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드라이브> 포스터

영화 <드라이브> 포스터 ⓒ 판씨네마㈜


영화는 진동으로 시작된다. 그 소리는 심장박동처럼 울려퍼져 긴장과 불안을 불러낸다. 관객은 기꺼이 놀랄 준비가 되어있고 흥분의 도가니를 뒤집어 쓸 용의도 있다. 첫 시퀀스에서 드라이버는 절도범을 태우고 경찰을 따돌리는데, 드라이빙 액션은 기대와 달리 밋밋해, 삐죽거리는 입에 나온 한마디는 '아!' 가 아니 '어?' 였다.

<드라이브>(11월 17일 개봉), 이 영화는 얼핏 보면 할리우드판 <아저씨>처럼 보인다. 이웃을 사랑하여 복수를 해주는 영웅이야기다. 그 이웃은 여자이며 엄마이며 엄마에게는 여지없이 아이가 있다. 그리고 이웃에게 문제가 발생한다. 그런데 이 이웃집 아저씨가 영웅이 되어가는 과정은 사뭇 다르게 흘러가고 이는 <드라이브>와 <아저씨>의 몰입도가 달라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영웅은 감춰져 있든 스스로 은폐하든 영웅이 될 수 있는 변환점이 필요하다. 대체적으로 장애물이나 적대자에 의해 주인공과 관련된 희생이나 위기가 발생하며, 주인공은 일련의 사건들 속에서 갈등을 겪으며 변화한다. 모든 이야기에서 통용되는 이 변화는 특히 영웅이야기에서는 빠질 수 없는 부분이다. 이는 영웅적 행동의 명분이 돼, 관객들은 영웅이 살인과 폭력을 휘둘러도 기꺼이 죄를 사하고 열렬히 응원한다.

엄밀히 말하면 모든 영웅은 이타적이기에 이기적 영웅이란 있을 수 없다. 그런데 행위가 너무 과도해 이타적 부분을 덮어버릴 정도라면, 호르몬과잉증후군에 시달리는 이기적 영웅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이때부터 관객은 냉정하게 응원을 접고 어디까지 하나 두고 보자 하는 눈빛으로 삐딱하게 자세를 틀게 된다.

이 영화에 주인공 드라이버(라이언 고슬링)의 배경이나 전력은 나오지 않는다. 그는 고독하며 말수가 적고 여느 영웅처럼 잘 생겼다. 재능은 얼마나 뛰어난지 범죄자수송차량의 운전수이자 정비사이며 뛰어난 자동차 스턴트맨이고 유망한 카레이서이기도 하다.

 아버지가 되고 싶은 드라이버

아버지가 되고 싶은 드라이버 ⓒ 판씨네마㈜


그는 전부터 마음에 두고 있던 이웃집 여자 아이린(캐리 멀리건)을 사랑하고, 마치 아버지처럼 여자의 집에 들어앉아 자신의 결핍을 보상하려는 듯 그녀의 아들과 다정히 텔레비전을 보기도 한다. 그런데 아이린의 남편이 출소하면서 행복한 단꿈은 잠시 끊기고, 문제가 발생한다.

남편은 감방에서의 안전을 대가로 돈을 갚아야 하고, 그 돈을 갚는 대신 전당포에서 돈을 훔쳐내야 한다. 드라이버는 남편을 돕기로 한다. 남편은 연적일 수 있으며 양아치에 불과한데 왜 드라이버가 도와야 하는지는 사실 이해가 가지 않는다. 영웅은 남의 일이 곧 자기 일인 냥 오지랖이 넓다고 생각해보면, 남편이 위험하면 사랑하는 여인이 불행할 수 있으니까 도울 수 있다. 꺼림칙하지만 일단 패스.

상황이 바뀌어 남편이 전당포를 털다가 잘못되고, 갱단이 드라이버를 죽이려 한다. 그 와중에 갱단의 두목 격인 버니(앨버트 브룩스)는 엉뚱하게 드라이버의 친구이자 트레이너이며 정비소 사장인 섀넌(브라이언 크랜스턴)을 죽인다. 가히 생뚱맞은 희생이 발생한 것이다. 섀넌은 친구이긴 하지만 절친하지 않고 드라이버를 카레이서로 키워 돈을 벌려고 하는 사람이다. 그러니 정의를 위한 분노를 끌어내기에는 적절한 희생자가 아니며 그렇다고 하더라도 희생은 너무 늦게 일어났다.

