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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스코틀랜드의 하이랜드 투어(Highland Tour)를 다니면서 버스를 많이 타고 너무 먼 거리를 이동했다. 순간 가장 하고 싶은 일은 침대에 누워서 다리를 쉬는 일이었다. 전과 다르게 여행할 때 다리가 많이 피곤하다.

우리는 에딘버러 역에서 이층버스를 타고 숙소에 돌아온 뒤 침대에 누워서 눈을 붙였다. 이대로 잠이 들면 너무 아깝겠지 하는 생각을 하면서도 눈꺼풀이 아래로 내려간다. 오늘 저녁에는 굳이 어디를 가겠다는 계획은 만들어놓고 있지 않았다. 가족들이 투어로 피곤할 거라고 예상했지만 나도 몸이 피곤한 상황이 됐다.

북반구에서도 한참 높은 위도에 위치한 영국 에딘버러(Edinburgh)는 밤이 깊어도 해가 지지 않는다. 깊은 밤 거의 잠이 들 뻔했지만 누군가 나를 흔들어깨운다. 나의 사랑하는 딸, 신영이였다. 신영이가 피곤하다는 나와 아내를 깨운다. 에딘버러까지 와서 이 아까운 시간에 잠만 자고 있느냐는 거였다. 내가 가족과 외국 여행을 할 때 자주 사용하던 말을 이제 신영이가 하고 있다. 나는 더 쉬고 싶어하는 아내를 흔들어 깨웠다. 자다가 일어날 때의 단 몇 초만 잘 참으면 좋은 일이 벌어질 거라고 이야기했다.

칼튼 힐 오르는 길. 도시에서 벗어나 한적한 언덕 길을 오른다.
▲ 칼튼 힐 오르는 길. 도시에서 벗어나 한적한 언덕 길을 오른다.
ⓒ 노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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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호텔 남쪽 바로 앞에 솟아 있는 '칼튼힐(Calton Hill)'에 오르기로 했다. 우리는 영국의 쌀쌀한 날씨에 놀라 런던에서 산 외투를 몸에 걸쳤다. 해가 지면 에딘버러에는 추위가 찾아올 것이다. 나의 가족은 다시 에딘버러의 거리 속으로 들어섰다. 에딘버러 로열마일(Royal Mile) 동쪽 끝에 자리한 칼튼 언덕은 기원전 600년경부터 역사가 시작된 곳이다. 우리는 에딘버러의 역사가 시작된 곳을 오르기 시작했다.

한적한 언덕길을 걷는 것은 가족 소풍을 나온 듯 흥겹다. 신영이 손에는 신영이가 영국에서 산 기념품 중에 가장 애지중지하는 그로밋(gromit) 인형이 들려있다. 언덕을 오르는 나즈막한 흙길에는 국화꽃 닮은 이름 모를 야생화가 피어 있고 가까운 바다에서 날아온 갈매기는 머리 위에서 날갯짓을 하고 있다.

하늘의 해는 점점 지평선을 향해 가고 있지만 그리 어둡지는 않다. 칼튼힐의 관목 사이로 에딘버러의 짙은 회색빛 건물들이 빛을 발하고 있다. 해 질 녘에 에딘버러의 칼튼힐에 올라간다는 것은 정말 즐거운 일이다. 이 평안함. 마음 속 깊이 일어나는 평안함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고도를 옆에 둔 한적한 자연 속에서 석양을 보고 바다를 볼 수 있다는 기대 때문일까?

칼튼 힐 정상. 높은 언덕은 아니지만 에딘버러와 북해가 한눈에 보인다.
▲ 칼튼 힐 정상. 높은 언덕은 아니지만 에딘버러와 북해가 한눈에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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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덕을 오를수록 에딘버러 시내는 우리 눈앞에 더욱 넓게 펼쳐진다. 칼튼힐의 가장 높은 곳까지 오르는 것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는 일이 아니었다. 내가 묵던 숙소에서 언덕 정상까지는 15분 정도밖에 걸리지 않았다. 구시가인 로열 마일에서 걸어와도 20분이면 언덕 위에 오를 수 있을 것 같다.

에딘버러의 아름다움은 한눈에 들어온다. 그리 높지 않은 곳임에도 에딘버러 시내는 눈 안에 가득 들어온다. 노을을 받기 시작한 에딘버러 시내와 북해의 바다가 불타기 시작하고 있었다. 칼튼힐 정상의 건축물 사이로 보이는 푸른 언덕에는 마지막 남은 햇살이 감돌고 있었다.

