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명례궁이 있었던 자리다
▲ 가을빛이 완연한 덕수궁 명례궁이 있었던 자리다
ⓒ 이정근

관련사진보기


이징옥 사건을 전격 처리한 수양이 참모들을 불렀다. 오랜만에 명례궁이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가득했다. 수양 역시 거사 이후 대군청에서 숙식을 해결하다 1개월 만에 집으로 돌아 온 것이다.

"저희 집 종에게까지 상을 내려 주시니 소인이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한명회가 특유의 웃음을 귀에 걸었다.

"무슨 말씀입니까? 석동이가 아니었으면 변방이 소란스러웠을 텐데 그 자의 공이 크지요."

홍달손이 솥뚜껑 같은 손을 가로저었다.

"저희 집 종도 별로 한 일이 없는데 소인이 민망할 따름입니다."

권남이 나직한 목소리로 예를 갖추었다.

"입은 비틀어졌어도 말은 바로 하랬다고, 김종서를 쳐 죽일 때는 어을운이 공을 세웠고, 황보인을 박살낼 때는 막동이가, 이번 이징옥을  때려잡을 때는 석동이가 1등 공신이지요. 그들이 천한 것들이어서 그렇지 공신녹권을 주어도 부족함이 없습니다."

양정이 굵은 목소리를 뿜어냈다.

수양은 호조에 명하여 자신의 집 종 어을운·득림·중이와 임영대군의 종 군자, 동부승지 권남의 종 계수, 사복소윤 한명회의 종 석동·수산·막동, 행 사용 함귀·박막동에게 집 한 채와 면포 1백 필씩을 내려주는 후한 상을 내려주었던 것이다.

명례궁이 있었던 자리다
▲ 덕수궁 후문 명례궁이 있었던 자리다
ⓒ 이정근

관련사진보기


"그곳의 공기를 듣고 싶다."

수양이 한명회를 바라보았다. 모두의 시선이 한명회로 모아졌다.

"종성 백성 2만 명의 절반 이상이 죽어 나갈 거라고 지레 겁들 먹고 있었는데 나리의 은전에 감지덕지 하고 있습니다."
"한방이 그곳 정보를 신속하게 알려주어 내가 결단하는데 도움이 되었다."
"나리가 내려주신 천리마 덕분입니다."

한명회의 구부러진 허리가 더 휠 것 같다.

"아니, 한방이 종성에 있었단 말입니까?"

괄괄한 성미의 홍달손이 얼굴을 붉혔다.

"나리! 이래도 되는 겁니까?"

양정이 수양을 곧추 쳐다보았다.

"한방이 사지에 들어갔다면 최소한 우리는 알고 있어야 하는 거 아닙니까?"

홍달손이 주먹을 불끈 쥐었다.

"섭합니다."

양정이 입술을 부르르 떨었다.

"죄송합니다."

한명회가 죄인이 된 것처럼 자세를 낮추었다.

"나리께서 비밀에 붙인 것 또한 우리가 이해해야 할 것 입니다."

신숙주가 분위기를 다 잡았다.

명례궁 터다
▲ 가을빛이 완연한 덕수궁 명례궁 터다
ⓒ 이정근

관련사진보기


"이징옥 사건은 단순한 조선 장수의 반란이 아니다. 여진과 관련되어 있다. 중국의 뒷마당이 여진이다. 관군을 종성에 투입하여 반란군을 진압하면 여진과 붙을 수밖에 없다. 그들을 섬멸하고자 강을 넘나들면 중국과 껄끄러워 진다. 6진은 우리 땅이다. 이징옥 사건은 땅을 뺏고 뺐기는 전쟁이 아니다. 우리에겐 땅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이징옥의 목이면 되었다. 하여, 북방으로 떠나는 한방에게 '이징옥을 죽이지 못하면 네 목을 거기에 두고 오라'고 명했다. 이제 한방이 내 명을 성실히 수행하고 돌아왔다. 축하해주기 바란다."

우두머리 기질이 번득였다.

"대단혀!"
"한방 수고했어."
"사지에서 살아 돌아온 사람, 손 한번 잡아보세."
"단기로 적진에 뛰어들다니? 한방에게도 그런 배짱이 있었나?"

