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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부터 2011년 <오마이뉴스> 지역투어 '시민기자 1박2일'이 시작됐습니다. 이번 투어에서는 기존 '찾아가는 편집국', '기사 합평회' 등에 더해 '시민-상근 공동 지역뉴스 파노라마' 기획도 펼쳐집니다. 이 기획을 통해 지역 문화와 맛집, 그리고 '핫 이슈'까지 시민기자와 상근기자가 지역의 희로애락을 자세히 보여드립니다. 어느덧 마지막, 이번엔 서울·경기·인천입니다. [편집자말]
조선 초기부터 중기까지 수많은 백성이 동원되어 만들어낸 한양(서울) 성곽, 박혀있는 돌 하나하나에 옛 사연과 이야기가 깃들어 있는 것 같다.
 조선 초기부터 중기까지 수많은 백성이 동원되어 만들어낸 한양(서울) 성곽, 박혀있는 돌 하나하나에 옛 사연과 이야기가 깃들어 있는 것 같다.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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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관광객들로 북적이는 서울 광화문이나 경복궁을 지나다보면, 서울을 호위하듯 병풍처럼 서 있는 북악산을 볼 수 있는데, 언제봐도 멋지다. 건축물을 만들 때도 자연과의 조화로움을 추구했던 우리 조상들의 미적 감각이 돋보이는 그림같은 풍경이다.

어느 맑은 날, 그런 풍경 앞에서 우연히도 조금 특이한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북악산 능선위로 띠 같은 게 오톨도톨 줄지어 서 있는 것 아닌가. 이 때가 처음 내가 서울 성곽길의 존재를 알게 되고 관심을 가졌던 순간이었다.

조선을 개국한 태조 이성계는 개성에서 한양으로 도읍을 이전하고 정도전의 지휘 아래 궁궐, 도로, 시장 등 신도시를 건설한 후, 1396년(태조 5년) 2년여의 시간을 들여 한양 둘레에 약 18km의 성곽을 쌓는다.

경복궁 뒤 북악산을 중심으로 인왕산, 남산, 낙산 등 네 개의 산과 그위의 성곽에 둘러싸인 한양을 후손들이 산책삼아 걸어다니게 될 줄 선조들은 예상이나 하셨을까. 서울 성곽길은 이렇게 자손들에게 선사해주는 우리 조상의 선물 같은 것이다. 특히 이 길에는 '성곽 순례'라 해도 좋을 정도로 역사와 풍경과 사람들의 삶이 다채롭게 녹아있다.

서울 성곽길 안내 지도를 보니 동서남북 네 개의 산 주변을 따라 4코스로 나누어져 있다. 각 코스마다 대중교통으로 접근이 용이하니 집과 가깝거나, 찾아가기 쉬운 코스를 고르면 되겠다. 지난 주말(3일), 수도권 전철 2호선을 타고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에 내렸다. 난 사라진 동대문운동장과 그곳에서 멋진 활약을 보여주던 박노준, 김건우 선수를 추억하며 낙산 성곽길 코스를 향해 터벅터벅 걸어 올라갔다.   

성곽길 산책로에서 마주친 흥미로운 '구멍'

동대문에서 걸어 올라간 서울 성곽의 첫 인상은 동네 담장같은 일상적이고 정겨운 모습이었다.
 동대문에서 걸어 올라간 서울 성곽의 첫 인상은 동네 담장같은 일상적이고 정겨운 모습이었다.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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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식 쇼핑몰이 높이 솟아 있는가 하면, 카세트 테이프를 파는 노점이 공존하는 곳에 보물 1호인 동대문(옛 이름은 흥인지문)이 우뚝 서있다. 1900년대 초반 도시 계획에 의해 평지에 있는 성벽을 모두 헐어 문만 덜렁 남아 있는 동대문 너머에 동대문 교회가 자리하고 있고 그 옆으로 성벽이 보일 듯 말 듯 보인다. 낙산 코스라고 불리는 성곽길의 들머리다. 성벽 바깥쪽의 잘 닦여진 산책로보다는 안쪽의 언덕동네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성곽가에서 귀여운 참새들이 짹짹거리며 뛰놀고 있고, 성벽 위에 웬 소쿠리들이 연이어 놓여져 있다. 동네 주민들이 무말랭이, 시래기 등의 찬거리를 햇볕에 말리려고 올려 놓았다. 사적 10호인 서울 성곽이 이 동네에선 정다운 담장으로 변신했다. 성곽길에 버젓이 누워있던 고양이 한 마리가 내 발소리에 슬그머니 동네골목 쪽으로 걸어간다. 고양이를 따라서 언덕동네의 미로같은 골목길을 헤매고 싶은 마음이 불끈 솟았지만, 꾹 참았다.   

