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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지난 6월부터 2011년 <오마이뉴스> 지역투어 '시민기자 1박2일'이 시작됐습니다. 이번 투어에서는 기존 '찾아가는 편집국' '기사 합평회' 등에 더해 '시민-상근 공동 지역뉴스 파노라마' 기획도 펼쳐집니다. 이 기획을 통해 지역 문화와 맛집, 그리고 '핫 이슈'까지 시민기자와 상근기자가 지역의 희로애락을 자세히 보여드립니다. 어느덧 마지막, 이번엔 서울·경기·인천입니다. <편집자말> [편집자말]
길게 늘어선 줄. 버스를 기다리는 도민들.
 길게 늘어선 줄. 버스를 기다리는 도민들.
ⓒ 김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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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대리는 피곤했다. 해가 떠 있는 낮에는 온갖 업무들에 시달린다. 가수 비가 흥얼거리던 '태양을 피하는 방법'이 그에게는 없다. 직장인들에게 지치고 힘든 사바세계의 악령들을 털어낼 수 있는 퇴근길은 '천상의 길 차마고도'와 같다. 영혼을 씻는 '정화의 길'인 셈이다. 하지만, 김 대리는 지친 영혼을 달래는 것조차 힘들다. 집이 너무 멀기 때문이다. 한강 이남 경기도에 산다는 이유로 그의 퇴근길은 '고난의 행군길'이 된다.

김 대리 같은 경기도민이 고난의 행군을 시작하는 곳이 있다. 강남역, 이수역 그리고 사당역. 특히 경기도에 살며 서울의 직장으로 출퇴근하는 '도민들'에게 사당역은 특별한 장소다. 서울과 경기도는 바로 사당역에서 갈린다. 서울의 끝에서 수원·안양권·화성·안산 등에 사는 '도민'을 태우고 달리는 광역버스 노선이 이곳에 몰려 있다. 그리고 사당역엔 24시간 경기도와 서울을 오가는 '전설적인' 7770버스가 있다.

멀리서 다가오는 광역버스 7770의 전조등 불빛이 김 대리의 각막을 자극하면, 그는 <창세기>의 한 구절을 빗대 읊조린다.

"하나님이 나에게 이르시되 퇴근길 경기도민들의 피로가 땅에 가득하다. 네가 탈 방주는 45인승 일반버스지만 족히 70명이 탈 수 있으니라. 지금부터 한 시간이면 집에 갈 수 있을지니, 집에 가서 네가 업은 모든 피로를 쓸어버리라…." (<창세기> 6:13 ~ 7:4 패러디)

'광역버스'라 쓰고 '노아의 방주'라 읽는다

지난 12월 3일, 사당역 주변 풍경.
 지난 12월 3일, 사당역 주변 풍경.
ⓒ 김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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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일 밤 11시, 사당역 4번 출구. 지상으로 올라가는 에스컬레이터는 멈춰 있고, 사람들은 낮은 한숨과 함께 가파른 철계단을 오른다. 버스정류장에서부터 길게 늘어선 사람들, 도대체 끝이 어딘지 보이지 않는다. 서울을 탈출하는 경기도민 얼굴에 피곤이 가득하다. 표정없이 스마트폰을 연신 긁는 사람, 우산 없이 목도리를 두르고 비를 피하는 사람, 담배 피우는 사람....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들은 다양하다. 역 출구에서 수다를 떨다가 "버스다!"라며 뛰어나가는 여대생부터 버스를 기다리다 출출했는지 포장마차로 걸어가는 중년 남성, 술에 취해 눈을 껌벅거리는 피곤한 직장인까지…. 처지는 달라도 늦은밤 이들의 목표는 하나다. '어서, 빨리 '노아의 방주'에 탑승해 빠르게 집에 가는' 것.

김기욱(27)씨는 "강남역에도 버스를 기다리는 경기도 사람들이 많긴 하지만, 사당역도 만만치 않다"며 "(서울의 직장과 경기도 집을) 왔다 갔다 하기 힘들지만, 어쩔 수 없다"고 말했다.

사당역에 정차하는 광역버스 중 7770번은 단연 돋보인다. 이 노선은 사당역과 수원역을 잇는데, 지난 2006년부터 24시간 달리는 버스다.(주말 제외) 출퇴근 시간에는 5~10분, 심야시간대에는 20여 분 간격으로 운행하며 피로에 찌든 경기도민들을 실어 나른다. 

7770번 버스를 타는 승객들
 7770번 버스를 타는 승객들
ⓒ 김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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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가 자주 오는 편이라 편하게 앉아 출퇴근 할 것 같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7770번 버스는 한 번 오면 사람을 가득 태우고 출발한다. 피곤한 이들일수록 1분 1초라도 더 빨리 집에 가야겠다는 의지가 충만하다.

