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글의 법칙>은 김병만 가족만의 '살아남기'가 아니었다. 이것은 SBS 리얼 버라이어티 <정글의 법칙>의 책임 프로듀서를 맡고 있는 정순영 CP의 실화다. 그는 그야말로 만 하루 동안 정글의 법칙의 지배(?)를 받으며 살아남아야 했다. 다음은 그가 견뎌내야 했던 25시간을 당사자의 증언과 주변사람들의 전언을 바탕으로 재구성했다. [편집자말]
[기사 보강: 14일 오후 9시 24분]

전말은 이러하다. 정순영 CP는 제작진의 수장으로 <정글의 법칙>의 촬영지인 파푸아뉴기니로 떠났다. 50대라는 적지 않은 나이, 정CP는 원래 오지로 향하지 않으려 했지만 유난히 정CP를 따랐던 김병만이 "정CP님이 안 가면 안 가겠다"고 하는 통에 일행에 합류하게 됐다.(일설에는 후배PD가 오지 출장을 모두 마다해 등 떠밀려(?) 출장을 떠났는 이야기도 있다)

 SBS 리얼 버라이어티 <김병만의 정글의 법칙> 속 한 장면

SBS <김병만의 정글의 법칙> 속 한 장면 ⓒ SBS


뙤약볕의 정글 아래 "나 잠깐 쉴게, 먼저 가"가 발단

촬영지에서 마을까지는 걸어서 최소한 2시간이 넘는 거리, 제작진은 선발대와 후발대로 나뉘어 밀림 한 가운데를 걷고 있었다. 며칠을 제대로 먹지도 못 하고, 잠은 땅바닥에서 잤다. 나이가 나이인지라 선발대에 속했던 정순영CP가 먼저 지쳤다. 정 CP는 "나 여기서 잠깐 기다렸다가 뒤에 팀 만나면 갈 테니까, 먼저들 가"라며 팀원들을 보냈다. 그것이 정글 표류기의 시작이었다.

선발대가 먼저 마을에 도착했다. 후발대도 당도했지만 정순영CP가 보이지 않았다. 한바탕 난리가 났고, 제작진은 정CP를 찾아 근처를 뒤지기 시작했지만 그는 어디에도 없었다. 조금 있으면 해가 떨어질 시각. 그 전에 정CP를 찾아야만 했다.

제작진이 애타게 정CP를 찾고 있을 때, 그는 오지 않는 사람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3~4미터만 뒤쳐져도 앞이 잘 보이지 않는 밀림 숲, 길이 엇갈린 모양이었다. "설마 나를 버리고 갔으랴" 싶었지만 시간이 흐르자 두려움이 밀려왔다. 근처를 서성이면서 사람들을 찾기 시작했다. 해가 지고 겁이 덜컥 났다. 부슬부슬 비까지 내리기 시작했다.

해가 지고 어둠과 죽음의 공포가 엄습하다

 <정글의 법칙>의 정순영CP는 촬영차 간 파푸아뉴기니에서 길을 잃어 변변한 식량도 없이 25시간을 버텼다. 위 사진은 구출 직후 정CP의 모습이다.

<정글의 법칙>의 정순영CP는 촬영차 간 파푸아뉴기니에서 길을 잃어 변변한 식량도 없이 25시간을 버텼다. 위 사진은 구출 직후 정CP의 모습이다. ⓒ SBS


움푹 팬 곳을 찾은 정CP는 그곳에서 비를 피하기로 했다. 정글의 밤은 칠흑보다 어두웠다. 손에는 물 2통과 비스킷 3쪽, 홍삼 절편, 그리고 양초 하나가 있었다. 양초에 불을 켰다. 겁이 났다. 평소 불교신자였던 정CP는 갑자기 신앙심이 두터워짐을 느꼈다. '관세음보살을 외치면 어디 가서도 안 죽는다'는 말이 떠올랐다.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그러자, 갑자기 촛불이 마치 부처님의 뒤를 비추는 후광처럼 동그랗게 변했다. 믿을 수 없는 광경에 정CP는 자기 눈을 비볐다. 다시 "관세음보살"을 외치자 촛불의 모양이 다시 동그랗게 바뀌었다. "살 수 있겠다!" 싶었던 그는 날이 밝을 때까지 기다렸다.