잘 닦여져 있는 성곽길 산책로를 걷다가 흥미로운 '구멍'과 마주쳤다. 암문(暗門)이라는 것이었는데, 말하자면 토끼굴이다. 옛날, 급한 일이 있을 때 비밀스럽게 사용했다고 하는데, 이 작은 암문을 통해 성벽 반대편으로 나가면 신세계처럼 다른 풍경이 나타난다. 그런 풍경 중 하나가 이화동 벽화골목이다. 암문을 통과한 후 민가를 향해 3분 정도 걸어 내려가다 동숭 어린이집을 지나면 유명한 이화동 벽화골목이 보인다.

서울 성곽길에는 재미있는 벽화가 그려진 언덕동네가 가까이에 있다.
 서울 성곽길에는 재미있는 벽화가 그려진 언덕동네가 가까이에 있다.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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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품들과 함께 예쁘게 꾸민 담장을 배경으로 데이트 하는 젊은이들, 묵직한 디카를 든 중장년의 사람들까지 찾아와 쓸쓸했을 겨울날의 골목길에 활기를 불어넣어준다. 귀여운 손주와 손을 맞잡고 골목길 계단을 내려오는 할머니가 등장하자마자 모이를 향해 덤벼드는 물고기들처럼 사진가들이 우르르 몰려든다. 아이가 기특하게도 까르르 웃어주자 덩달아 어른들의 표정이 환해지고 서먹했던 분위기가 한순간에 화기애애해진다. 평화의 상징은 비둘기이지만, 아이들은 평화를 만들어 내는 피스 메이커(Peace Maker)다.
    
낙산 성곽길 코스는 시대별로 성곽의 돌모양이 제일 잘보여 한낱 돌덩이에서 역사를 느끼게 해준다. 메주 모양의 돌들이 촘촘히 박혀 쌓여있는 맨 아래 부분은 태조 때, 성곽 밑에 크고 길다란 돌을 받치고 그 위에 메주 모양의 돌을 얹은 부분은 세종 때, 정방향으로 다듬어진 큼지막한 돌이 놓은 부분은 숙종 때 축조된 것이라고 안내 팻말에 잘 나와있다. 조선 전기부터 중기까지의 축성술이 한데 어우러져 역사가 되었다.

조선 초기부터 중기까지 역사의 흐름과 인간의 노고가 느껴지는 다양한 생김새의 성벽 돌들
 조선 초기부터 중기까지 역사의 흐름과 인간의 노고가 느껴지는 다양한 생김새의 성벽 돌들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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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불구불한 골목동네서 마주한 서울 성곽길

낙산 성곽길 코스가 끝나는 나무 계단길을 내려오면 수도권 전철 4호선 한성대입구역이 나온다. 전철역 안으로 들어갔다가 5번 출구로 다시 나와서 다음 코스인 북악산 성곽길의 들머리가 있는 서울 과학고를 향해 15분 정도를 걸어갔다. 동네 골목에서 마주치는 주민들에게 성곽길을 물어보면, 웃으며 혹은 자랑스러운 표정으로 잘 알려준다. 점심밥으로 이 동네의 명물이라는 왕돈가스를 먹으며 다리 힘을 비축했다.  

