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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교류가 활발해지면서 번역이 우리 사회에 미치는 영향력도 커졌습니다. 하지만 번역가들의 일터인 번역 시장은 여전히 열악합니다. '번역은 누구나 할 수 있다'는 인식 때문에 실력이 부족한 지원자가 많아지자, 번역 회사들은 고용을 줄였습니다. 이로 인해 예비 번역가와 번역가들은 치열한 일감 경쟁에서 피해자가 되기도 합니다. 기자는 번역가들이 지적한 번역 시장의 문제들 중, 개인의 부주의 탓으로 여겨져 사회에서 주목받지 못한 사안들을 집중 취재했습니다. <기자 말>

"직업의식 부족... 장시간 실력 쌓아야"
[인터뷰 ①] 전 번역회사 매니저 박아무개


 3년 동안 번역 공증 회사 매니저로 일한 박아무개씨.
 3년 동안 번역 공증 회사 매니저로 일한 박아무개씨.
ⓒ 이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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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는 번역가 입장에서만 생각했는데, 이젠 저도 회사 입장을 알 것 같아요."

박아무개(30)씨는 5년 전 사기를 당했다. 번역회사에서 60여만 원을 받지 못했다. 억울해서 경찰서에 찾아가고 언론에 제보도 했지만 돈을 받는 데는 실패했다.

박씨는 아픈 기억을 안고 2007년부터 3년 동안 번역 공증회사에서 매니저로 일했다. 번역가에게 완성본을 받아 교정·
감수했다. 그동안 박씨의 생각은 많이 변했다. 번역가는 더이상 일방적인 피해자가 아니다. 그는 기자에게 먼저 인터뷰를 제안했다.

"회사에서 일하다 보니 번역가의 문제도 눈에 띄더라고요. 회사와 번역가 양측의 입장을 알려주고 싶었어요."

박씨는 일하면서 많은 고충을 겪었다. 함께 일했던 몇몇 번역가들의 무책임 탓이었다.

"품질이 안 좋아도 나 몰라라 하는 사람들이 있었어요. 회사에 일을 넘기면 그걸로 끝이라고 생각한 거죠. 오역은 회사 내부에서 재번역해야 돼요. 이렇게 되면 고치는 데 시간과 비용이 드니까 회사 입장에선 손해죠." 

이때 돈을 지급할 수 없다고 말하자 따지는 번역가들이 있었다. 그는 답답한 듯 말했다.

"그럴 땐 배우는 마음으로 꼭 피드백을 받아야 하는데…."

박씨는 회사에 지원한 번역가 다수에게 직업 의식이 부족했다고 지적했다. 이들에게 번역은 사명감이 필요한 직업이 아니라 돈벌이 수단에 불과했다.

"회사에 지원한 번역가가 정말 많았는데, 유학파, 외국어 전공자 등 이력이 무척 화려했어요."

하지만 막상 실력을 알아보려고 샘플을 맡겨보면 품질이 떨어지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본인의 번역 실력은 고려하지 않고 단순히 돈을 벌겠다는 생각으로 지원한 거에요."

문제는 이 때문에 번역회사가 새로운 번역가 채용을 꺼린다는 사실이다. 그는 번역 입문자의 경우 무작정 일부터 구하지 말라고 경고했다. 그럴수록 회사는 진입 장벽을 더 높이 쌓을 뿐이다.

"이력서를 여기저기 뿌리는 사람들이 있어요. 그런데 이력서에 실제 실력보다 과장해서 적은 사람들은 암암리에 협력 업체 사이에서 정보가 공유될 수 있어요."

본인의 실력이 실무에 적합한지 확인한 다음 지원하라는 충고다. 또 박씨는 "번역가가 되고 싶다면 돈에 연연하지 말고 차분히 실력을 쌓으라"고 조언했다.

"번역가가 되려면 돈보다 직업의식, 직업 만족도가 목적이 돼야 해요. 번역은 잘할 때까지 시간이 필요한 작업이거든요."

그는 '인정받는 번역가가 되려면 수년 간 다양한 부분을 공부해야 한다'고 말했다.

