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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산의 시작
▲ 예봉산 단풍 등산의 시작
ⓒ 이희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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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27일, 회사 사람들과 함께 경기도 남양주에 위치한 예봉산을 올랐다. 이미 그 전 주에 대리직급 교육의 일환으로 한 번 올랐던 산이었지만, 이번에는 신입사원 및 금년 경력사원을 대상으로 한 교육의 일환으로 예봉산-적갑산-운길산 종주가 잡힌 터였다. 아이가 태어난 뒤 주말만 되면 아이를 보느라 등산 가기 어려웠는데 갑자기 이렇게 산복(福)이 터져서야 원.

그 전 주와 마찬가지로 양평의 콘도에서 하룻밤을 보낸 뒤 팔당역 뒤 예봉산 입구에서부터 등산을 시작했다. 강가 바로 옆에서부터 시작되는 등산. 그것은 결국 해발 683m를 예봉산 정상까지 에누리 하나 없이 모두 걸어서 올라가야 된다는 이야기인 터, 예봉산의 완만치 않은 경사가 심상치 않게 보일 뿐이었다.

전날 마신 술 때문일까? 등산 전 여기저기서 들리던 신입사원들의 대화소리는 등산 후 약 10분 만에 사라져 버리고 거친 숨소리만이 평일 산의 적막을 대신하고 있었다. 이 놈의 산은 왜 이리 경사가 급하고, 또한 앞서 가는 사장님의 발걸음은 왜 그리 급한지.

그러나 지친 기색이 역력하던 동료들의 발걸음은 계곡을 지나 능선을 타기 시작하면서 다소 가벼워지는 듯했다. 산을 오르면서 펼쳐지는 아름다운 풍광에 자신이 얼마나 힘든지 까먹기 시작한 것이다. 산 밑으로 보이는 북한강의 장대한 물결과 남한강과 북한강이 만나는 두물머리의 그림 같은 절경. 그뿐인가 예봉산은 조선시대 이 지역 인근과 서울에 땔깜을 공급했을 만큼 그 수림이 울창하다더니 가을 낙엽 역시 아름다웠다.

호연지기를 길러라
▲ 예봉산에서 바라본 두물머리 호연지기를 길러라
ⓒ 이희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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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봉산에 대한 설명을 찾다 보면 이곳 가까이서 태어난 다산 정약용에 대한 이야기가 유독 많은데, 산 아래 풍경을 보고 있자니 충분히 이해가 갔다. 아마도 다산은 그 형제들과 함께 이곳을 올라 호연지기를 길렀을 것이며, 강가에 다닥다닥 붙어있는 홍진을 내려다 보며 자신의 꿈을 다듬었을 것이다. 두 개의 거대한 강이 만나 하나의 흐름을 만드는 풍경을 보고 자란 이의 심성은 뭐가 달라도 다르지 않았겠는가. 아마도 다산은 두물머리가 빚어낸 최고의 인재였으리라.

드디어 예봉산 정상. 봉수대와 보루성터가 있는 것으로 미루어 조선시대 봉화대가 있었던 곳으로 추정된다는 그곳은 봉화대가 설 만큼 사방팔방으로 탁 트인 조망을 선사하고 있었다.

예봉산 정상에서 바라본 하남시
▲ 하남시와 미사리 조정 경기장 예봉산 정상에서 바라본 하남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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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멀리 수락산과 불암산, 도봉산과 삼각산이 보인다
▲ 예봉산 정상에서 바라본 구리시와 서울 저 멀리 수락산과 불암산, 도봉산과 삼각산이 보인다
ⓒ 이희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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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두물머리 방향 반대편으로 서울의 동남쪽이 시야에 들어왔다. 수락산과 불암산, 도봉산, 북한산, 남산이 한눈에 보였으며 그 밑에 뿌옇게 낀 스모그 띠와 다닥다닥 붙은 아파트들이 이곳이 바로 서울임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저렇게 답답한 곳 한 켠에 우리의 보금자리가 있다는 사실이 서글플 뿐이었다. 이렇게 주위를 둘러 보면 청명한 가을 하늘에 울긋불긋 아름다운 가을 산이거늘, 난 내일 당장 저 회색 빌딩 사이에서 어떻게든 살아보겠노라며 또 근근이 일상을 연명해 나가겠지.

