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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진중공업 영도조선소 85호 크레인에서 '정리해고 철회'를 주장하며 309일 동안 고공농성을 벌였던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이 부산 사하 오케이오병원에 입원 중이다.
 한진중공업 영도조선소 85호 크레인에서 '정리해고 철회'를 주장하며 309일 동안 고공농성을 벌였던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이 부산 사하 오케이오병원에 입원 중이다.
ⓒ 윤성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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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크레인 위에 있는 것 같다. 만약에 고공농성 하러 높은 크레인에 올라가는 사람이 있다면 절대 반대할 것이다. 그만큼 힘들기에 못하게 말릴 것이다."

14일 저녁 부산 사하 오케이(ok)오병원 병실에서 만난 김진숙(51)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이 인터뷰를 마친 뒤 밝힌 소감이다. 35m 높이의 한진중공업 영도조선소 85호 크레인에서 309일 동안 고공농성했던 김 지도위원은 이날 오전 동아대병원에서 이곳으로 옮겨 왔다. 옆방에는 85호 크레인 중간층에서 137일간 농성했던 박성호(49)와 박영제(53), 정홍형(48)씨가 입원해 있다.

이들은 지난 10일 85호 크레인에서 내려온 뒤 경찰에 체포돼 조사를 받았고, 검찰은 이들에 대해 업무방해·건조물침입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하지만 부산지방법원은 영장실질심사를 거쳐 13일 영장을 기각했다.

김진숙 지도위원에 머물고 있는 병실에는 찾아오는 사람들이 많이 시끌벅적했다. 직접 잡은 전복으로 끓인 '전복죽'을 해오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금속노조 부산양산지부 운영위원들은 단체로 병문안을 왔다. 또 '날라리 외부세력' 등 단체들이 빠른 쾌유를 기원하는 화분을 보내기도 했다.

최근 검찰이 기각된 구속영장을 다시 청구할지도 모른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는 가운데, 이에 대해 김진숙 지도위원은 "검찰이 더 무리하지 않고 순리대로 했으면 한다"며 "법원이 기각 판결을 한 것을 깊이 헤아려야 한다"고 밝혔다.

그는 이번 한진중공업 정리해고 철회 투쟁은 '승리'라고 평가했다. 김 지도위원은 "과정의 승리다, 너무 힘들게 싸운 게 사실이고 저와 한진중공업 조합원만이 아니라 희망버스를 탄 시민이며, '트위터'를 통한 연대 등 모두 함께 싸운 과정의 승리다"라고 설명했다.

정동영 의원, 두 번째까지는 전화도 안 받아

'희망버스'에 대해, 그는 "쌍용자동차 동지들을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고 거기에 비하면 우리는 행복하게 싸웠다, 쌍용차 퇴직 관련자 19명이 죽었다"며 "죽음의 행렬을 끊기위해 연대 행렬이 쌍용차를 향해 갔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어 "희망이 있으면 아무리 힘들어도 죽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앞서 국회 환경노동위원회는 노사 합의의 토대인 '권고안'을 마련했고 이에 민주당 정동영·홍영표 의원 등 야당 의원들이 적극 나섰다. 정치인들의 활동과 관련해 김진숙 지도위원은 "공개적으로 고맙다는 인사를 한 적이 없는데, 그 이유는 그 분들이 당연히 할 일이라서 그렇다"면서 "우선 고맙고 그런 분들이 진정성을 갖고 한진 문제에 최선을 다했다고 본다"고 말했다.

정동영 의원에 대해, 그는 "처음에는 놀랐고, 두 번째까지는 '사진만 찍고 가겠지'라고 생각해서 전화도 받지 않았다, 세 번째 왔을 때부터 전화를 받았다"며 "정동영 의원은 크레인이 침탈 위기에 있다고 하면 하루에도 몇 번씩 전화를 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이어 "정치인은 법과 제도를 만드는 분들이니까 이후에도 쌍용차 문제에 대해, 정말 진정성을 갖고, 최선을 다하는 태도를 보여줘야한다"고 제시했다.

다음은 김진숙 지도위원과 나눈 대화 내용이다.

