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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부터 2011년 <오마이뉴스> 지역투어 '시민기자 1박2일'이 시작됐습니다. 이번 투어에서는 기존 '찾아가는 편집국' '기사 합평회' 등에 더해 '시민-상근 공동 지역뉴스 파노라마' 기획도 펼쳐집니다. 이 기획을 통해 지역 문화와 맛집, 그리고 '핫 이슈'까지 시민기자와 상근기자가 지역의 희로애락을 자세히 보여드립니다. 어느덧 여섯 번째, 이번엔 부산·경남입니다. [편집자말]
악양면 무딤이들(평사리 들판)에 있는 부부송. 악양의 상징이 되고 있습니다.
 악양면 무딤이들(평사리 들판)에 있는 부부송. 악양의 상징이 되고 있습니다.
ⓒ 배만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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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토지>의 무대인 최참판댁이 있고, 선홍빛 대봉감이 붉게 물들며 가을을 알리는 곳, 그리고 슬로시티로 지정되고, '지리산 행복학교'로 알려져서 전국의 귀농인들이 이상향으로 여기며 살고 싶어하는 곳. 그곳이 바로 경남 하동군 악양입니다.

어떤이는 악양에 터전을 마련하려고 십여 년을 기다리기도 하고, 또 어떤 이는 아는 사람을 통해서 아주 쉽게 터전을 잡기도 합니다. 하지만 모두가 다 시골에서의 삶에 만족하고 사는 것이 아닙니다.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 시골에도 예외없다

뭔가 하는 일이 잘 되지 않을 때면 '에이, 군대나 가 버리지'하고 말하지요. 하지만 그런 군대도 갔다 오면 또 이렇게 말합니다. '촌에 가서 농사나 짓고 살지'. 하지만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이 촌에 가서 농사를 짓고 사는 경우는 보지 못했습니다.

작은 마을공동체에서는 모든 게 보입니다. 대문은 언제나 열려 있고, 그 대문으로 이웃들은 언제나 드나들지요. 도시의 폐쇄된 문화와 가장 큰 차이점입니다. 집만 나서면 모두가 아는 사람이고, 모두에게 내 생활이 보여집니다. 도시의 익명성과는 전혀 다른 문제이지요. 그래서 내가 잘못한 일은 곧바로 소문이 납니다. 반대로 내가 잘한 일은 은근한 질투심을 유발시키기도 합니다.

제가 고향인 악양으로 와서 알게 된 사람이 있습니다. 그는 그림을 그리고, 또 그 일을 사랑합니다. 대학 시절 사회참여 활동을 웬만큼 했고, 악양을 우연히 알게 되어 자리잡고 살게 되었습니다.

그의 고향 역시 시골입니다. 그는 결혼을 했고 두 아이가 있습니다. 귀농인 주택신축자금을 대출받아 집을 짓고, 틈틈이 고향의 부모님을 찾아가 농사일을 돕습니다. 그리고 지역사회에 뭔가 도움을 주고자 작은 도서관을 만들었고, 여러 사람들의 도움으로 눈부신 성장을 하였습니다. 하지만 이제 그는 조용히 지내고 싶어 합니다. 그의 아내는 지쳤으며, 그 역시 열정을 잃어가는 듯합니다.

사촌이 땅을 사는 것처럼 시기하고 질투하는 사람들 때문입니다. 시골이어서 더한 것이 아니라 시골이기 때문에 더 심한 상처를 주는 것일 테지요. 익명성이 사라지자 온갖 소문도 많이 납니다. 그의 아내는 무슨 일이 있어도 살아 내고야 말겠다며 다짐을 합니다.

섬진강변의 전원주택... 누군가는 눈물 흘립니다

MBC 다큐멘터리 <지리산에서 행복을 배우다>의 한 장면.
 MBC 다큐멘터리 <지리산에서 행복을 배우다>의 한 장면.
ⓒ i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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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반도주하듯이 고향을 등진 이가 있습니다. 조상의 묘가 있고, 어린 시절의 추억이 있으며, 농촌 삶이 좋아 아이를 농업고등학교에 보냈습니다. 하지만 농촌에서의 삶은 '못난 자식이 선산 지킨다'는 말처럼 단지 땅을 지키는 것뿐이었습니다.
김영삼 대통령 시절 WTO(세계무역기구) 가입 문제로 시끄러웠습니다. 대통령은 농촌을 살린다는 이유로 수조 원을 풀었지요. 이른바 농기계 반값 공급입니다. 그리고 농지를 구입하기 위한 자금 대출도 많이 해 줬습니다. 낮은 이자와 장기 상환기일이 꿀 같은 유혹이었습니다.

