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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볕에 방아깨비가 이리저리 뛰어다닙니다. 방아깨비를 따라 아이들도 사방으로 뛰어다닙니다. 조용히, 사뿐히, 아니 온 듯 다녀가야 할 산사에서 신나게 뛰어다닙니다. 10월 22일부터 1박 2일 동안 열린 '아이와 함께하는 귀정사 숲 체험 템플스테이'. 행사 제목에는 잘 어울리지만, '사찰에서 이래도 되나?' 싶기도 했습니다.

  용감한 언니, 2학년 미연이가 방아깨비를 보여줍니다.
 용감한 언니, 2학년 미연이가 방아깨비를 보여줍니다.
ⓒ 정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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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남원시 산동면 대상리 귀정사. 서울에서 약 300킬로미터 떨어진 만행산 중턱에 자리한 전통사찰입니다. 백제 무녕왕 15년(서기 515년)에 창건되었으니 무려 천오백 년이나 된 고찰입니다. 전해 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만행사의 설법만 들어도 병이 낫는다는 유명한 고승이 살았다고 합니다. 소문을 듣고 왕도 고승을 만나러 행궁을 왔는데, 당초 하루만 머물려던 왕이 설법에 빠져 사흘이나 일정을 연기했다고 합니다. 절에서 사흘이나 머물면서 국정을 살피다가 돌아갔다고 하여 절 이름을 귀정사(歸政寺)라고 고쳐 부르게 되었다고 합니다.

귀정사에서 보내는 1박 2일은 도시에서 할 수 없는 순간들을 경험하게 합니다. 아침저녁으로 여러 종류의 새 소리를 듣고, 비 온 뒤에 콸콸 흐르는 계곡의 물소리를 듣고, 온 산에 퍼지는 종소리를 들었습니다. 만행산의 맑은 공기는 서울에서 마실 수 없는 보약입니다. 텃밭에서 자란 채소는 엄마가 차려주기 어려운 밥상입니다. 

숲 체험 템플스테이는 어린이 일정과 어른이 함께 할 수 있는 일정으로 구분됩니다. 숲해설 시간은 아이와 어른이 모두 참가합니다. 저녁에는 아이들끼리 모여 그림책을 읽거나 그림을 그리고, 어른들은 자유시간을 보냅니다. 이튿날 아침, 어른들이 명상을 배우는 동안 아이들은 숲에서 자유롭게 놉니다.

 네 살 수빈이 혼자 나뭇잎으로 무슨 놀이를 하는 중일까요?
 네 살 수빈이 혼자 나뭇잎으로 무슨 놀이를 하는 중일까요?
ⓒ 정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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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들이 방아깨비 잡기 놀이에 빠져 온 마당을 뛰어다닐 때 네 살 수빈이가 혼자 앉아 나뭇잎으로 뭔가 만들고 있습니다. 혼자 두어도 괜찮습니다. 숲에서 놀면 똑같은 형태가 하나도 없이 모두 다르게 생긴 자연물을 가지고 놉니다. 플라스틱 장난감이 없어도 집에 가자고 보채지 않아 다행입니다.

 연꽃이 진 자리에 수많은 풀꽃이 살고 있습니다.
 연꽃이 진 자리에 수많은 풀꽃이 살고 있습니다.
ⓒ 정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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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해설을 해주신 양윤화 선생님은 네 살 꼬마들이 듣기에도 어렵지 않은 단어들로 설명해주셨습니다. 보광전 뜰 앞에 놓인 작은 고무 통 안에 꽤 여러 종류의 식물들이 어울려 살고 있었습니다. 그 중에는 한국에서만 볼 수 있는 고유한 식물도 있었는데, 전에는 그냥 지나치던 꽃들입니다. 아이들에게 꽃 이름 하나, 나무 이름 하나 더 알려주기 위해 숲해설 시간을 배정한 것은 아닙니다. 어른과 아이가 손을 잡고 귀정사 주변에 살고 있는 풀과 나무들에 조금 더 관심을 갖기 위해 마련한 일정입니다. 숲해설가의 안내를 받으며 절 주위의 자연환경을 조금씩 알아가는 것은 어른과 아이 모두의 호기심을 자극합니다. 이름을 알게 된 들풀이 발에 밟힐세라 이름을 모를 때보다 조금 더 조심하게 됩니다. 한 달에 두어 시간. 숲해설가 선생님이 알려주신 조각 정보들이 어른과 아이의 일상 대화에 쌓이면서 집 앞 가로수 밑에 핀 풀꽃을 봐도 반가움을 느낍니다. 