- 건강은 어떤가.
"여러 치료를 받고 있다. 목이 좀 이상하고, 위염도 있고, 인파선도 부어 있다. 관절도 안 좋다. 나이가 들기도 해서 그런데, 그동안 제대로 치료를 받지 못했다."

- 이번 투쟁은 승리했다고 보나, 승리했다면 그 원인은?
"과정의 승리다. 너무 힘들게 싸운 게 사실이고, 저와 한진중공업 조합원만이 아니라 희망버스를 탄 시민이며, '트위터'를 통한 연대 등 모두 함께 싸운 과정의 승리다. 결과도 의미 있다. 희망버스가 힘이 되어 국회 청문회도 열었다. 재벌 회장이 청문회에 출석한 것은 12년만이라고 하더라. 그렇게 해서 국정감사 때 권고안이 만들어지고, 그 바탕으로 노사합의까지 이르렀다. 의미 있는 성과였다. 대한민국에서 시민사회 때문에 정치권이 움직였던 것이 의미 있었다."

"사람들이 김진숙을 빨리 잊었으면 좋겠다"

- 그동안 많은 사람들이 걱정했다.
"사람들한테서 빨리 잊혀졌으면 좋겠다. 한진중공업 투쟁은 남는다고 하더라도 김진숙은 잊혀지기를 바란다. 언론도 그렇다. 인터뷰를 하지 않으려고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동안 한진중공업 투쟁에 애정을 갖고 보도한 몇몇 언론과만 인터뷰를 하지, 다른 언론사와는 하지 않는다."

- 빨리 잊어지기를 바란다는 말은 무슨 뜻인가.
"부담스럽다. 제가 원래 앞에 나서서 이슈의 중심이 되는 것을 싫어하는 사람이다. 싸우다 보니 이렇게 됐지만. 크레인 위에 있을 때도 그런 관심들이 부담이었지만, 그때는 사정 때문에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사실 인터뷰를 하는 게 피곤했고 지금도 그렇다. 별로 즐거운 일이 아니다."

- 크레인 위 생활은 어땠는지 궁금해 하는 사람이 많은데.

"거의 잠을 못 잤다. 6월 27일 행정대집행이 있고 나서 용역들이 크레인을 둘러싸고 있었다. 강제침탈 위험들이 구체화 되고 있었다. '특공대'가 크레인을 정탐하는 모습들이 내 눈 앞에서 보였다. 그런 상황을 트위터에 올리면 기자들이 확인한다고 회사에 물어보는데, 그러면 회사는 그런 일이 없다고 했다. 한번은 용역들이 크레인 계단으로 올라왔다. 중간층에서 농성하던 정홍형 동지가 항의를 위해 내려가 용역들과 싸웠고, 이후 박영제 동지가 파이프를 들고 내려가 정 동지와 함께 올라오기도 했다. 그리고 부사장까지 나와서 크레인 밑에 그물 작업을 하기도 했고, 크레인을 바다 쪽으로 끌고 가려는 시도를 하기도 했다.

강제침탈 위험은 눈앞에서 벌어졌다. 불안해서 1시간 이상 자지 못했던 것 같다. 조선소의 쇠 부닥치는 소리가 많이 났는데, 밤에 자다가 몇 번을 깼는지 모른다. 강제침탈 분위기에 밥을 먹다가도 뛰어 나가기도 했다. 몸무게가 많이 빠졌는데, 그때가 힘든 시기였다. 아침에 깨는 시간은 오전 7시경이었고, 그러면 이불을 널고, 아침을 먹었다. 그런 다음 트위터를 주로 했다.

신문도 텔레비전도 볼 수 없어 세상에서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는 트위터에서 확인했다. 점심을 먹고 나면 운동을 하고, 오후가 되면 찾아온 손님들에게 손을 흔들어 인사하거나 전화통화를 했다. 그러고 나면 오후 5시30분경 저녁식사가 올라오고, 운동한 뒤 7시30분부터 1시간 동안 벌어진 촛불문화제를 지켜보았다. 그게 공식적인 하루 일과였다."