수목이 풍성해 공원같은 성곽길엔 관광객외에 평상복 차림의 동네 주민들도 많이 눈에 띄었다. 그러고보니 성벽 너머의 동네 전경이 눈에 익다. 간송 미술관, 길상사, 심우장, 쌍다리 기사식당 등의 명소가 있는 성북동이다. 성곽 곁에는 작은 텃밭이며 마을 버스 정류장 옆 연탄창고 등 시골의 정취가 남아있는 언덕동네가 있는데, 예전에 성북동 비둘기를 찾기위해 계절마다 카메라를 들고 방문하던 곳이다. 반가운 내 마음을 알았는지, 때마침 성벽의 토끼굴 암문이 나타났고, 자석에 이끌리듯 토끼굴을 지나 성북동 언덕동네를 향해 내려갔다.        

시골의 정취가 남아있는 성북동 언덕동네를 포근하게 품은 듯한 성곽
 시골의 정취가 남아있는 성북동 언덕동네를 포근하게 품은 듯한 성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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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용운님이 십여년간 살았던 심우장, 방안에 걸려있는 선생님의 초상화를 대하니 마음이 짠하다.
 한용운님이 십여년간 살았던 심우장, 방안에 걸려있는 선생님의 초상화를 대하니 마음이 짠하다.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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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미줄처럼 얽혀있는 미로 같은 좁은 골목길 사이로 만해 한용운님이 살았던 집 '심우장'을 찾아간다. 언제 와도 헷갈리는 골목길인지라 여지없이 지나가는 주민들에게 물어보게 된다. 구불구불한 골목 동네에서 보이는 서울 성곽은 조금은 다른 감흥을 전해준다. 성벽이 동네를 빙둘러서 포근하게 감싸안은 것 같다. 좁은 골목 한 귀퉁이에 독립운동가이자 시인인 만해 한용운 선생님이 일제 치하 때인 1933년부터 10년 정도 묵으셨다는 집 '심우장'이 있다. 마당 한쪽에는 만해가 직접 심었다는 향나무가 여행자를 반기고, 방안에 걸려있는 선생님의 초상화를 대하니 마음이 짠해온다.

동네 주민들을 위해 정자, 벤치, 운동기구 등이 잘 마련된 와룡공원에서 따듯한 포장마차표 커피를 한 잔 마시고 숙정문으로 향했다. 청와대가 가까이에 있어서인지 신분증을 제시하고 패찰을 받아야 하며 오후 3시까지만 출입이 가능하다. 그동안 안 보였던 군인들이 성곽길 곳곳에 까만 점퍼를 입고 서있다. 이런 겨울날 얼마나 추울까 안된 마음에 말이라도 나눠보려고 다가가니, 갓 스무살이 넘은 앳된 얼굴의 청년들이다. "수고 하세요." 위로라고 던진 말에 고맙다고 씩씩하게 대답한다.

겨울날 황량한 산속에서 혼자 보초를 서면 춥기도 하거니와 무척 심심하겠지 하는 생각에 "거동이 수상한 자를 발견했다"며 말을 거니 초점없던 초병의 눈이 팽팽해진다. 손에 쥔 무전기에 힘을 주며 장소와 시간을 물어온다. 성곽길에 앞뒤로 손뼉을 치며 뒤로 걷는 사람이 있다고 했더니 추위와 지루함으로 굳어진 얼굴에 피식 웃음이 번진다.     