하남시를 보고 싶으면 예봉산을 오르라더니 예봉산 정상에서는 하남시 전체가 보였고 그 중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역시 미사리 조정 경기장이엇다. 직사각형의 모양으로 마치 거대한 수조를 떠올리게 하는 조정 경기장. 그곳은 생각보다 꽤 큰 면적을 차지하고 있었는데, 저렇게 긴 코스를 최근 <무한도전> 멤버들이 조정으로 완주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은빛 억새로 덮인 곳... 한잔 안 할 수 없지

예봉산 정상에서의 전경을 뒤로 한 채 다시 길을 걸었다. 팔당역에서 예봉산까지 꽤 힘든 여정이었지만 그것은 오늘 우리 산행의 1/4 정도밖에 되지 않은 터, 짧아진 가을 해가 지기 전에, 그리고 강변북로나 올림픽도로가 막히기 전에 집에 가기 위해서는 부지런히 발걸음을 옮겨야 했다.

은빛 물결
▲ 억새밭 은빛 물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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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에서 15분쯤 내려왔을까. 5월 입사하자마자 함께했던 예봉산 산행에서 휴식 장소 겸 전체 사진촬영 장소였던 헬기장이 은빛 가을 억새로 뒤덮여 있었다. 아무리 바쁘다지만 어찌 이런 풍경을 보며 그냥 지나칠 수 있을까. 우리는 그곳에서 회사 전체 산행의 백미, 막걸리 한잔을 걸쳤고 억새를 배경으로 전체 사진을 박은 뒤 다시 가던 길을 재촉했다.

예봉산에서 적갑산, 그리고 운길산까지 걷는 12km의 산행길. 예봉산 정상에서 잠시나마 왁자지껄 떠들었던 일행들은 또다시 조용해졌고 모두 자신의 발끝만을 주시하고 있었다. 비록 예봉산을 오를 때처럼 경사가 급해 숨이 막힐 정도는 아니었지만 어쨌든 능선 종주라는 것이 결코 얕볼 수 없는 행위인 터, 산에 처음 온 사람은 처음 온 사람대로, 산행에 익숙한 사람은 익숙한 대로 묵묵히 걷고 또 걸을 뿐이었다.

철갑을 두른?
▲ 적갑산 소나무 철갑을 두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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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명한 가을 하늘 아래 낙엽이 떨어진 산길을 무작정 걷고 있노라니 문득 2005년 10월 중순 친구와 함께 했던 지리산 종주가 떠올랐다. 노고단에서부터 시작해 천왕봉을 거쳐 중산리까지 2박 3일 동안 그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도 뛰기까지 했던 그때. 논문을 쓰기 전 그 지리산 종주가 내게 얼마나 큰 힘이 되었던지.

난 언제 또다시 지리산 종주를 할 수 있을까? 처가가 경남 산청이니 이젠 노고단에서부터 시작해 처가로 내려와 장모님께 밥을 얻어먹고 잘 수도 있는데. 첫째 까꿍이가 얼마나 크면 이 녀석을 데리고 지리산 종주를 할 수 있을까?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고 나니 피식 웃음이 나왔다. 지리산 종주도 거뜬히 해냈던 내가 고작 1000m도 되지 않는 산 종주를 하면서 너무 헐떡대고 있었던 것이었다. 아무리 요즘 등산을 다니지 않았기로서니 주위를 둘러보면 산 아래 마을이 바로 보이는 높지도 않은 산길이건만 이리도 힘들어 할 수가. 운동 부족에 비만 때문이려니.

적갑산을 지나 운길산 정산까지 가는 길은 이번 종주의 백미였다. 운길산의 모양이 산봉우리가 여러 겹 겹쳐 있는 터라 이 봉우리가 끝인 줄 알고 올라가면 또 그 너머 산봉우리가 있고, 그 산봉우리를 오르면 저 산봉우리가 보이는 그런 '희망고문'이 계속되었기 때문이었다. 가도 가도 끝이 보이지 않는 운길산 정상. 때마침 체력도 바닥이 보이는 터라 운길산 정상까지의 구간은 말 그대로 자신과의 싸움이었다.

이 봉우리가 정상이 아닌가벼
▲ 예봉산에서 바라본 운길산 이 봉우리가 정상이 아닌가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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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운길산 정상. 아침에 올랐던 예봉산 정상과는 달리 운길산에서는 하남, 서울 쪽이 보이지 않아 풍광 면에서는 감흥이 덜 했지만 대신 뽀족한 예봉산의 모습과 남한강과 북한강이 합쳐지는 두물머리가 바로 눈 앞에 보여 나름대로의 운치를 가지고 있었다. 자, 운길산 정상 표지석을 뒤로 전체 사진 한 방.

