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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일 국회 본회의에서 정의화 부의장이 한미FTA 비준안을 기습 상정하자 의장석으로 뛰쳐나간 최규성 민주당 의원이 의사봉 빼앗기를 시도하고 있다. 오른쪽에 마스크를 쓴 김진표 원내대표도 보인다.
 22일 국회 본회의에서 정의화 부의장이 한미FTA 비준안을 기습 상정하자 의장석으로 뛰쳐나간 최규성 민주당 의원이 의사봉 빼앗기를 시도하고 있다. 오른쪽에 마스크를 쓴 김진표 원내대표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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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FTA 비준안 강행처리를 위해 한나라당 의원들이 22일 국회 본회의장에 입장한 가운데, 국회 경위들이 취재진의 방청석 출입까지 막고 나서 호된 항의를 받았다. 야당 당직자들이 출입을 막는 경위를 끌어내며 몸싸움을 벌이고 있다.
 한미FTA 비준안 강행처리를 위해 한나라당 의원들이 22일 국회 본회의장에 입장한 가운데, 국회 경위들이 취재진의 방청석 출입까지 막고 나서 호된 항의를 받았다. 야당 당직자들이 출입을 막는 경위를 끌어내며 몸싸움을 벌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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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일 오후 3시경, 한·미 FTA 비준안 처리를 위해 줄줄이 국회 본회의장으로 향하는 동료 의원들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한 한나라당 의원은 "이건 엔테베 기습작전"이라고 말했다.

1976년 7월 3일 팔레스타인 무장단체에 의해 납치된 에어프랑스기가 우간다 엔테베 공항에 강제 착륙해 있었고, 이스라엘 특공대원 100여 명은 기발하고 대담한 기습공격을 펼쳐 불과 1분 만에 테러범 전원을 사살했다. 이날 한나라당의 한·미 FTA 비준동의안 본회의 통과 과정도 대담성과 상대 기만술 면에서 엔테베 기습작전과 비슷하다는 얘기다.

이번 비준안 처리 계획은 한나라당 내에서도 극비였던 것으로 보인다. 기습처리가 성공한 뒤에 만난 한 한나라당 의원은 "오늘 이렇게 할 줄은 정말 몰랐다. 반드시 처리해야할 일이 있어 상임위에 있는데 '빨리 의원총회에 오라'는 연락이 댜섯번이나 왔다"며 "무슨 일인가 가 보니 오늘이 D-데이였다"고 말했다.

당초 일방처리가 유력하다고 전망된 때는 본회의 개최가 예정됐던 24일이었다. 한나라당은 의원총회 개최를 가장해 의원들을 소집했고, 박희태 국회의장은 직권상정 처리에 필요한 조치들을 전격적이고도 주도면밀하게 실행해줬다. 여당과 국회의장은 한·미 FTA 처리라는 역사적인 사건을 주도하면서 국민의 눈과 귀를 가리려는 무리수를 두기도 했다. 

여야 원내대표 협상 결렬되자 곧바로 국회의장에 직권상정 요청

이날 한나라당의 '한·미 FTA 처리 작전계획'이 개시된 건 여야 원내대표의 협상이 결렬된 직후다. 이날 오전 11시 황우여 한나라당 원내대표와 김진표 한나라당 원내대표가 만났지만 별다른 진전은 없었다.

김 원내대표와 헤어진 황 원내대표는 박희태 국회의장에게 외교통상통일위원회에 상정돼 있는 한·미 FTA 비준 동의안을 본회의에 직권상정해달라고 요청했다. 박 의장은 이에 응했고, 외부일정 때문에 자신이 국회에 없는 동안 한나라당 소속인 정의화 부의장에게 사회권을 넘겨 이를 처리하기로 했다. 

오후 2시 국회의사당 중앙홀(로텐더홀)을 사이에 두고 본회의장과 맞은편에 위치한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전체회의장에서 한나라당 의원총회가 열렸다. 이 의원총회의 논의 주제는 '2012년도 예산안 관련 논의'였다. 야당을 안심시키기 위한 기만술이었던 셈이다.

한나라당 황우여 원내대표와 이주영 정책위의장, 황영철 의원등이 22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한미FTA 비준안 강행처리 관련 논의를 하고 있다.
 한나라당 황우여 원내대표와 이주영 정책위의장, 황영철 의원등이 22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한미FTA 비준안 강행처리 관련 논의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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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원총회가 열렸고, 연단에 나선 황우여 원내대표는 "식사들 잘 하셨어요?"라며 특유의 부드러운 어조로 인사했다. 여야 합의 처리를 성사시켜 달라며 10일째 단식을 하고 있던 정태근 의원도 참석한 상황이었다.

황 원내대표는 "오늘 의원총회는 예산안과 관련한 의원총회다. 의원님들 의견 수렴하고 한나라당이 꼭 챙겨야할 민생예산을 점검하기 위한 의원총회"라면서 "여러가지 사정이 있다고 해도 정기국회가 얼마 남지 않았으니 의원총회에는 모두 참석해줄 것을 원내대표로서 신신 당부드린다"고 말했다.

