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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도 봉화산 꼭대기에 누군가 국화 한 송이를 꽃아 놨다. 시들어 가는 국화 송이 뒤로 보이는 봉하마을과 노무현대통령 생가와 묘역.
▲ 추도 봉화산 꼭대기에 누군가 국화 한 송이를 꽃아 놨다. 시들어 가는 국화 송이 뒤로 보이는 봉하마을과 노무현대통령 생가와 묘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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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시울이 짜릿해 옴과 동시 반사적으로 두 다리에 힘이 들어간다. 아니, 다리에 힘을 줘야만 했다. 옆에 서 있는 사람이 눈치챌까 싶어 가슴 두근거림도 참아야만 했다. 조곡이 봉화산을 돌아 내 귓가를 때렸을 땐, 더 이상 참을 수가 없다. 결국 두 손으로 두 눈을 제압하고 나서야 평정을 찾을 수 있었다. 그렇게 짧은 시간이었지만, 나 혼자 한바탕 싸움을 치러야만 했다. 그이를 기리는 애타는 그리움과 참아야만 하는 슬픔에 대해.

제법 오랜 시간이 흘렀건만 왜 그이만 보면 눈물이 나려고 하는 것인지 나도 모를 일이다. '<오마이뉴스> 2011 지역투어 부산경남' 모임이 있었던 다음 날인 11월 19일, 토요일. 추적추적 내리는 비는 오락가락 사람의 심장을 헤집어 놨다.

이날 참가한 부산경남 시민기자와 나는 노무현 대통령 묘역으로 향했다. 주말을 맞아 주차장은 승용차로 가득 찼고, 단체 참배객을 위한 대형버스도 곳곳에 주차하고 있다. 단출한 가족모임이나 연인끼리 정답게 손을 잡고 걷는 모습이 이날 봉하마을 표정을 대신하고 있었다.

노무현대통령 생가 방문객들이 노무현 대통령 생가를 둘러보고 있다.
▲ 노무현대통령 생가 방문객들이 노무현 대통령 생가를 둘러보고 있다.
ⓒ 정도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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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지난 2009년 5월 24일 노무현 대통령 서거 다음날 봉하마을을 찾았다. 이번이 두 번째 방문이다. 새로 조성한 생가에 들어서자 깨끗함과 정겨움이 묻어난다. 단아함이 가득한 초가집은 옛 어릴 적 내가 살던 그 초가집으로 나를 안내하는 듯했다.

방문객들은 이곳저곳 호기심 가득한 모습으로 살펴본다. 노 대통령이 8살까지 살았다고 하는 생가. 그곳에서 '그이의 혼과 체취를 느낄 수 있었다'고 말한다면, 남들은 날 보고 과장된 표현을 한다고 할지 모를 일일다. 하지만, 난 정말 그렇게 느꼈다고 말할 수 있으리라.

거울 내가 먼저 웃어야만 웃는 거울. 물에 비친 억새는 바람에 출렁거리는 게 아니라, 물결에 움직이고 있다.
▲ 거울 내가 먼저 웃어야만 웃는 거울. 물에 비친 억새는 바람에 출렁거리는 게 아니라, 물결에 움직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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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역은 수반, 헌화대, 너럭바위 그리고 곡장으로 구분돼 있었다. 수반은 마음을 비추는 거울로, 묘역에 들어가기 전 마음가짐을 정돈하는 곳. 수반에 내 얼굴과 모습을 보았다. 거울을 보지 않으면, 자신의 얼굴을 볼 수가 없다.

내 얼굴은 내가 보는 것이 아니라, 대부분 남들이 내 얼굴을 보고 있다. 그렇기에 '내가 남들에게 어떤 모습으로 비칠까'를 늘 염려하고 신경 써야 하는 게 사람일지도 모른다. 내가 먼저 웃어야만 비로소 웃어주는 것이 거울. 연못에는 내 얼굴 말고도, 억새 핀 짙은 가을이 물결에 따라 움직이고 있었다.