- 하루 일과가 계속 반복됐을 것 같은데?
"굉장히 단조로웠다. 늘 같은 풍경과 생활의 반복이었다. 희망버스가 오면 1주일 정도는 긴장했다. 희망버스가 오기 전에는 희망버스를 반대하는 영도 주민들이 '절망버스'니 하면서 선무방송을 해서 긴장하기도 했다. 희망버스가 반갑기도 하면서도 걱정이 되었다."

"트위터 하면서 새로운 경험... 너무 신기했다"

한진중공업 영도조선소 85호 크레인에서 '정리해고 철회'를 주장하며 309일 동안 고공농성을 벌였던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이 부산 사하 오케이오병원에 입원 중이다.
 한진중공업 영도조선소 85호 크레인에서 '정리해고 철회'를 주장하며 309일 동안 고공농성을 벌였던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이 부산 사하 오케이오병원에 입원 중이다.
ⓒ 윤성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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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트위터를 통해 세상과 소통했다.
"트위터는 크레인에 올라가서 시작했다. 처음에 트위터가 뭔지 잘 몰랐다. 처음에 아이폰을 올려주었는데, 설명서도 없었고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몰랐다. 글을 어떻게 쓰는지, 오타 수정은 어떻게 하는지도 몰랐다. 심지어 띄어쓰기도 몰랐다. 뒤에 누가 띄어쓰기 안 하고 올리는 게 '이재오 문법'이라고 하더라. 아이폰과 트위터는 거의 스스로 터득했다. 중간에 몇 번을 내팽개친 적도 있다. 그러다가 하니까 재미있더라. 사람들이 응원을 하기도 했다. 김여진(배우)씨가 응원하는 글을 남겼던데, 정말 신기하더라. 연예인이 관심을 보이고, 안부를 물어보고 하는 게 신기했다."

- 85호 크레인에 대한 트위터 반응은 폭발적이었는데.
"처음 트위터 계정을 만들어서 올려주었다. 저녁시간에 올라왔는데, 할 줄을 몰라 꺼놓았다가 아침에 열어봤다. 그랬더니 수백명이 와서 글을 남겨 놓았더라. '김진숙 트위터 맞느냐'거나 '고공에서 하고 있느냐' '얼마나 힘드냐' 등등 여러 가지를 물어봤다. 정말 신기하더라. 그때부터 트위터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새로운 경험을 했다.

트위터에서 유명한 사람을 만나기도 했다. 따뜻한 사람도 많더라. 사람들이 의외로 관심이 많다는 것을 확인했다. 기존에 만나왔던 민주노총 사람들은 동지적 관계였다면, 트위터는 90% 이상이 모르는 사람이었다. 서울이며 광주 등 전국에서 트위터로 알고 찾아와서 크레인 아래에서 노숙하고 가기도 했다. 침탈 위협이 있다고 하니까 사람들이 만사를 제쳐놓고 온 것이다. 크레인 밑에서 매일 저녁 '100배 서원'을 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고맙다."

- 중간에 전기 공급이 차단되어 트위터를 보름 정도 못할 때가 있었는데?

"그때가 제일 힘들었다. 늘 트위터를 하다가 전기가 끊어지면서 못했다. 갑자기 세상과 단절된 느낌이 들었다. 나중에 태양열 충전기가 올라와서 트위터를 다시 시작할 수 있었다. 당시 트위터를 못할 때 크레인에 어떤 상황이 벌어지면 일반 휴대전화로 김여진씨 등 몇몇 사람한테 문자를 보냈고, 그 사람들이 긴급사항이라며 트위터에 올려서 알렸던 것이다."

- 트위터를 하면서 재미를 톡톡히 느낀 것 같다.
"트위터를 하면서 한진중공업 정리해고의 부당성에 대해 이야기 한 적은 드물다. 크레인 침탈 위기 때와 부산지방노동위원회의 부당해고 구제신청 결정 당시 한두 번 정도 '흑자인 기업에서 왜 정리해고를 하느냐'는 내용의 글을 남긴 게 고작이었다. 난 트위터에서 편안한 이야기를 했다. 크레인에서 바라본 노을이라든가, 방울토마토, 강아지 이야기를 편하게 했다. 그런 이야기가 훨씬 더 공감을 얻었다고 본다.

