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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 워크> 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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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느린걸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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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을 하지 않으면 삶은 부패한다. 그러나 영혼 없는 노동을 하면 삶은 질식되어 죽어간다." - <굿 워크> 본문 19쪽

알베르 카뮈의 이 말이 나를 사로잡았다. 노동을 하는데 영혼이 있어야 한다는 이 멋진 말에서 찰리 채플린의 영화 <모던 타임즈>(1936)가 떠올랐다. <모던 타임즈>는 1930년대 산업사회 속에서 기계화되어 가는 인간과 물질문명에 대한 신랄한 풍자가 코미디로 묘사된 영화다.

영화 속에서 찰리 채플린은 온종일 컨베이어 벨트라인에 서서 지극히 단순한 나사 조이는 일을 한다. 거기에는 인간적이거나 창조적인 일체의 행위가 허용되지 않는다. 그저 기계처럼 아무 생각 없이 단순하게 움직이면 된다. 결국 찰리는 카뮈의 말처럼 '영혼 없는 노동'으로 인해 강박증에 사로잡히게 되고 정신병원에까지 간다.

이른바 포드주의로 상징되는 현대 산업사회에서 인간은 <모던 타임즈>에 표현된 것처럼 오로지 생산성과 능률성 향상이라는 목표를 위해 공장에 돌아가는 기계의 부품처럼 취급되어 왔다. 개성은 무시되었다. 그리고 결국 인간이 개발하고 발전시킨 기계에 인간이 끌려 다닐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맞게 되었다.

<굿 워크>의 저자 E. F. 슈마허가 천착한 문제는 이처럼 '무한한 경제성장을 목표로 하는 현대 산업주의 체제 하에서 행해지는 비인간적인 노동, 파괴되는 자연과 자원고갈, 기계에의 종속과 같은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라는 것이었다.

"작은 것이 아름답다"고 한 실천적 사상가

스물두 살의 나이에 미국 콜롬비아 대학의 교수가 된 뛰어난 경제학자이자 실천적 사상가였던 슈마허는 "작은 것이 아름답다"라는 문장을 통해 현대의 기술과 물질주의에 근원적 회의감을 던지며, 인류문명에게 '생각의 대전환'을 촉구했다.

<굿 워크>는 슈마허가 교통사고로 세상을 뜬 1977년 미국 대륙을 횡단하며 펼친 강연내용을 묶은 책이다. 여기에는 현대 기술문명과 산업사회를 비판하며 좋은 노동과 좋은 교육에 천착했던 슈마허의 사상적 성찰과 이를 위한 실천적 탐구가 담겨 있다.

"자연에서는 세포 하나가 계속해서 커지지 않습니다. 성장의 필요성이 생기면 분열하여 새로운 세포를 만들어냅니다." - 본문 134쪽

그러나 인간사회는 예외다. 현대 산업사회의 특징 중 하나는 무한성장에 대한 안타까울 정도의 간절한 희구다. 풍선에 바람을 불어넣으면 조그맣던 풍선이 부풀어 오른다. 그러나 이것을 보고 좋아서 바람을 계속 불어 넣는다고 풍선이 무한히 커지지는 않는다. 결국은 더 커지는 것이 아니라 터지고 만다. 풍선과 마찬가지로 슈마허는 현대 산업사회가 끝없는 성장을 목표로 추구하기에 파국이 멀지 않았다고 말한다.

그것은 기술을 바탕으로 한 산업사회가 갖고 있는 본질적인 문제 때문이다. 슈마허는 현대 산업사회의 문제점을 네 가지로 지적하는데, 그것은 모든 것이 점점 더 커지고, 더 복잡해지며, 더 자본집약적이고, 더 폭력적이 된다는 것이다.

이른바 규모의 경제학이 모든 것에서 '더 크게'를 외치고 있다. 동네 구멍가게는 대기업이 운영하는 대형 수퍼마켓에 밀려 더 이상 설 자리를 잃은 지 오래다. 심지어 두부, 콩나물마저도 대기업이 판다.

'산업사회'라는 풍선은 계속 커질까?