그렇게 대출 받은 수억 원에 이르는 원금과 이자 때문에 '억대 빚을 지지 않으면 대한민국의 농민이 아니다'라는 말까지 나돌고 있습니다. 하지만 수억 원의 빚은 3%의 이자를 감당하기에 벅찹니다. 결국은 농지는 경매로 넘어가고, 일용직이라도 현금을 만질 수 있는 도시 노동자로 나서게 됩니다.

농촌에서는 도시와는 달리 생활비가 적게 듭니다. 웬만한 먹을거리는 자급을 하게 되고, 남는 것은 이웃끼리 나눠 먹습니다. 엥겔 지수로 따진다면 선진국이 따로 없지요. 하지만 그만큼 수입도 없습니다. 적게 벌고 적게 쓰는 것이지요. 비율로 따진다면 도시와 다를 것이 없습니다.

일부 예술가들이 이런 삶을 행복하다고 말을 합니다. 글을 쓰고, 노래를 하고, 공예를 하는 사람들은 농사를 짓지 않습니다. 그들도 땀을 흘리겠지만 농부의 땀과 같을 수는 없겠지요.

슬로시티로 지정되고 대봉감으로 유명한 이곳에도 돈이 없어 눈물 흘리는 이가 많습니다. 도시의 부자들이 섬진강이 보이는 좋은 곳에 흙집을 짓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땅은 집을 짓기 전에는 어느 농부의 밭이었고 논이었습니다. 그리고 수없이 많은 땀이 뿌려져서 곡식이 자랐고 아이는 학교를 다녔습니다. 그러다 경매로 팔리고, 평생 만져 보기도 힘든 거액에 팔리는 것입니다.

'토박이'와 '들어온 놈들'... 다툼은 끊이지 않습니다

지난 여름, 예스24에서 책보따리 도서관에 도서 1000권 기증식을 하고 있는 장면.
 지난 여름, 예스24에서 책보따리 도서관에 도서 1000권 기증식을 하고 있는 장면.
ⓒ 배만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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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사는 곳이라면 다툼도 많습니다. 모두들 잘해 보자는 것이겠지요. 하지만 함께 무너진다는 것을 왜 모를까요.

악양이라는 동네의 자연환경 때문인지 외지인들이 많이 들어옵니다. 관광으로 왔다가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정착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렇게 들어오는 사람들은 귀농, 귀촌 등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곳에서는 '들어온 놈'이라고 부릅니다. 그와 반해서 오랫동안 살아온 즉, 고향인 사람들은 '토박이'라고 부르지요. 왜 이렇게 된 것일까요?

어느 지역이나 비슷하게 귀농, 귀촌인들은 따로 어울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서로 정보를 교환하거나 어려움을 느끼는 것이 비슷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지역 발전을 위해 뭔가를 하려고 합니다. 이곳 악양에서는 작은 도서관(책보따리 도서관)을 만들었습니다. 그렇게 만든 도서관은 악양에 사는 예술가들의 손끝을 통해 순식간에 유명해졌습니다.

책보따리 도서관은 2010년 9월 문을 열고 그 해 10월에 문화체육관광부의 작은도서관 조성지원사업에 선정됐습니다. 도서관 리모델링 사업 등으로 억대의 지원금이 결정되자 정치권까지 개입되어 시끄러워지기 시작했습니다.

급기야 토박이들의 대표모임이라 할 수 있는 악양면 청년회에서 사업권을 달라며 나서기 시작했고, 이에 지역의원과 군청공무원까지 가세하면서 '일부 외지인은 각성하라'는 현수막까지 걸리게 되었습니다.

토박이와 들어온 것들의 갈등은 해결의 실마리를 보이지 않은 채 그렇게 해는 저물고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 내가 태어난 곳보다는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지역이 고향입니다. 행복은 나로부터 나오는 것이지 지리산에, 좋은 사람에게 있는 것이 아닙니다. 행복을 찾아 지리산으로, 악양으로 오지 마시길 바랍니다.



태그:#악양, #지리산, #행복학교, #책보따리, #책보따리 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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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에 말이 적어야 하고, 뱃속에 밥이 적어야 하고, 머리에 생각이 적어야 한다. 현주(玄酒)처럼 살고 싶은 '날마다 우는 남자'가 바로 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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