"돈을 많이 벌려면 그만큼 명성이 쌓여야 해요. 명성이 생기려면 실력이 있어야 하고요. 그런데 그런 건 하루 아침에 생기는 게 아니잖아요?"

"번역, 아무나 하는 게 아니다"
[인터뷰 ②] 스페인어 전문번역가 전재훈

 한국어-스페인어 전문 문서 번역가 전재훈씨.
 한국어-스페인어 전문 문서 번역가 전재훈씨.
ⓒ 이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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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부터 전문 문서번역가로 활동 중인 전재훈(45)씨도 번역가로 입문하기는 쉽지 않았다. 27년간 아르헨티나에서 거주한 전씨는 현지에서 입시학원을 경영하다 2002년 귀국했다. 처음에 그는 통역과 번역을 같이 했다. 번역회사에는 50부가 넘는 이력서를 보냈다.

"일을 꾸준히 받는 데 2년 가까이 걸렸어요. 다른 번역가들에 비하면 짧은 편이었죠. 그나마 전문 언어가 스페인어라 번역가가 적었으니까요."

현재 그는 20여 개 번역회사와 일하고 있다.

전씨는 전문번역가가 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누군가가 어떻게 번역가가 될 수 있냐고 질문하면 '1년 이상 아무 일도 안 하면서 먹고살 만큼 돈이 있는지' 되물어보죠."

그는 업계에서 인정받아야 일이 계속 들어오고 일정한 수입이 보장된다고 설명했다. 그 전까진 한두 달 놀 수도 있다. "그래서 1년 하다 그만두는 사람이 더 많아요. 전문 번역가가 되기까지 보통 2년에서 3년 정도 걸리는데, 그때까지 버티기가 힘들죠."

전씨는 번역을 하면서 가장 걱정되는 부분은 '단가'라고 했다. 번역하려는 사람이 많고 번역회사 간에 경쟁이 붙다보니 단가는 점점 내려간다.

"의뢰인이 최저 단가를 부른 번역가에게 일을 맡기는 '경매 번역' 회사도 있어요. 이곳은 번역물을 돈으로만 평가하는 거죠. 어떤 사람들은 지인들에게 무료로 번역을 해주기도 하는데, 전 그러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번역은 번역가의 실력에서 나온 지적 재산이거든요."

그는 번역가에 따라 번역물의 품질이 달라진다고 말했다. 번역물은 모든 분야를 다루는데 같은 단어도 분야에 따라 의미가 달라진다. 다방면으로 경험이 많으면 번역도 더 잘하는 이유다. 올바르게 번역했는지 꼼꼼히 확인하는 책임감도 품질에 영향을 미친다.

"문서를 번역할 때는 정확성이 매우 중요해요. 저는 번역하는 것보다 단어를 사전으로 검색하는 게 더 오래 걸려요. 표현이 맞는지 수십 번 읽어보고, 오타 확인하고…. 그래야 좋은 번역이 나오거든요."

끈기와 자기관리도 번역가에게 필수다. 전씨는 한때 번역일을 그만두고 싶어 대리운전도 생각했다.

"사람들은 집에서 쉽게 돈 번다고 생각하지만, 저는 회사원이 더 부러워요. 정해진 근무 시간이 없으니까 '눈 뜨면 출근 눈 감으면 퇴근'이란 말도 해요. 그래서 자기 시간을 철저히 관리해야 돼요." 

그는 맡은 일을 못해내거나 납품 기일을 미루면 일이 더 이상 안 들어온다고 이야기했다. 이어 그는 번역가의 위상이 높아지려면 번역가에게 프로정신이 필요하다는 데 동의했다.

"번역은 머리가 아닌 엉덩이로 한다는 이야기가 있어요. 꾸준히 앉아서 집중해야 하는 일이거든요. 신뢰도 철저히 지켜야 하고요. 번역가에 대한 평가는 스스로가 만들어가는 거죠."

