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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심청이. 1945년 태화서관에서 발행한 <심청전> 속의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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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먼 아버지를 위해 억척스레 살다 공양미 삼백 석에 몸을 팔아 인당수에 빠졌지만, 옥황상제와 용왕의 도움으로 극적으로 살아나 퍼스트레이디까지 되었다는 심청이. 그의 스토리인 <심청전>을 우리는 '효녀 심청'의 이야기로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지난날 한국 사회에서는 고전문학을 충효니 권선징악이니 하는 도덕적 잣대로만 재단하는 경향이 있었다. 그래서 <심청전>의 최초 독자들인 17~18세기 사람들이 이 책에 공감하고 열광한 진짜 이유에 대해서는 둔감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심청이가 세상에 둘도 없는 효녀였던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심청전>의 작가가 전달하고자 했던 진짜 메시지는 그게 아니었다. 그 메시지는 17~18세기 조선 사람들의 코드를 겨냥한 것이었다.

혹시라도, <심청전> 서두에 있는 "송나라 말년에 황주 도화동에 한 사람이 있었는데, 성은 심이요, 이름은 학규였다"라는 문장을 근거로, 이 책이 중국 송나라 때인 10~13세기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고 오해해서는 안 된다.

김만중이 17세기 후반 숙종·인현왕후·장희빈의 삼각관계를 풍자한 <사씨남정기>를 창작하면서 "명나라 가정 연간(1522~1566년)에 금릉 순천부라는 곳에 명인이 있었다"라는 말로 서두를 시작한 것에서도 드러나듯이, 조선 후기 소설가들 중에는 중국 무대를 빌려 조선을 풍자하는 이들이 많았다.

<심청전> 작가 역시, 동냥질하던 하층민 심청이 일약 황후가 되었다는 '불경스러운' 이야기를 전개하자니, 자기 시대의 조선보다는 먼 옛날 송나라를 배경으로 하는 게 속편했을 것이다. 그러므로 소설에 나오는 '황후' 등의 표현을 보고 이 책이 중국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고 오해해서는 안 된다.

송나라의 광역 지방행정단위는 로(路)인 데 비해 <심청전>에는 도(道)가 등장하는 점이나, <심청전> 속에 양반-상놈 신분구조와 화폐경제 그리고 담배 등이 등장하는 점을 보면, 이 소설은 영락없이 17~18세기 조선을 배경으로 하는 작품이다.

심청전, 조선후기 사람들이 열광한 코드는?

 태화서관이 발행한 <심청전>의 겉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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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18세기 소설답게 <심청전>(완판본)은 조선 후기 사람들이 공감하고 열광할 만한 코드를 담고 있다. 그 코드가 무엇인지를 암시하는 대목들이 <심청전> 끝부분에 집중적으로 배치되어 있다. 그중 네 장면을 찾아보자. 
[장면 1] 황후가 된 심청은 아버지를 찾기 위해 황궁에서 전국 맹인 잔치를 열었다. 잔치 현장에서 아버지를 만난 심청이 "아버지, 제가 정녕 인당수에 빠져 죽었던 심청이에요!"라고 외치자, 그 소리에 놀란 심봉사는 순간적으로 눈이 확 떠졌다. 눈을 뜨는 순간, 하늘에서는 굉음이 울렸다.

만약 여기서 소설이 끝났다면, 이 작품은 전형적인 효녀 소설에 지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 대목에서부터 <심청전>은 효녀 소설에서 인생역전 소설로 전환된다.

심봉사가 눈을 뜨자, 그때 울린 굉음에 놀라 잔치 현장의 맹인 전체가 동시에 눈을 떴다. 그뿐 아니었다. 황궁 밖에 있는 전국의 모든 맹인이 동시에 눈을 떴다. 이 장면에서 작가는 "맹인에게는 천지개벽이나 다름없었다"는 구절을 삽입했다. 불우한 사람들을 위해 세상이 일거에 뒤집히는 짜릿한 카타르시스를 전달하고자 한 것이다.

[장면 2] 심봉사와 심청의 재회 이후, 이 나라에서는 파격적인 인사조치가 연이어 발표되었다. 평생 하층민으로 살아온 심봉사는 황후의 아버지라는 이유로 부원군이 된 데 이어 남평왕(1등급 제후)에 오르고, 길가에서 우연히 만나 심봉사의 애인이 된 안씨는 심봉사의 벼락출세와 함께 정렬부인 및 인성왕후에 올랐다.

심봉사는 심청이 인당수에 빠진 이후 뺑덕어멈과 결혼했지만 뺑덕어멈이 황봉사와 바람이 나서 도망한 뒤, 자기 혼자 심청을 만나러 황궁에 가던 길에 안씨라는 여성 맹인을 만나 부부의 연을 맺었다. 이 덕분에 안씨 부인도 덩달아 벼락출세를 하게 됐다.

보수적인 양반 사대부가 이 대목을 읽었다면, 하층민 심봉사가 부원군이 되는 것까지는 용납할 수 있겠지만, 길가에서 우연히 만나 제대로 혼례식도 치르지 않은 안씨가 하루아침에 부원군의 아내가 되는 것만큼은 도저히 용납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반면, 평민 독자들은 이 대목에서 통쾌함을 느꼈을 것이다.

벼락출세를 한 것은 심봉사 부부뿐만이 아니었다. 공양미 삼백 석에 심청이를 사서 인당수에 빠뜨렸을 뿐만 아니라, 용궁 갔다가 연꽃에 실려 수면 위로 되돌아온 심청이를 건져내 임금에게 데려다준 선박 주인은 태수(군수 급)를 거쳐 자사(도지사 급)의 지위로 뛰어올랐다.