10월 12일 오전, 경기도 평택 쌍용자동차 공장 정문에서 지난 10일 자살한 김아무개씨의 노제가 열리고 있다. 김씨는 2009년 옥쇄파업에 참여했다가 희망퇴직한 노동자다. 예전 동료가 그의 영정 앞에서 오열하고 있다.
 10월 12일 오전, 경기도 평택 쌍용자동차 공장 정문에서 지난 10일 자살한 김아무개씨의 노제가 열리고 있다. 김씨는 2009년 옥쇄파업에 참여했다가 희망퇴직한 노동자다. 예전 동료가 그의 영정 앞에서 오열하고 있다.
ⓒ 최지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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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게 더 크게'를 지향하면서 정작 근로자 개인은 더욱 더 작아지는 추세이다. 굶어죽지 않으려면 대기업의 부당한 노동처우에도 찍소리 못 하고, 비정규 시간제 일자리라도 군소리 없이 할 수밖에 없다. 아니면 칼바람 맞으며 거리를 헤매야 할 테니까.

2년 전 구조조정으로 2009년 4월부터 현재까지 총 19명의 쌍용차 해직근로자와 그 가족이 스트레스성 질환과 자살로 사망했다. 노동자를, 국민을 죽음으로 내모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자 현대 산업사회가 낳은 비극이다.

"실업은 늘고 있는데, 실업자들은 자동으로 고도의 자본집약적 일자리로 흡수되지 않습니다. 이들은 어떻게 될까요? 우리는 언제까지 '고도(Godot)'를 기다릴 수 없으며, '고도'는 결코 오지 않을 것입니다. 다시 말해 정부의 조치만 마냥 앉아서 기다릴 수 없습니다. 이제 우리의 두 발로 일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내야 합니다." - 본문 109~110쪽

슈마허는 현대 과학기술은 너무나 복잡하고, 자본집약적이며, 규모가 거대해서 약자들에게 삶의 지혜를 주기는커녕 오히려 약자들의 삶을 파괴하고 있다고 보았다. 그러면 현대 문명이 낳은 이 중대한 위기 속에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슈마허는 필요한 재화와 서비스를 생산하기 위해, 또 자신의 재능과 기술을 완성하기 위해, 마지막으로 태생적인 자기중심주의에서 벗어나 다른 사람들을 섬기고 이들과 협력하기 위해 인간은 노동을 한다고 보았다.

따라서 젊은이들에게 먼저 좋은 노동과 나쁜 노동을 구별할 수 있도록 가르치고, 이들에게 나쁜 노동을 받아들이지 않도록 독려해야 한다고 말한다. 인간을 기계나 시스템의 노예로 전락시키는 지겹고, 무의미하며, 신경만 괴롭히는 멍청한 일을 젊은이들이 거부하도록 독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나를 찾아가는 '좋은 노동'은 어디에...

그래서 노동이란 삶의 즐거움이자 발전을 위해 꼭 필요하다는 것뿐만 아니라 무의미한 노동은 혐오스러운 것이라는 점을 젊은이들에게 가르쳐야 한다고 슈마허는 말한다. 그런데 지금 우리의 상황은 어떤가? 노동이 즐거움이 되고 있는가? 나쁜 노동을 권하고 나쁜 일자리를 양산하고 있지는 않은가?

지금껏 노동자의 일방적인 희생을 강요하며 성장만을 부르짖어온 이 나라 정부가 또다시 한나라당의 날치기 처리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통과시키면서 절망을 주고 있다. 노동유연화라는 거창한 논리를 내세우지만, 자유무역협정의 본질은 자본가의 이익을 위해 노동자의 권리를 빼앗는 것이다. 비정규직 노동자가 늘어나고, 언제든 해고될 수 있다는 불안감을 안고 살아야 한다.

시장은 우리를 소비자로만 있게 하는 것이 아니라, 진열장에 늘어놓고 파는 상품으로 만듭니다. 거기서 빠져나오지 못하면, 삶은 결코 내 삶·내 인생이 되지 못하고 맙니다. 꼭두각시를 파는 상점이 있다면 우리 현실을 여실히 보여주는 풍경일 겁니다. - 이철수의 '나뭇잎 편지' 중

언제쯤 이 땅의 모든 사람들이 자본의 꼭두각시가 아니라 진정한 내 삶을 찾아가는 좋은 노동을 할 수 있을지, 허무하고 씁쓸하게 날치기로 통과되어버린 한미FTA를 보며 분노한 마음으로 <굿 워크>의 책장을 덮는다.

덧붙이는 글 | <굿 워크> E. F. 슈마허 씀, 박혜영 옮김, 느린걸음 펴냄, 2011년 10월, 265쪽, 1만5000원



굿 워크

E. F. 슈마허 지음, 박혜영 옮김, 느린걸음(2011)


태그:#슈마허, #좋은 노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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