나는 30년 투사인데다 고공농성이라는 극단적이고, 쉽게 공감할 수 없는 투쟁을 하는 사람이었다. 그런 내가 크레인을 '마징가제트'로 개조하고 싶다고 했다. 아마도 그것이 처음 올린 글일 것이다. 이런 게 웃기기도 하면서, (사람들에게)호기심이 생겼던 것 같다.  그 뒤 사람들이 김진숙이 누구인지 알아보고, 제가 쓴 책(소금꽃)을 읽고 사면서 다양한 사람들이 관심을 가졌다고 본다.

아이엄마부터 직장인까지, 거기다가 핀란드 미국 일본에서도 너무 다양한 사람들이 다양한 관심을 보였던 것 같다. 지금도 보면 투쟁하는 분들이 트위터를 많이 한다. 그런데, 전부 '어렵다, 도와주세요'라거나 '며칠 집회 있으니 함께 하자'는 이야기다. 물론 절박하기에 그런 글을 올린 것일 것이다. 나는 8개월 정도 트위터를 했는데, 내가 봤을 때 트위터의 특성은 자유분방하다는 거다. 사람들은 상당히 진보적이고, 글을 잘 쓴다. 정말 촌철살인이다. 재치가 번뜩이는 분들이 많다. 의도해서 한 것은 아닌데, 트위터를 통해 위로받고 싶고, 내가 하고 싶은 말을 하고 싶었다. 편안하게 이야기 하고 싶었다."

- 크레인에 내려 와서도 트위터를 하고 있나.
"저는 기계 문명을 거부하며 살아왔다. 자동차 면허증도 없다. 문명의 이기라는 게 오히려 가난한 사람을 소외시키는 것이라 생각했고, 그래서 거부반응이 컸다. 인터넷도 메일을 확인하는 정도였다. 연설문도 다 손으로 썼다. 그랬는데 트위터를 하면서 매력에 빠지고, 장점을 충분히 활용해 도움을 받았다. 그런데 크레인에 내려오니 트위터 할 시간이 더 없다."

- 크레인에 있으면서 가장 힘들었던 것은?
"초반에는 고립감 때문에 굉장히 힘들었다. 휴대전화도 있고 밑에 조합원들이 있었지만, 사실 거리가 멀다. 단절감이 생기더라. 그리고 전 집행부(금속노조 한진중공업지회) 관계 때문에도 힘들었다. 전 집행부가 사측과 합의해 현장복귀 선언했던 6월 27일부터 크레인이 고립됐다. 용역과 매일 싸우다시피 했다."

"용역이 밥을 금속탐지기로 스캔하듯...먹으면서도 눈물 나"

- 용역들이 밥을 올려주면서 금속탐지기로 조사한다는 말도 있었다.
"금속탐지기로 밥을 검사했다(밥은 한진중공업 바깥에 있는 '가족대책위'에서 마련해 경비실을 통해 황이라 민주노총 부산본부 상담부장이 받아서 용역을 통해 전달해 주는 방식이었다. 황이라씨는 '음식 내용이 뭔지 확인하고, 불투명 용기에 음식물이 들어 있으면 다 열어보고, 은박지로 싸놓은 음식물도 열어보고 금속탐지기로 스캔하든 검사했다'고 설명). 물병에 든 물은 비닐봉지에 부어 올려주었다. 물병을 올려주면 용역을 방어하는데 쓸 수 있다고 판단했던 것이다. 그런 광경을 크레인 위에서 보니 굉장히 치욕스러웠다. 용역이 도시락 뚜껑을 열어서 확인하는 것을 보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것도 금속탐지기로 하는 것이었다. 그런 밥을 먹어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먹으면서도 눈물이 나더라."

- 크레인 위에 있으면서 별도로 쓴 일기나 글은 없나.