같은 시각, 제작진 역시 날이 밝기를 기다렸다가 정CP를 찾기 위해 아침 일찍 원주민 100명을 모았다. 혹시나 발을 헛디뎌 강에 빠지는 불상사가 일어났을까 싶어 강 앞에서 초조한 마음으로 기다리기도 했다. 지금에야 편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이 이야기는 그만큼 최악의 사태였다. 가지 않겠다는 정CP를 데려갔다는 생각에 김병만은 울고 있었다.

한편, 해가 뜨자마자 정CP는 조금이라도 기척이 있는 쪽으로 가시덤불을 헤치고 나갔다. 가다보면 제자리인 곳을 몇 번이나 헤매며 길을 찾았다. 그곳에서 그는 갖고 있던 물티슈를 하나씩 꺼내서 나뭇가지에 걸어놓는 기지를 발휘했다. 물티슈를 발견한 수색대가 자신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 생겼다. 이런 기지와 믿음은 헛되지 않았다. 3시간이 지나 이 '물티슈 나무'를 발견한 제작진이 정CP를 발견했다. 실종 25시간 만이었다.

생사의 갈림길에서 정순영CP는 살아 돌아왔다. 귀국 직후 그의 온 몸은 홀로 밤을 지새우며 모기 물린 자국 투성이었다고. 이 일을 계기로 또 하나의 인생을 살게 된 정CP는 "주변사람들에게 잘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요즘 한창 밥을 사고 있다는 훈훈한 후문이 들려온다. 그는 프로그램의 책임 프로듀서로서 이렇게나 현실적이고 치열한 '정글의 법칙'을 몸소 담아왔다.

 14일 저녁 서울 목동 SBS에서 열린 '정글의 법칙' 기자간담회에서 파푸아뉴기니에서 촬영 중 실종된 에피소드를 가지고 있는 정순영 부국장이 웃음을 짓고 있다. 홀로 떨어져 밤을 지새울때 물렸던 모기자국이 손등에 선명하다.

14일 저녁 서울 목동 SBS에서 열린 '정글의 법칙' 기자간담회에서 파푸아뉴기니에서 촬영 중 실종된 에피소드를 가지고 있는 정순영 부국장이 웃음을 짓고 있다. 홀로 떨어져 밤을 지새울때 물렸던 모기자국이 손등에 선명하다. ⓒ 이정민


 14일 저녁 서울 목동 SBS에서 열린 정글의 법칙 기자간담회에서 정순영 부국장이 오마이스타 기자에게 정글에서 홀로 밤을 지새울때 모기한테 물린 자국을 보여주고 있다.

14일 저녁 서울 목동 SBS에서 열린 정글의 법칙 기자간담회에서 정순영 부국장이 오마이스타 기자에게 정글에서 홀로 밤을 지새울때 모기한테 물린 자국을 보여주고 있다. ⓒ 이정민


14일 오후 8시 목동 SBS홀에서 있었던 <정글의 법칙> 기자간담회에 참석한 김병만은 당시 정순영CP의 실종 사건에 대해 묻자, "정글에 있는 나무를 다 베어서라도 찾고 싶었다"며 "정말 장난이 아니라는 생각이 드는 순간 나도 모르게 울음이 나오더라"고 회상했다.

그는 "아마 <정글의 법칙>을 보다 보면, 나중에 이유없이 막 울고 있는 모습이 나올 것"이라며 "나중에 국장님 찾았다는 소리 들었을 때 우리가 울다가 웃으니 원주민들이 이상한 사람처럼 쳐다보더라"고 웃었다. 김병만은 "천국과 지옥을 오갔는데, 천국으로 끝났으니 얼마나 다행이냐"며 가슴을 쓰러내렸다.

 14일 저녁 서울 목동 SB에서 열린 정글의 법칙 기자간담회에서 개그만 김병만이 정순영 부국장이 촬영 중 실종된 일에 대해 이야기하며 익살을 부리고 있다.

14일 저녁 서울 목동 SBS에서 열린 정글의 법칙 기자간담회에서 개그만 김병만이 정순영 부국장이 촬영 중 실종된 일에 대해 이야기하며 익살을 부리고 있다. ⓒ 이정민


 14일 저녁 서울 목동 SBS에서 열린 정글의 법칙 기자간담회에서 정순영 부국장이 촬영 중 실종된 일에 대해 이야기하자 김병만을 비롯한 출연자들이 경청하고 있다.

14일 저녁 서울 목동 SBS에서 열린 정글의 법칙 기자간담회에서 정순영 부국장이 촬영 중 실종된 일에 대해 이야기하자 김병만을 비롯한 출연자들이 경청하고 있다. ⓒ 이정민


정글의 법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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