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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에 있는 대학교에 다니는 학생들은 한번쯤 이 단어를 들어 봤을 것이다. 바로 '지잡대'란 단어다. '지방 잡 대학'이란 뜻을 가진, 이 단어는 지방에 있는 대학을 낮잡게 보는 말이다. 이젠 대학교를 넘어 어디에서든 심심치 않게 회자되고 있다.

대학(大學)이란 곳이 지방에 위치해 있단 이유만으로 '잡 대학' 취급을 받는 것이 안타깝긴 하지만, 요즘같이 취업이 어려울 때 경쟁력 있는 서울 소재 대학이 최선의 선택인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In seoul'의 대학들만이 살 길이라는 정답 아닌 정답을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대학(大學)이란 곳을 잡스러운 대학이라고 표현하는 현실이 안타깝다

나는 '지잡대생'이다. 게다가 한때는 '굶는 과'란 놀림을 받곤 했던 '국문과' 출신이다. 그런 나에게 '취업'은 굉장히 멀게만 보였고, 현재도 그렇다. 이런 자조어린 생각을 하긴 싫지만, 현실이 그러했다. 대학의 간판이 있어야 했고, 학점도 낮아선 안 됐다. 아니, 그건 가장 기본이었고, 토익점수 몇 점 이상에다, 자격증은 몇 개 이상인 '스펙'도 가지고 있어야 했다. 이것 또한 취업으로 가는 '정답의 길'이었다.

은연 중에 의식하고 있었던 그 사실들을 확실히 깨닫게 해 준 일이 얼마 전에 있었다. 바로 1박 2일의 찝찝한 '취업캠프'가 그것이다.  

취업캠프란 '취업역량강화캠프'의 약자로, 오로지 대학생들의 취업만을 목적으로 하는 곳이다. 자기소개서 작성법, 모의면접 및 피드백 등 실질적으로 취업에 필요한 것을 집중적으로 교육한다. 그런 취업캠프가 나와 우리의 현실을 보여줬다. 취업캠프를 통해 전략적으로 취업을 준비해서 정답을 마련하지 않으면, 취업을 달성하기 힘든 현실을 보여주는 것이다.

학생들이 이미지 메이킹 수업을 듣고 있다.
▲ 취업캠프 모습 학생들이 이미지 메이킹 수업을 듣고 있다.
ⓒ 박규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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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업캠프에서 배운 자기소개서 쓰는 법을 필기했다.
▲ 자기소개서 쓰는 방법 취업캠프에서 배운 자기소개서 쓰는 법을 필기했다.
ⓒ 박규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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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업캠프 중 가장 핵심은 무엇보다도 '모의면접'이었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스펙 중 부족한 부분을 말해주기도 하고, 좀처럼 경험해 볼 수 없는 압박질문 형식으로도 면접을 보게끔 했다.

모의면접 전, 난 나의 스펙을 적어냈다. 취업하고 싶은 기업, 학점, 자격증 소유 정도를 적어냈다. 모의 면접관 두 명과 학생 다섯 명이 한 조가 되어서 면접을 본다고 했다. 나도 사람인지라, 면접관에게 잘 보이고 싶었다. 나를 치장하는 온갖 꾸밈을 준비했다.

학생들이 모의면접을 보고 있다.
▲ 모의면접 학생들이 모의면접을 보고 있다.
ⓒ 박규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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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접이 시작되었고, 면접관은 학생들 모두에게 자기소개를 하게끔 했다. 그리고 돌아가면서 질문 하나씩을 던졌다. 한 학생에게 이 회사에 지원한 동기를 물었다. E기업에 입사를 원했던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어릴 적부터 E기업에서 만들어 낸 옷을 입곤 했습니다. 다른 옷보다도 그 옷을 입었을 때가 더 좋았고, 마찬가지로 E기업의 같은 계열사인 OO점에서 음식을 자주 먹으러 다니곤 했습니다. 그래서 제 인생에서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이 기업에서 꼭 일하고 싶어서 지원하게 되었습니다."

면접관은 대답을 듣고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몇 사람에게 이어진 질문 뒤, 내 차례가 되었다.

