐데 말이다. 따라서 핵물질과 방사성폐기물에 대한 정보 공개는 방사선 위험을 소통하기 위해서 우선 전제될 조건이다.

원자력안전위원회는 '생활주변에서 방사선 이상준위가 발견되는 경우 국민의 불안을 조기에 해소하기 위하여' 생활방사선기술지원센터을 운영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방사선 이상준위를 발견하기 위해서는 방사선 계측기가 있어야 가능하기 때문에, 시민들이 이것을 발견하기는 쉽지 않다. 또 시민들이 원자력 안전 당국을 얼마나 신뢰할지도 의문이다. 월계동 사례를 통해 이제 방사능 방호 당국은 오히려 국민의 신뢰로부터 크게 멀어졌기 때문이다.

정부가 핵기술 진흥 정책을 근본적으로 포기하지 않는 한 정부에 대한 국민들의 불신도 쉽게 사그라지지 않을 것이다. 후쿠시마 사고 이후 일본에서 그랬듯, 방사성 아스팔트 사건을 계기로 한국에서도 자발적인 방사선 감시 운동이 시작된 이유도 그 때문이다.

덧붙이는 글 | 이지언 기자는 서울환경운동연합 활동가입니다.



태그:#방사선아스팔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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