물론 일부러 좌석에 앉기 위해 기다림을 택하는 이도 많다. '조금 집에 늦게 가도, 차라리 편하게 가겠다'는 마음을 가진 이들이다. 유선영(30)씨는 버스 한 대를 보내고 버스 좌석을 '시드 배정'받았다.

"솔직히 이 버스 덕분에 늦은 시각에도 집에 큰돈 들이지 않고 가요. 그래도 힘든 건 사실이죠. 출퇴근길이나 자정 즈음에는 사람이 미어터지니까요."

사회생활 2년 차인 그녀. 유선영씨의 목소리에는 짜증과 애환이 뒤섞여 있다. 그녀처럼 매일 장거리 출퇴근을 하는 경기도민들이 가장 서러운 순간은 언제일까.

"바로 지금이죠. 길바닥에서 이러고 있는 게 참 서럽죠. 솔직히 서울 사람들은 퇴근하고 집에 빨리 갈 수 있잖아요. 그런데 우리는 좀 달라요. 늦게 자고 일찍 일어나야 하죠. 마음 같아서는 서울로 올라와 살고 싶지만, 어디 그게 쉽나요?"

말이 끝나기 무섭게 7770번 버스가 정류장에 들어온다. 사람들은 일제히 버스에 타기 위해 공격적으로 이동한다. 버스를 탄 이들에게서 긴장이 스멀스멀 풀리는지, 버스 유리창에 성에가 뽀얗게 낀다.

취객 보면 화가 나요, 도착 시각이 늦어지잖아요

7770번 심야광역버스는 빠르게 달렸다. 사당역에서 의왕나들목까지 걸리는 시간은 단 10분. 빠르게 달리지만 승객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잠시 눈을 붙인다. 물론 짧은 휴식은 좌석을 확보한 이들의 전유물이다. 그런데 얼마 되지 않아 꿀맛 같은 휴식을 깨우는 날카로운 목소리가 귀를 때린다.

"뭐라고! 너 방금 욕했지? 이 기사가 돌았나, 이런 O○놈이!"
"앉아 계세요! 운전하잖아요!"

7770번 버스 안의 취객.
 7770번 버스 안의 취객.
ⓒ 김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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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객이다. 50대 중후반으로 보이는 한 여성과 버스 기사 사이에 승강이가 벌어졌다. 술에 취한 여성 승객은 요금을 내지 않고 버스에 탔고, 그냥 내리려다가 버스 기사에게 붙잡혔다.
버스 운전석 주변에서 고성을 지르던 그 여인은 이내 버스 기사의 목덜미를 때렸다. 결국, 버스 기사는 인근에서 순찰 중이던 경찰차에 신호를 보냈다. 이내 경찰이 버스에 올랐고, 그녀는 현장에서 체포됐다.

이 광경을 지켜보던 한 승객은 "아주 가끔 이런 광경을 본다"며 "기사님도 화나겠지만, 승객들은 더 화난다"고 한숨을 쉬었다.

그는 "이런 일이 생기면 집에 도착하는 시각이 늦어지잖아요"라며 손목시계를 확인했다.

오전 2시 10분, 버스는 종점인 수원역에 닿았다. 승객들이 모두 내리고 난 뒤, '한 대 맞은' 버스 기사 김재승(50)씨는 지구대로 향했다. 방금 일어났던 사건에 대해 진술하기 위해서였다(덕분에 기자는 목격자로 지목돼 진술서를 작성했다). 진술을 마치고 나온 시각은 새벽 3시 반. 김재승씨는 매우 피곤한 얼굴이었다.

"제 일과요? 7770번 버스가 24시간 운행되고 있지만 버스기사들이 24시간 내내 운전대를 잡지는 않아요. 기본적으로 격일로 근무해요. 하루 근무할 때 평균 17시간 정도 운전대를 잡는데, 그 사이에 8~9번 정도 사당과 수원을 왔다 갔다 합니다. 기사마다 근무 시작 시각이 달라요. 저는 오전 7시 23분에 운행을 시작해 다음날 오전 2시 10분에 끝나죠. 심야 운행을 하시는 분들은 주로 오후 2시께부터 다음날 새벽까지, 이런 식으로 일해요. 심야로 분류되는 시간대에는 수당이 더 붙죠."

하루에 17시간. 왕복 운행 8~9번 정도. 왕복 운행 1회에 평균 1시간 50분 정도가 소요된다. 물론 쉬는 시간도 포함된 시간이다.