창의문 인근 붉은 벽돌집 '동양방앗간', 반갑다

와룡공원에서 창의문까지의 성곽길은 바깥 전망도 좋고 소나무들이 울창한 멋스러운 길이다.
 와룡공원에서 창의문까지의 성곽길은 바깥 전망도 좋고 소나무들이 울창한 멋스러운 길이다.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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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정문을 지나면서 본격적으로 오르막길이 시작되지만 전망은 시원하게 펼쳐져 남산타워가 손에 잡힐 듯 가까이에 보인다. 숙정문은 도성의 북쪽 대문으로, 1413년 풍수 전문가 최양선이 숙정문이 지맥을 손상시킨다는 상소를 올린 뒤 문을 폐쇄하고 성곽길에 소나무를 심어 통행을 금지했다고 한다. 또 이 문이 음양오행 가운데 물을 상징하는 음(陰)에 해당하는 까닭에 나라에 가뭄이 들 때면 기우제를 열고 비가 많이 내리면 문을 닫았다고 한다. 게다가 이 문을 열어 놓으면 장안의 여자들이 음란해진다 하여 항상 문을 닫게 했다니 우리나라 사람들이 옛부터 얼마나 풍수를 신봉했는지 알 만하다.

북악산 성곽길 최고의 전망대이자 산 꼭대기이기도 한 백악마루에 다다랐다. '백악산 342m'라고 써있는 표지석으로 보아 북악산의 옛 이름이 백악산이었나보다. 조선의 태조 이성계가 천도한 한양땅에 경복궁을 지을 때 무학대사는 인왕산 자락에, 정도전은 북악산 자락에 궁궐을 짓자고 주장했다 한다. 결국 정도전의 뜻대로 되었으나 후일 비참하게 죽임을 당하고 말았으니 인생사 모를 일이다.

서울 성곽길에서 가장 경치가 좋은 곳이 이곳 북악산 성곽길, 정확히는 와룡공원~창의문 코스라고 한다. 성벽과 길, 소나무가 한폭의 그림같이 어울려 있는데다 멋진 뿔이 달린 수사슴이 이끄는 사슴가족까지 나타나 걸음은 더욱 더뎌진다. 이 코스의 성곽길을 걷다보면 뭔가가 뒤에서 당기는 것 같아 자꾸 뒤돌아보게 된다. 오른쪽에 있던 성벽이, 돌아서면 왼쪽으로 위치가 바뀌면서 전혀 다른 느낌의 길이 나타난다. 수많은 백성들이 산을 오르내리며 힘들게 쌓은 성벽이다보니 후손된 도리로 쉬이 지나치지 못하고 자꾸 뒤돌아보게 되나보다.

인조반정에서 현대사의 군사 쿠데타까지 굴곡진 역사의 현장이었던 창의문(혹은 자하문)에 도착했다.
 인조반정에서 현대사의 군사 쿠데타까지 굴곡진 역사의 현장이었던 창의문(혹은 자하문)에 도착했다.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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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벽 옆 오르막 계단을 올라오느라 수고했다는 듯 다시 아찔한 내리막길이 이어지더니 마침내 북악산 성곽길의 마지막 관문인 창의문(또는 자하문)에 이르렀다. 다음 코스인 인왕산 성곽길이 가까이에 보인다. 창의문이 서있는 동네는 도심 속의 비밀 정원 같은 곳 부암동. 성곽길 코스가 생겨 예쁜 카페와 식당들이 많이 생겨났지만 내겐 붉은 벽돌을 한 '동양 방아간'의 백발이 성성한 할머니가 여전히 떡을 만들고 있어 더욱 반갑다. 몇가지 가운데 고른 '술떡'을 한입 베어물자 풍겨오는 향긋한 술기운에 취할 것 같다.      

매서운 산바람, 차고 메마른 풍경, 흥미로운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주시는 문화해설사도 나오지 않는 한 겨울의 성곽길 여행은 타 계절과는 사뭇 다른 느낌을 준다. 하지만 역사와 성곽 안팎에서 사는 사람들 그리고 나 자신을 성찰해 보는데 겨울은 오히려 많은 도움이 된다. 여정의 즐거움이나 풍경에 시선이 덜 가니 내 안의 나와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었다. 홀로 걸어가 볼수록 좋은 길이 겨울날의 서울 성곽길이다.

덧붙이는 글 | 매주 월요일은 성곽길이 쉬는날이나 참고하세요.



태그:#서울 성곽길, #숙정문, #창의문, #북악산, #인왕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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