또 위기로 분노에 불을 붙여 영웅이 등장하게 해야 하는데, 위기의 직접적인 인물인 아이린은 내내 집안에서 안전하게 쉬고 있을뿐더러, 버니는 잔인한 모습과 달리 아주 신사적으로 전당포에서 턴 돈만 갖다 주면 아이린의 안전이 보장될 것이라고 말하고, 드라이버는 순진하게 그걸 또 믿는다.

드라이버가 영웅이 되기 위해서는 분명 사랑하는 사람이나 삶의 일부인 사람, 일반적인 약자, 수많은 사람들이 희생을 당하거나 위기에 처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영웅은 고뇌하다 온갖 위험을 무릅쓰고 영웅으로 탄생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 영화에서는 이런 영웅탄생과정이 없다. 드라이버의 행동들은 남을 위한 것이니 그가 영웅이라고 치더라도 적들보다 더 잔인한 복수를 한다. 이 모습에는 정당방위의 통쾌함도 없고 꼭 호르몬과잉증후군에 시달린 환자처럼도 보인다. 반면 <아저씨> 원빈은 이 영화 주인공처럼 천하무적이긴 하지만 끊임없이 위기에 처한 소미(김새롬)를 찾으려고 하고, 소미 또한 살기 위한 투쟁을 하지만, 아이린은 집안에서 역시 편안히 머물러 있다.

 영화 <드라이브>의 한 장면

영화 <드라이브>의 한 장면 ⓒ 판씨네마㈜


바로 이 영화가 잃어버린 것은 균형이다. 액션에서 폭력과 살인은 난무한다. 이 와중에서도 우정이나 사랑이라는 서브플롯은 메인플롯과 연결되어 균형을 유지해야 관객의 시선을 잡아둘 수는 있다. 이 영화의 서브플롯은 아이린과의 사랑이지만 그녀가 위기에 빠지며 그의 사랑을 자극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다. 사실상 서브플롯은 1막에서 끝나버려, 메인플롯인 드라이버와 갱단의 싸움에 흥미가 떨어진다.

왜냐면 여자는 안전하니까. 메인플롯의 액션에서도 양쪽이 막상막하 치고 박고해야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스릴과 눈을 뗄 수 없는 재미가 있는데 일개 드라이버의 공격력은 전직특수요원인 원빈 아저씨와 대적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다. 특히 엘리베이터에서 드라이버가 아이린과 키스를 하다가 갑자기 갱의 머리통을 뭉개버리는 잔인성은 과연 아이린이 그를 사랑할 수 있을까 의심을 불러일으킨다.

하지만 이 영화에도 미덕은 있다. 바로 캐릭터의 발견이다. 주인공 라이언 고슬링은 이미 몇 편의 영화에 출연했지만 두각을 나타내진 못했다. 그러나 이 영화가 칸에서 감독상을 받으며 그는 유명해졌다. 전갈점퍼를 벗기고 양복을 입혀 월스트리트에 내놓으면 딱 증권맨처럼 말쑥해 보이지만, 액션히어로의 에너지와 부드러운 인상 덕에 멜로나 다른 장르도 가능해보인다.

2011년 칸 영화제에서 20년 만에 할리우드 액션이 감독상을 받은 것은 경이로운 일이다. 하지만 영웅이야기의 공식을 깨뜨린 실험성을 높이 산 건지, 비교적 일반적인 수준의 연출력이 그날따라 유럽출신 감독이라 달라보여선지 알 수 없다.

영화가 끝나고 관객들은 영화가 재미있으면 영화에 대해 얘기하거나 재미없으면 돈이 아깝다고 생각하며 뭘 먹을까 이야기 한다. 과연 이 영화를 보고 관객은 어떤 대화를 나눌지 궁금하다.

드라이브 리뷰 캐리 멀리건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