부러움 반, 시새움 반, 이구동성이다. 한 사람에게 몰아주어 동기를 부여하고 경쟁을 촉발시켜 충성심으로 유도하는 수양의 용인술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세종대왕께서 하사하신 말을 내주시던 나리의 눈빛, 지금도 잊지 못하고 있습니다. '가지고 오지 못하면 두고 오라'는 명령. 그것은 나리의 명(命) 이전에 세종대왕의 영(令)으로 가슴에 새겼습니다. 그 영을 지키지 못하면 정말 '두고 오리라'는 각오로 단발령을 넘었습니다. 마의태자는 속세를 떠나기 위하여 고개를 넘었지만 소인은 머리를 두기 위하여 고개를 넘었습니다.

현지는 살벌했습니다. 한마디로 호랑이 소굴이었습니다. 한성에서 내려온 관리라는 것이 밝혀지면 쥐도 새도 모르게 목이 따일 위급의 연속이었습니다. 하지만 전투는 힘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머리로 한다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그 믿음이 소인을 지탱해 주었습니다. 죽기를 각오하니 이렇게 살아 돌아왔습니다. 살아서 돌아와 죄송합니다."

한명회가 고개를 숙였다. 숙연한 바람이 명례궁을 휘돌았다.

"이제 북방의 일이 일단락되었으니 회맹제를 올릴 것이다."

수양이 선언했다. 상황종료다.

1704년 겸재 정선이 인왕산 기슭 이춘재의 저택 후원에 있는 삼승재에서 바라본 회맹단. 정 중앙 약간 위쪽 접혀진 곳에 회맹단이 있고 임진왜란때 볼탄 경복궁은 주춧돌만 남아 있다. 오늘날의 청와대 자리다.
▲ 삼승조망도 1704년 겸재 정선이 인왕산 기슭 이춘재의 저택 후원에 있는 삼승재에서 바라본 회맹단. 정 중앙 약간 위쪽 접혀진 곳에 회맹단이 있고 임진왜란때 볼탄 경복궁은 주춧돌만 남아 있다. 오늘날의 청와대 자리다.
ⓒ 이정근

관련사진보기


성북단을 찾았다. 형식은 임금이 정난공신을 대동하고 회맹제를 올리는 모양새를 취했으나 사실은 수양이 조카를 데리고 간 것이다.

"조선국왕 신(臣) 홍위는 삼가 정난공신 숙부 영의정부사 수양대군, 좌의정 정인지, 우의정 한확, 운성부원군 박종우, 판중추원사 김효성, 의정부 좌찬성 이사철을 거느리고 감히 천지신명과 종묘사직, 산천백신(山川百神)의 영(靈)에게 고 하나이다.

내가 어린 나이에 대업을 이어 어떻게 국정을 펼칠 바를 몰라 대신에게 정사를 맡겼는데 간신 황보인·김종서·이양·민신·조극관이 조정의 질서를 어지럽히며 안평대군 이용에게 아부하고 변방의 장수 이징옥과 결탁하여 모책(謀策)을 꾸미는 것을 숙부께서 간흉을 전멸(剪滅)하고 왕실을 보전하였습니다.

역적도당은 끝까지 추적하여 도륙 내어야 마땅하나 수양대군께서 온정으로 용서하고 상으로 보답하여 영세토록 하였습니다. 이에 길한 날을 골라 신명께 고하고 산하를 가리켜 맹세하여 그 우호를 영원토록 하는 바입니다.

아울러 말하노니, 회맹한 신하들은 초심을 잃지 말고 왕실에 협보할 것이며 절의를 태만히 하지 말지어다. 나도 또한 이 융공을 생각하여 참소(讒訴)에 마음을 움직이지 않을 것이니 군신이 일체 되어 지성으로 기쁜 일과 슬픈 일을 같이할 것이로되 혹 어김이 있으면 신령이 반드시 죽일 것이니 이 맹세를 마음에 간직하여 종시 변하지 말라."

조선 초, 개국공신과 좌명공신의 회맹제는 삽협(歃血)이 대미를 장식했다. 살아있는 사슴을 잡아 그 피를 마시고 피묻은 입술을 마주보며 '서로 변치 말자'고 맹세하는 의식이다. 일종의 군대문화다. 하지만 이번 회맹제에는 '어린 임금에게는 적절하지 않다,'는 이유로 삽혈이 생략되었다.


태그:#한명회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사실(事實)과 사실(史實)의 행간에서 진실(眞實)을 캐는 광원. 그동안 <이방원전> <수양대군> <신들의 정원 조선왕릉> <소현세자> <조선 건국지> <뜻밖의 조선역사> <간신의 민낯> <진령군> <하루> 대하역사소설<압록강>을 펴냈다.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