박석 노무현 대통령 묘역에는 1만 5천개의 국민 참여 박석이 깔려 있다.
▲ 박석 노무현 대통령 묘역에는 1만 5천개의 국민 참여 박석이 깔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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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화대에 꽃다발을 놓고 단체로 참배했다. 머리 숙여 참배하는 짧은 시간, 온갖 상념이 머리를 흔들었다. 노 대통령이 추구했던 희망, 못다 이룬 미완성의 꿈이 내 가슴을 때렸다. 그리고 깊은 잠에 잠들어 있는 나를 깨우고 있다.

참배를 마치고 박석 길을 걸었다. 두께 10cm, 가로·세로 각각 20cm 크기 박석 1만5천 개에는 추모글이 새겨져 있었다. 국민 참여 박석 그 자체가 하나의 커다란 추모비다. 국민의 애틋하고 간절한 애도의 뜻이 담겨 있는 박석 길. 갑자기 눈에 띄는 한 개의 박석. 동명이인지, 한명숙 전 총리의 박석인지 몰라도 이렇게 새겨져 있다.

"당신의 뜻 우리가 이루겠습니다. 한명숙."

참배 노무현대통령 묘역에서 참배하는 일행.
▲ 참배 노무현대통령 묘역에서 참배하는 일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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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럭바위 앞에 섰다. 반듯하게 잘 생긴 큰 돌에 '대통령 노무현'이라고 쓰여 있다. 그런데 조금 어색해 보이는 녹슨 비석받침 강판은 안내자의 설명을 듣고서야 그 의미를 이해할 수 있었다. 묘역 뒤편에 서 있는 곡장(묘역 뒤편 벽) 재료도 역시 똑같은 강판. 이 강판은 처음엔 검은색이지만, 표면이 부식되면서 붉은색으로 변하다가 마지막엔 암적색으로 변해 정착된다고 한다.

매일 변하는 모습이 다르고, 햇빛과 그늘에 따라 달리 보이며, 비 오는 날에는 짙은 수묵의 색채를 보여 준다. 5년 정도 산화되면 녹이 보호피막이 돼 남아 있는 내부의 철을 영구적으로 보호하는 강판. 시간이 흘러 세상과 사람이 바뀌어도, 변하지 않는 노 대통령의 철학과 가치를 지켜줄 것이라는 게 작가의 생각이다.

노무현대통령 묘역 노무현대통령 묘역
▲ 노무현대통령 묘역 노무현대통령 묘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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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역 뒤편으로는 봉화산과 부엉이 바위가 보인다. 대통령의 길을 함께 걸었다. 해발 140m의 낮은 산이지만 낮다고 쉽게 볼 일은 아니다. 주변으로는 둘러 볼 곳도 많다. 계단을 오르자 처음 만나는 것은 '진영 봉화산 마애불(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40호)'. 이 마애불은 자연 암벽에 조각된 앉아 있는 석불로 발견 당시 산 중턱 바위틈에 끼여 옆으로 누워 있었다고 한다. 지금도 누워 있는 모습으로 원형대로 세워 보존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어제 내린 비로 바위 사이를 흘러내리는 작은 물줄기가 폭포를 이루고 있다.

작은폭포 봉화산을 오르다 만난 작은 폭포. 며칠 전 내린 비로 바위사이 작은 물줄기가 폭포를 이루고 있다.
▲ 작은폭포 봉화산을 오르다 만난 작은 폭포. 며칠 전 내린 비로 바위사이 작은 물줄기가 폭포를 이루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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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길을 걷는 발걸음이 편하다. 소나무 숲 사이로 화려한 옻나무 잎이 하늘거린다. 가을 나무잎자귀 중에서 화려한 색깔을 치자면, 단풍나무보다는 오히려 옻나무 잎이 더 화려하지 않을까. 한숨 돌릴 즘 중턱에 올라섰다. 숲 사이로 봉하마을 들녘이 나타난다. '대통령의 길'을 오르내리는 사람은 나이를 가리지 않는다. 세 살배기 아이를 업은 새색시부터, 70대 노인까지 다양하다. 나무 계단을 오르는데, 반대편에서 내려오는 60대 중반의 아주머니가 묻지도 않는 말을 건넨다.