"동방 사찰 최고의 전망"... 4대강 삽질에 훼손되지 않기를

예봉산에서부터 운길산까지의 종주를 마치고 하산하는 길. 그러나 일반 하산길과는 달리 나는 들떠 있었다. 내려가는 도중에 들를 수종사 때문이었다. 운길산 수종사. 내가 언제부터 가고 싶어 하던 수종사였던가. 근 10년 동안 꼭 가겠노라 노래를 불렀지만 그때마다 기이 막힌다, 시간이 없다 등 이런저런 이유로 아직까지 한 번도 가보지 못한 사찰. 드디어 그 수종사를 이번에는 가는구나.

운길산 정상에서부터 수종사까지 가는 길은 꽤 가파랐지만 나의 발걸음은 거침이 없었다. 10년을 기다려 온 기회인데 이 정도쯤이야. 과연 수종사는 어떤 앞마당을 지니고 있을까? 수종사에서 바라본 풍광이 어떻기에 조선시대 서거정은 수종사를 가리켜 "동방 사찰 최고의 전망"이라 했을까.

일자의 가람배치
▲ 수종사 전경 일자의 가람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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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물머리 전경
▲ 수종사 앞마당 두물머리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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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멀리 전각이 보이는 듯싶더니 드디어 수종사가 눈앞에 펼쳐졌다. 사찰이 운길산 중턱 좁은 공간에 자리한 터라 전각을 많이 거느리거나 넓게 펴져 있지 않았지만 그 앞으로 보이는 전망이 사찰의 앞마당 역할을 함으로써 사찰의 확장성이 극대화되고 있었다. 태백산맥 전체를 그 앞마당으로 삼는 경북 영주 부석사와 유사한 이치였다.

수종사에서 바라본 두물머리의 풍경. 역시나 그 명성만큼이나 아름다웠다. 아침에는 저곳에서 물안개가 피어 오르고 저녁에는 저곳이 붉게 물든다고 생각을 하니 차마 발걸음을 뗄 수 없었다. 사시사철 매시간의 변화를 보고 싶었다. 도대체 수종사는 어떤 풍광을 품고 있는 것일까.

그러나 이와 같은 감탄과 더불어 가슴 한 편에는 적지 않은 불안함이 공존했다. 바로 지금 두물머리 근처에서 또아리를 틀고 있는 4대강 사업의 때문이었다. 아직까지는 팔당 유기농 단지 농민들의 단합된 힘이 4대강 사업을 막고 있지만 과연 그들이 언제까지 현 정부의 무지막지한 불도저를 막을 수 있을까? 만약 그들의 터무니 없는 토건사업이 진행된다면 저 두물머리의 아름다운 풍경은 어떻게 흉측하게 변할까?

부디 4대강 사업이 이곳 두물머리만은 건들지 못하기를 바랄 뿐이다. 내년 이맘 때 다시 이곳을 찾아도 같은 풍광을 볼 수 있기를.

550년 넘은 은행나무
▲ 수종사 은행나무 550년 넘은 은행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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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그만 수종사를 나가려는데 절 입구에 사찰의 창건과 함께 심었다는 550년이 넘은 은행나무가 눈에 띄었다. 노랗게 물든 은행잎들을 흩날리는 그 나무는 그 거대한 모습 자체로 지나간 세월을 직접 증명하고 있었다. 비교적 곱게 뻗은 용문사의 은행나무와 달리 넓게 퍼져 있는 수종사의 은행나무는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좀 더 편안한 느낌을 주었다. 품이 넓은 어머니의 느낌이랄까.

수종사를 내려오는 길. 아쉬움으로 멈칫할 만도 한데 종주의 후유증인지 한 번 풀린 나의 다리는 걷잡을 수 없이 내딛기 바빴다. 그리고 어느새 도착한 북한강가 도로변. 우리는 그곳에서 미리 세워둔 차를 타고 식당으로 이동했고, 저녁 식사 후 단체 사진과 함께 긴 여정을 마쳤다.

시간이 허락된다면 내 언제가 다시 한 번 수종사에 올라 아침 물안개를 볼 터이니, 그때까지 부디 두물머리가 훼손되지 않기를.


태그:#수종사, #예봉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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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사회학, 북한학을 전공한 사회학도입니다. 물류와 사회적경제 분야에서 일을 했었고, 2022년 강동구의회 의원이 되었습니다. 일상의 정치, 정치의 일상화를 꿈꾸는 17년차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서, 더 나은 사회를 위하여 제가 선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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