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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00원 지폐 인물로 영생하고 있는 이이
 5000원 지폐 인물로 영생하고 있는 이이
ⓒ 한국은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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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남녀 중 고조할아버지나 고조할머니의 이름을 알고 있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될지 궁금합니다. 대개의 사람은 죽으면 잊히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자신의 뿌리라고 할 수 있는 고조부모의 이름을 기억하지 못한다 해도 커다란 흉이 되지 않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죽어서도 잊히지 않는 사람도 있습니다.

잊히지 않는 사람 중에는 잊히고 싶어도 잊히지 않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 이름이 대대손손 칭송돼 영광스럽게 잊히지 않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완용이 치욕적으로 잊히지 않는 사람의 사례라면 이이 같은 사람은 대대손손 영광스럽게 잊히지 않는 사람일 것입니다.

49년을 산 이이와 괴마, 잊힌 사람과 영생하는 사람으로 천양지차

비슷한 시대를 산 두 사람, 이이(李珥)와 괴마(槐馬)가 있습니다. 우리나라 성인 중에서 1584년, 427년 전에 죽은 이이를 알지 못하거나, 보지 못한 사람은 거의 없을 겁니다. 하지만 그보다 조금 이른 1546년에 죽은 괴마를 기억하는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이이는 을사년 사화로 위사공신(衛社功臣) 공훈을 받은 인물들의 서훈 박탈을 개혁의 첫 목표로 삼고 이들에게 지원을 부탁하고 있었다. 이이는 흐트러진 기강을 바로잡고 새로운 풍토를 진작시키기 위해 부당한 세력이 권력을 휘둘렀던 어두운 과거를 청산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귀천을 막론하고 죄를 지으면 벌을 받고 공을 세우면 상을 받는다는 신상필벌의 원칙은 세상살이의 기본이었다. 이 기본을 바르게 하지 않고 제도를 시행하는 것은 모래성을 쌓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여겼다." (본문 243쪽)

저는 선산 임씨 괴마공파입니다. 제 파조가 바로 괴마 임백령(林百齡)입니다. 이이와 괴마 두 사람 모두 49세의 나이에 죽었으니 비슷한 세대에 비슷한 세월을 살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을사사화 주역 중 한 사람으로 기록돼 있는 괴마와 1570년(선조 3년)에 괴마의 훈작을 삭탈하는데 뜻을 같이했던 이이의 사후는 천양지차입니다.

<격몽>, 이이 15세 때부터 49세에 죽을 때까지 이야기

도서출판 블루닷에서 출간한 신용구 장편소설 <격몽>에는 이이와 괴마, 두 사람의 이름이 등장합니다. 하지만 소설에서도 역시 괴마는 을사사화의 주역 중 한 명으로, 이이 등이 훈작을 삭탈해야할 개혁의 대상으로 그려집니다. 그 이름의 가치와 의미에서도 아주 큰 차이를 보입니다.

<격몽>표지
 <격몽>표지
ⓒ 도서출판 블루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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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몽>은 이이가 15세 당시부터 49세 죽을 때까지 그가 지향한 정치와 삶을 그린 소설입니다. 소설이라고는 하지만 대하드라마가 그러하듯 역사적 사실들을 배경으로 하고 있어 전혀 낯설지 않은 내용입니다.

<격몽>은 역사에 그 시대를 살아가던 사람들이 사는 모습을 덧댄 '사는 이야기'며 정치사에 얽힌 '뒷이야기'입니다. 

"今俗(금속)엔 多不識禮(다불식례)하여 其行祭之儀(기행제지의) 家家不同(가가부동)하니 甚可笑也(심가소야)라 若不一栽之以禮(약부일재지이례)면 則終不免紊亂無序(즉종불면문란무서)하여 歸於夷虜之風矣(귀어이로지풍의)라.

지금 사람들은 예법을 알지 못하는 자가 많다. 그래서 제사지내는 절차가 집집마다 모두 같지 않으니 몹시 우스운 일이다.

이것을 만일 한 가지로 통일해서 예법에 맞도록 하지 않는다면 마침내는 어지럽고 질서가 없이 되어버려서 오랑캐의 풍속으로 돌아가 버리고 말 것이다."

조선시대 사상가인 이율곡 선생이 1577년에 지은 <격몽요결(擊蒙要訣)> 제례장 제칠에 나오는 내용 중 일부입니다. 이이는 정치·경제·국방은 물론 인간의 기본가치라 할 수 있는 '예'를 강조했습니다. 그가 남긴 영향은 아직까지도 지속되고 있습니다.  