사농공상의 세 번째 계급일 뿐만 아니라 양반 사대부의 무시를 받던 상인이 일약 관찰사 급의 지위에 오른 것이다. 양반들의 비위를 긁고 서민들의 등을 긁어주기 위한 작가의 의도가 엿보이는 대목이다.

[장면 3] 심청이는 몰락 양반의 후손이었다. 아버지 심학규는 기울어질 대로 기울어진 집안에서 태어난 데에다가 10대 후반에는 눈까지 멀었다. 그래서 그는 어려서부터 밑바닥 하층민으로 살 수밖에 없었다.

심봉사는 조강지처인 곽씨 부인을 잃은 뒤 심청이한테 젖을 먹이기 위해 구걸을 하러 다녔고, 어느 정도 성장한 심청이는 아버지를 위해 구걸을 하다가 나중에는 삯일을 하면서 아버지를 봉양했다. 누가 보아도 심청이 부녀는 조선 사회에서 최하위 극빈층이었다. 

그런데 심청이 부녀는 일순간에 인생역전의 주인공이 되었다. 이들의 인생역전은 심청이가 낳은 아들이 태자에 책봉되면서 절정에 달했다. 밑바닥 출신 여성의 몸에서 태자가 태어났으니, 다음 임금은 서민의 혈통에서 배출되는 셈이다. 18세기 초반에 서민 출신인 장희빈의 몸에서 제20대 경종이 태어나고, 천민 출신인 최숙빈의 몸에서 제21대 영조가 태어난 것을 연상케 하는 대목이다.

 바다 속 수정궁에서 어머니 곽씨를 만난 심청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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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면 4] 처음에는 효녀 소설인 듯이 하면서 스토리를 전개하던 작가는 끝부분에 가서 드디어 자신의 속내를 털어놓았다. 다음은 <심청전>의 마지막 대목이다.

"어화, 세상 사람들아, 예와 지금이 다를 소냐. 부귀영화 한다 하고 부디 사람 가볍게 보지 마소. '흥진비래 고진감래(興盡悲來 苦盡甘來)'는 사람마다 겪는 일이라. 심 황후의 어진 이름 길이길이 남아 전한다."

돈 있고 빽 있는 사람들아! 지금 당장의 모습만 보고 사람을 우습게보지 말라! 흥진비래 고진감래라 했다. 즐거운 일이 다하면 슬픈 일이 오고, 괴로움이 다하면 즐거움이 오는 법이니, 온종일 뛰고 뛰어다니며 죽도록 일해도 먹고 살기 힘든 팔자라고 해서 사람 함부로 깔보지 말라! 이것이 작가가 17~18세기 독자들에게 전달하고자 했던 메시지다.

뛰고 뛰고 뛰는 몸이라 괴로웁지만/ 힘겨운 나의 인생/ 구름 걷히고/ 산뜻하게 맑은 날 돌아온단다/ 쨍하고 해 뜰 날 돌아온단다(송대관의 '해뜰날'). 작가는 '서민들도 얼마든지 성공하고 출세할 수 있으니 기죽지 말고 열심히 살라'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었던 것이다.

체제외적·비정상적 방법으로 이루어진 신분이동

건국 100년이 넘은 16세기부터 조선 사회는 체제의 안정기에 접어들었다. 이때부터 양반-상놈 신분구조가 고착화된 탓에, 평민들은 웬만해서는 출세를 꿈꿀 수 없었다. 그런데 임진왜란(1592)이 이런 사회구조에 일격을 가했다. 전쟁으로 인해 사회구조가 타격을 받은 데에다가 서민들이 의병활동에 대거 가담함에 따라, 전쟁 직후인 17세기부터 서민의 지위가 급상승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런 상태에서 농업기술이 발달하고 상공업이 부흥함에 따라, 17~18세기에는 서민들 중에서 벼락출세를 이룩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국가가 권장하는 출세 코스인 과거시험이나 군공을 거치지 않고 전통적으로 터부시 되던 상공업을 통해 출세하는 사람들이 나타났으니, 사회질서가 얼마나 동요했을지 짐작할 수 있다.

반면, 이 시대에는 아무리 양반가의 후손일지라도, 능력이 없으면 책을 덮고 남의 땅에서 품삯을 받고 일해야 했다. 이 때문에 17~18세기에는 신분이동이 매우 활발했다. 돈으로 양반 족보를 사고파는 것은 이 시기의 특징적인 현상이다.

<심청전> 등장인물들의 출세도 과거시험이나 군공 같은 정상적인 루트를 거친 게 아니었다. 옥황상제가 돕고 용왕님이 돕는 등, 체제외적(外的)이고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신분이동이 발생했다. 왕조의 전통적 시스템이 감당할 수 없는 방식으로 신분이동이 이루어진 것이다. 17~18세기 서민들의 출세 역시, 옥황상제나 용왕의 도움을 받는 것과 마찬가지로, 체제외적이고 비정상적 방법으로 이루어졌다.

사실, 17~18세기는 조선·청나라·일본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신분이동이 활발하던 시대였다. 유럽에서는 산업혁명과 시민혁명으로 평민과 귀족의 권력교체가 발생했다. 급격하고도 대대적인 신분이동은 조선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 차원의 트렌드였다.

<심청전>의 작가는 그같은 사회실정에 착안하여 심청이의 벼락같은 인생역전극을 구상했던 것이다. 그런 설정이 당시의 정서와 분위기에 절묘하게 맞아떨어졌기에, <심청전>이 17~18세기 독자들의 환영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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