내셔널 모뉴먼트. 파르테논 신전을 닮은 이 기념물은 미완성인 채로 아름답다.
▲ 내셔널 모뉴먼트. 파르테논 신전을 닮은 이 기념물은 미완성인 채로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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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덕 정상에 도착하면 사람들의 시선을 한 눈에 잡아끄는 멋진 신전 같은 건물이 당당하게 서 있다. 미완성의 파르테논 신전, 내셔널 모뉴먼트(National Monument)의 기둥에 석양의 태양이 반사되고 있다. 그리스 아테네의 파르테논 신전을 모사한 이 거대한 기념물은 나폴레옹이 이끌던 프랑스군과의 전쟁 당시 산화한 스코틀랜드 출신 전몰자들을 추모하기 위해 지어졌다. 사진으로만 보던 것과는 달리 내셔널 모뉴먼트의 웅장함은 보는 사람을 압도했다. 높은 건축물에 올라가는 계단도 없고 키 작은 사람은 올라설 수도 없을 정도로 기단 돌의 높이가 높은데, 많은 젊은 사람들이 용케도 모뉴먼트 위에 올라가 놀고 있다.

이 건축물은 예산이 부족해서 미완성인 채로 남았기 때문에 더욱 신비감을 불러일으킨다. 오랜 세월 동안 세월의 흐름 속에 무너져내린 건물을 보고 있자니 고대 유물을 대하는 것 같다. 미완성인 채로 남은 모습은 마치 스코틀랜드의 불완전한 정치적 독립을 나타내 보이는 것만 같다. 이곳에서 내려다보는 에딘버러는 에딘버러 성에서 내려다보는 에딘버러보다도 더 격조가 있다.

칼튼힐 정상에는 스코틀랜드를 상징하는 기념비적인 건축물들이 서 있다. 중세의 고건축물들은 칼튼힐의 운치를 더하고 있다. 언덕 정상의 남쪽에 세워진 타워형 기념비는 영국인들이 숭배해 마지않는 해군 제독, 허레이시오 넬슨(Horatio Nelson)을 기리는 넬슨기념탑(Nelson Monument)이다. 이 기념탑은 1805년에 벌어졌던 프랑스 해군과의 트라팔가(Trafalgar) 해전 승리를 기념해서 해전 10년 후에 세워졌다.

넬슨 기념탑. 탑 위에 오르면 에딘버러를 바라보는 전망이 일망무제다.
▲ 넬슨 기념탑. 탑 위에 오르면 에딘버러를 바라보는 전망이 일망무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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넬슨 기념탑의 143개나 되는 계단을 걸어서 30m를 오른다. 칼튼힐과 에딘버러, 그리고 북해의 바다는 일망무제다. 외국의 여행지에서 가장 높은 곳에만 올라 구경을 하는 것은 너무 단순한 여행이라고 하지만 이 칼튼힐, 넬슨기념탑에서의 정경을 경험한다면 아무도 높은 곳에 너무 힘들게 올랐다는 불만을 제기하지는 못할 것이다. 이곳은 정녕 에딘버러에 와서 놓치고 가면 후회할 풍경이다.

스코틀랜드의 슬픈 역사에 대한 나의 선입견 때문인지 칼튼힐의 아름다운 정경과 석양은 왠지 애잔하다. 애잔한 아름다움이라고나 할까? 아름다우면서도 마음 한 구석을 슬프게 하는 감상이 일어난다. 한적한 언덕과 여유 있는 여행자들, 북해에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이 나를 감상에 젖게 하고 있다. 해가 지는 이 아름다운 시간에 이 놀라운 정경을 보고 있음에 행복감에 젖어든다.

에딘버러 구시가. 짙고 육중한 중세의 건축물들이 압권이다.
▲ 에딘버러 구시가. 짙고 육중한 중세의 건축물들이 압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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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딘버러 구시가 쪽에는 로열 마일을 둘러싼 중세 시대의 짙고 탈색된 건물들이 가득하다. 눈앞에 꽉 찬 건축물들의 육중함에는 사진만으로는 설명이 안 되는 감동이 있다. 에딘버러의 정경을 내려다보지 않고 어떻게 영국을 보았다고 할 수 있겠는가?

포르투갈 대포 영국이 버마에서 가져온 대포를 전시하고 있다.
▲ 포르투갈 대포 영국이 버마에서 가져온 대포를 전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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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영이가 갑자기 아래쪽으로 뛰어 내려간다. 언덕 아래에서 갑자기 대포가 나타났기 때문이다. 이 대포는 19세기 말에 버마를 침공한 영국군이 뺏어 왔다가 에딘버러에 기증한 포르투갈의 대포이다. 대포는 시간의 흐름 속에서 청동의 푸른 녹이 배어 있고 대포의 손잡이는 수많은 사람들의 손을 타서 반질반질하다. 바다를 바라보는 자연이 으뜸인 칼튼힐은 성격이 모두 다른 인문 유산을 만나는 즐거움도 있다.