이이는 진정한 개혁가

저자가 말하는 이이의 정치는 '정귀이시(政貴以時)' '사요무실(事要務實)'로 집약할 수 있습니다. 또한 그가 말하는 리더십은 '백성들과 함께 호흡하는 소통의 리더십' '계파를 아우르는 중화(中和)의 리더십' '현재의 문제와 미래의 목표를 정확하게 간파하는 통찰의 리더십'입니다. 

정귀이시(政貴以時), 사요무실(事要務實). 즉, 정치를 함에는 때가 중요하고, 일을 할 때는 반드시 실질적인 것에 힘을 써야 한다는 것이 이이가 말한 정치의 요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군왕이 좋은 소리를 듣고자 한다면 당장은 몸이 편안할 수 있을 것이나 백성들의 후일은 기약하기 어려운 지경에 빠져들 것입니다. 군왕은 시끄러운 것을 두려워 말아야 하고, 비난에 마음아파해서는 안 되옵니다.

군왕의 자리라는 것이 본래 외롭고 고독한 자리입니다. 세상에 이보다 더 고독한 자리는 없사옵니다. 이치가 이러하니 군왕의 옆에는 허심탄회하게 말을 나눌 수 있는 신하 몇몇이 꼭 있어야만 합니다. 이를 유념해 주소서." (본문 330쪽)

이이는 개혁가였습니다. 동과 서로 갈려 패당정치가 횡횡하던 시절, 이이가 염두에 두고 있는 것은 나라와 백성들뿐이었습니다. 그랬기에 임금에게도 할 소리는 다 하는 고집불통일 수 있었던 것입니다.  

괴마 임백령의 묘, 이이와 비슷한 시기에 이이처럼 49년을 살다 죽었지만  이이와 임배령의 사후는 천양지차다 .
 괴마 임백령의 묘, 이이와 비슷한 시기에 이이처럼 49년을 살다 죽었지만 이이와 임배령의 사후는 천양지차다 .
ⓒ 임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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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권모술수와 이합집산, 패거리와 암투로 상징되는 권세가들의 뒷모습을 적나라하게 조명하고 있어 조금만 비틀어 생각하면 요즘의 정치 상황과 위정자들을 조롱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습니다. 

"임금이 생각하기에 이이는 어느 하나 부족한 것이 없었다. 오히려 넘치는 것이 흠이라면 흠이었다. 학문은 그 깊이를 헤아릴 수 없을 만큼 심오했고, 기백은 역발산기개세(力拔山氣蓋世)를 자랑한 천하장사 항우(項羽)도 울고 갈 정도였으며, 그의 속은 명경지수라 감추고 숨기고 할 것이 없는 사람이었다." (본문 331쪽)

임금이 말하는 이이입니다. 정치적 부침을 그렇게 당하면서도, 초지일관 나라와 백성을 최우선으로 한 이이였기에 만인지상의 임금마저도 이토록 극찬을 아끼지 않았을 것입니다.

지폐의 인물로 영생하고 있는 '이이'

이이가 죽은 지 427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지만 이이의 모습, 이이가 추구하던 정치·경제·사회·문화·국방을 아우르는 모든 가치는 지폐의 속 인물로 형상화 돼 영생하고 있습니다.

"작금의 정치 현실은 권력이라는 수단이 정치의 목적이 되어 버렸습니다. 정치의 본질이 되어야 할 인간의 행복이라는 문제는, 목적이 되어버린 수단 앞에서 갈기갈기 찢겼사옵니다. 이것은 진정 누구를 위한 정치인 것이옵니까?

이이의 신념과 꿈은 오로지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세상을 만들자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어떤 수단도 어떤 이념도 어떤 사상도 목적이 되는 것은 반대하고 있습니다.<격몽 563쪽>

지도자가 진정 두려워해야 할 바는 권력을 잃어버리는 것이 아니라 국가의 미래를 잃어버리는 것임을 힘주어 말하고 있다." (본문 11쪽)

<격몽>의 저자 신용구가 <격몽>을 통해 위정자들에게 남기고 싶은 말을 한 마디는 바로 '지도자가 진정 두려워해야 할 바는 권력을 잃어버리는 것이 아니라 국가의 미래를 잃어버리는 것임'을 자각하라는 충고가 아닐까 생각됩니다.

<격몽>, 우리나라의 400년 전 정치 실상을 뒷담화처럼 들을 수 있고, 당대 사람들이 사는 모습을 들여다 볼 수 있는 흥미진진한 타임머신이 될 것입니다.

덧붙이는 글 | <격몽> (신용구 씀 | 도서출판 블루닷 | 2011.10. | 1만4800원)



격몽 - 擊蒙·몽매함을 일깨우다

신용구 지음, 블루닷(2011)


태그:#격몽, #이이, #괴마, #신용구, #블루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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