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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부지방인 사천은 12월초에 김장을 한다. 농촌에서도 집집마다 할머니, 아빠, 아이들 할 것 없이 배추, 무를 뽑아 들고 즐거워한다. 그러나 김장하는 속사정을 알고 보면 눈에 보이는 것과 같이 즐겁지만은 않다.

 

김장을 직접 처음부터 끝까지 다 해보면 김장하면 떠오르는게 와! 고생 좀 하겠네 할 것 이다. 하지만, 고생뒤에 낙이 온다고 했던가? 고생한 만큼 뿌듯한 행복이 더 많다.

 

 

우리 집도 주말을 맞아 김장을 계획했다. 그런데 올해는 어머님이 허리수술을 해 나와 아내 둘이서 하기로 하였다. 처음에는 엄두도 안 났지만, 아내와 몇 포기나 할 것인지 정하고, 준비할 재료가 뭔지 따져보니 한번 해볼 만할 것 같았다. 아내도 힘들지만 도와주기로 동의했다.

 

여기서 잠깐! 아내가 동의하고 남편이 김장을 한다? 좀 의아해 하실 분이 있을 것 같아 잠깐 설명하면, 아내가 1년 전(2010년 12월) 위암 수술 후 음식조절을 해 살도 많이 빠지고, 기운이 없어 비실대기 때문에 내가 김장을 해야 한다. 그리고 추가로 우리집은 원래 남자인 내가 요리에 관심이 많은 편이다.

 

토요일 오전, 처가에 있는 배추와 무를 뽑고 고춧가루, 깨 그리고 삼천포 처 이모부가 배에서 직접 잡아서 이모가 담갔다는 멸치젓갈 등을 얻어 집으로 가져왔다. 가져온 걸 아파트 거실에 펼쳐놓으니 가관이다. 입이 떡 벌어진다. 김장은 한다고 했지만 약간 긴장되고 엄두가 나질 않는다.

 

서현이 보고 배추를 하나씩 욕실로 달라하고 반을 쪼깨어 욕조에 절이기 시작했. 절이기를 30여분, 벌써 허리가 아프기 시작한다. 허리가 끊어질 것 같다는 말이 생각났다. 문득 어머님 생각이 난다. 이전까지 매년 어머님와 함께 김장을 했는데 그때마다 절이는 것은 어머님이 다하셨다. 거의 100포기를 절였으니 아! 고맙고 죄송하다. 늘 옆에서 보조만 하고 있었으니...

 

 

배추를 절여 놓고 양념과 섞을 재료들을 손질한다. 배추 나르는 걸 도와준 아내가 피곤하다면 한숨 자고 나와 재료손질을 도와준다. 역시 재료 손질은 나보다 아내가 훨씬 빠르고 잘한다. 무채, 갓, 생강, 마늘, 쪽파, 파 등등 양념에 들어갈 재료들을 바쁘게 손질해 준다.

 

젓갈, 고춧가루, 깨를 멸치·다시마 육수와 함께 잘 섞은 다음 각종 재료들과 다시 한번 잘 섞어준다. 생각보다 양념이 잘 된 것 같다. 맛이 꽤 괜찮다. 역시 재료가 신선하고 좋아야 좋은 맛이 나는 것 같다.

 

남자인 내가 김장을 직접 하려 한 이유도 아내에게 좋은 재료로 만든 건강한 김치를 먹게 해주고 싶은 마음 때문이었다. 실제 이유는 어머님의 수술로 김장을 못하게 되었지만, 김치를 안 먹을 수도 없고 그렇다고 마트나 쇼핑몰에서 파는 김치를 사서 먹을 수도 없기 때문이었다. 이왕이면 좋을 걸 먹을 수 있으면 좋겠다는 나의 작은 배려이자 사랑인 것이다.

    

 

그리고 다음날, 어제 절여놓은 배추를 잘 헹궈 원기둥처럼 탑을 쌓아 물을 빼고, 서현이를 포함한 우리 4식구가 모여 버무리기 시작했다. 버무리기 시작한 지 2시간 정도가 지나자 허리가 끊어질 듯했고, 발이 저려왔다. 힘들게 버무리기를 끝내면, 김장의 기나긴 1박2일이 끝날 줄 알았다.

 

하지만, 이게 끝이 아니었다. 양념 버무리기를 한다고 꺼내놓은 대야, 소쿠리를 보자 아찔했다. 이걸 또 언제 다 씻나?

 

아내가 정리해서 주기로 하고 내가 욕실에서 대야, 소쿠리 기타 잡다한 그릇들을 씻기 시작했다. 1시간 정도가 지나서야 정리가 마무리 되었다. 말 그대로 심신이 녹초 일보직전! 그대로 거실 바닥에 누웠다. 이렇게 편안할 수가! 말 그대로 편안함의 극치가 느껴진다.

 

 

처음에는 '건강한 김치를 먹자'라는 마음으로 김장을 시작했지만, 내가 직접 어머님처럼 주도해서 해보니 허리가 아프고 어깨도 아팠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끝날 때까지 계속해야만 하는 일이었다. 그러나 고통 때문인지 몰라도 어머님께 고마움과 죄송스러움이 느껴졌다. 또 지금껏 아내도 어머님 보조로 김장할 때 얼마나 힘들었는지를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었다.

 

나는 여태까지 어머님이 담가주신 김치를 먹은 게 아니라 어머님의 사랑을 먹은 것이었다.

 

일반적으로 사랑을 받았으면 받은 만큼 배풀어야 한다고 한다. 난 김장을 계획하면서 위암 수술 후 많이 먹지도 못하고, 먹고 싶은 것도 참고, 먹더라도 마음적으로 불안한 마음을 갖고 있는 아내가 김치라도 편하게 먹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이번 김장은 아내가 할 일을 내가 해준 게 아니라, 내가 아내에게 해줄 수 있는 사랑을 준게 아닌가 싶다. 그리고 지금 나의 사랑으로 만든 김치를 맛있게 먹는 아내를 보고 있으니 그냥 미소가 지어지면서 좋다. 이런게 행복 아닐까?

 

"우리집 김장은 사랑으로 담근 행복입니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뉴스사천(www.news4000.com)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김장, #김치, #사천, #뉴스사천, #사는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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