"별로 쓴 거 없었다. 집중도 안됐다. 트위터에는 밝은 이야기를 주로 썼다. 힘든 이야기는 쓸 수가 없었다. 평상심을 유지하기 위해서도 밝게 보이려고 애를 썼다. 응원하러 찾아오는 사람이 없었다면 정말 힘들었을 것이다. 우울감 같은 거 말이다. 길 건너편에서 사람들이 손을 흔들어주면 기분이 나아지기도 했다. 그런 분들이 없었다면 정말 힘들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런 분들은 전혀 모르는 사람들이었다."

- 중간에 용역이 침탈하려고 하는 상황이 벌어졌다고 했다.
"크레인 아래에 그물 친다고 했을 때, 뛰어내리고 싶었다. 강제침탈 하면 누차 뛰어 내리겠다고 했다. 크레인이 강제침탈 되면 이 싸움은 끝난다고 생각했다. 그런 상황에서 차라리 내 한 몸 던져서라도 막고 싶었던 것이다. 성과를 따지기 이전에 워낙 절망적인 상황이었다. 거기서는 생각이 극단적일 수밖에 없겠더라. 크레인 밖으로 몸을 내민 게 쇼가 아니라 실제 그런 심정이었다. 저는 다 내놓고 올라간 사람이라 미련이 없었다. 사측도 그런 것을 알았기에 긴장했다고 본다."

- 캄보디아 어린이 '콩다니'(10)를 제일 보고 싶다고 했는데.
"어떤 사람들은 후원하는 아이라고 하던데,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고 '특별한 인연'을 맺은 아이라고 생각한다. 지난해 9살이었으니까 올해는 10살이다. 작년 여름 아시아평화인권연대와 같이 캄보디아에 가서 처음 만났다. 예쁘고 공부도 잘하는 아이다. 12살 언니와 움막같은 남의 집을 빌려 산다. 아버지는 돌아가시고 어머니는 태국으로 돈 벌려고 갔는데 연락이 끊겼다고 한다. 할 수만 있다면 데려 오고 싶었다."

- 희망버스는?
"희망버스에 대한 이야기보다 개인 바람이 있다. 한미FTA 반대 투쟁도 중요하고 시급하다. 저는 쌍용자동차 동지들을 생각하면 마음이 아팠다. 거기에 비하면 우리는 행복하게 싸웠다. 쌍용차 퇴직 관련자 19명이 죽었다. 그 누구도 어쩌지 못하는 무력감의 늪에 깊이 빠져 있는 것이 아닌가. 저 죽음의 행렬을 끊어야 한다. 연대 행렬이 쌍용차를 향해 갔으면 한다. 그래서 간절한 사람들의 희망이 되어야 한다. 희망이 있으면 아무리 힘들어도 죽지 않는다. 쌍용차 사람들은 희망이 없다. 정혜신 박사가 쌍용차에 대해 '와락' 공간 개설하면서 관심을 가지고 움직임을 보이기 시작하는데 고맙다. 그런 움직임이 지속되었으면 한다. 희망버스의 힘이 국회를 움직였듯이, 쌍용차도 1년 내 재고용에 대한 약속을 지키도록 하기 위해서는 국회가 나서야 한다."

- 정리해고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를 넓히는데 희망버스가 기여했다고들 한다.
"정리해고를 사회적으로 부각시키면서, 그 문제를 사회적으로 공감하게 했다고 본다. 정리해고가 얼마나 심각한지 알려내는 것은 희망버스의 100% 성과다. IMF 이후 15년 동안 노동자들이 일방적으로 당해 왔다. 한 번도 싸워보지 못하고 싸웠다고 해도 깨졌다. 이제는 정리해고 법을 바꾸자고 정치권에서 제기할 것이라 본다."

"한진중공업 사측은 노사 관계 신뢰를 어긴 상황에서..."