대통령의 길 옻나무 잎이 화려한 색깔의 숲길인 대통령의 길.
▲ 대통령의 길 옻나무 잎이 화려한 색깔의 숲길인 대통령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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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알 봐야 혀~. 그래야만 알아 볼 수 있어."
"예에? 뭐라고예?
"저기 꼭대기 올라가면 들판에 검은 머시 보이는데 잘 보아여 혀..."
"…."

강한 억양의 전라도 사투리로 두 손을 휘저으며 신기한 것을 봤다는 듯 활짝 웃는 그 아주머니. 그녀는 전북 정읍에서 왔다고 했다. 잠시 뒤 정상에서 내려다본 것은 봉하마을 들녘에 새겨진 밀짚모자를 쓴 노 대통령의 이미지였다. 직접 보니 신기할 만도 하다.

봉하들판 봉화산 꼭대기에서 바라 본 봉하마을 들판. 노무현대통령의 밀집쓴 이미지가 선명한 모습으로 다가온다.
▲ 봉하들판 봉화산 꼭대기에서 바라 본 봉하마을 들판. 노무현대통령의 밀집쓴 이미지가 선명한 모습으로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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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꼭대기서 보는 봉하마을은 평화로웠다. 약 2만4천 평의 농지에서 시작한 봉하 들판 친환경 농사는 이제 약 50만 평으로 늘어났다. 길게 누운 모습을 한 뱀산은 화포천에 있는 개구리산을 잡아먹으려는 산세를 갖췄다. 때마침 건너편 철길에는 기차가 기적을 울리며 지나간다. 노 대통령께서 직접 화포천 살리기 운동에 참여한 화포천도 보인다. 땀도 식힐 겸, 한동안 이런저런 이야기에 푹 빠져 있었다.

다시 발길을 돌려 산책 겸 대통령의 길을 걸었다. '호미 든 관음상' 앞에 이르니 사방이 확 트인 풍경이 눈 앞에 펼쳐졌다. 언제나 변함없는 어머니 젖줄 같은 낙동강이 흐른다. 김해에서 제일 높다는 무척산은 안개 속에 제 모습을 감추고 있다. 노 대통령의 유골이 거쳐갔다는 정토원은 소나무 숲 역광 빛에 묻혀 아늑히 자리하고 있다. 단체 일정과 코스 관계로 잠시나마 들러 보지 못해 아쉬움이 진하게 남아 있다.

호미든 관음상 봉화산에서 들녘을 내려다 보는 호미든 관음상.
▲ 호미든 관음상 봉화산에서 들녘을 내려다 보는 호미든 관음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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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음상을 많이 봐 왔지만, 호미를 들고 있는 관음상은 여기서 처음 마주한다. 왜 호미를 들었을까? 안내문에 따르면 황폐하고 혼탁한 사회에 젊은 불교도들이 부처님의 뜻을 전하고자 세워졌다고 한다. 관음상은 손에 들고 있는 물건이 어떤 것인지에 따라 의미를 달리한다. 약병은 중생의 질병을 치료하겠다는 뜻이겠지만, 호미를 든 이유는 알 수 없다.

나는 쉬엄쉬엄 걸으며 봉화산 한 바퀴를 돌았다. 숲길도 그리 힘들지도 않은 편한 길이다. 생가방문에서부터 묘역 참배를 거쳐 제자리까지, 두 시간 반을 부산경남 시민기자들과 함께 했다. 맛있는 국수로 배를 채운 테마식당에서 시민기자들과 작별을 고했다.

비빔밥, 국밥, 그리고 국수 세끼 식사를 정성스레 마련해준 봉하마을 테마식당 아주머니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드리고 싶다. 또한 언제 다시 만날지 모를 부산경남 시민기자들에게 이 기회를 통해 인사를 드린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거제지역 신문인 거제타임즈와 뉴스앤거제 그리고 제 블로그에도 싣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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