 키가 닿는 곳의 열매를 채취하는 아이들.
 키가 닿는 곳의 열매를 채취하는 아이들.
ⓒ 정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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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은 열매의 계절입니다. 감나무 아래에서 얼굴을 하늘로 향하고 주렁주렁 매달린 주황색 감을 쳐다만 보던 아이들이 저희들 키에 닿는 열매를 보자 반색하며 달려갑니다. 잘 모르는 열매를 함부로 먹으면 안 된다는 것쯤은 아이들에게도 기초상식인가 봅니다. 

 아이들이 놓아둔 다람쥐 밥상
 아이들이 놓아둔 다람쥐 밥상
ⓒ 정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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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가을 숲에 열매가 많지 않다는 숲해설가 선생님의 말씀에 아이들은 가지고 놀던 열매들을 놓아두고 옵니다. 우리가 장난삼아 노는 열매들이 산 속 동물들의 겨울 양식이라는 설명을 흘려듣지 않은 모양입니다. 어른들이 말이나 글로 환경보호나 생태 교육을 강조하지 않아도 숲에서 아이들은 고운 심성을 스스로 기르는 듯합니다.

 타종 체험은 어른과 아이가 함께 합니다.
 타종 체험은 어른과 아이가 함께 합니다.
ⓒ 정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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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종은 템플스테이에서 빼놓을 수 없는 체험입니다. 범종각에 모여 한 가족이 다섯 번 정도 종을 치는데, 여러 프로그램 가운데 가장 인상적이라는 아이도 있었습니다. 수줍음이 많아 종 앞에 가기도 꺼려했던 아이들이 그림일기에 타종 장면을 그렸습니다. 행여 종소리에 아이들이 경기를 일으키지는 않을까 염려했던 것은 기우였습니다. 네다섯 살 아이부터 중학교 1학년 학생까지 타종에 참여한 아이들 가운데 누구도 놀라거나 장난치지 않았습니다.  

 긴 세월 전해내려온 한국 불교 이야기에 귀를 기울입니다.
 긴 세월 전해내려온 한국 불교 이야기에 귀를 기울입니다.
ⓒ 정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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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광전에 앉아 계신 부처님들은 얼굴도, 손 모양도 다릅니다. 불교 신자가 아닌 아이들도 우리나라에서 오랜 세월 사람들의 성정을 보듬어 온 불교 이야기에 귀를 기울입니다. 반짝이는 금빛 조각상 앞에서 어른들을 따라 큰절을 올리고, 목탁 소리에 맞춰 어른들이 암송하는 낯선 소리를 듣느라 진지한 표정입니다.

 그림책과 그림일기로 하루가 끝이 납니다
 그림책과 그림일기로 하루가 끝이 납니다
ⓒ 정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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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에서는 밤이 일찍 깊어집니다. 도시에서 저녁 여덟 시는 초저녁이지만, 산사에서는 사정이 다릅니다. 손전등이 없이는 해우소 가는 길조차 곤란합니다. 구들이 뜨뜻해진 만행당에 모여 앉아 아이들은 그림책을 읽거나 그림일기를 씁니다. 아이들이 책과 일기로 하루를 마감하는 시간, 어른들은 아이들과 떨어져 각자 조용한 시간을 보냅니다. 집에서는 저녁 식사를 하느라, 텔레비전 뉴스를 보느라, 학교 가는 아이 준비물 챙기느라 분주할 때입니다. 2학년 언니의 꼼꼼한 그림일기를 어깨너머로 보며 동생들은 그럴싸하게 흉내를 냅니다. 삐뚤빼뚤 꾹꾹 눌러쓴 글씨들이 하루가 얼마나 재미있었는지 전해줍니다.

십일 월, 우리 집 쿠하와 까이유는 귀정사 뜰에서 친구들과 뛰어 놀 채비를 합니다. 스케치북도 챙기고 크레스파스도 준비합니다. 엄마가 사진을 고르는데 곁에서 지난 번에 만난 친구들이 보고싶다고 합니다. 열매 찾기 게임을 할 때 뱀을 보고도 무서워하지 않았던 용감한 수빈이, 아빠한테 딱 붙어다니면서도 언니들 놀이에 관심을 놓지 않던 초빈이, 진지하고 호기심 많은 미연이 언니 이야기를 곧잘 합니다. 이번 달에는 누가 올까 궁금해 하며 자기 배낭은 자기가 싸겠다고 나섭니다.

덧붙이는 글 | 귀정사 숲 체험 템플스테이는 11월 19일~20일에도 열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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