한진중공업 영도조선소 85호 크레인에서 '정리해고 철회'를 주장하며 309일 동안 고공농성을 벌였던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이 부산 사하 오케이오병원에 입원 중이다. 사진은 이주노동자인권을위한모임 정귀순 대표 등이 병문안을 와서 병실에 들어서는 모습.
 한진중공업 영도조선소 85호 크레인에서 '정리해고 철회'를 주장하며 309일 동안 고공농성을 벌였던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이 부산 사하 오케이오병원에 입원 중이다. 사진은 이주노동자인권을위한모임 정귀순 대표 등이 병문안을 와서 병실에 들어서는 모습.
ⓒ 윤성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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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부에서는 개별기업의 문제를 사회이슈화 한다며 비판한다.
"기업의 문제는 평화적으로 해결하는 게 바람직하다. 한진중공업은 그것을 벗어났다. 2003년과 2007년, 2010년에 사측이 노사합의를 어겼다. 신뢰관계가 무너지면서 극단적인 상황들이 생겨버린 것이다. 사측도 자기들이 해결할 수 있는 범주를 벗어나고, 그런 의지도 없었다. 진진하게 대화하려는 의지가 없었다. 문제가 악화되고 해서 공이 국회로 넘어간 것이다. 늦었지만 다행스런 측면이 있고, 안타까운 측면도 있다. 어차피 이렇게 해결될 것이라면 초반에 정리해고 하지 않고 해결할 수 있었을 것이다.

사측도 용역비용에다 이미지 실추 등 어마어마한 손해를 보았을 것이다. 2003년에는 결국 2명(김주익·곽재규)이 죽고 나서 합의하면서 해고자들을 복직시켰다. 그때 나만 빼고 복직시켰다. 왜 저런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는지 모르겠다. 진짜 최고 경영진들이 마인드를 바꾸지 않는 이상 불안한 측면이 있다. 이재용 사장이 이번에 약속을 지키겠다고 했는데, 제발 그렇게 하기를 바란다."

- 조남호 한진중공업 회장이 만나자고 하면 만날 용의가 있나.
"나 같은 사람을 만나겠나. 다시는 이런 불행한 일로 상처를 입는 일들이 생기지 않기를 바란다. 합의정신을 살려 노사가 공존할 수 있기를 바란다. 2003년 2500여명이었는데 다 나가고 지금은 800여명이 남아 있다. 거기다가 울산, 마산, 다대포, 율도에 있던 공장을 폐쇄하고, '설계실'도 없앴다. 이제는 공존하는 경영방식이 필요하다. 이제는 기업도 그렇게 하지 않으면 발을 붙일 땅이 없다. 그동안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상처받고 울고 했나."

- 정치권에 하고 싶은 말은?
"정리해고에 대해 드러난 문제들이 많다. 정리해고가 쉽게 일어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이현령비현령'이 되어서는 안된다. 정리해고를 쉽게 하지 못하도록 정치권이 법과 제도를 고쳐야 한다. 정리해고로 노동자들이 고통을 받지 않도록 법을 개정해야 한다."

- 한진중공업 사태에 대해 야당이기는 하지만 정치인들이 적극 나섰다.
"고맙다. 민주당 정동영·홍영표 의원한테는 공개적으로 고맙다는 인사를 한 적이 없다. 왜냐. 그 분들이 당연히 할 일이라서 그렇다. 우선은 고맙고, 그런 분들이 진정성을 갖고 한진 문제에 최선을 다했다고 본다. 저도 처음에는 놀랐다. 정리해고 이후, 정동영 의원이 부산 영도에 15번 왔다고 하던데, 솔직히 말해 세 번째 왔을 때 전화를 받았다. 두 번째까지는 '사진만 찍고 가겠지'라고 생각해서 전화도 받지 않았다.

그 분은 희망버스 다섯 번 모두 왔다. 국회 권고안과 노사 합의안이 만들어지기 까지 홍영표 의원과 정동영 의원이 힘이 컸다. 인정할 수밖에 없다. 그런 분들이 법과 제도를 만드는 분들이니까 이후에도 쌍용차 문제와 노동자들의 문제에 대해, 정말 진정성을 갖고, 최선을 다하는 태도로 이어져야 한다. 그분들의 활동이 한진에만 국한되는 게 아니라 더 넓어졌으면 한다. 제일 시급한 게 쌍용차다. 정치인은 체질적으로 거부감이 있다. 정동영 의원은 감동적으로 했다. 크레인이 침탈 위기에 있다고 하면 하루에도 몇 번씩 전화를 하기도 했다. 정말 진심으로 했다고 본다."