홍준표 "국익 가름 짓는 의총, 결석하는 분 뭐하려 의원하나?"

의원들의 출·결 상황은 홍준표 대표가 더 챙기는 모습이었다. 홍 대표는 "지난번(17일 의원총회)에 그렇게 당부를 드렸는데도 169명의 의원님 중에 148명만 출석을 했다"며 "오늘도 원내대표단에서 그렇게 당부 말씀을 드렸는데도 안 온 사람이 많다. 중요한 의원총회에, 국익을 가름 짓는 의원총회에 나오지 않는 분은 뭐하려고 한나라당 의원을 하느냐"고 질타했다.

홍 대표는 "오늘도 지난번처럼 끝장토론을 할테니 중간에 가지 마시고 저녁약속도 파기하시고 좀 더 치열함을 보여주시기 바란다. 끝날 때까지 나가지 마십쇼"라고 엄포를 놨다.

한나라당 홍준표 대표가 22일 최루 가루가 살포된 국회 본회의장에서 한미FTA 비준안을 통과시킨 뒤 매캐한 회의장을 뜨고 있다.
 한나라당 홍준표 대표가 22일 최루 가루가 살포된 국회 본회의장에서 한미FTA 비준안을 통과시킨 뒤 매캐한 회의장을 뜨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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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원총회가 비공개로 전환되고 기자들이 나간 뒤 황우여 원내대표가 다시 마이크를 잡았고 '진짜 의총 사유'가 공지됐다. 황 원내대표는 이날 한·미 FTA를 처리하겠다는 뜻을 밝히며 "국회의원으로서 품위를 유지해 달라"고 당부했다. 일방처리를 하지만, 폭력적인 장면은 없도록 하자는 것이었다. 이후 한나라당 원내 지도부 의원들은 참석하지 않은 동료들에게 전화를 걸어 의원총회 참석을 요청했다. 본격적으로 비상이 걸린 것이다.

오후 3시경, 의원총회 중이던 한나라당 의원들이 예결위 회의장 문을 열고 나왔다. 비장한 표정으로 문을 나선 의원들은 평소처럼 계단을 내려가 흩어지는 게 아니라 중앙홀을 가로질러 본회의장 문앞으로 향했다. 이를 본 기자들이 깜짝 놀라 '한·미FTA 비준안을 오늘 강행처리하느냐'고 물었을 때 한 의원은 "강행처리가 아니다 국회법 절차에 따른 적법처리"라고 단호하게 말했다.

여야 합의처리를 주장해 온 남경필 외교통상통일위원장은 "나도 몰랐던 일"이라며 걱정스런 눈빛으로 본회의장에 우르르 몰려가는 같은 당 동료 의원들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본회의장 앞에 몰린 의원들은 잠시 동안 혼란에 빠졌다. 본회의장 문이 당연히 열려 있을 줄 알았는데 잠겨 있었던 것이다. 당황한 의원 중에서는 "이게 왜 잠겨 있어!"라고 소리친 이도 있었다. 황 원내대표는 "3시에 본회의를 열기로 (국회)의장님과 약속이 돼 있다"고 말했다.

본회의 소집 - 경호권 발동 - 심사기일 지정, 국회의장의 3종 선물세트

오후 3시를 기점으로 박희태 국회의장은 국회 본회의를 소집하는 동시에 경호권을 발동해 국회의원이 아닌 이들이 국회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도록 조치했다. 박 의장은 이와 동시에 외통위 전체회의에 상정돼 있는 한·미 FTA 비준동의안을 이날 오후 4시까지 상임위 처리를 마치라고 심사기일을 지정했다. '지금부터 1시간 만에 상임위 처리를 못하면 본회의에 직권상정 하겠다'는 형식적인 수순 밟기였다.

5분 여가 지나 국회 직원들이 회의장 안쪽에서 문을 열었다. 한나라당 의원들은 눈깜짝할 새에 본회의장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이때 본회의장에 입장한 한나라당 의원은 135명이고, 뒤늦게 달려온 의원들도 속속 본회의장으로 합류했다.

곧이어 야당 의원들도 헐레벌떡 본회의장에 도착했다. 민주당 원내대변인인 홍영표 의원은 본회의 소집과 경호권 발동 사실이 오후 3시경 여야 의원들의 휴대폰 문자메시지로 전달됐음을 밝혔다. 이윽고 손학규 민주당 대표가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이 이렇게 국민의 뜻을 무시하고 강행처리하면 안 된다"고 말하고 본회의장으로 들어갔고, 민주당 의원들과 선진당 의원들도 본회의장에 합류하는 상황이 됐다.

'언론 비공개' 사전 모의..."역사적 현장을 비공개로?"