해는 바다를 둘러싼 만(灣)을 넘어 스코틀랜드 육지 위로 점점 사라지고 있다. 환상적인 석양을 바라보는 곳으로 유명한 이 칼튼 언덕 위로 석양을 즐기려는 여행자들이 한둘씩 올라오고 있다. 해가 사라지는 속도와 언덕에 올라오는 사람의 수가 비례하는 것 같다. 에딘버러의 중세 건축물들 위로 석양이 남기는 오렌지 빛이 계속 스며들고 있다. 야경으로 옮겨 가기 전의 햇빛의 아름다움을 한껏 즐기기 위해 우리는 마치 얼음같이 멈춰 있다.

시립 천문대. 과거에는 천문대 위로 별이 쏟아졌을 것이다.
▲ 시립 천문대. 과거에는 천문대 위로 별이 쏟아졌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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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돔이 아름다운 구 시립천문대(The City Observatory) 건물 앞에서 에딘버러 시내와 북해의 바다를 기막히게 바라볼 수 있는 벤치를 발견했다. 해가 지기 조금 이른 시간에 칼튼힐에 오른 나의 가족은 여유 있게 벤치에 앉아 이야기를 나눴다. 신영이는 벤치에 앉아서도 그로밋 인형의 사진 연출에 여념이 없다. 신영이가 연출하는 작은 사진집의 제목은 '칼튼힐에 나타난 그로밋'이다.

칼튼 힐의 그로밋. 신영이는 그로밋에게 에딘버러의 석양을 구경시켜 주었다.
▲ 칼튼 힐의 그로밋. 신영이는 그로밋에게 에딘버러의 석양을 구경시켜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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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벤치 옆의 시립천문대 건물은 1812년에 만들어졌으니 에딘버러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 중의 한 곳이다. 건물이 한적한 이유는 천문대가 19세기 말에 다른 산 속으로 옮겨지고 지금은 에딘버러 천문학회 건물이 되었기 때문이다. 천문대가 이사 간 이유는 산업발전이 이루어진 에딘버러가 밤에 너무 밝아서 별 보기가 힘들어졌기 때문이라고 한다. 19세기 초반에는 이 언덕 위에 별빛이 쏟아지고 있었고 그 아래에 어둠에 잠긴 에딘버러와 북해의 바다가 있었을 것이다.

칼튼 힐의 석양. 말로 표현할 수 없이 아름다운 곳이다.
▲ 칼튼 힐의 석양. 말로 표현할 수 없이 아름다운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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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내와 함께 이국적인 스코틀랜드 자연의 풍광에 감탄하고 있었다. 에딘버러 시내에서 멀지 않은 곳에 풍요로운 자연이 있었고, 어두워지고 있는 하늘 앞에 푸른 언덕이 맞닿아 있었다. 언덕에 서 있는 나무 몇 그루와 야생화는 바다에서 불어온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

영국에서 태어난 점토 만화영화인 <월레스와 그로밋(wallace and gromit)>을 사랑하는 신영이. 신영이는 그로밋을 이 칼튼힐까지 데려왔다. 신영이에 의해 칼튼힐 잔디밭에 앉은 그로밋도 에딘버러의 석양을 바라보고 있다. 이곳 영국에서 만난 인형, 그로밋은 신영이와 함께 우리 가족의 여행을 함께하고 있다. 나도 잠시 현실세계가 헷갈린다.

노래를 부르는 사람들. 자연에서 노래를 부르는 이 있어 인생은 행복하다.
▲ 노래를 부르는 사람들. 자연에서 노래를 부르는 이 있어 인생은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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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앞의 경사진 잔디밭에 한 무리의 에딘버러 젊은 친구들이 자리를 잡았다. 그들은 기타를 들고 기타 선율에 맞춰 흥겹게 노래를 불렀다. 남녀 혼성 중창단은 잘 어울려서 칼튼 힐 하늘 위로 고운 노래를 퍼뜨리고 있었다. 나와 나의 가족은 아무 말 하지 않고 그 음악에 심취했다.

아일랜드의 음악영화, <원스(once)>를 떠올리게 하는 아름다운 음악과 아름다운 사람들이다. 정말 울고 싶도록 아름다운 시간 속에 나의 가족이 있었다. 해는 져서 어두워지고 언덕 위로 갈매기 몇 마리만이 날고 있었다.

덧붙이는 글 | 제 블로그인 http://blog.naver.com/prowriter에 지금까지의 추억이 담긴 세계 여행기 약 280편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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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와 외국을 여행하면서 생기는 한 지역에 대한 궁금증을 해소하는 지식을 공유하고자 하며, 한 지역에 나타난 사회/문화 현상의 이면을 파헤쳐보고자 기자회원으로 가입합니다. 저는 세계 50개국의 문화유산을 답사하였고, '우리는 지금 베트남/캄보디아/라오스로 간다(민서출판사)'를 출간하였으며, 근무 중인 회사의 사보에 10년 동안 세계기행을 연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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