"저는 학생회 활동을 통해서 다양한 사람을 만나고, 그 사람들을 통해서 들은 이야기들을 글이나 영상으로 옮기는 것이 좋았습니다. 그래서 평생의 직업으로 삼아도 후회하는 일이 없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어서 지원하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면접관이 "총학생회를 한 것 치고는 학점이 좋은 편이네요?" 그 말에 당황했다. 일단 사실을 이야기해야 했다.

"저, 총학생회가 아니라 일반 학과 학생회입니다…."

얼마간의 정적 후 면접관은 이렇게 이야기 했다.

"아… 그럼 좀 아닌데…."

면접관의 그 한 마디에 내가 학생회를 했던 지난 2년은 많은 사람들 속에서, 아닌 게 되었다. 충격이었다. 아니란다. 내가 2년 동안 학생회를 했던 것이 그 사람의 눈엔 아니라고 한다. 아마 면접관은 '아닌데'란 말 뒤에 나의 성실하지 않음을 이야기 하고 싶은 듯 보였다.

'총학생회라면 또 모르지만, 일반 학생회를 해놓고선 왜 학점을 이것 밖에 못 받으셨어요? 그럴 거면 차라리 남들처럼, 해커스 토익 책으로 영어 공부하고, MOS 자격증을 따기 위해 열심히 파워 포인트를 하고, 남이 아닌 나를 위해 봉사활동을 하는 그런 정답처럼 살았어야죠? 옆에 지원자 한번 보세요. E업체에 지원한 동기가 어릴 적부터 E업체 옷을 입을 때가 가장 행복해서 지원했다고 하잖아요!! 그렇게 딱 정해져 있는 답이 있는데 왜 그러실까?'라고 말하고 싶었던 것 같다, 면접관은.

취업에서조차 정답을 강요받아야 하는 우리

정답. 사람이 사는 일에 어떻게 정답이란 것이 존재할까. 더군다나 인생의 극히 일부분인 '취업'이란 것에 정답이란 것이 존재나 할까. 어떻게 보면 정답은 아니었을지 모르지만 그 자체로 좋았던 나의 지난 2년. 매년 반복되는 행사이긴 했지만, 어떻게 하면 사람들이 더 찾아오는 행사가 될 수 있을까 많은 노력과 고민을 한 2년이었다.

그런 고민들을 하면서 학생회를 하지 않았으면 만나보지 못했을 사람들도 많이 만났고, 친분도 쌓았다. 그 경험은 그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나도 모르게 준 상처들, 그들은 모르지만 내가 받았던 상처들로 살아가면서 알아야 할 인간관계의 지혜를 알게 해준 좋은 경험들이었다. 특히나 그 속에서 '나'를 찾을 수 있다는 것이 가장 좋았는데, 왜 그 사람 눈에는 내가 평소 공부를 성실히 하지 않아서 정답을 못 맞힌 학생으로 비춰졌을까.

그렇게 충격과 씁쓸함을 맛 본 나는, 나머지 모의 면접을 보는 둥 마는 둥 했다. 면접이 끝나고 '퇴소식'을 한단다. 어떻게 끝났는지 기억이 나질 않았다. 제정신이 든 건 돌아오는 길, 버스 안에서였다. 차안은 조용하기만 했다. 사람들은 캠프기간 많이 피곤했는지 다들 잠이 들었다. 난 잠이 오지 않았다. 돌아오는 내내 슬펐다. 입시를 벗어나, 학문의 다양성을 추구하는 대학에서까지 정답을 강요받는 현실이 슬펐다. 남들은 별말 하지 않고 다들 정답을 따라가는 현실도 슬펐다.

그러나 더욱더 나를 슬프게 한 것은, 면접관을 비롯한 정답을 강요하는 사람들에게 '전 정답이 싫어요'라는 항변 하나 하지 못하고 나의 불성실함을 은연 중에 인정했다는 사실이었다.

그렇게 '취업캠프'는 정답투성이 세상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곳이었다.


태그:#취업캠프, #지잡대, #굶는과, #정답, #모의면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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