"민주노총, 집회도 너무나 틀에 박혀 있다"

- 희망버스를 보면 그동안 해온 민주노총의 운동 방식과 많이 다른데.
"조직운동은 재미가 없다. 집회도 너무나 틀에 박혀 있다. 형식적인 대회사와 경과보고, 연대사, 투쟁사, 노래공연, 결의문낭독 그리고 행진한 뒤 마무리한다. 경찰도 희망버스는 긴장하면서도 전국노동자대회는 긴장하지 않는다. 노동자집회는 모였다가 저녁 6시 정도 되면 갈 사람들이라고 생각하는 거다. 이런 것을 깨야 한다. 구체적인 고민을 던져준 게 2008년 촛불이었다. 우리가 모자랐던 게 진정성과 역동성이다. 우리는 숫자도 많고 오래되었고 절박하기도 하지만, '대중의 힘에 의해 움직이지 않고, 왜 지도부 방침만 남아 있는가' 하는 것을 촛불에서 확인했다.

그러면서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지도위원이기는 하지만 권한이 없다. 지도위원은 명예직이다. 우리는 정형화되고 고착화된 게 있었다. 그런데 희망버스가 운동에 대한 비전을 보여주었다. 연대다. 위에서부터 동원되는 방식이 아니라 마음에서 우러나는 연대를 희망버스가 보여주었다. 자기 돈 내고 자기 시간 내서 와서는, 물대포를 맞으면서 연대했다. 거기 참여했던 많은 사람들은 조직에 속한 조합원이라 생각한다. 민주노총 조합원이면서 희망버스를 탔던 사람들이 있었다고 본다. 집회를 하더라도 다르다. 희망버스는 소풍가듯이 괜히 기대가 되는데, 민주노총 집회는 간부니까 의무적으로 가는 것이었다. 그런 간극을 해소해야 한다. 기존의 틀을 가지고 바꾸어낼 수 있을지 판단이 서지 않는다. 고민이 많다."

- 노사 합의를 하고, 내려올 것이라 예측을 했나.

"크레인에 올라가고 나서 언제 내려간다거나 교섭 예측을 하지 않았다. 예측하면 희망을 갖게 되고, 예측한대로 되지 않으면 실망도 크다. 초반에 좀 그랬지만 시간이 지나고 나서 예측하는 버릇을 없앴다. 이번에도 마음을 비우고 있었다. 잘되면 좋고, 안 되면 거기에 맞게 해야 되니까. 이번에 너무 극단적인 경험을 많이 하면서 마음에 여러가지 변화가 있었다. 평상심을 유지하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에 대해, 삶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졌다. 초반에는 짜증을 많이 냈다. 황이라씨한테도 짜증을 냈던 것 같다."

- 언론이나 노동단체, 학자, 정치인 등 외국에서도 반응이 컸다.
"우선은 호기심이었다고 본다. 50살 넘은 여자가 고공농성을, 그것도 동료가 죽은 크레인에서 300일 넘게 하고 있으니 기네스북감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기록적 측면에서 호기심과 경이감이 컸던 것 같다. 그리고 일본 노동단체들이 연대하러 오기도 했다. 세계적인 석학 노암 촘스키 교수(미국 매사추세츠 공과대학)와 크리스티안 볼프 독일 연방대통령이 격려메시지를 보내주었는데, 엄청 놀랐다. 우리는 이명박 대통령 밖에 생각하지 못했는데, 독일 대통령이 그렇게 했으니 말이다.

노동조합, 특히 산별노조의 힘을 절감했다. 그 나라들은 노동조합의 힘이 사회 전반에 영향을 미친다. 우리는 노조라고 하면 무조건 적대시하거나 안 좋은 이미지부터 떠올린다. 트위터에도 노동조합이라고 하면 별로 안 좋게 생각했는데 김진숙 투쟁을 보며 다르게 생각하게 되었다는 글이 많았다. 트위터를 보고 온 사람들은 크레인 밑에서 노숙하기도 했는데, 민주노총 간부들은 하루밤도 자지 않았다. 매일 와서 지키는 사람들은 학생이거나 시민들이었다, 거기에 온 사람들이 진정성을 가졌다."