"낮에 손님이 뜸할 때 쉬죠. 출퇴근 시간대에는 버스가 추가로 투입되거든요. 그러면 배차 시간이 5~10분대로 줄어듭니다. 손님들은 빨리 가야 하는데, 저희가 쉴 수는 없잖아요."

이 정도면 고된 노동환경이다. 고된 일을 하는 만큼 그에 합당한 대우를 받고 있는지 궁금했다.

"솔직히 급여는 만족하는 편이에요. 한달에 15일 근무한다고 치고 세금 같은 거 다 떼면 250만 원 가량 손에 들어와요. 다른 곳에 비해 처우는 괜찮은 편이죠. 근데 힘든 건 따로 있어요. 버스 기사는 손님들의 짜증도 그대로 받아 실어 날라야 한다는 겁니다."

"얼마나 피곤하면... 잠든 승객 깨우는 게 가장 힘들어"

김대승씨는 취객을 깨우는 일이 제일 힘들다고 말했다.
 김대승씨는 취객을 깨우는 일이 제일 힘들다고 말했다.
ⓒ 김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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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개 승객들의 짜증은 출퇴근 시간에 도로가 꽉 막힐 때 줄줄이 터진다. 이럴 때는 버스 기사에게 향하는 승객들의 '하대'가 절정에 이른다.

"우리도 사람인데, 욕먹는 걸 누가 좋아하겠어요? 도로가 막혀서 내는 짜증은 받아줄 만 하죠. 가장 힘든 건 버스 안에서 잠든 승객을 깨울 때예요. 얼마나 피곤했으면 정신을 놓고 자겠어요. 그런데 술에 취해 잠든 분들은 깨워주고도 욕먹기 일쑤지요. 몇 년 전, 우리 회사에 한 기사가 있었는데요. 여름에 민소매 입은 여성 승객을 깨웠어요. 근데 그 여성분이 성추행으로 경찰에 신고해버린 거예요. 나중에는 잘 해결됐지만, 그런 일이 있으면 저희 같은 기사들은 위축될 수밖에 없죠."

도로 위에서 쏜살같이 달리며 경기도민을 나르는 김재승씨. 그는 매일매일 지친 얼굴로 버스에 오르는 승객들을 보며 어떤 생각을 할까.

"솔직히 조금 미안해요. 요금은 똑같이 광역버스 요금으로 내지만, 서서 가시는 분들이 태반이거든요. 뒷거울로 버스 안을 보면 서서 주무시는 분들도 보여요. 제 마음 같아서는 버스를 늘려서 다들 편하게 집까지 모셔 드리고 싶지요. 그런데 회사 입장에서 보면 수지가 안 맞으니 그렇게 할 수 없을 것 같고…."

노아의 방주를 기다리는 도민들... 애환은 계속된다

다시 돌아온 사당역. 분식 포창마차의 불빛이 따뜻하다.
 다시 돌아온 사당역. 분식 포창마차의 불빛이 따뜻하다.
ⓒ 김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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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4시 반. 모두가 잠든 새벽이지만 버스는 아직도 달리고 있었다. 수원역 옆 7770번 버스 정류장에는 그 시각에도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었다. 옆에서는 택시기사들의 호객행위가 벌어지고 있었다. 택시기사 박현웅(38)씨는 "24시간 버스 때문에 저희 일거리가 줄어든 건 사실"이라며 "그래도 주말에는 사당 가는 손님들을 태울 수는 있어요"라고 말했다. 그래 봐야 주말이다. 한 달에 8번 정도 일거리가 생긴다고 해서 그들의 생활이 나아질 것 같지는 않다.

다시 사당역 4번 출구. 아침이 다가오는 문턱에도 사당역 4번 출구에는 경기도로 돌아가는 사람들이 드문드문 보인다. 정류장 근처에 분식 포장마차에는 사람들이 어묵 국물을 마시며 몸을 녹이고 있다. 이곳에서 일 년 동안 심야에 떡볶이를 팔고 있다는 할머니는 길게 늘어선 '도민'이 안타깝다고 했다.

"밤새 사람이 끊이지가 않어. 여기 앉아서 밤새도록 보고 있으면, 좀 안쓰럽기도 하지. 죄다 내 손주 같은데…. 그래도 어쩌것어? 그냥 힘들어도 버텨야지. 하하하."

그렇게 사당역 주변에는 '특별시민'이 아닌 도민들의 피로와 짜증, 그리고 애환이 담겨 있다. 할머니가 건네준 어묵 국물은 잠시나마 도민들의 애환을 어루만져 준다.

ⓒ 오마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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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광역버스, #경기도민, #시민기자 1박2일, #24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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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기획편집부 기자입니다. 조용한 걸 좋아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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