"공인자격증 제도 만들어야"
[인터뷰 ③] 한국번역비평학회 이영훈 국제이사 


 한국번역비평학회 국제이사인 이영훈 고려대 불어불문학과 교수.
 한국번역비평학회 국제이사인 이영훈 고려대 불어불문학과 교수.
ⓒ 이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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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비'번역가라는 말이 있습니까? 번역하는 사람은 모두 번역가죠."

고려대학교 연구실에서 만난 이영훈(49) 불어불문학과 교수는 '예비번역가'라는 말을 정정했다.

"번역가를 선발하는 국가 공인 기준이 없는데 '예비'가 어딨습니까. 아무나 번역가가 될 수 있는데."

이 교수는 2006년에 창립된 한국번역비평학회 국제이사다. 한국번역비평학회는 번역의 사후 평가가 필요하다는 인식에서 출범했다. 현재 이 교수는 '프랑스 명작소설'의 번역 품질을 평가하는 작업을 주관하고 있다.

"번역도 평가가 가능해요. 체계성, 상호주관성 등에 입각한 평가 기준으로 번역이 잘됐는지 판단할 수 있습니다."

그는 번역이 갖는 중요성에 비해 정부의 관심이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몇 달 전 한-EU FTA 협정문이 오역 투성이였다고 보도됐죠. 국가 간 조약인데 외교통상부 인턴에게 번역을 맡겼다는 이야기가 있잖습니까. 정부가 '번역은 누가 하나 똑같다'는 인식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에요. 번역은 언어 실력도 중요하지만 심오한 지식과 경험도 필요한 일인데…. 국가가 번역가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 수 있죠."

우리나라와 달리 북미와 유럽은 번역가 양성 시스템이 체계적인 편이다. 캐나다와 미국, 독일, 호주와 같은 선진국에서는 번역가 자격증을 취득해야만 번역가로 활동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자격증이 없어도 번역가가 될 수 있어요. 반면 통번역대학원 졸업자도 실력을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니까 제로베이스에서 출발합니다. 번역은 누구나 할 수 있지만, 또 누구나 할 수 없는 일이 돼버린 거죠."

이 교수는 전문 번역가를 위한 인증 기관이 마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우리나라에는 공인된 번역가 인증기관이 없어요. 공인 자격증 제도를 만들어 국가 차원에서 번역 인력을 양성해야 합니다."

전문 인력이 많아야 우리나라가 각종 국제 사업에서 앞서나갈 수 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그는 국가가 전문 번역가를 양성하면 영어 지상주의의 병폐를 고칠 수 있다고 말했다.

"우리 사회에는 '영어만 잘하면 된다'는 생각이 보편화돼 있습니다. 당장 유럽만 봐도 공용어 수가 23개나 되는데, 우리나라에선 영어만 중시한 나머지 다른 외국어 능통자를 양성하지 못했죠."

영어와 불어가 공용어인 캐나다는 서로 다른 언어를 구사하는 사람들을 위해 공공기관마다 통·번역가를 배치한다.

"캐나다처럼 번역가가 있다면 지금처럼 전 국민이 외국어를 배울 필요가 없지 않겠습니까."

이 교수는 공인된 자격증이 있다면 번역 문제가 해결되고 번역가의 위상도 높아질 것이라고 부연했다.

"우리나라 번역가들은 정식 관문을 거치지 못하니 처음부터 위험부담을 안고 일을 시작하죠. 번역가들이 모이면 단체를 조직해 지위 향상을 도모할 수 있습니다. 부당한 대우를 받으면 공동으로 대처할 수도 있고요."

캐나다나 미국 번역가들은 번역가들이 결성한 이익단체에서 보호를 받는다.

마지막으로 이 교수는 '번역에 대한 진지한 생각과 사회적인 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88올림픽 이후로 번역 수요가 크게 증가했어요. 글로벌 시대에 유럽과 협력하고 중남미 시장을 공략하려면 다양한 분야의 전문 번역가가 필요합니다. 번역 문제가 사회적으로 공론화되서 정부가 번역의 중요성을 인식하길 바랍니다."

덧붙이는 글 | 그동안 취재에 도움 주신 번역업계 종사자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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