"여당 의원들 영장 반대...검찰 무리함에 문제의식 가진 것"

한진중공업 영도조선소 85호 크레인에서 '정리해고 철회'를 주장하며 309일 동안 고공농성을 벌였던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이 부산 사하 오케이오병원에 입원 중인 가운데, 14일 저녁 금속노동조합 부산양산지부 운영위원들이 병문안 와서 병원 옥상에서 잠시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다.
 한진중공업 영도조선소 85호 크레인에서 '정리해고 철회'를 주장하며 309일 동안 고공농성을 벌였던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이 부산 사하 오케이오병원에 입원 중인 가운데, 14일 저녁 금속노동조합 부산양산지부 운영위원들이 병문안 와서 병원 옥상에서 잠시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다.
ⓒ 윤성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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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검찰이 구속영장을 재청구할지 모른다는 말이 나온다.
"검찰이 더 무리하지 않았으면 한다. 순리대로 했으면 한다. 법원이 기각 판결을 한 것을 깊이 헤아려야 한다."

- 검찰에서 구속영장을 신청하자 한나라당 안에서도 반대하는 기류가 있었는데.
"홍준표 대표와 이재오 의원이 트위터에 그런 글을 남겼다고 하던데, 저는 직접 보지는 못했다. 의외였다. 그런 분들도 한진중공업 상황을 깊이 공감하고 있었다고 본다. 검찰의 무리함에 대해 문제의식 갖고 있는 게 고맙고 반가웠다."

- 노사합의 사항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국회 권고안이 토대가 되었다. 중요한 것은 경력과 근속을 인정한 것인데, 정리해고 철회다. 1년 생계지원금이 만족할 만한 것은 아니지만, 정리해고 책임도 회사가 지는 것이다. 공장에 사실 일이 없다. 이전에 수주 받았던 것은 다 나가고, 도크가 비워져 있다. 그런 상황에서 최선의 안이었다고 생각한다. 당장 복직하면 좋았겠지만 말이다. 정투위(한진중공업 정리해고 철회 투쟁위)는 퇴직금고 학자금 문제에 대해 섭섭하다고 한다. 그러나 크레인에 있는 시간이 오래되고, 현장복귀를 해야 한다는 소리도 있는 상황에서 최선의 안이었다. 최선을 다해왔다."

- 더 하고 싶은 말은?

"하여튼 한진 싸움에 희망버스 타고 걱정해준 수많은 분들이 고맙고, 너무 오랜 시간 걱정을 끼쳐 죄송하다. 마무리가 100% 만족스런 결과는 아니지만 과정의 승리다. 다들 너무 고맙고 고생 많았다. 제가 크레인에 올라가 있는 동안 어떤 분은 맛있는 음식이 있어도 먹지 못했다 하고, 등산 가고 싶어도 가지 못했다고 하며, 일요일 늦잠을 자다가도 차가운 크레인을 생각하며 일어났다고 하더라. 그런 분들의 하나하나 모여 309일을 보낸 뒤 무사히 내려오고, 그것도 건강하게 내려오게 되었다고 본다. 그만큼이라도 합의안을 만든 것은 모두의 마음이 모아졌던 것이라고 보고, 다시한번 더 고맙다. 고맙기는 말도 다할 수 없을 정도다.

-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가.
"제 자리로 돌아갈 것이다.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 자리다. 일단 쉬고 치료도 받고 싶다. 사실 크레인 위에 있으면서 건강을 물어봤을 때 솔직히 대답할 수 없었다. 아파도 참는 부분이 많았다. 몸을 추스르고 나면 제 자리로 돌아갈 것이다. 지도위원 자리로 돌아가서 이전처럼 해왔던 일을 할 것이다."


태그:#김진숙 지도위원, #한진중공업, #85호 크레인, #오케이오병원, #정리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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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부산경남 취재를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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