한미FTA 비준안 강행처리를 위해 한나라당 의원들이 22일 국회 본회의장에 입장한 가운데, 국회 경위들이 취재진의 방청석 출입까지 막고 나서 호된 항의를 받았다. 야당 당직자들이 깨부순 유리문 파편 사이로 기자들이 진입을 시도하고 있다.
 한미FTA 비준안 강행처리를 위해 한나라당 의원들이 22일 국회 본회의장에 입장한 가운데, 국회 경위들이 취재진의 방청석 출입까지 막고 나서 호된 항의를 받았다. 야당 당직자들이 깨부순 유리문 파편 사이로 기자들이 진입을 시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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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회의장에서 여야의 대치국면이 벌어지는 상황인데 취재진은 진행상황을 전혀 알지 못했다. 국회의사당 4층에 있는 취재진 방청석 문이 굳게 잠겨 본회의장 상황을 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취재진은 방청석 동쪽 입구에 몰려 발을 동동 굴렀다. '왜 회의를 공개하지 않느냐'는 항의에 의회경호과 관계자는 "오늘 방청석 문은 열리지 않을 것이다. 돌아가시는 게 좋겠다"고 했다.

이때는 본회의가 시작하기도 전이었고, 국회법 75조에 따라 '회의를 비공개로 하자'는 결의가 이뤄지기도 전이었다. 국회의장과 한나라당 지도부가 한·미 FTA 비준동의안을 처리하는 본회의를 비공개로 열기로 사전에 미리 계획을 하지 않았다면 불가능한 일이다.

기자들이 분통을 터뜨리고 있는데, '본회의장 방청석 문이 뚫렸다'는 소식이 들렸고, 기자들은 방청석 동쪽 입구가 있는 반대편으로 달렸다. 본회의장이 보이는 언론 방청석까지는 3개의 문이 있는데, 가장 바깥쪽의 유리문은 4시 14분경 이미 박살이 나 있었고, 민주노동당 당직자들은 "역사의 현장이 벌어지고 있는 본회의를 비공개로 하는 게 말이 되느냐"며 몇 번을 더 시도한 끝에 나무문 2개를 차례로 열어 젖혔다. 이때가 오후 4시 19분이다.

취재를 할 수 있게 된 상황이었지만 기자들은 마냥 좋아할 수 없었다. 의장석 부근에서 터진 최루탄의 성능이 방청석에도 그대로 전해졌다. 국회 직원이 진공청소기와 대걸레로 의장석 부근을 청소했고, 의석에 앉은 의원들은 마스크를 하거나 손수건으로 코와 입을 가린 상황에서, 4시 23분 정의화 부의장이 개의를 선언했다.

당장 본회의를 비공개로 하는 안건에 대해 투표가 이뤄졌고, 가결됐다. 의장석 좌우측에서 각각 15명씩의 국회 경위들이 스크럼을 짜 야당 의원들의 접근을 봉쇄하고 있는 상황에서 민주당과 민주노동당 의원 50여 명이 의장석 앞에서 시위를 벌였다.

이어 한·미 FTA 비준동의안이 본회의에 직권 상정됐고, 자리에 앉은 한나라당 의원들과 자유선진당 의원 등이 참여한 투표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4시 28분 한·미 FTA 비준 동의안이 170명 참석 찬성 151명, 반대 7명, 기권 12명으로 가결됐고, 선진당 의원들과 이용경 창조한국당 의원이 반대표를 던졌다.

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가 22일 최루 가루가 살포된 국회 본회의장에서 마스크를 쓴 채 한미FTA 비준안 표결에 참여하고 있다. 맨 위는 남경필 외통위원장.
 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가 22일 최루 가루가 살포된 국회 본회의장에서 마스크를 쓴 채 한미FTA 비준안 표결에 참여하고 있다. 맨 위는 남경필 외통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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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전 대표도 자신의 의석을 굳게 지켰다. 박 전 대표는 의석에 앉아 흰 손수건으로 코와 입을 가린 채 전자투표 화면을 누르며 연거푸 찬성표를 던졌다. 박 전 대표가 말 없이 투표를 독려하는 모습에 한나라당은 친이·친박 할 것 없이 한·미 FTA 처리를 위해 똘똘 뭉친 모습이었다.

민주당·민주노동당 의원들은 의장석 앞에서 삿대질을 하고 고성으로 항의했지만 무기력했다. 의석에 앉은 여당 의원들은 정의화 부의장의 진행에 따라 토론 한 번 없이 투표가 이뤄지는 컴퓨터 화면을 꾹꾹 눌렀고, 한·미FTA 비준에 맞춰 개정이 필요한 부수법안 14개가 일사천리로 가결됐다.

한·미 FTA 비준안 처리라는 한나라당의 '대업'을 이뤄냈지만, 홍준표 대표의 표정은 밝지 않았다. 본회의 뒤 열린 의원총회에서 홍 대표는 별다른 치하 없이 '당 쇄신 작업을 위한 연찬회를 열겠다. 한나라당은 치열한 정당이 돼야 한다'는 정도의 뜻을 밝히고 국회의사당을 떠났다. 경찰에 막혀 의사당으로 들어오지 못하던 야당 당직자와 보좌진들은 홍 대표를 발견하곤 "매국노, 기분이 좋냐?" "한나라당 ○새끼들아" 등의 욕설을 퍼부었고 홍 대표는 말 없이 차에 올라탔다.


태그:#한미FTA, #엔테베 작전, #기만, #언론통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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